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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Paul L. Lehmann에 의하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칼빈은 루터보다 더 명료하고 단순하며, 성경 해석사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CH, Vol.6, ed. Richard C. Gamble, Garland Publishing, INC, New York, 1992), 412.
Kemper Fullerton은 칼빈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성경을 학문적으로 해석한 사람이(the first scientific interpreter in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라 했다. Kemper Fullerton, Prophecy and Authority: A Study in the History of the Doctrine and Interpretation of Scripture (New York: Macmillan, 1919), 133.
Fullerton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칼빈과 루터는 모두 문법적 역사적 의미를 성경 해석의 원리(exegetical principle of the grammatic-historical sense)로 삼았다. 루터는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콘택스트를 무시하고 모든 성경의 텍스트에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무리한 기독론 중심의 해석은 반대했다. 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Old Testament (Kentuc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5), 10.
칼빈의 성경 해석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빈의 성경의 필요성, 성경관, 인문주의 영향, 말씀과 성령의 관계, 해석자의 자질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성경 해석의 논리는 성경에서 도출했기 때문이다.
1. 성경의 필요성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양심과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 때문에 예수를 안 믿는 삶도 그 나름대로의 종교성을 갖고 있다. 부적, 섬 지방에 있는 많은 미신, 고사 지내는 행위 등은 왜곡된 종교성의 표출이다. 사실 무신론이라는 언어 자체가 모순된 말이다. 이미 그 말 속에는 신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준다(롬1:19).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위엄은 인간의 이해력을 능가함으로 하나님을 탐구하기보다는 예배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조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생각하도록 하셨다. 성경은 창조의 세계를 보이지 않은 것들의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표상이 아니면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세계를 우리에게 표상하기 때문이다(롬 1:20, 히 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나 종교의 씨앗을 통해서는 참다운 하나님의 지식을 알 수 없다. 우리가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타락을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게 할 뿐이다. 구속주이시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서 성령님이 선지자와 사도를 감동시키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은 안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 Vol.I(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7), 1.6.1. Cited as ICR. 『기독교강요 요약』, 이형기박사 옮김(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86), 30-31.
이 말은 메타포(은유)이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눈이 아프거나 시력이 약하면 실제로 잘 볼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은 타락으로 인해서 참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한다. 성경이 안경이라는 은유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 이성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케 하여 교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이성은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우리에게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고 가르쳐 준다.
2.칼빈의 성경관 (Calvin's View of Scripture)
i) 성경의 저자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 (1.6-9), 성령과 구원에 관계(3.2), 성경의 권위와 영감(4.8)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을 다 포함한다. 성경 66권은 표면상으로 보면 다 그 저자가 있다. 오경은 모세가 저자이다. 이사야 선지서는 이사야가 저자이다. 사도 바울 서신은 사도 바울이 저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자기의 말이라고 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도 성경을 자기의 말이라고 하지 안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반증해 주지 않은가? 만약 하나님이 저자가 아니라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겠는가? 그렇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어떤 부분은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문체(a rude and unrefined style)도 있다. ICR, I.VIII.2.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은가?
성경에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문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순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이 모순을 조정 이론(accommod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정과 능력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케 하시고 어머니가 어린애를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게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쉬운 말로 알기 쉽게 기록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이다. Lewis Battles에 의하면 조정 이론(God's Accommodation to human capacity/caput)은 칼빈이 창안해 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교회사를 볼 때 Origen, Augustine, Chrysostom, Hilary of Poitiers 사용했다. 그러나 칼빈의 경우는 이들과 달리 이 원리를 일관성 있게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꿀 수 없는 갭을 매꾸는데 적용했다고 말했다.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Ed. Donald K. Mckim (Baker Book House, 1984), 22.
