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웃을 깨우치며
조동일
2018년 봄에는 일본 京都에서 南畵 전시회를, 가을에는 중국 杭州에서 墨竹 전시회를 구경했다. 좋은 곳이니 수준 높은 구경거리가 있으리라고 여기고 찾아가, 기대 이상의 행운을 얻었다. 두 전시회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경도와 항주는 일본과 중국의 古都이며, 오랜 품격을 자랑하는 곳이다. 후대의 수도인 東京이나 北京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지만, 내실이 모자라 허세를 부린다고 은근히 낮추어본다. 동경이나 북경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고 위축된 심신을 경도나 항주에서 펼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완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두 곳에서 모두 하루 2만보 이상 걷고도 피로한 줄 몰랐다.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 식생활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동경의 음식은 치장이 화려해 시선을 끌기나 하고 세련된 품격이나 깊은 맛이 모자라, 경도에서는 우습게 여긴다. 북경에서는 무엇이든지 기름에 튀기고 간장을 넉넉히 쳐서 걸쭉하게 만들어 먹는데, 오랜 내력을 자랑하는 항주의 맛집은 꾸밈이 없고 담백한 별미를 간직하고 있다. 동경이나 북경에서 서둘러 먹기를 일삼는 사람이라도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음식의 깊은 맛이 둘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하는 곳이 경도이고 항주이다.
동경은 국립서양미술관을 자랑으로 삼는 데다 더 보태, 서양의 미술작품을 가져와 전시하는 거창한 행사를 여기저기 펼치고 있다. 북경 곳곳에 웅대하게 신축한 미술관에는 현대 서양의 전위미술을 흉내 낸 온갖 괴물이 넘치고 있다. 두 곳 다 서양이 세계를 이끈다고 우러러보면서 따라가야 발전한다고 미술을 들어 말해주고 있다. 동아시아문명의 향기를 더 맡고 싶은 갈증에 이끌려 찾아간 순진한 구도자를 여지없이 우롱하고 밀쳐낸다.
동아시아의 자존심을 선두에 서서 지켜야 할 양대 거대국가가 서양에 무릎을 꿇고 있는 배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하고 말 것은 아니다. 실망을 달랠 곳이 있으니, 경도이고 항주이다. 경도에서는 남화, 중국 항주에서는 묵죽 전시회를 놀랄 만한 규모로 열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남화나 묵죽은 동아시아의 전통미술이다. 먹만 사용하고 채색은 하지 않은 것이 서양화와 아주 다르다. 영어로는 "Chinese ink"라고나 일컫는 먹이 얼마나 신이한 조화를 빚어내는지 보여주면서 무식을 나무란다.
남화는 중국 남쪽에서 창안한 수묵화이며 산수를 주로 그렸다.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서 전통미술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제 다른 데서는 거의 이름만 남았는데, 일본에는 남화를 관장하는 협회가 있어 공모한 작품으로 거대한 전시회를 열어 충격을 주었다. 먹으로만 그리는 수법은 그대로 이으면서 서양화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무엇이든지 끌어들여 산수화의 범위를 넓혔다. 참여하는 화가가 계속 새로 보충되는 것 같아 놀라웠다.
묵죽은 먹으로 그린 대나무다. 그림 같기도 하고 글씨 같기도 한 필치로 대나무가 생동하는 모습을 우렁차게 뒤틀기도 하고, 고결한 자세를 뽐내기도 하고, 살랑살랑 나부끼기도 하게 보여주었다. 시를 짓고 글씨를 잘 쓴 화제를 곁들여 품격을 더 높였다. 詩書畵를 하나로 여기는 천여 년의 전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알려주었다.
남화에서 풍경을 무엇이든지 끌어들인 것은 혁신을 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서양을 동양에다 집어넣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잃은 것도 적지 않아, 선은 사라지고 면만 남아 있다. 기운생동을 자랑하던 기백은 어디 가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감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는가? 法古創新 가운데 창신을 빗나가게 하다가 법고를 잃고 만 것이 아닌가?
항주의 묵죽은 경도의 남화와는 반대로, 법고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창신이 없는 것이 불만이다. 먹은 먹이 아니고, 대나무는 대나무가 아니게 하는 대담한 시도로 놀라운 생기를 보여주지는 못하는가? 전위미술이라는 괴물을 퇴치하는 辟邪의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가?
일본과 중국은 그렇고, 우리는 어떤가? 서울의 허세를 치유할 고도가 있는가? 徐羅伐은 너무 많이 변해 품위를 잃었다. 松都는 잘 있는지 걱정된다. 남화나 묵죽 같은 것으로 전통미술 전시회를 거대하게 열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어놓을 수는 있다. 우리 마음속에 남화와 묵죽이 하나가 되게 전시하자. 법고가 바로 창신이게 해서, 옛것의 가치를 오늘날의 재창조에서 더 크게 발현하자. 미술과 함께 학문도 혁신해 두 이웃을 깨우치며,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는 지혜를 얻자.
*<항주 서호 > 집현정이 보인다.
*항주 서호 가의 <소동파기념관>
* 서호에서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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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호 옆 <절강미술관>
* <천재청풍 -중국당대묵죽대전> 절강미술관 전시회
* 전시 묵죽 작품들
*전시 묵죽 작품들을 관람하는 중국 관람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