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2
고동주 수필가 추모
대표작 : 「동백의 씨」「그 아픈 이야기」, 약력
1. 동백의 씨 - (198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ㅡ 고동주
가을이 오붓하게 익어가는 어느 날동백의 섬 고향마을을 찾았다. 밭 언덕마다 줄지어 늘어선 동백나무는 성장이 둔한 탓으로 어릴 적에 눈에 익은 그대로인 듯하여 더욱 정겹다. 멀리서 보면 녹색의 아름다운 관상 상록수이고, 가까이 보면 윤기 흐르는 잎사귀마다 햇빛을 하나씩 나누어 간직한 초롱초롱한 눈빛들이다. 그 눈빛 이파리들 사이를 자세히 보면 작은 사과처럼 푸르고 불그레한 볼을 살짝 내민 야무진 동백 열매를 만날 수 있다. 그 열매 속에 간직된 검은 갈색의 씨는 가을이 짙어지면 두꺼운 껍질을 스스로 깨고 땅에 떨어진다. 그 씨에서 짜낸 동백기름을 옛 여인들은 아주 귀히 여겼다.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나서면 여인의 정갈한 품위에 윤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한 옛 멋은 이제 70 고개의 할머니들에게나 드물게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을 뿐 흔적을 감춘 지 오래여서 아쉽다. 이처럼 동백의 씨가 상품 가치를 상실하게 된 데 대해 작은 안달을 해보는 것은 내게 그럴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연과 만나기 위하여 20대 초반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군에 입대하여 두 번째 휴가를 갔을 때로 기억된다. 영하 30도의 추위와 싸우면서 교육에 열중하다가 휴가를 받으면 사병들은 모두들 정다운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고향으로 달리는 발걸음이 가볍고 신이 난다. 나도 그들 틈에 끼여 군용열차를 탔다. 밤을 세워가며 달리는 열차가 남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마음속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졌다. 어릴 때 어버이를 여윈 서러운 외톨이의 고향은 이미 따스한 정이 식은 타향이던 것을….
첫 휴가를 고향마을 숙부님 댁에서 묵고 귀대할 적엔 몇 푼의 차비를 쥐어주는 숙부님의 손길에 차가운 시선을 꽂던 숙모님의 모습이 확대되어 회상되었을 때 휴가를 출발한 것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를 되돌릴 수도 없었다. 찻길 뱃길 합하여 하루 밤낮의 여독에 지친 몸으로 그리웠던 섬마을 가장 가까운 혈육의 대문을 두드렸을 때 예상했던 반응보다 더욱 싸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조카의 문안 인사조차 묵살되는 듯한 숙모님의 모습보다도 한 가닥 정의 끈인 숙부님이 장기 출타 중이시라는 충격 때문이었으리라.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을 스스로 달래면서 친척 집들을 전전하다가 귀대 일자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귀대할 여비 마련이 문제였다. 나룻배를 타기 위하여 바닷가로 내려오면서 텅빈 호주머니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앞을 가렸다. 나룻배에 오르기는 했으나 큰 섬의 여객선 부두에서 승선을 거절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귀대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퍼런 바다에 뛰어들어버릴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마냥 즐거워야 할 휴가가 이렇게 낭패스럽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아쉬운 배웅의 눈길 대신 외면의 설움….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저 먼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 어머니!” 하고 소리쳐보고 싶었다. 나룻배는 나를 포함한 10여 명의 손님을 실은 채 저만치 떠나고 있었다. 그때 마을 뒷산 언덕에서 “오빠!” 하고 울부짖으며 천방지축 뛰어 내려오는 열세 살의 어린 사촌 여동생 모습이 젖은 시선에 어렴풋이 나타났다. 나룻배 노를 젓던 사공은 다시 뱃머리를 돌려주었다.
위태롭게 뛰어 내려오는 그 아이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 조실부모한 고아로서 일곱 살 때부터 숙모님의 시중을 들어 가냘픈 손마디가 거칠었고 총명한 까만 눈은 학교의 문턱마저 까맣게 잊고 사는 불쌍한 아이였다. 오빠가 귀대하는 날 아침 숙모님을 대신하여 동리 아주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동백의 씨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팔아 갚겠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했었다. 어렵게 빈 몇 푼의 돈을 손에 꼭 쥐고 뱃머리를 향하여 달렸던 것이다. 눈물범벅이 된 어린 동생은 따스한 형제의 정을 건네주고는 바위에 주저앉아 외로운 오빠의 처지와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겹쳐가며 파도처럼 흐느꼈다. 가슴 깊이 와닿는 갸륵한 정의 전율을 느끼며 터지는 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두 고아의 가엾은 눈물을 보고 나룻배의 일행도 모두들 측은해 눈시울을 적셨다. 바다 저쪽 하얀 갈매기도 같이 울어주었다. 다시는 휴가를 나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이렇게 나의 낭패를 모면케 한 동백의 씨로 하여 동백나무에까지 정겨움이 더하게 되었고 그 동백을 볼 때마다 여동생의 따스한 정과도 만나게 된다.