칼빈에 의하면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사도들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케 하신 것이다.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성경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책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ICR, I.VI. 2.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절대 무오하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숨결이시며 하나님 자신이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다(딤후3:16).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을 보여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주며 율법과 선지서,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준다. 칼빈은 신정통주의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님과 증거로써 하나님의 말씀(Neo-orthodox conundrums in driving a wedge between Christi as the Word and Scripture as Word in the sense of witness)을 구분하지 않는다. 성경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한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 마음에 성경의 권위와 진리를 증거하며, 동일한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성경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시며, 하나님의 지혜요 말씀으로 증거하며,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말씀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배우며,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다. Richard A. Muller, “The Foundation of Calvin's Theology: Scripture as Revealing God's Word,” Duke Divinity School Review 44(1979), 14-24.
삼위일체적으로 말하면 성경이란 성부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케 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이다.
ii) 성경의 권위
성경의 권위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칼빈이 성경의 권위를 들고 나온 이유는 성경이 신적인 권위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에서는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의 권위가 아니라 믿음과 진리의 은행으로서 교회가 성경 권위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이 교회의 수장이요 성경 해석의 최후 재판관이 된다고 믿었다. Paul Lehmann에 의하면 우리 장로교에서는 성경은 믿음과 신앙의 궁극적인 규범이 성경이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의 권위는 교회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구원의 확실성도 성경 자체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부여한 것처럼 보여지므로 성경의 신적 권위를 약화시킨다.
성경이 절대 무오한 진리가 되는 것을 교회가 결정 하게 된다면 절대적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성경의 기초 아래 세워진다고 칼빈은 말했다. ICR, I. VII. 2.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성령님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서 확신되어진다. 성령님은 성경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이 우리의 지성에 계시하시고 마음에 인을 치셔서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증거하며 확신케 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증거는 없는 것이다. ICR, I. VII. 4.
성령님의 증거나 조명을 통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한 사람에게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서 이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경의 자증에 기인하는 것이다. ICR, I.VII. 5. αυτοπιστον(self-authenticated)
성경의 자증성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가장 완벽하게 말해 준다. 성경이 스스로 그 권위와 진실성을 말한다. 자증성이란 성경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성경 해석이나 설교는 말씀 자체가 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는 설교나 해석은 자연스럽고 분명한 것이다.
iii) 성경의 내용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τα δυναμενα σε σοφιαι εις σωτεριαν δια πιστεως της εν Χριστω Ιησου, 딤후3:15). 칼빈은 분문 주석에서 “구원에 충족한 지혜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대한 아주 귀한 찬사로 다음 구절은 그 의미를 더욱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우리를 성경의 핵심이요, 알맹이가 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Calvin's Commentary, Vol.21 (Michigan:Baker book House, 1986), 248-49. “For this reason he directs us to the faith of Christ as the design, and therefore as the sum, of the Scripture for on faith depends also what immediately follows.” Cited as CC. 성경에서 예수님게서 직접 성경은 자신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고 증언하셨다. “Everything must be fulfilled about me in the law of Moses, the Prophets and the Psalms(Luke 24:44-47).” 여기서 모세의 율법은 모세 오경을 말하며 선지자는 선지서를 의미하며 시편은 성문서를 의미함으로서 구약 전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핵심이요 설계다.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치는 책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설계요 핵심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구약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의 통일성을 이루는 설계요 신구약 통일성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신구약의 통일성을 이루는 핵심이 없이는 신약과 구약을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신구약을 하나로 묶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성경의 모형론적 해석이나 구속사적인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Von Rad는 신구약을 두개의 찬양대로 비유하면서 두 개의 찬양대가 하나의 핵심인 예수를 지칭하면서 부르는 두 개의 찬양대라고 했다. Essays on Old Testament Hermeneutics, Ed. Claus Westermann Trans. James Luter Mays(Atlanta:John Knox Press, 1979), 14-24.
iv)성경의 명료성과 단순성
성경은 왜 단순하고 명료한가? 두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배려 혹은 조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제약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 쓰여졌을 경우, 우리가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보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게 언어를 선택하시고 쉬운 말로 기록토록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가운데 구약을 일상 히브리말로 신약도 일상언어인 코이네 희랍어로 기록케 하신 것이다. 환언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명료하고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어린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칼빈의 조정 이론이며 바로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배려로 말미암아 단순하고 명료하게 쓰여져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해석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십계명설교』, 벤자민 팔리 편역 (성광문화사, 1991), 427-29.
