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성도 간의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간 일을 책망합니다. 세상을
판단할 교회가 도리어 세상 법정을 의지하는 것은 교회의 정체성과 영향력 상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11절 불의한 세상 풍속을 따르던 자들을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의롭다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죄로 더러워진 우리 영과 육신을
깨끗하게 씻으시고, 순결한 옷을 입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더러운 죄의 옷을 걸쳐 입고 사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봅시다.
1-6절 성도 사이의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 일은 교회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 간의 다툼을 남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형제들 사이에 일어난 사소한 일상의 분쟁을 세상의 판단에 맡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 몸 공동체인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며, 장차 세상과 천사도
판단할 교회의 권세를 부인하는 일입니다(마19:28; 계20:4). 지금 많은 교회가 바울의 이 책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세상의
판단을 받는 세상의 근심거리가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고 세상에 소망을 주는 건강한 교회로 회복되도록
간구합시다.
7,8절 서로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고발하는 행위
자체가 허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 법정에서 승리한다 해도, 교회는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차라리 내가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것이 형제와 화해하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며, 세상에 덕을 세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동체와 형제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9,10절 고린도 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영적인 성숙을 이루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자처했지만, 그들의 지혜는
하나님이 어리석다고 판단하신 세상 지혜에 불과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의 악한 풍속을 버리지 못하고, 성도의 다툼도 세상의 판단에 맡긴 것입니다. 만일 이런 악한 행위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이며,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매일성경,
2020.05/06, p.130-131, 그리스도인의 송사, 고린도전서 6:1-11에서 인용).
①
바울은 성도 간의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간 일을 책망합니다. 세상을 판단할 교회가 도리어 세상 법정을
의지하는 것은 교회의 정체성과 영향력 상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 풍속을 따르던 자들을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의롭다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죄로
더러워진 우리 영과 육신을 깨끗하게 씻으시고, 순결한 옷을 입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더러운 죄의 옷을 걸쳐 입고 사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봅시다.
②
성도 사이의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 일은 교회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 간의
다툼을 남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형제들 사이에 일어난 사소한 일상의 분쟁을 세상의
판단에 맡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 몸 공동체인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며, 장차 세상과 천사도 판단할 교회의 권세를 부인하는 일입니다(마19:28; 계20:4). 지금 많은 교회가 바울의 이 책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세상의 판단을 받는 세상의 근심거리가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고 세상에 소망을 주는 건강한 교회로 회복되도록 간구합시다.
③
서로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고발하는 행위 자체가 허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 법정에서
승리한다 해도, 교회는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차라리
내가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것이 형제와 화해하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며, 세상에 덕을 세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동체와 형제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④
고린도 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영적인 성숙을 이루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자처했지만, 그들의 지혜는 하나님이 어리석다고 판단하신 세상 지혜에 불과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의 악한 풍속을 버리지 못하고, 성도의 다툼도 세상의 판단에 맡긴 것입니다. 만일 이런 악한 행위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이며,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⑤ 1973년 여의도 광장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이후 주로 우민정책에 의해서 우리 사회에 급성장한 초대형교회들이 많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조용기), 광림교회, 소망교회(김지철), 사랑의
교회(오정현), 명성교회(김삼환), 대치동 서울교회(이종윤) 등, 그러나 그런 교회의 담임목사들이 은퇴에
즈음하여 초심을 잃고 영적 분별력이 흐려져서 당회 장로나 교인들과 세습문제와 재산문제, 경영문제로 법정 싸움하는 걸 보면서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벌써 하나님의 촛대가 그들 교회에서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 교인수가 많다거나
교회 건물이 크다고 좋은 교회가 아니다, 작년 8월에 단체로
유럽종교개혁지를 탐방했는데 독일이나 스위스는 정부에서 종교세를 거두고 필요한 교회에 목사를 파견하는데 대도시나 작은 시골이나 목사 사례비가 균등하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