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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이시영, 이상룡 등 신민회 회원들은 1911년 자치 기관으로 경학사를 결성하고, 군인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1911~1912년 연이은 흉년으로 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학사의 활동이 어려워졌다. 이에 자치 기구로 부민단(扶民團)을 결성하였다. 서간도의 한인 사회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하였다. 자치 사업 외에 또 다른 부민단의 중요한 사업은 서간도에 있는 신흥 무관 학교(新興武官學校)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신흥 무관 학교를 통해 독립군을 양성하여 독립운동의 핵심 동력을 만드는 것은 독립 전쟁을 위한 핵심적 사업이었다. 더구나 신흥 무관 학교를 거점으로 서간도 청년들에게 민족 교육을 적극적으로 보급하여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었다. 부민단은 서간도 한인 사회의 자치 단체로서 한인들의 이주와 정착, 민족 교육을 통한 독립 의식의 고취, 신흥 무관 학교를 통한 독립군 양성 등 서간도에 독립군 기지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첫댓글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일제 강점기 시대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 신민회의 창립 멤버였고, 서전서숙을 설립하였으며 일가 6형제와 함께 유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다. 그 뒤 상하이에서 아나키즘 1931년 항일구국연맹 등의 창설을 주도 1932년 11월 상하이에서 한인 교포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인하여 옥사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7형제 중 넷째 아들이며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의 형. 정치인 이종찬, 이종걸은 그의 손자.
본문의 답은 1번이겠죠.^^
요 문제 답은 3번이겠네요..
무관학교(신흥무관학교)
아래 단체는 신민회 - 태극서관
답 5번
1910년대 항일 독립운동
33번 문제 답.
정답은 서간도 지역이니 (라)가 되네요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일제 강점기 간도 지방에 있었던 군사학교. 1910년 항일결사단체 신민회를 주도한 이회영, 이시영 형제와 이동녕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설립했다. 첫 이름은 '신흥강습소'였으며, '신흥중학' 등 여러 이름으로 개칭하였다가 1919년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류허 현 고산자에 2년제 고등 군사반을 두어 고급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분교를 두어 초등 군사반을 편성하여 훈련을 시켰다. 1920년 폐교할 때까지 졸업생 2,000여 명을 배출하여 독립군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신민회 [新民會]
1907년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등이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 단체.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우고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하는 등 꾸준히 항일 활동을 벌였으나, 1910년에 데라우치(寺內) 총독 암살 모의 사건으로 많은 회원이 투옥됨으로써 해체되었다.
정답은 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