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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일 주일예배
변화의 순간-다윗이야기 “놉과 그일라”
도망자의 길에서 기도하다!
사무엘상 21장 1-6절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오늘 말씀의 초점은 위기 가운데 거짓말을 하던 다윗과 위기 가운데서 기도하는 다윗의 변화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첫 망명의 시작인 ‘놉’과 도망자의 삶에서 왕이 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결정적 사건이 되었던 ‘그일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찌 보면 오늘 말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속의 다윗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씀처럼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윗도 거짓말을 한다!
성경에서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 위대한 신앙인들의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길을 떠난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피난하던 시절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였던 일.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거짓말하여 축복을 가로챈 이야기,
그리고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 비록 피난길을 떠나 힘겨운 시간을 지내고 있지만 제사장을 속이고 거짓말 한 이야기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다윗의 삶을 정리하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15세로 목동이었던 때입니다. 비록 목동의 신분이지만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순간이죠.
성경의 이야기들이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꿈은 원대하였으나 현실을 그렇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목동으로, 수금을 타는 자로, 왕의 무기를 맡은 자로 이해할 수 없는 5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어쩌면 그리 드러나지 않는 삶이 그를 겸손하게,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시간으로 인도하지 않았을까요?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가장 낮은 자의 시간을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다윗에게 참 복된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목회의 여정을 반추해 보면 가장 복된 시간이 광야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1970년대초 시골 고향 금산에서 서울로 그리고 부산으로 그리고 신학교 시절 그리 먹을 것이 없었던 때,
은항교회, 좌천동교회 전도사로 생활하며 고신대학과 부산신학교를 다니며 15만원~25만원 사례금을 받고 주일이 되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회를 섬기며 도대체 하나님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말없는 외침 속에서 살았던 때,
수 많은 목회자, 신학자들과 교제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살아던 때,
전혀 수입없이 살며 수입이 없이 강의를 하고 자비량으로 두,세개 교회개척으로 섬기던 때, 신학교 교수로 교무처장, 학장,총장으로 학교를 섬기던 때,
유학시절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에서 일을 하고, 파트타임으로 교회에서 사역을 하며 담임목사님을 섬겨야 했던 시기이기에, 가슴 속에 타오르는 열정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힘들었던 그 순간들.
분명히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고, 부르심에 합당한 목회의 길 잘 열리지 않았던 암흑 같은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가장 뜨거운 열정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더듬어 보면 ‘행복’ ‘기대’ ‘열정’ 같은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 또 그렇게 살라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시간들인데도 그 때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다시 돌아와 바로 이 시간 여기 서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가 마치 내 인생에 암흑기로 다가와 앞으로 10여년을 살아 가게 될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맞이하고 있는 영광의승리를 쟁취한 골리앗과의 싸움 이후에 10년의 도망자의 시간처럼 말입니다.
그의 나이 23세에 영적 멘토였던 사무엘이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오늘 다윗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의 삶에서 암흑기를 기억해 보기 바랍니다. 그 때 여러분들은 혼자였는지,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영적 성장의 시간들은 언제였는지….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첫 번째 도망지인 ‘놉’은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과 아내 미갈을 뒤로하고, 자신을 암살하려는 사울왕의 창을 피해 달아났던 장소입니다.
사무엘상 21장 1절을 보세요.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제사장 아히멜렉이 왜 떨었을까요?
이미 온 땅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던 것 같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다윗이 도망자의 길에 올랐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자신 앞에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고대도시 놉은 예루살렘에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엘리 제사장의 가문을 이어 제사장이 된 사람이죠.
엘리의 증손자쯤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아히멜렉 뿐 아니라 85명의 제사장들이 모여살고 있어 ‘제사장들의 성읍’(삼상 22:19)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 ‘놉’에서 다윗은 거짓말을 합니다.
다윗은 너무 지쳐있었고 배가 고팠습니다.
사무엘상 21장 2-3절을 볼까요?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아마도 이런 다윗의 거짓말을 아히멜렉은 눈치를 채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곤혹스러운 것은 다윗이 요구하는 빵이 ‘거룩한 떡’으로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점이죠.
소위 진설병(陳設餠)이라 불리는 것으로, 제사장이 안식일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빵을 성소의 떡 상 위에 진설하고, 물려 낸 빵은 제사장 가족의 몫이 되었습니다(레 24:5-9; 막 2:25-26 참조).
그리고 연속되는 다윗의 말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5절과 8절입니다.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다윗은 지금 절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먹을 것을 얻었고, 거짓으로 무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나단과 헤어져 눈물을 흘리며 도망자의 삶을 시작했던 때, 처음으로 다윗이 찾아간 곳이 제사 드리는 곳, 제사장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로 찾아갔다는 것이고,
참으로 훌륭한 것은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의 위기를 보고 속아 주었다는 것이죠.
