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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 당시 스페인에서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네 왕국의 왕들이 그이 관을 받쳐들고 있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유는 그가 스페인의 황금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유럽-아메리카 항로를 기척하며 대항해 시대를 연 콜럼버스, 그러나 그 항해는 누군가에게 길고 긴 재앙의 시작이었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336번째 역사저널 그날입니다. 오늘은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의 모습으로 시작을 해봤는데요. 저희가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굉장히 화려하고 큰 성당으로도 유명한데~
이시원/배우: 제가 직접 가봤습니다. 가서 이 동상을 봤는데요. 생각보다 동상이 커요. 그래서 어마어마한데 그만큼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황금기를 열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웅장하더라구요. 그런데 저기서 재미있었던 게 저기 관을 들고 있는 사람이나 앞쪽에 있는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어요. 그런데 뒤쪽에 있는 왕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거예요. 그 이유가 콜럼버스가 항해를 지원해 달라고 했을 때 거절했던 왕들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최태성/한국사 강사: 미안해서~미안해서~
최원정: 관을 맨 상여꾼들이 왕이고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에 묻혔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인데 그런데 왜 자기는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겠다는 유언을 했을까요.
최태성: 열받으니까~
최원정: 뭔가 감정이 상했기에~정확히는 모르지만 스페인 입장에서 보면 약속을 안지킨 건 아니지요.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공중부양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스페인 땅에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이시원: 이거 상당히 얄미운 친구 같애요. 몸이 안좋아서 그래도 술자리에 갔는데 소맥을 만들고 있는데 나 오늘 소맥 못마셔~ 그래~ 그럼 너 소주만 마셔~그렇게 융통성 없게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요.
최원정: 내가 그랬던 건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 있구나 (나 스페인 같은 여자).
허준/방송인: 그런데 콜럼버스가 죽은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이 그 두 가지인 거죠. 결국은 자기는 스페인에 묻힌다는 사실, 또 한 가지는 내가 발견한 게 인도가 아니었구나~
최원정: 그런데 콜럼버스는 지금 스페인에서 해주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왜 이런 유언을 남긴 걸까요?
김대륜/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기초학부 교수: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운한 점이 많이 있었겠죠. 콜럼버스가 첫번째 항해 이후에 세번이나 항해를 떠나게 되는데 항해를 떠날 때 마다 상황이 계속해서 좋아지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세번째 항해에서는 쇠사슬에 묶여 가지고 본국으로 압송되거든요.
이시원: 그래서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그랬는데~ 일부러 벌주기 위해 스페인으로 데리고 온 것이네요.
최원정: 콜럼버스 공중부양 저 상태가 벌 받는 상태인데~ (영원히 고통받는 콜럼버스), 그렇죠?
최태성: 왕이 지금 관을 들고 있는데~ 벌 받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도
최원정: 공중에서 평생을 잠든다고 생각하면 불안할 거 같은데
이시원: 말년이 어땠길래~
최원정: 왜 쇠사슬에 묶여지는 상황에 까지 갔는지 차차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실 분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고학자인 경희대 강인욱 교수님~
일동: 안녕하세요?
강인욱/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먼저 사진 한 장 보고 이야기 하는 게 어떨까요?
일동: 네~
--------화면에 몸통은 있고 머리 없는 동상 하나 동상(미국 보스톤의 콜럼버스 동상)----------
강인욱: 미국 보스턴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인데요. 저거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작년(2020.6)에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심할 때 일연의 시위자들이 와서 목을 날렸어요 (동상의 목을 자른 시위대), 스페인의 공중부양, 보스턴에서는 목이 잘렸는데 콜럼버스 같은 경우는 미국의 대도시, 미국 같은 경우는 계속 항의합니다. 제발 철거하라고~ 그런데 철거가 안되니까 보스턴 저항의 상징으로 그냥 목을 날려버렸어요. 콜럼버스가 왕들이 상여를 들 정도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한번 원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때 신대륙의 인구가 약6000만명쯤 되었거든요. 그런데 100년이 지나고 나자 1/10로 줄었습니다.
이시원: 학살이네요, 학살~
강인욱: 그런데 그 사람을 각지에다가 동상을 세워놓고 또 콜럼버스 동상이니까 얼마나 이게 모순입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콜럼버스 만큼 극과 극이 오고 가는 인물이 없는데요. 정말로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이시원: 한쪽에서는 왕이 관을 들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죽일 사람인 거네요.
허준: 그런데 이게 미국 전체 주에서 10월 12일을 국경일로 콜럼버스의 날로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원주민을 추모하는 날로 바뀌고 있데요. 원주민의 날로 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데요.
최원정: 그래서 위대한 탐험가인지 아니면 잔인한 학살자인지 오늘 역사적인 사실로 짚어보면서 파헤쳐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1차 항해를 하고 돌아왔던 콜럼버스의 이후 상황을 알아볼까요?
최태성: 네, 일단 왔으니까 국왕한테 1차 항해보고서를 올리게 됩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가족이 별로 없습니다. 시원씨 좋아했던 앵무새, 그리고 원주민 몇 명 이 정도 밖에 지금 없잖아요. 그런데 어쨌건 간에 콜럼버스의 지금 입장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 같애요. 그러다 보니까 보고서에 MSG를 망칩니다. 그래서 이곳에 지금 엄청난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산탄헬 서한中-그곳의 땅은 무한에 가깝게 기름지며 (…) 향신료와 면화는 전하가 요구하는 만큼 얼마든지 있습니다, 각종 희귀한 산물들이 많이 날뿐 아니라 금광들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이곳에 원하는 향신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금광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부풀려 가지고 보고서를 올린 거예요.
