인생을 걷다
안철환
나는 매일 사막을 걷는다
길이 아닌 길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간다
하늘을 보며
때론 진짜인 듯 먼 신기루에 속아
본 듯 못 본 길을 걸어간다
언젠가 누군가 지나간 길일 것이다
지금은 내게 주어진 운명의 길--
과연 나의 의지로 견딜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길이다
그림자조차 고마운 길
이제껏 욕심껏 살아온 의지조차
부질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길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이미 지나온 길은 허무하다
한 길 꿈 속 같은
투명의 속성이 드러나는 길
자신만만한 허상을 깨는 순간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
앞으로 얼마가 더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 길을 나는 가야 한다
눈동자 감추는 구름 따라
누구도 모르는 길을 가야만 한다
어차피 미련한 길
그늘 하나, 저 물길을 찾아
나는 사막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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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안철환
종일 앉아 있었다
바람이 해를 데리고 갈 때까지
바람이 달을 데리고 다시 올 때까지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답은 없다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까지
내일로 달려가는 오늘까지도
텅 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칙폭 기적을 울리며
봄을 찾아 나선 기찻길을 따라
눈먼 시간이 달려왔다
벅찬 찻잔 속 침묵에 유채꽃은 흔들렸다
시름조차 멈추어 선
간이역, 꿈길 같은 그 꽃은
기다리던 대답 대신 미소를 남겼다
무소의 뿔도 살아갈 이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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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안철환
살아간다는 것은
바람골에서
네 행복을 건지는 일이다
바쁘다는 것은
어쩜 샛별을 기는 두레박이 아닐까
부끄럽다는 것은
실개천 댓잎새 무학의 풍경 소리라
돌아본다는 것은
다못한 행복의 흐느끼는 그림자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별을 따다가
곧 내 이름을 지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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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
안철환
별은 청계천에 있었다
손을 꼬옥 잡은 물결 사이로
나는 조각배 같은 초승달을 띄웠다
상수리 구름 타고 먼 길을 떠나도
하루가 일 년만 같았던
사이다 같은 웃음은 천상의 별이었다
산등성 너머 신선대에 다다른
여린 솔향 같은 바람은
아직 환희의 바다에서 울고 있는가
북두야 칠성아
그래, 함께 가자꾸나
삶에 규칙은 없다
굴뚝 없이 사는 인생은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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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
안철환
길이 있어 그게 명절이면 좋겠다
형제의 목소리가 흐르는 강
보이지 않는 고향 같은 윤슬 길
말은 안 해도 보기만 해도 흐뭇한
길이 있어 그게 벗이면 좋겠다
대추나무 처마 끝 애교로 대롱대롱
상수리 길 숨 가빠도
놀부 목소리도 마냥 함께라 흡족한
길이 있어 그게 고향이면 좋겠다
새근새근 안아주시는 목소리
좋은 건 채우고 남은 건 비우던
고향의 새벽은 막걸리 한 사발이라
아이야 일어 거라
굴뚝 익어가는 달마산은 굽이굽이
마실길, 노을마저 눈부신
아직도 부끄러운 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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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하고 참신한 작품 감사드립니다.
수석 부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