위대한 왕, 다윗은 자신의 거짓말에 알고서도 속아주고 도와준 아히멜렉으로 인해 목숨을 구하고 10년이 지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와 소설이 있습니다.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불어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죠.
빵을 훔쳐 19년 동안 수형 생활을 했던 장발장이 출소 후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외면 받다가 주교관으로 들어갑니다. 후
한 대접을 받았지만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게 되었고, 경찰에 붙잡혀온 장발장에게 오히려 은촛대마저 내어준 주교로 인해 개심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내용이죠.
거짓말은 인간의 절박함 가운데서 나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절박함 가운데서 신실함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이 다윗의 모습 가운데 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거짓말을 하다니!’ 그렇습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 따름입니다.
성경은 완벽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부족하고 한심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느냐의 여정입니다.
다윗을 보며 우리는 믿음의 위대함도 보고, 연약하고 넘어지는 인간의 한계도 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묵상 팀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더군요.
2. 문지윤 권사님
다윗은 즉흥적인 거짓말도 잘할 정도로 기본적으로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윗이 양치고 있을 때 이미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에 대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도망자의 신분으로, 나락에 떨어져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늘 실수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거짓말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사장 앞에서도 그렇게까지 추하게 거짓말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3. 김성권 장로님
사울하고 대비를 계속 해보게 되었어요. 지금 이 국면은 다윗은 논리적으로 이랬을 것이다 저랬을 것이다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쫓기고 있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고. 사울도 분명한 위기 속에서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사울은 비슷한 양상에서 하나님을 찾아서 참된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에게는 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바탕으로 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인 굶주림 가운데 이와 같은 순간적인 거짓말들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고 용납해주셨을 것입니다.
4. 정다운 목사
그래서 어쩌면 다윗이 본능적인 위협 속에서 제사장들의 도시인 ‘놉’으로 도망갔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기본이 다윗에게 있었던 것이지요. 거짓인 것을 알아도, 속아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정의도 있지만, 사랑과 용서가 범람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빵과 검 모두를 공급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평강교회가 한셈치고 헌금을 하는 이유, 사랑나눔, WHB, 해외선교부가 있는 것과 더불어서 나무생각과 나무모임을 권면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성도들에게 교회가 줄 수 있는 빵과 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의 빵을 먹은 사건은 예수님도 기억하고 사용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4절 말씀.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이 늘 강조하셨던 것처럼, 안식일 그 자체보다는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다윗의 거짓말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 앞에 일어난 일이고 경험된 일입니다.
다윗도 거짓말을 합니다. 그
러나 거짓말이라는 죄보다 그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크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거짓말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는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나약함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 제사를 드리는 곳을 찾아가, 제사장을 만나 인자를 구했다는 것이 귀하다는 것이고, 우리 교회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슬픈 것은 그 일로 인해 아히멜렉과 모든 제사장이 사울에 의해 몰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울을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다윗은 아히멜렉의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 일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스스로 물어야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언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이 무너졌나요?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순간에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고 붙잡아 주셨나요?
다윗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거짓말로 끝나지 않은 또 다른 다윗의 인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거짓말 대신 기도를 택하다!
역시 도망자의 길을 가는 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도망자 신세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경험했던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 중에 하나가 자신에게 ‘떡’을 주었다는 이유로 제사장 아히멜렉과 온 가족이 살해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살아남은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그의 아버지가 제사드릴 때 입었던 옷 ‘에봇’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제 다윗은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 온갖 원한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리더가 되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각양각색의 사람들 400명을 이끌고 다녀야했습니다.
그들은 피난자들이었고 세상에서 낙오된 자들이었습니다.
생활력도 없는 사람들이기에 다윗이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 본 우리는 너무 잘 알 것입니다.
말이 쉬워 400명이지 회사에서 직원 50명 점심 제공하는 것만 해도 큰 예산이 듭니다. 직원 채용할 때 상상해보십시오.
숙식 제공. 4글자, 2단어로 된 이 말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갖고 있는지 아시죠?
400명을 다윗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20살 다윗이 감당하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였던 것입니다.
사건은 바로 터집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실 말이 안 됩니다.
우선 다윗은 도망자 신세이고,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을 했다면 사울 왕에게 찾아가서 해결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도망자 다윗에게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사울이 있던 기브아에서 그일라는 그렇게 먼 곳이 아닙니다.
충분히 사울이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 혼자 도망하는 사람이 아닌, 많은 무리의 리더로서 다윗의 책임감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종종 ‘부담’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긍정적 스트레스라는 것도 있죠.
아마도 다윗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가 그를 더 좋은 왕으로 훈련시켜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무엘 상 23장 2절 말씀.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그러자 하나님이 치라고, 그일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상황이 어떤가요?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은 오합지졸 400명과 다윗이 싸우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무기는 칼 한 자루, 골리앗의 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4절에서 다윗은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블레셋 사람을 무찌르겠다고 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이 하신다고 답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전쟁에서 다윗은 승리합니다.