이시원: 콜럼버스가 뻥쟁이 허풍쟁이 인데요.
허준: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듣는 입장에서 이렇게 너무 거대하게 부풀리면 이런 건 사기인 거예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보통 이런 식으로 이거 금~방 개발돼요! 부동산 사기꾼!
이시원: 근데 또 어떻게 보면 신대륙은 발견하긴 한 거잖아요. 그렇다고 하면 스페인 입장에서는 조금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애요.. 왜냐면 갔다가 살아 돌아왔는데 진짜 직접 봤잖아. 그럼 믿을 수 밖에 없을 것도 같은데~
김대륜: 스페인 국왕의 처지에서는 아~ 이제 드디어 포르투갈을 앞서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새로운 세계인 아시아로 가는 길이 열리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겠고 인제 그러다 보니까 콜럼버스가 다시 항해를 떠난다고 이야기를 할 때는(2차 항해) 굉장히 지원이 풍부해집니다. 첫번째 항해에는 3척의 배가 떠났잖아요. (1차 1492년 배 3척). 그런데 두번째 항해에는 (2차 1493년) 배가 17척에다 사람들도 첫번째 항해에는 90명이었다가 두번째 항해에는 1500명으로 늘어납니다.
최태성: 이제 큰 일났다~
최원정: 가즈아~ 신대륙! 이런 분위기네요. 난리 났네요.
이시원: 그만큼 신대륙에 대한 기대가 엄청컸었나봐요.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되니까 가서 열심히금을 찾습니다. 그런데 금이 잘 안보이네. 그래 가지고 쿠바와 자메이카까지 금을 찾아 원정까지 갔었는데 여전히 금이 안나오는 거예요. 원주민들 찾아가서 금 좀 줘봐 해도 나오는 양도 별로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콜럼버스는 서서히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지~
허준: 한겨울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진격을 하는데 산꼭대기로 올라와서 탁 내려다 보더니 이 산이 아닌가 보다!
최태성: 이런 상황이 되면 내가 만약 콜럼버스 입장이면 어떻게 되었을까 굉장히 궁지에 몰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거짓말을 자꾸 하는 거예요. 그때 보고서에 뭐라고 썼냐하면 향신료가 여기에 엄청 많이 나온다. (토레스 보고서 中-이 지역에는 후추나 육두구, 계피 같은 향신료가 많이 생산됩니다). 아니 중남미에 향신료가 어디 있어요.
최원정: 여기가 인도가 아닌데~
최태성: 심지어는 광산에 금이 엄청 많기 때문에 광부가 더 필요하다 (토레스 보고서中-광산에서 양질의 금이 훨씬 많이 산출되므로 광부를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람들 더 보내달라 점점 더 거짓말이 커져가는 거예요.
이시원: 진짜 눈덩이처럼 거짓말이 불어가네요.
최원정: 믿거나 말거나 외국 여론 조사에서 세계 5대 거짓말을 뽑았대요. 그중에 첫번째가 콜럼버스의 거짓말이래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거짓말~
이시원: 어떻게 보면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거네요.
최원정: 완전히 대거짓말이죠. 근데 나머지 있고 마지막 거짓말이 내가 이거보고 너무 웃겼어~ 남편이 부인한테 하는 말~ 난 당신을 사랑해~
이시원: 김대륜 교수님, 아내분 사랑하십니까?
김대륜: (외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최원정: 여기서 노코멘트 하시면 어떻게 해요?
허준: 사랑한다고 하면 거짓말한다고 할 거 아니에요!
최원정: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하셔야지~
허준: 콜럼버스의 느낌인데요~
일동: 웃음~
강인욱: 이 당시 되게 상당히 많은 탐험가들이 있었는데 콜럼버스급의 허풍은 별로 없었거든요.
최원정: 콜럼버스는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근데 인제 문제가 점점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운명을 쥐고 있는 금~과연 금이 있기는 있는 걸까요?
-------------------이민형/거제 장평중학교 교사: 안녕하세요?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리는 과학교사 이민형입니다-------------------
일동: 오~오~(환영박수)
이민형: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났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은 더운 지역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왜냐면 이게 대개 간단한 건데 금은 태양빛을 띠고 있잖아요. 그래서 금이 태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태양 빛의 금=태양의 영향으로 생성).
이시원: 너무 단순 한데요.
최태성: 저는 나름대로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민형: 당시 사람들은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적도 부근이 금의 주요 생산지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콜럼버스도 그런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적도 근처까지 가서 금을 탐사하기도 했었죠. 그러면 여기서 퀴즈 입니다. 과연~ 정말로 적도 근처에 금맥이 많이 분포하고 있을까요?
최태성: 그런 느낌도 드는데~
이시원: 아닙니다.
이민형: 세계에서 금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남반구에 위치해 있는 호주입니다. 그리고 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러시아 미국 순으로 전세계 곳곳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데요. 콜럼버스가 기존에 방문했던 적도,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아이티 같은 곳에도 금광이 존재하긴 했었어요. 하지만 콜럼버스는 그곳에서 금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건 도대체 왜 일까요?
최태성: 있긴 있었는데 찾질 못했다.