동백꽃의 아름다움과 사철 변함없는 그 잎의 윤기와 그 열매의 야무진 껍질과 그 속의 씨. 그 씨의 은혜를 입고 아찔한 고비를 이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동백처럼 살지 못하고 허술하고 꺼칠하고 밋밋하게 살아온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지금부터라도 그 동백의 씨 하나를 마음 밭에 묻어 사철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눈부신 윤기와 야무진 열매를 주렁주렁 달수 있도록 가꾸어 보리라.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차가운 갈바람 속에서도 붉은빛의 꽃을 빚어내는 강인한 아름다움을 배우리라. 그리고 여동생의 따스한 정의 씨도 부지런히 심어야겠다. (끝)
2. 그아픈 이야기 - (한국수필 추천완료)
ㅡ 고동주
지난주, 한산섬에 있는 진주 양식장을 둘러보았다. 분홍색 부표(浮漂)들이 여러 줄로 정연하게 수놓아져 있고, 녹음이 짙은 또 하나의 산이 바다에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배의 엔진소리가 바다의 고요를 깨뜨리면서 선창에 닿자 진주 양식에 일생을 바쳐 온 김 사장이 방문객을 맞아들인다. 이분이 진주 양식을 시작한 지는 25년째가 되는데 그중 20년은 실패만 거듭하는 허탈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진주 씨를 잉태시키는 시술 실에 들어서니 벽면에 ‘정숙’이라는 큰 글자가 분위기를 조용히 감싼다. 10명의 젊은 남녀 시술사들이 탁자를 앞에 하고 정성스레 조개 수술을 하고 있었다.
진주의 씨를 심을 조개는 3년생인데 사람으로 치면 꽃다운 나이라고 한다. 건강한 조개는 생식소의 수술이 어려우므로 수술하기 5개월 전부터 일부러 죽지 않을 정도의 햇볕 충격을 주어서 허약한 체질로 만든다는 것이다. 기진맥진한 조개를 생식소의 벽을 가르고 진주 핵이라는 이물질을 집어넣는다. 이것이 진주조개의 아픔의 시작이다.
수술을 마친 조개는 임산부를 다루듯 보름 동안 요양을 시킨 후 채롱에 넣어 바다 뗏목에 매달게 된다. 수술의 자국이 아물고 나면 조개의 자궁 안에 들어온 이물질인 핵과 또 싸워야 한다. 어둡고 아프고 고통스런 비탄 속에서 몸부림할 때마다 이상분비물이 생기고 그 분비물이 핵을 서서히 둘러싸게 되면 엷은 진주층이 한 겹씩 쌓이게 된다. 밤하늘의 달과 심해의 어둠이 만들어 낸 역설의 광채. 그래서 진주는 인어의 눈물방울이라 했던가. 이런 시련을 2년여 견디는 동안 그 밑에 달려 있는 수많은 진주조개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진주 양식을 하는 바다는 깨끗하고 잔잔하면서 영양이 풍부하고 계절에 관계없이 늘 푸른 산그늘이 드리운 곳이래야 한다. 거센 파도가 몰아칠 때나 지나다니는 배의 기관소리에도 놀라서 분비물이 잠시 멎게 되므로 진주의 면이 고르지 못하고 좋은 색깔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다 방지하려면 밤낮이나 비바람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보살피는 정성이 조금만 모자라도 귀찮은 기생물이 잡초처럼 돋아나고 해적 생물까지 붙어서 아픈조개를 더 괴롭힌다. 바다 밑에서도 완전히 평온한 영역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태풍이 한번 바다를 뒤집어버리면 지금까지의 보살핌도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이럴 때에는 전부를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렇듯 한 알의 신비로운 진주를 탄생시키려면 어린이를 키우듯 애정과 정성을 다 쏟아도 모자란다.
좋은 진주는 구슬 모양의 완전한 원형으로 결이 없이 매끈하고 고와야 한단다. 색깔도 백색, 은백색, 황색 등 여러 가지이나 핑크빛에 가까울수록 좋고, 그것도 바다 빛이 안개처럼 은은하게 섞이면 더욱 좋다고 한다. 퍽 드물기는 하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과 주위 환경에서 반사되는 빛의 영향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이는 신비한 색깔일수록 최상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잘 아는 도공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흙의 신비에 매혹되어 한평생 살아온 그분과의 만남에서도 정성스런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흙을 섞어서 이길 때 자신의 혼도 같이 섞어야 하며 돌아가는 물레와 일체가 되어 손끝으로 도자기 형태를 빚으면서 신비로운 색깔을 기원한다. 불기운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의 조화에서 오만가지 색깔이 빚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불을 다루는 달관은 수백 년을 거듭해도 모자라기만 하단다.