그것도 크게 승리했습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놉에서 사람들이 다 죽었을 때, 다윗에게 도망합니다. 바로 이 순간이 그일라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입니다.
아비아달은 맨손으로 다윗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에봇을 가지고 왔습니다.
에봇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미지처럼 앞치마 같이 생겼는데, 늘 입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을 여쭤볼 때만 대제사장이 착용했던 것으로, 다윗이 이후에 주님께 특별한 기도를 할 때 착용했다고 합니다.
복장 중에 한 가지만 추가로 설명 드리면, 흉패는 12지파를 뜻하는 보석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보석들과 제사장의 모든 복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8장을 보면 하나하나 하나님이 지정하여 이렇게 만들라고, 노아의 방수 때처럼 일일이 알려주신 대로 제작하여 입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윗은 아비아달을 보고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자신을 도와줬던 놉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니, 무엇보다 하나님의 제사장들, 성직자들이 그렇게 죽었다는 것이 분했습니다.
그때 지은 시편이 시편 52편입니다.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사울 왕에게 전해지자, 그는 바로 군대를 이끌고 그일라로 향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무엘상 23장 12절.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왜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
다윗은 정착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일라는 그럴듯한 곳이었습니다.
성도 있고, 성벽도 있어서 그일라 사람들이 허락해주면, 이곳에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래서 하나님께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과 부하들을 사울에게 넘겨줄지, 말지를 여쭤본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넘겨줄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참 흥미롭죠?
다윗이 하나님께 에봇을 입고 기도한다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은 기도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그리므로 에봇을 입고 기도하는 다윗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윗의 고난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훈련과 고난의 장으로 몰려나가게 됩니다.
그가 나아간 곳이 ‘십 광야’인데, ‘십’이라는 말이 철을 다듬는 제련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니 참 흥미롭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기 위해 내 모신 광야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자를 철저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3장 14절 말씀.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매일 위기를 겪으며 다윗은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증거는 그의 위기 가운데서 지은 ‘시편’이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주시지만, 그일라에서도 십 광야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현재 권력을 가진 사울 왕에게 다윗을 넘겨주려 합니다.
사울 왕이 사람들을 협박했으니 힘없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요?
사무엘상 23장 23절에서 사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또 기도하고 믿음의 고백으로 시편 54편을 짓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
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5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계속해서 사울은 다윗을 찾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주십니다.
이제 다윗은 ‘마온 광야’로 도망을 가고, 사울은 또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행히 블레셋이 침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돌아가면서 다윗은 한숨을 돌리게 됩니다. 이제 다윗은 ‘엔게디 요새’로 도망하게 되고, 여기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엔게디 요새가 참 중요한데, 이곳이 바로 사울 왕을 만난 동굴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고 3천명의 소수 정예 부대를 뽑아서 엔게디로 옵니다.
엔게디는 지도를 봐서 아시겠지만, 사해 바로 옆입니다.
불가마처럼 뜨거운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더운 곳에서 사울이 다윗을 찾다가 지쳐버립니다.
때마침 동굴을 발견한 사울 왕은 자려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동굴에 누가 있었을까요?
네, 다윗과 부하들이 그 동굴 깊은 곳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하들이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라고, 지금 사울 왕을 죽이자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삶을 마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죠.
방금 동굴에 들어왔으니 사울은 동굴 안에 누가 있는지 전혀 몰랐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의외의 행동을 합니다.
사울왕의 옷자락만 몰래 잘라낸 것이지요.
그리고는 오히려 부하들에게 이렇게 꾸짖습니다.
사무엘상 24장 6-7절 말씀.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리고는 다윗은 동굴을 나와서 사울 왕에게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면서, 자신은 절대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없다고, 다만 공정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옳고 그름을 판정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이 의외의 행동을 합니다.
크게 소리 내며 울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 인정합니다. 사무엘상 24장 16, 20절.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렇게 다윗은 요새로, 사울은 기브아로 돌아갑니다.
위기 가운데 거짓말했던 다윗이 이제는 기도하면서 시를 짓는 시인으로 피난 생활을 합니다.
기도하면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찬송하게 됩니다.
오늘은 시편 86편으로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그의 인생의 암흑기 3년 만에 찾아온 사무엘의 죽음.
하늘이 무너져 내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려울 때면 찾아가서 의논하고 도움을 청할 멘토가 있었는데, 이제는 혈혈단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람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죠.
다윗은 사무엘을 추도하기 위해 라마로 갔다가 바란 광야로 들어갑니다.
시편 86편 말씀.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우리는 인생의 곤고함 가운데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거짓말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곤고함 가운데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찬양하고 시편을 씁니다.
곤고함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