이민형: 네~ 정확히 말하면 예네가 꼭꼭 숨어 있어서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금을 찾기 힘든 이유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금의 원자번호는 79번 입니다. 그리고 원자번호가 높으면 높을수록 무거운 물질임을 의미하죠 (원자번호-주기율표에서 원소마다 주어진 고유의 순번 1번에서 118번까지 있고 높을수록 무거운 물질). 그런데 원자번호가 79번이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지구가 처음 만들어질 때 무거운 금은 중력에 의해서 중심쪽으로 강하게 이끌려 갔고 그 때문에 지표면에서 발견되는 금의 양이 많지가 않은 거죠. 그래서 예를 들면 2019년 철광석의 한 해 생산량이 약 25억톤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금은 한 해 생산량이 아니라 전체 매장량이 약 25만톤 밖에 안됐었죠.
최태성: 그것 밖에 안된다고요.
이민형: 그 나마도 그 중에서 20만톤은 사람들이 캐서 사용하고 있고 현재 남은 매장량은 고작 5만톤뿐이죠.
일동: (놀람~)
이시원: 지금 방송이 문제가 아니라 금 캐러 가야 되는거 아니예요?
최원정: 금 사러 가야겠다.
이민형: 그런데 여기에 살상가상으로 지표면의 대부분의 금들은 암석에 흩어져 있거나 바닷물에 극소량 포함되어 있어서 채취하기가 힘들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육지의 금은 크게 산지에서 나는 산금과 부서진 형태로 강가에 있는 사금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아마 이 당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로 사금을 채취해서 금을 얻었을 거에요. 제가 당시 원주민의 노력을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강사가 직접 사금채취 기물 준비).
최원정: 여기서 사금 채취를 한다고요?
최태성: 금을 갖고 오신 거에요?
이민형: (쟁반을 들고서) 우선 사금이 포함되어 있는 모래를 이렇게 쟁반에 담은 상태로 물 속에 넣고 이렇게 흔들어요. 금은 모래보다 비중이 커서 먼저 가라 앉을려는 성질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게 오래 걸리는데~ 이 작업을 계속하면은 이렇게 사금이 모래로부터 분리가 됩니다. 여기~ 보이시나요?
최원정: 반짝 반짝 해요 (사금채취 성공).
최태성: 저게 진짜 금이야.
이시원: 근데 저걸 어느 세월에 하고 있어요. 지금 간단하게 보여주시긴 한데~ 실제로는 훨씬 오래 걸릴 거 아니에요 금궤 하나 만들려면 몇십년? 금괴 하나에 백년?
허준: 사금 캐는 시간에 일해서 돈을 버는 게 더 빠를 듯 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민형: 보시다시피 사금채취로 금을 얻는 것은 정말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아마 콜럼버스가 봤었던 원주민들의 금 장신구들도 다 이렇게 시간이 걸려서 만들어졌을 거예요. 지금까지 과학교사 이민형이었습니다.
일동: 박수~
최원정: 우리가 금을 좀 쉽게 생각했던 거 같애요. 저도 금부치를 부치고 있지만 겉만 금이겠죠. 금을 얻는 데만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구나.
이시원: 그리고 콜럼버스가 원주민 금을 코에 차고 있네~ 금이 좀 있네 했는데 알고 보면 그게 정말 몇십년 동안 오랜 노력으로 모았을 거 아녜요. 사실은 대대로 물려받은 금 일수도 있겠고 콜럼버스가 꿈을 꾼 거에요 (일장춘몽).
강인욱: 사실 황금의 성질을 알면 우리가 이런 오해를 없앨 수 있는데요. 이게 황금은 손가락 하나 정도가 있으면 우리 몸 정도가 하나의 빌딩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잘 펴지거든요
최원정: 얇게 펴지는 거~
강인욱: 황금인간이라 그래서 많이 나오는데 황금 덩어리가 아니라 조그마한 황금으로 몸에 바른 거거든요.
이시원: 금박을~
강인욱: 그러니까 전세계적으로 황금 덩어리가 발에 차인다 그런 식의 이야기들이 많이 도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덩어리 채 있는 곳은 없고 대부분 사금입니다. 강에서 사금을 캐는데 그게 인제 상류에 금맥이 있으면 씻겨 내려오면서 모래에 가라앉거든요. 근데 얼마나 캤을까는 원주민들의 양은 잘 모르는데요. 19세기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해보는 것을 러시아 알타이에서 봤더니만 일년 동안에 한 명이 하는 양이 50g이 안된데요 (1인당 1년 금 채취량 50g 미만).
최태성: 금이 진짜 귀하네
강인욱: 황금은 거기 있다고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캘려고 노동 집약적으로 진짜 수백명이 달려 들어야 되기 때문에 어디에 가면 보물(황금)이 주렁주렁 있다면 그렇다면 저부터 먼저 가겠어요. 그런데 없어요.
최태성: 어쨌건 콜럼버스의 2차 항해에서 금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패로 돌아갔는데 중요한 건 뭐냐면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아요. 아직 그의 신념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좀 더 못갔을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시 스페인한테 지원해 달라 다음 번에 조금 더 가면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스페인도 고민이 되는 거예요. 이걸 어떡해야 되지 이렇게 엄청 많은 사람을 투입했는데 어떻게 하지 하다가 이때 영혼까지 끌어모아 줍니다. 그런데 이때 선원 모집이 안되는 거야. 심지어는 죄수들까지 모우게 되는데 거기에 살인을 했던 죄수 10명이 항해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콜럼버스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죠. 콜럼버스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거예요
최원정: 손절 당하는 타이밍이네?
