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종스님,
그제(1/3) 저녁, "지종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데 소식 들으셨어요?" 하는 어느 법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 마하사 지종 스님 말이요?"
"예, 광덕 스님 상좌…"
"사고로?"
"아닙니다. 그 절 주지가 전기를 끊어 난방을 할 수 없게 되자 방에 숯불을 피워 놓고 주무시다가 질식해서 돌아가셨답니다."
"주지라면 사형인 것으로 아는데, 참 나쁜 사람이구먼. 정말 몹쓸 사람이네."
그날 저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 몸이 힘드니까 스님 생각도 깊이 못하고 푹 쉬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 종일 스님 생각에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푹 쉬라”고 하는데 밤이 되어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워도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 계신 친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전말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답니다. 범어사 다비장에서 모실 형편도 못되어 영락공원 화장장에서 모셨는데 글쎄 영롱한 사리 다섯 과가 나왔지 않겠어요. 서울 불광사에서 49재를 지내고 도피안사에 모신다고 합니다...."
부산의 다른 법우에게도 전화를 해서 정황을 알아보았습니다.
똑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스님,
스님을 꼭 10년 전인 1996년 겨울 처음 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님께서 범어사 포교국장 소임을 맡고 계실 때였지요. 공적인 일로 뵈었는데, 제게 남은 스님의 첫 인상은 "진짜 스님 같다."였습니다.
아마 이제까지 스님을 뵌 것을 모두 합해보아도 열 번이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정말 순진하구나. 요즈음도 이런 스님이 있나? 이런 스님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했거나, 군법사로 군포교 일선에서 활동했던 선후배들에게서도 이구동성으로 "정말 중 같은 중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몇 년 전, 범어사 소임을 놓으시고 은사스님의 빈자리로 어려움을 겪던 불광사에 돌아오셔서 주지를 맡으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한 편으로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곳에서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함께 들었습니다.
결국 오래지 않아 주지 소임을 놓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안 되어, "사형이 주지로 있는 부산 마하사에 계시다"고 전해듣고 "부산이 고향이고, 범어사에서 오래 소임을 사셨으니 편안하시리라!" 여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느 자리를 탐한 적도 없으시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을 때에 "나 못 떠나겠다"고 버티며 저항하거나 물러나는 조건으로 대가를 요구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옳다, 그르다' 판단을 할 때에도 당신의 이해(利害)에 얽혀서 ‘이렇게 해야 나에게 이익, 손해’라 계산하여 결정하고 행동하신 적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어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대선사가 되겠다는 욕심도 없고,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것을 부처님 제자인 당신이 할 유일한 불사로 여겼던 분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아무리 잘못되었어도 사형이 주지로 있는 절이니 모처럼 편하게 지내며 포교에 정진하시겠지'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그 착한 모습이 존경스러워 계속 그 모습을 지켜주시길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좀 타협도 하시지. 그래서 공찰 주지를 맡든가 시주자를 구해 사설사암이라도 크게 열어 편하게 지내면 좋을 터인데…"라는 생각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형이 주지로 있는 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 달 동안이나 전기를 끊어 추위에 떨다가, 추위가 심했던 그 날 방안에 있던 숯을 피워놓고 잠에 드셨다가 질식하였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제 아무리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스승과 제자가 폭력을 휘두를 정도로 인륜(人倫)이 무너져 내리는 말세라고 하여도 인천(人天)의 사표가 되어야 할 승가에서 남도 아닌 사제를 이렇게 죽음으로 몰아가도 되는 것입니까?
수십 명이나 되는 사형 · 사제 중에 그 어려움을 토로할 형제가 한 분도 없었습니까?
아무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 어려움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했던 것입니까?
그러고서도 신도들에게는 "제악막작(諸惡莫昨)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고 권하는 분들이란 말입니까?
그들에게는 인과법(因果法)에 대한 믿음이 아예 없답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 인과법 같은 것은 본래부터 없던 것이고 앞으로도 없단 말입니까?
지종 스님,
떠나시는 길에 간곡하게 당부 말씀 올립니다.
스님께서는 중처럼 살다가 중처럼 돌아가셨습니다.
장좌불와(長坐不臥)하다가 좌탈입망(坐脫入忘)을 해서가 아닙니다.
이 시대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똑 같이 끌어안고 계시다 그들처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처럼, 가진 것 없이 그야말로 무소유(無所有)를 보이며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마땅히 공양을 받을만한 분입니다.
스님,
사형 · 사제들께 당부하십시오.
"저를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위해 49재 같은 것은 지내지 마시고, 또 혹시라도 부도 같은 것을 세울 엄두는 내지 마세요.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힘들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갔는데도 돈이 없어 49재 조차 모시지 못하는 어려움 사람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주세요.
그게 저를 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은사 스님을 모셨던 지중한 인연을 잊지 말고 앞으로는 은사스님의 수행과 포교 원력, 지계 정신을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지 않고 오로지 '은사이신 광덕 스님을 모시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은사를 파는 것은 오히려 그분을 욕보이는 일입니다.
제가 이번에 겪은 일이 사형 사제들의 화합을 다시 가져오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스님,
중음천(中陰天)에도 너무 오래 머물지 마시고 바로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십시오.
다시 오셔서도, 이번 생에서처럼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고집스러운 스님'이 되십시오. 그래서 또 똑 같은 어려움을 겪고,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생에도 또 그렇게 사십시오.
억만 겁이 지나서, 더 이상은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괄시 당하고 고통을 겪지 않는 세상이 되고, 그래서 이 세상이 정토가 되고 이웃종교인들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가 되면 그 때에 성불하십시오.
제가 스님을 위해 짧은 비문을 지어 올립니다.
"승(僧) 지종, 금하광덕(金河光德)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중답게 살다 중처럼 떠났다.
착한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고통을 함께 나누기로 서원했다.
이에 그 뜻을 기려 짧은 비문을 짓는다.
- 香山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