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민화의 화제(畫題)
민화는 용(用)의 그림인 동시에 ‘뜻’의 그림이다.
일반 회화와 같이 단순한 생할 주변의 장식용이나 감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기원하는 보통사람들의 상징숭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상징화이며 신년 새해에 상대방에게 덕담(德談)을
나누듯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게 만수무강(萬壽無疆) 무병장수(無病長壽), 연생귀자(捐生貴子)
부귀영화(富貴榮華) . 부부화락(夫婦和樂), 노후여유(老後餘裕), 과거급제(科擧及第)
다자다손(多子多孫) 등을 염원하는 깊은 뜻이 담긴 덕화(德畵)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화의 화제는 일반 동양화제(東洋畫題) 거의 전부를 포함하는 동시에 민화 고유의 화제를 추가시켜서 방대한 소재를 상징화시킨 것이다.
조선시대의 생활민화도 다분히 신앙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유(儒). 불. 도. 무(巫)의
네 종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생활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그림의 하나로 용호도가 있다.
이 용호도는 호축삼재(虎逐三災)의 뜻의 세속적인 화의를 품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그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호도는 절간을 지을 때 벽이나 천정에도 꼭같은 뜻으로 그렸고, 도관(道觀)이나 향교나 무신당에도 한결같이 그려져 있다.
그러면 용호도의 상징은 어느 종교출신인지 그 답이 즉석에서 나오지 않더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용호도는 어느 종교에서나 다 같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용호도는 4대 종교의 공통분모임에 틀림없고 바로 그 점이 민화의 상징풀이에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우리 문화사에 뿌리박고 있는 4대 종교는 저마다 그 교리나 철학을 달리 하면서
한 지붕 속에서 같이 살아온 것은 청룡백호사상과 같은 세속적인 바탕을 공동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무지계(無知界), 속계(俗界), 지계(知界)를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지계 에서는 본능 그대로 먹고 배설하자는 생각 밖에 못한다.
속계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세속적인 민수주의 신앙을 가지고 보다 오래 살고 보다 잘 살려고
애쓰는데, 여기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민수주의 상징 신앙이다.
불교적 속기(俗氣), 도교적 속기, 무교적 속기가 한결같이 복을 부르고 악귀를 몰아낸다는
초복벽사의 기본신앙으로 가득 찬 속계에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십장생도가 열 가지 장복 물을 상징하고 백녹 도(栢鹿圖)가 백년식록(柏年食祿)을 뜻하고
석목단도(石牧丹圖)가 장복과 부귀를 상징하고 약리도(躍鯉圖) 즉 잉어가 뛰어 오르는 그림은
어변성룡(漁變成龍)의 고사로서 출세와 득남을 나타내고, 석류도가 아들을 많이 거느리는
백자 유를 상징하는 등 속계의 상징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러한 속계의 상징 신앙은 우연히 꾸며진 것이 결코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저 사람의 눈에 뜨이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비치는 영상을 그리고, 꿈을 그리고, 환상을 그렸다. 그들은 하늘을, 땅을, 사람을 그렸다.
하늘의 천신을 그리고, 달. 해. 별을 그렸다. 구름, 비, 천둥, 바람의 신상(神像)들을 그리고
사방 신, 오방 신, 12지 신 같은 관념적인 신의 모습도 그렸다.
이런 것이 동양화 이전의 민수회화로서 자랐다.
그들은 자연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자연을 숭배했다.
산과 물을 그리면서 산신과 용신을 그리고, 나무, 돌, 꽃, 새, 풀, 곤충, 짐승을 상미(尙美)하는
동시에 길상(吉祥)으로 숭배하면서 지상계의 화문(畵門)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을 그리고 인위(人爲)를 그리고, 인신(人神)을 그렸다.
국조, 제왕, 충신, 열녀를 그리는가 하면 제사, 혼례, 수연, 생자(生子)의 그림을 그리고
사내아이, 고기잡이와 나무하는 일, 밭가는 지아비, 누에치는 지어미, 그리고 유. 불. 선. 무의
여러 신과 성현을 그리면서 인문부의 화문도 마련했다.
이리하여 천. 지. 인 삼재에 걸쳐서 상미(尙美)화 숭배를 겸한 용화(用畵)가 탄생했는데 상미의 부분이 자라서 정통화로 세련되고, 숭배의 그림이 진화하여 종교화로 굳어졌다.
그 결과 ‘삶’과 ‘얼’을 조화시킨 본연의 그림들은 어느 새 미술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오던 조선시대의 생활화가 그러한 인류 본연의 민수회화의
사료(史料)에서 재발견된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