최태성: 그렇죠~ 그렇죠~
최원정: 세번째 신대륙을 건너가는 콜럼버스, 한참 환경 탓하면서 열중하고 있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옵니다.
해설: 1948년 아메리카 대륙에 세번째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 그런데 이때 포르투갈의 배가 인도에 다달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쿠 다 가마가 출항 11개월만에 인도 캘리컷에 도착한 것이었다. 스페인 왕실은 충격에 빠지고 궁지에 몰린 콜럼버스는 위기를 타계할 새로운 방법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최원정: 그러니까 이 얘기 듣고 와~ 놀랬을텐데 아무튼 콜럼버스가 3차 항해를 떠난 바로 그 싯점이라는 거에요.
이시원: 콜럼버스 경쟁자가 인도 도착을 선점을 한 거네요.
허준: 여기 분명히 투자하시면 지하철이 생긴다니까요 하고 시간 끌고 있었는데 지하철역이 저기에서 터졌어요 하고 소식이 들여오는 거네요. 콜럼버스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거죠.
최태성: 그러니까요. 지금 위기 타개책이 없는 거예요. 금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도 향신료도 인도도----아무 것도 못찾은 콜럼버스~ 그런데 지금 라이벌 포르투갈이 인도와 후추를 찾았데요. 이러니까 엄청난 위기에 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이시원: 또 거짓말~
최태성: 드디어 생각해 냈어요. 바로 이것~(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 이시원씨를 향해)
최원정: 여자?
이시원: 빨간색~ 고추? 중남미가 원산지인~
최태성: 바로 사람, 원주민을 노예로 써라
이시원: 그러니까 원주민한테 일을 시켜서 뭐든지 창출하겠다는 이런 꿈이었다는 거네요.
김대륜: 콜럼버스의 생각은 이런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원주민들에게 스페인 말을 가르치고 스페인의 예절을 가르치고 그 다음에 무엇보다도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면 이들이 굉장히 유순한 순종적인 노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노동력을 활용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최원정: 이 사람들 노예로 써먹기 딱 좋아 이건 엄청난 비극을 지금 예고하는 거잖아요.
최태성: 그러니까요 콜럼버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원주민 노동을 통해서 뭔가를 생산하는 것 외에 아예 그냥 원주민 자체를 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노예를 팔 생각~ 그러면 이들이 더 나울 걸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 스페인 왕한테 보고서를 보내는데 보낼 때 샘플이 필요할 거 아니에요. 그 샘플을 남녀 550명만 뽑아서 보냅니다 (미켈레데 쿠네오의 기록-우리는 그들 가운데 가장 나아 보이는 남녀 550명을 배에 태웠다). 그 원주민을 잡을 때는 사나운 개를 풀어서 또 포획하구요. 심지어 원주민을 셀 때 마리, 한 마리 두 마리 이런 식으로 세는 거예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의식이 이 보고서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시원: 사람을 가축으로 본 것과 똑 같네요.
김대륜: 유럽 사람들 자신은 자신들을 문명의 중심이라 여겼고 문명의 기준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방식 혹은 사고 방식 그리고 이들의 종교를 따르지 않으면 사람답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죠.
최태성: 그렇다면 이제 콜럼버스는 이 상황에서 금 찾는 건 포기하고 아예 노예 산업으로 뛰어든 건가요?
김대륜: 그렇지는 않습니다. 콜럼버스는 굉장히 기발한 생각을 하는 거죠. 무슨 생각이냐 하면 원주민이 풍부하게 많이 있으니까 이들을 잘 가르쳐서 이들로 하여금 금을 채취하게 만드는 거죠. 사금채취 강제노역을 시키게 되는 거죠.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1503년에 스페인의 왕이 강제노역을 합법화 하게 되고요. 그때부터 7년 동안 사금을 무려 19톤을 생산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시원: 당시로서 진짜 어마어마한 양이네요.
최태성: 당시 콜럼버스가 금채취를 위해 원주민을 대하는 모습은 굉장히 폭압적인 방식이에요. 예를 들면 사냥개를 풀어서 물어 뜯게 한다든지 조금만 잘못하면 귀를 자른다든지 엄청 공포적인 방법으로 다스리다 보니까 당시 원주민들의 자살율이 높았데요. 버틸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무섭고 공포스러우니까 그렇다면 내가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죠.
허준: 이게 보통 인터넷에서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는 싯점을 흑화(黑化) 한다고 표현하기도 하거든요 (黑化-타락과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는 신조어). 그런데 정말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막다 막다 더 이상 못 막겠으니까 흑화해 버리고~ 노예들 입장에서 보면은 이런 상황이 됐지만 그러면 스페인 입장에서는 이제 이 정도면 오케이 괜찮아 콜럼버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최태성: 콜럼버스는 3차 항해 때 가서 스페인 사람들 있잖아요. 그대로 통제를 못해요. 결국은 아까 얘기했죠. 쇠사슬에 묶여가지고 압송되어 와요 (1500년 10월). 이렇게 하면서 콜럼버스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나게 되는 것이죠.
