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마을 고택 <오담고택>, <하동정씨고가>
1. 사적지 대강
명칭 : 개평마을, 오담고택, 하동정씨고가
위치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방문일 : 2022.12.1.
2. 둘러보기
이 글은 개평마을에 관한 두번째 글이다. 첫번째 글은 대표고택 일두고택을 소개한 것이니 함께 하면 전모 파악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개평마을 소개
개평마을은 지은 지 100여 년이 넘는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가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마을이다.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알려진 함양의 대표적인 인물이 일두 정여창으로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칭송되는 인물이다. 이곳 개평한옥마을에 일두 정여창'의 생가인 '정여창 고택' 또는 '일두 고택'이라 부르는 정여창 생가가 있다. 그 외에 규모가 조금 작은 '오담고택', '하동정씨고가', '노참판댁고가' 등이 있다.
개평한옥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배형상을 띄고 있는 마을 형태 때문에 우물을 만들지 않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울길을 따라 마을길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마을의 전설을 확인하게 해주는 종바위가 우물과 우울자리의 위치를 표시해주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다섯개의 우물외에는 일절 우물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강점기때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새로 우물을 판 이후로 마을이 기울었다고 한다.
개평한옥마을은 14세기에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먼저 터를 잡았고,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 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에는 대부분 풍천노씨와 하동정씨가 살고 있다. 개평한옥마을은 530년 전통의 가양주인 지리산 솔송주가 유명하다. 하동정씨 문중에 대대로 내려온 솔잎으로 담그는 솔잎술로 1997년 후손들에 의해 복원,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개평한옥마을의 골목길은 골목마다 종가와 고가가 자리 하고 있다. 1880년에 지어졌다는 하동정씨고가, 1838년에 지어진 오담고택, 또, 풍천노씨 대종가 등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전통 가옥들이 보인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인용)
2) 개평마을 지명 소고
* 개평마을의 지명은 지형이 '介(개)'자 모양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介' 네 개의 획이 모두 댓잎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강소성 양주의 개원(扬州个园)과 동일한 배경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하겠다. 대나무 정원인 개원(个园)의 个는 세 개의 댓잎을 보여주지만, 여기서는 네 개의 댓잎을 보여준다.
'개평'이라는 말은 노름판에서 남이 딴 것을 거저 얻는 것을 이르는 말로 일상어로 흔히 쓰인다.
평은 조선조의 화폐인 상평통보(常平通寶)의 준말로 돈을 의미했다. 개평은 딴 돈 중에서 낱돈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낱 개(個)’를 써서 ‘개평(個平)’이라 했다. 个는 낱 '개(個)'와 같은 글자이고 '介(개)'와도 통용된다. '介(개)'는 끼일 개 외에 낱 개로도 쓰여서 물건을 셀 때, 한 개, 두 개의 개로 모두 쓰인다.
단지 개평(介坪)마을과 노름판의 개평(個平)은 평 자가 다르다. 坪은 평평하다는 듯으로 댓잎 모양의 평평한 마을이라고 보면 되겠다. 개평(介坪)이든 개평(個平)이든 모두 여유의 의미를 갖는 것은 동일하다.
심청가에서 보면 심봉사가 눈을 뜰 때 함께 잔치에 온 온갖 봉사들이 개평으로 함께 눈을 떴다는 말이 나온다. 개평마을에 들른 사람들은 개평으로 모두 평온한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험난한 삶은 정여창이 모두 살고 갔으니 말이다. (필자)
2) 함양오담고택
함양오담고택(咸陽梧潭古宅)은 조선시대의 고택으로 2004년 3월 18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종도리에 기록된 상량문에 의해 사랑채가 1838년, 안채는 1840년 등 건립연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부재의 단면크기가 크지는 않으나 자연재를 그대로 사용한 가구기법이나, 안채, 사랑채에 모두 전 ·후 툇간을 적용한 점 등 조선 후기 주거건축의 양식과 가구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국가문화유산포털 전재)
오담고택은 오담(梧潭) 정환필 선생이 기거한 집이다. 사랑채는 1838년에, 안채는 1840년에 건설했다. 오담은 일두의 12세 후손으로 종가에서 분가한 집이다.
개평마을 여기저기. 아래로 평촌천이 흐른다.
4) 하동정씨 고가
사랑채.
정씨 고가와 담장을 맞댄 옆집.
마당에 커다란 측백나무?가 인상적이다. 일두고택의 소나무와는 조금 다른 풍부한 위용을 자랑한다. 너른 앞마당이 툭 트인 것이 시원하다. 여백의 미를 보이는 동양화같은 느낌이다.
다만 마당에 깔린 잔디는 조금 특별하다. 보통 앞마당에는 잔디를 깔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당에서 반사된 햇빛을 방안으로 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마당이 너무 넓고 시원하게 긴 1차형 건물이어서 햇빛이 아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1880년에 지어진 고가로 이 안채는 1자(一字)형으로 지어졌다. 아래채 등 다른 건물들이 지금은 모두 헐린 상태다. 지붕 양쪽에 덧대어 지은 부섭지붕이 특징이다.(안내문)
상량문의 기록으로 볼 때는 1644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국가문화유산포털) 경남 문화재 자료이다.
강릉의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이 처마 아래 러시아식 보첨을 댄 것과는 다른 양식이다.
아래는 집 밖 개평마을
3. 둘러본 후
조용하고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맛이 좋은 전통마을이다. 사람이 그대로 살고 있는 몇 백년된 고가들이 즐비한데 상업적인 느낌이 전혀 없어 더 좋았다. 전주 한옥마을은 1900년대 조성된 마을로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동네다. 전주이씨의 고장으로 경기전과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고 오는 길에 잔치를 연 오목대 등등이 있어 동네의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으나 마을의 건물은 100여년 남짓된 근대 마을이다.
전주 이씨의 고장인 것도 유명세에 한몫했지만, 관광지로 상업화된 주된 이유는 음식에 있는 거 같다. 좋은 음식이 있어 상업화되는 것은 전통적인 모습 보존에는 약이자 독이다. 이곳은 별로 주목받을 음식이 없어서인지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온 것같은 고즈넉한 느낌이 경주 양동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과도 또 다르다.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싶을 때, 나 자신에 침잠되고 싶을 때 걸어보기 딱 좋은 마을이다. 한국 여기저기 여러 얼굴을 한 전통마을이 남아 있어줘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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