유약으로 쓰는 재의 조화도 신비롭기만 하다. 솔잎을 태운 재를 유약에 따로 섞어 발라서 높은 열에 구워내면 본래의 색깔로 환생된다는 것이다. 솔잎 재가 들어간 도자기는 은은한 솔잎 색깔로 나타나고, 콩깍지 재는 콩의 색깔로 나타낸다는 말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운 선(線), 순한 색이 조화롭게 나타나고 비천상(⾶天像)이 생동하는 작품을 만나면 도공도 어느새 하늘을 나는 신선의 환각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은 흔하지 않다고 했다. 추호의 순리와 조화를 벗어 나도 도자기의 면이 뒤틀리고 터지고 고르지 않는 색깔이 되어 허탈과 아픔을 불러내는 때가 더 많다고 한다.
그렇게도 어렵게 탄생되는 청백자의 색깔일수록 더욱 아름답고, 천 겹이 넘는 아픈 희생의 결정체인 진주일수록 더욱 신비로운가 보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도공의 정성으로, 콩깍지 재가 콩의 색깔로 환원되고 솔잎의 재는 솔잎 색깔로 환원되는데, 내가 죽는다면 과연 어떤 색깔로 남을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나의 마음속에 진주가 되는 씨 하나를 소중히 묻어두고 싶다. 그리하여 진주층이 눈물처럼 쌓일 때마다 아픔을 배우고 그런 아픔을 이겨내는 진주조개처럼 신비로운 진줏빛 글을 남기고 싶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정성의 샘이 너무 얕고 작은 아픔도 참을 수 없으니 그 진줏빛 소원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끝)
약력
고동주(⾼銅柱) 선생은
1936년 경남 통영시 산양면 오곡도에서 태어났다. 1963년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통영 군청에서 근무하다가 계장 과장, 마산시 국장, 진주시 국장,통영군 부군수, 충무시 부시장, 통영시 부시장 등 32년을 통영에서만 공무원으로 살았다.
마산시 국장 재직 중인 1986년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행정학과)을 수료했고, 1992년에는 내무부행정연수원 고급 간부 양성반에서 1년 과정을 수료한 후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폴란드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외국 선진행정연수를 했다. 1995년 통영시 초대 민선시장으로 당선되었고, 1998년 제2대 민선시장에 재선되어 7년간을 통영시장으로 있다 임기 만료와 함께 2002년 창신대학 명예교수로 임명되면서 2003년부터 창신대학 통영캠퍼스 부학장으로 8년간 근무하며 「종교와 인간」,강의도 했다.
198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수필 「동백의 씨」가 당선되었고, 「그 아픈 이야기」가 한국수필에 추천완료되어 수필가가 되었다. 1989년부턴 2년간 수향수필동인회 회장을 맡았고, 1991년부터 2년간은 한국수필추천작가회 회장을 맡았다. 2004년부터 제23대 한국문인협회 이사(3년)와 제24대 이사를, 2009년에는 국제 펜 한국본부 경남지역위원회장 및 사)한국수필가협회 수석부이사장이 되었다.
그는 1988년 등단하던 해에 첫 수필집 『파도에 실려 온 이야기』(교음사)를 시작으로 1992년 해외연수 기행에세이집 『하얀 침묵 푸른 미소』(교음사)를 냈으며, 1994년엔 수필집 『사랑바라기』(월간에세이)를 1998년엔 시장 재직 시의 즉석연설 모음집인 『행복이 어떤 모양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문학풍경)를 내어 문화일보에서 잘 나가는 책으로 선정(5쇄 발간)되기도 했다. 2002년에는 시장 임기 만료와 함께 자서전인 『그래도 외롭지 않았다』(한국문화사)를 상재했으며, 2006년에는 수필교재로 『수필의 맛과 향기』(진실한 사람들)를, 2008년에는 수필집 『겨울 열매』(선우미디어)와 간증에세이집 『영광의 물결』(크리스천서적)을, 2010년에는 수상집 『행복이 꽃피는 바다』(개미)와 현대수필가 100인 선집 『밀물과 썰물』(좋은수필)을, 2011년엔 시집 『새벽을 여는 묵상기도』(경남) 2020년엔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행복을 찾는 길』(한국문화사)을, 2021년 신앙묵상집 『영원한 생명의 길』(한국문화사)을 냈다.
이러한 공직과 문학적 공로로 대한민국근정포장(1984)을 받았으며 신아문학상대상(1995), 한국수필문학상(1998), 수필문학상 대상(2002), 예총예술문화상(2003), 황의순문학상(2009), 대한문학상대상(2011), 통영교육상(2011), 제10회 올해의 수필인상(2017) 한국수필 공로상(2022) 등을 수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