허준: 그냥 이렇게~
최태성: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콜럼버스가 남긴 3가지 유산이 있어요. 첫번째가 그들이 얘기하는 신대륙, 두번째는 원주민 노예, 세번째는 금이 있다는 이야기, 이 세 가지가 그 스페인 사람들한테는 뭔가 목표점을 만들게 한 거예요. 이러면서 제2, 제3의 콜럼버스가 생기면서~ 그 말은 뒤집어 얘기한다면 이제 정말 아메리카의 비극은 본격화 된다는 것이죠.
최원정: 제일 황당한 것은 원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왜 침입자들이 와서 주인 행세를 하느냐고요.
강인욱: 사실은 우리의 가장 큰 오해가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했다고 저희는 배웠거든요. 그런데 무슨 발견입니까. 여기는 원래 16000년전 시베리아에서 사람들이 베링해를 건너가서 점진적으로 확산되었거든요.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은 아시아에서 기원한 몽골계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서양 사람 중에 최초로 온 게 아닙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캐나다에 있는 섬, 뉴펀드랜드에서 11세기 경에 바이킹 족이 발견되었어요.
최원정: 바이킹이 이미 다녀갔구나!
강인욱: 그러니까 콜럼버스는 그냥 침략과 학살의 기원자다. 이렇게 말하면 될텐데 아까 처음 이야기 했지만 그의 동상이 공원에 있으니까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상처고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면 160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돌만 깨고 원시적인 삶을 살았느냐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아메리카 대륙 밀림 사이 사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잉카-마야-아스테카 문명과 도시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어요.
최태성: 제가 갔다 왔어요. 2018년 8월에 마추픽추에 오른 큰 별쌤 (최태성씨 사진), 그런데요 저는 다시는 안 갈거에요. 왜 그런지 아세요?
최원정: 고산병이 있으세요?
최태성: 네, 맞습니다. 마추픽추는 참 좋았습니다. 저기 제 모습있죠 (고산병 힘들어 산소 공급기 코에 대고 있음). 저는 이런 고지대에서 문명이 나왔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호흡곤란으로 제 심장이 제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역사 선생 못할 줄 알았어요.
최원정: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한 번 가보고 싶네!
최태성: 이런 지역에서도 그들 나름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고 정말 경이롭게 봤습니다.
최원정: 아무튼 살아돌아와 다행입니다. 그러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코너가 있습니다.
----------한 외국인 여자 등장: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 멕시코에서 온 나탈리아입니다----------
나탈리아/방송인: 여러분, 혹시 한국 땅을 계속 뚫고 들어가면 어디가 나올까요?
허준: 중남미가 나올 것 같애요.
나탈리아: 맞아요, 정답은 남아메리카에 있는 우루과이입니다. 이걸 대척점이라고 하죠 (대척점-지구 표면 어느 한 지점의 180도 반대 방향에 있는 지점), 아메리카 대륙은 그만큼 한국에서 멀고도 먼 곳,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를까 싶은데요.
이시원: 잘 몰라요.
나탈리아: (아메리카 대륙지도 등장) 캐나다와 미국은 사실은 북미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현지에서 앵글로 아메리카라고 해요. 그리고 멕시코부터 여기까지 현지에서는 다 라틴 아메리카 라고 해요.
최태성: 왜요?
나탈리아: 사실은 라틴족인 스페인, 프랑스 등 라틴 계통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서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원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 라고 부르면 원주민들이 슬퍼하니까 우리 중남미 라고 부르기로 해요.
최원정: 알겠어요.
최태성: 앵글로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 사람들의 시작에서 부른 것이었네요.
나탈리아: 맞아요, 중남미에는 제 나라 멕시코부터 카리브해까지 33개 나라가 있어요. 근데 지배했던 국가가 다 달라서 언어도 다 달라요. 스페인어도 있고 영어도 있고 그래서 중남미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제가 퀴즈를 한번 내볼게요.
최태성: 퀴즈가 많아요.
나탈리아: 지도에 1, 2, 3 세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각각 어디가 어디인지 맞추어 보실래요?
최태성: 어디 문명인지 물어 보시는 거죠? 마야-아스테카-잉카 물어보시는 거죠? 이거 진짜 시험에 많이 나와요.
허준: 이것도 게임에 있어요. 아즈테카-마야-잉카 문명을 기본으로 해서 문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서 현대 사회로 만드는 그런 게임이 있거든요. 아마도 가장 북쪽에 있는 1번이 아즈테카 문명이고, 맨 밑에 길게 나와있는 3번은 잉카 문명, 그리고 중간에 2번은 마야 문명,
나탈리아: 맞습니다. 정답은 아스테카 마야 잉카 그 중에서도 제고향 멕시코에 있던 아스테카 제국의 문명을 설명해드릴까요?
최태성: 네~
나탈리아: 여러분! 혹시 멕시코 국기에 뭐가 그려져 있는지 아세요?
최원정: 저기~ 독수리
이시원: 뱀을 잡 먹고 있어요.
나탈리아: 맞아요, 독수리가 호수 위 선인장에 앉아 있죠.
최태성: 국기 그리기가 많이 어렵겠네요.
허준: 선인장 가시 숫자 맞춰서 그려야 해요?
나탈리아: 대충 그러요. 아이들도 많이 틀리고 진짜 어려워요.