둘째는, 성경은 인간의 사상이나 논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어느 곳을 읽어도 성령님의 감동이 안된 것이 없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통일성이 있고 각 성경의 개체성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배려와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는 칼빈의 성경관에 기초해 있고 성경으로부터 도출해 낸 성경적인 방법인 것이다. Donald Mckim은 “살아 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기록된 말씀이 가장 잘 해석되는 말씀”(The living word, Jesus Christ, is the One through whom the written word of Scripture is best interpreted)라고 했다. 이 말은 성경 해석 방법이 아니라 성경 해석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시금석이라고 볼 수 있다.
3.인문주의 사상과 성경 해석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프랑스 인문주의 자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스타일을 자쿠에스 레페브레의 서클(the circle of Jacques Lefevre)로부터 배웠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 교부들의 경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변적인 논리나 전문적인 변증법에 의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단순성과 명료성을 중요시하는 자세였다. “What the humanists.... admired in the piety of the Fathers .... was its simplicity and clarity[which avoided] emphasizing difficulties, nodi, openly opposing authorties sic et non, probing questiones in disputuations, and finally reconciling them by a subtle dialectic.....”( Eugene F. Rice., “the humanist idea of Christian anitquity:Lefevre d'Etables and His circle," in Werner L. Gundersheime, ed., French Humanism, 1400-1600(harper Torch books; New York, Harper& Row, Publishers, 1969),169.
E. David Willis에 의하면 칼빈의 사상은 dialectical diastasis라기보다는 수사학적 상관관계(rhetorical correlation)라고 했다. 칼빈은 두 가지 수사학 전통에 영향을 입고 있다. 하나는 변호나 토론하는 자가 토론이나 변호하는 것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기술로서 수사학이며 다른 하나는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듣는 자가 이해토록 설득하는 수사학이다. 후자의 수사학적인 전통이 칼빈의 사상 형성에 더욱 영향을 주었다. 더군다나 칼빈이 법률가로서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수사학에 능통한가를 시사해 준다. 칼빈의 사상에 후자의 수사학은 믿음을 설득으로 지식을 효과적인 진리로 계시를 하나님의 능력을 낮추어서 인간의 능력에 조정한 것을 통해서 보여진다고 윌리스는 말했다. The Context of Contemporary Theology, eds. Alexander J. McKelway and E. David Willis, John Knox Press, 1974, 43-63.
칼빈은 당대의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인문주의 학문을 배웠다. 수사학적 방법이란 고전 문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적인 수사학은 rethorique frivole (worthless rethoric)이다. 그러나 세례 받은 수사적인 방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된다. 세상적인 지식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직접적으로는 도움이 안되지만 성령 세례를 받은 좋은 방법은 간접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칼빈에 의하면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향에 목표를 두고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Heinrich Bullinger는 “Of the sense and Right Exposition of Scripture”라는 설교에서 다섯 가지 성경 해석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성경 해석은 우리의 믿음에 동의해야 한다. 둘째, 성경 해석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성경 해석은 콘택스트(context)를 고려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성경에 의해서 해석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 해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The Decades of Herny Bullinger, ed. Thoimas Harding(Cambridge university Press, 1844), 70.
칼빈은 인문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칼빈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 사회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했다는 말은 아니다. 인문 사회학을 통해서 인문 사회학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성경에서 도출되는 성경 해석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성경 해석 목표(the goal of Biblical Interpretation)
칼빈은 1539년에 강요 2판을 발행한 후에 로마서 주석을 출판했다. 이 주석의 서문에서 주석자의 가장 좋은 목표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 성경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성경의 단순성과 명료성(lucid brevity)에 기초해야 한다. 둘째, 해석자는 성경 저자가 의도하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CC, Vol. 19, xxiii. Richard C. Gamble은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칼빈이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밝힌 대로 성경의 명료하고 단순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성경의 스타일과 연관을 갖고 있다고 했다(“Exposition and Method in Calvin,” WTJ, 49(1987) 153-165, WTJ 47(1985), 1-17).
