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한산에서 본 일이다. 늙고 추레한 산꾼 하나가 백운산장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녹슨 앵글하켄 하나를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하켄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주십시오”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산장지기의 입을 쳐다본다.
산장지기는 산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하켄을 두들겨보고 “좋소”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하켄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저 아래 인수산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하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박아 넣어도 되는 하켄이오니까?”하고 묻는다. 산장지기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하켄을 어디서 훔쳐왔어?”
산꾼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좋은 하켄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산꾼은 손을 내밀었다. 산장지기는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하루재 즈음에서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하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구멍 난 하이포라 재킷 위로 그 하켄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영봉능선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어느 비석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켄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떤 선배가 남기고 간 유품입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선배가 하사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비싼 하켄을 줍니까? 카라비너 하나도 받아본 적 없습니다. 슬링 쪼가리 하나 주시는 선배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인수봉의 이곳저곳을 오르며 하켄이 있는가 눈여겨보았습니다. 겨우 서면벽이나 숨은벽 같이 이제 누구도 오르지 않는 코스들에서 하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썩어있어 손으로 흔들면 그저 뽑혀 나와 부스러지는 그런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내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하고도 쓸 만한 샤르레모제 하켄 하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하켄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하켄을 구했단 말이오? 그 하켄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짬밥 좀 먹어본 산꾼 소리 한번 듣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닢’에서 따왔습니다.
첫댓글 오~드뎌 오셨네,우리의 글쟁이~^^
자주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