이시원: 무슨 상징이 있을텐데, 옛날 아스테카인들에게 내린 계시인데요. 뱀을 문 독수리가 앉은 곳에 나라를 세워라 해서 가봤더니 정말 호수 위에 선인장에 앉은 독수리가 있는 거죠. 그곳에 세운 나라가 아스테카 제국이에요. 現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
허준: 멕시코 시티가 호수 위에 있어요?
나탈리아: 옛 아스테카 제국=수상도시
이시원: 지금은 이런 수상 도시가 아니잖아요?
나탈리아: 지금은 인구 증가로 호수를 다 덮었어요.
허준: 호수를 메운 거에요.
이시원: 저 때는 정말 멋 있었겠다. 전설 속의 도시 같은 느낌이에요.
강인욱: 사실 우리가 거의 예상치 못했던 문명이라서 고고학자들이 인구를 추산해 봤어요. 어떤 분은 아스테카 추산 인구가 최대 2500만명이다 어떤 분은 너무 많은게 아니냐 600~700만명~
일동: 그래도 많은 거잖아요.
강인욱: 적어도 600만은 모두가 동의합니다. 아스테카의 수도엔 무려 30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같은 시기에 런던 파리가 10만명에서 왔다 갔다 했었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그냥 땅에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데 그것도 물 위에 이렇게 사람이 사는 거예요.
최원정: 찬란한 문명이었네요.
나탈리아: 멕시코의 정말 자랑스러운 역사인데, 그런데 이렇게 멋진 아스테카 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으로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려요. 그래서 너무 슬픈 얘기라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해설: 콜럼버스의 죽음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스페인에 의한 정복의 시대가 열린다. 약200년간 이어지며 수준 높은 문명을 발달시킨 아스테카 제국, 그러나 1519년 약2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아스테카 제국은 600명의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힌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재앙이 벌어진 순간이었다.
최원정: 지금 스페인군 6백 명이 아스테카 2500만 명을 멸망시켰다는 얘기잖아요. 이게 가능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이시원: 4만배가 넘는데 이게 가능한지요? 거의 영화 <300> 보다 더 한 것 같은데~
김대륜: 그런데 600명이 어떤 600명이냐가 굉장히 중요하겠죠.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기 전에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을 국토에서 몰아내는 레콩키스트 (718~1492) 라는 재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리고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던 (1492년) 그 싯점이 재정복 운동의 마지막 싯점이었죠. 그런데 재정복운동 과정에서 많은 군인들이 동원이 됐을 것입니다. 이제 마무리가 되니까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시원: 힘이 남아돌죠!
김대륜: 군인들이 할 일이 없어진 거죠. 이들이 이제 바다를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게 되는 거죠.
최원정: 이 말씀이 우리 임진왜란이란 똑 같은 경우네요. 일본을 통일한 다음에 그 군대는 조선을 침공하는 거잖아요.
허준: 사실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 게다가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이런 것들을 더 하면 사실은 이 정도 숫자 라고 해도 만약에 지금에 있는 중앙 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에 있는 문명에 기술과 군사력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되는 거죠.
최태성: 맞아요, 쉽게 얘기하면 싸움 좀 해본 형님들(스페인 군인들)이 어슬렁 어슬렁 대면서 있는 그런 상황에 콜럼버스의 작은 뻥! 바로 새로운 제국에 금이 엄청나게 많다 라고 하는 얘기가 퍼진 거라. 이제 할 일도 없는데~ 그래 그러면 금을 한번 내가~ 게다가 그 이야기가 또 어떻게 와전 되었느냐면 금 정도가 아니야 그냥 황금의 제국 엘도라도가 있단다. 그 엘도라도에 가면은 나의 인생역전이 오는거야. 어슬렁 어슬렁 싸움도 해 본 이들이 너도 나도 배에 몸을 실을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김대륜: 거기다가 가게되면 원주민이 있고 원주민은 쉽게 지배할 수 있고 이들을 내 휘하에서 부리면서 나는 뭐가 되냐면 영주가 되는 거죠 (신대륙에서 영주를 꿈꾼 스페인 군인들). 그게 중요 하죠.
최태성: 그런 와중에서 드디어 1519년 바로 제2의 콜럼버스가 등장을 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에르난 코르테스(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스페인 출신의 식민지 정복자 아스테카 제국을 멸망시킴). 스페인의 가난한 귀족이었는데 스페인 총독 밑에 있던 군인들을 끄드깁니다. 야~ 엘도라도가 저기 있대 우리 한 번 같이 가보자~라고 해가지고 군사를 모운 것이죠. 그래서 군인 600명 말 16마리를 데리고 우리가 얘기하는 아스테카 제국으로 향합니다.
이시원: 솔직히 좀 단출하네요.
최원정: 이렇게 마주하게 된 스페인군과 아스테카 전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스페인군과 아스테카 전사: 무대에 등장(철기시대 VS 석기시대)---------------
이시원: 누가 봐도 승패가 명확한 거 아녜요? 한 명은 아예 보호구가 없어요.
박금수/무기 및 전략전술 전문가: 오른 쪽에 스페인군을 모델로 모셨는데요 이렇게 철제 갑옷과 철제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 군은 레콩키스트란 오랜 전쟁을 통해서 전술이 발달한 상태고 군사들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군이 사용한 검은 16세기 세계 최강의 검이라고 불리는 톨레도(Toledo) 검이었습니다. 톨레도에서 나오는 양질의 철, 강철로 만든 검이었는데요. 강도가 높다고 보니까 얇고 가볍게 만들 수가 있어요. 이 톨레도 검으로는 굉장히 빠르고 치명적인 찌르기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이 여러 명을 상대할 때 에너지를 아껴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또 화승총도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최초로 화승총을 전술체계에 편입한 게 스페인이었습니다.