그리고 칼빈은 갈라디아서(4:22) 주석에서 성경의 진정한 의미는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verum sensum scripurae, qui germanus est et simplex)라고 말하고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경 해석자의 목표는 성경에서 저자가 말하는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 혹은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to show) 것이 중요함을 말해 준다.
칼빈은 로마서 주석에서 당대의 석학들의 성경 해석 방법을 비판하면서 말하기를 멜랑톤의 로마서 주석은 성경의 주된 개념을 중심으로 성경을 주석을 함으로써 로마서 전체를 보기가 힘들며 부커의 주석은 너무 현학적으로 흘러서 평신도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자신의 성경 해석은 성경에서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그 의미에 기초하여 살기를 원했다.
Imbaart de la Tour도 말하기를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단순하게 그리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P. Imbart de la Tour, Calvin et l'Institution Chretienne(Paris, 1935), 63.
Hans-Joachim Kraus도 칼빈의 성경 해석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의 통일성 가운데 나타난 성경의 살아 있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하면서 여덟가지 성경 해석 방법을 제시했다. Calvin's Exegetical Principles, Interpretation, Vol.31(Jan., 77), 8-18.
칼빈은 성경 속에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찾았고 성경 스스로 말하도록 했다.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는 누구나 다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다.
5)성경 해석과 성령의 조명
성령과 성경 해석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칼빈에 의하면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올바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칼빈은 “문자 자체의 말씀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아무런 효과도 유익도 줄 수 없다”(the bare word has no effect or profit without the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 Instituion of 1541, Vol.II, 29.
성령에 의한 영감은 종교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모든 것 위에 있다. 루터도 성경과 신자 관계를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에 의하면 “말씀과 성령”이다. 이 말을 칼빈은 더 명료하게 설명했다. “성령 없이는 말씀은 죽은 문자이다. 말씀이 없이는 성령은 환상처럼 떠다닌다”(Without Spirit, the word is a dead letter; without the Word, the Spirit flutters as an illusion). Imbart de la Tour, Calvin et l'Institution Chretienne, p.61f; J. Chartrou -Charbonnel, La Reforme et les Guerres de Relgion (Paris, 1948), 85.
성령은 성경의 기자를 감동시켜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동일한 성령님은 오늘 날에도 우리를 조명하사 하나님의 말씀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확신케 한다. CC, Vol.20, 141.
성령의 검으로서 말씀(μακαιραν του πνευματος Ο εστιν ρεμα θεου)은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엡 6:17)에서 논리적으로 보면 말씀은 검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씀이 검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말씀은 검은 검이로되 쓸모가 없는 검이 되는 것이다. 말씀의 칼을 날쌔게 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세상의 해석학이 아무리 좋고 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데는 무용지물이 된다. 다만 세상 학문이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받는다면 성령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칼빈은 에베소서 주석에서 성령과 말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배소서 6:17말씀은 그것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만 이라고 주장하면 신비주의에 흐르며 말씀만 이라고 하면 이성주의 빠지며 말씀과 설령을 통해서라야 진정으로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은 히브리서 4장 10절 주석에서도 성령님의 역사를 중요시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칼빈은 본문을 주석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선포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CC, Vol..22, 103.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내적인 조명은 필수적이다. 칼빈은 누가복음 24:44-45(“또 이르시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대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을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의 주석에서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의 내적인 조명 혹은 가르침을 받어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요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이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며 그 성령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가르처 주시고, 주님께서 성경에서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요14:26). 성령은 진리(το πνευμα εστιν η αλητθεια)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진리로 가르처 주신다(요일5:6).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인처지기 전에는 인간들의 마음 속에 받아드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충실히 선포했다는 것을 우리가 납득할 수 있으려면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같은 성령이 우리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죤 칼빈, <영한 기곡교 강요>, 제 I 권(성문출판사, 1993), 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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