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앞서 바른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른다 라고 한 데 이어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른 교훈의 토대와 지향점을 가르칩니다.
12절 바울에게 능력이 있어서, 바울이 믿을 만해서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신실함을 보이기 위해 전에 그를 신실한 사람으로 믿고 능력을 주어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만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우리를 믿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나의 존재와 삶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뢰와 응원과 지지가 담겨 있습니다.
12-17절 하나님이 용서하시지 못한 죄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는 죄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며 그리스도를 대적한 바울을 긍휼히 여겨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신 일, 불신과 증오로 가득하던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믿음과 사랑으로 채우신 것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입은 사람은 자신을 그 은혜를 입증하는 증거로 인식합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고전 15:10) 하며 하나님의 은혜만 찬미합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품으신 그 사람입니다.
12-16절 바울은 자신의 큰 죄와 그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말함으로써 다른 교훈의 오류를 비판합니다. 다른 교훈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1:9)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 같은 지엽적인 내용에 골몰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도 없습니다. 복음을 위해 세워진 사도인 바울은 자신이 여전히 죄인 중의 괴수임을 고백함으로, 바른 교훈이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18-20절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믿음과 양심, 신앙과 윤리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믿음이 선한 양심을 창조하고, 양심을 잃어버리면 믿음도 무너집니다. 양심을 버리는 것 자체가 믿음에서 파선한 것입니다. 윤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다른 교훈은 그 자체로 거짓입니다. (매일성경, 2024.090/10, p.22-23, 죄인에게 보이신 긍휼과 은혜, 디모데전서 1:12-20에서 인용).
① 바울은 앞서 바른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른다 라고 한 데 이어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른 교훈의 토대와 지향점을 가르칩니다. 바울에게 능력이 있어서, 바울이 믿을 만해서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신실함을 보이기 위해 전에 그를 신실한 사람으로 믿고 능력을 주어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만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우리를 믿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나의 존재와 삶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뢰와 응원과 지지가 담겨 있습니다.
② 하나님이 용서하시지 못한 죄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는 죄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며 그리스도를 대적한 바울을 긍휼히 여겨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신 일, 불신과 증오로 가득하던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믿음과 사랑으로 채우신 것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입은 사람은 자신을 그 은혜를 입증하는 증거로 인식합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고전 15:10) 하며 하나님의 은혜만 찬미합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품으신 그 사람입니다.
③ 바울은 자신의 큰 죄와 그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말함으로써 다른 교훈의 오류를 비판합니다. 다른 교훈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1:9)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 같은 지엽적인 내용에 골몰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도 없습니다. 복음을 위해 세워진 사도인 바울은 자신이 여전히 죄인 중의 괴수임을 고백함으로, 바른 교훈이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④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믿음과 양심, 신앙과 윤리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믿음이 선한 양심을 창조하고, 양심을 잃어버리면 믿음도 무너집니다. 양심을 버리는 것 자체가 믿음에서 파선한 것입니다. 윤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다른 교훈은 그 자체로 거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