최태성: 근데 저 총이 원주민들에게 가장 두려웠던 게 뭐냐면 소리였어요.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소리를 듣다 보니까 어마 어마한 공포감을 갖게 된다 라고 하더라구요.
박금수: 이게 다가 아네요. 당시 아스테카 전사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스페인군의 기병이었습니다.
일동: 그렇지~ 말을 처음 봤겠구나
박금수: 신대륙에는 거대 포유류가 없잖아요. 큰 동물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말이 나타난 거죠. 그리고 유럽 쪽 말들이 아시아 쪽 말보다 크잖아요. 말 위에 이렇게 무장을 한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자신들에게 돌격을 할 때 반면에 아스테카 전사는 스페인 군과는 다르게 맨 몸까지는 아닙니다만 전사는 헝겁 옷이나 가죽 갑옷을 입기는 했는데 약했죠. 아스테카 전사들이 가장 많이 썼던 무기들은 필요했던 게 칼날이죠. 그런데 칼날을 대신했던 게 흑요석입니다. 흑요석~
허준: 이쪽은 석기네~
박금수: 흑요석을 나무에다 박는 거예요. 검 대신에 흑요석을 이용한 마쿠아후이틀이라는 무기가 되겠습니다(몽둥이). 까만게 바로 흑요석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내구성이 약합니다. 몇번 쓰다보면 특히 철기와 철제 갑옷을 쳤을 때 바로 깨져나가죠. 나중엔 몽둥이가 됐던 겁니다.
이시원: 이거 완전히 석기시대 대 철기시대가 붙는 거잖아요. 스페인군에다 전혀 대미지를 못주었을 것 같애요.
박금수: 이렇게 전사들이 스페인군에게 우려했던 이유중의 또 한가지는 전쟁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꽃 전쟁이라는 거 들어보셨나요?
일동: 못들어 봤는데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박금수: 사실 이건 나중에 서구에서 부친 이름인데요. 전쟁의 목적이 달라요. 일반적인 전쟁의 목적은 상대방을 살상해서 가장 빠른 시간에 군사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거죠. 근데 꽃전쟁에서는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잡는 게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최태성: 왜냐면 노동력이 중시됐던 사회에서는 죽이는 것보다는 노동력을 확보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으니까.
박금수: 그런 이유도 있겠죠. 그런데 아스테카의 전사들이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최대한 산채로 잡아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해설: 호수 위에 세워진 고대제국 아스테카, 그곳에는 살아있는 인간의 심장을 꺼내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풍습이 있었다. 인간의 피와 심장을 신에게 바쳐야만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촘판틀리 제단-인신공양을 하던 제단 전쟁 포로의 심장을 받침). 인심공양을 위해 적을 산 채로 사로 잡아야 했던 아스테카의 전사들 (아스테카의 압장묘-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졌던 시신으로 추정), 이는 결국 제국멸망의 빌미가 된다.
최원정: 아스테카인들은 인신공양의 제물을 위해 적을 죽이지 않고 산채로 잡아야 됐던 거야. 스페인과는 기본적으로 전투의 접근방식이 달랐다고 봐야 한다.
이시원: 한쪽은 살상, 한쪽은 그냥 제압
최태성: 사람을 산 채로 잡아가지고 제단에 올리는 모습을 보면 너무 끔찍해. 어떻게 하냐면 사제가 포로를 피라미드 제단으로 끌고 올라가요. 올라가서 산 채로 포로를 묶습니다. 딱 포박한 다음에 아까 흑요석 얘기했잖아요. 흑요석의 칼 있죠. 산 채로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거에요(사람을 제물로 바친 아스테카 제국-흑요석 칼로 산 채로 도려낸 포로의 심장), 그러면 심장이 펄덕 펄덕 뛰고 있을 거 아녜요. 시신도 눕혀 놓은 채로 체온이 그대로 있을 것 아녜요. 그러면 체온이 남아 있는 몸은 그냥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거에요. 굴러 내려올 거 아네요. 그럼 그때부터 축제가 시작되는 거에요. 사람들이 피를 몸에 바르고 시작되는 모습이라서 너무 끔찍해요.
이시원: 영화도 있잖아요. 그 <아포칼리포>를 보고 저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거 왜 꼭 사람으로 해야 되나요~ 동물로 바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강인욱: 물론 여기에 말 같은 대형 동물 자체가 많지가 않았지만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은 사실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있긴 있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거대한 퍼포먼스로 하지는 않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인데 이런 설도 있어요. 신대륙이라서 여기는 인구가 기하학적으로 증가할 경우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으니까 사람을 죽여서 자기들이 살 수 있는 수 만큼만 유지한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허준: 눈 앞에서 저 높은 꼭대기에서 시체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면 스페인 군인들이 아무리 전쟁에서 갈고 닦았어도 무서웠을 것 같긴해요.
최태성: 실제로 기록을 보면 스페인 병사들이 이 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심지어 오줌을 질렸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거에요 (에르난 코르테스가 작성한 편지 中-몇 명의 사람들은 인신공양 장면을 보았고 그들이 본 장면 중 가장 끔찍하고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게 하루에 한 명 죽이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을 죽이는데 심지어는 새로운 신전 완공기념으로 한 번에 2만 명을 죽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강인욱: 사실 중국도 그렇고 무덤에 순장을 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진 시황의 14대조 진경공 사후에는 순장을 150명 정도를 했어요. 우리는 보이지 않게 죽이고 무덤에 넣는 풍습들은 다 있는데 다만 이 사람들은 다른 지역과 교류 없이 자기들만의 패턴과 방법으로 개발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는 정말로 더 몇 배 잔인하게 보였겠죠.
최원정: 아까 2만 명이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시체 처리하는 것도 어마 어마할텐데~ 그런데
이시원: 그런데 사람들은 다 어디서 구해요?
최원정: 자기 부족 사람들을 희생시키지는 안찮아요. 전쟁을 통해서 포로로 잡아 오는 거잖아요.
김대륜: 그러니까 아스테카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거죠. 주변국과 계속해서 전쟁을 해야 인신 공양을 위한 제물을 얻을 수 있는 아스테카 제국~아스테카가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승리하긴 했지만 그만큼 많은 적을 양산하게 되는 셈이죠. 이것이 결국 아스테카가 몰락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돼죠.
최태성: 불변의 진리가 있잖아요. 적의 적은 친구 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시원: 그러면 아스테카에 당했던 주변의 부족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을 환영했을 수도 있었네요.
최태성: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코로테스가 아스테카로 향하던 중에 원주민 부족 중에 오~ 아스테카를 치러 간다구 그러면 도와줄 게 해 가지고 우리가 길잡이 해 줄게 아스테카를 무찔러 줘! 라고 해 가지고 동맹을 맺기도 해요. 코르테스 입장에서는 병력도 얼마 안되는데 댕큐! 같이 가자~ 스페인이 적은 병력으로 그 엄청난 아스테카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도 있었죠.
최원정: 아스테카 뿐만 아니라 지금 잉카랑 마야도 스페인군에 의해서 이렇게 제압당한 거죠?
김대륜: 마야 문명 같은 경우는 이미 쇠락의 길을 접어들고 있었던 참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마야문명이 굉장히 치명적인~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정말 용서가 되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게 돼죠. 마야 문명은 굉장히 발전되어 있는 문명이었기 때문에 언어가 있었고 수학도 발전해 있고 달력을 만들 천문학도 발전해 있었겠죠. 의학도 발전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 과학적인 발전의 결과물들을 전부 문서화해서 책으로 남겨왔는데 스페인의 사제들이 이게 악마의 언어로 씌여져 있다고 해서 전부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야 문명이 남긴 문헌은 딱 세 점만 남아 있다 라고 얘기하죠.
이시원: 만약에 그게 더 많이 남아 있었더라면 세계문화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예측 못했을 것 같애요.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최원정: 찬란한 문화유산인데 너무 아깝다.
최태성: 잉카 제국은 제가 다녀 온 곳입니다. 여기는 더 비참해요. 여기는 제3의 콜럼버스죠. 바로피사로 (프란시스코 피사로(1478~1541)-스페인 출신의 식민지 정복자 코르테스의 영향을 받아 잉카 제국을 침공). 스페인 피사로가 180명을 데리고 들어가서 잉카 제국의 왕을 만나자고 면담 요청을 해요. 잉카 제국엔 왜 갔는지 이해가 안되는데 아마 호기심에서 간 거 같애요. 거기 가서 아까 우리 얘기했던 총과 기병을 이용해서 잉카 황제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왕을 순식간에 사로 잡은 거에요. 왕이 잡혔는데 어떻게 하지 하고 보니까 이 사람들이 지금 금을 원하는 것 같은 눈치를 챈 거예요. 그래서 딜을 해요. 너희들 혹시 금을 원하니~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 그럼 나를 풀어줘 나를 풀어주면 이방을 금으로 가득 채워 줄게 라고 얘기를 하니까 오케이 했죠. 무려 24톤의 금이 그 큰 방에 쌓였어요.
이시원: 그 금을 어디서 났데요.
허준: 콜럼버스가 엄청난 노예들을 7년간 부려서 모은 금보다 더 많은 금을 모았네요.
최태성: 왕을 살려야 되니까 전국에 있는 모든 금을 다 끌어 모운 거죠.
이시원: 그래서 피사로는 금을 받고 왕을 풀어 주었나요?
최태성: 약속을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죽입니다. 왜냐면 후일의 복수를 위해 그랬던 거지요. 피사로 진짜 나빠요.
김대륜: 굉장히 간교하죠.
강인욱: 진짜 스페인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한 게 24톤 금이 황금 덩어리가 아니라 각종 공예품 왕관 액세서리였는데 그걸 다 녹여서 금궤로 만들어서 가지고 갔대요. 그래서 지금 스페인의 대형 박물관에는 몇 십배 되는 금이 나와야 되는데 스페인에는 그런 게 없어요. 내가 사람 죽이는 것도 분노하지만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예술품을 파괴한 스페인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시원: 세상에~
최원정: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
이시원: 바꿔 말하면 신라금관 녹여서 금괴 만든 거잖아요. 걔네들 바보 아니예요.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인지가 없어요?
김대륜/강인욱/최태성: (분노의 이구동성!)
최원정: 걔네들 학교 다닐 때 역사를 안배우나?
최태성: 거꾸로 말하면 이 당시 유럽인들은 문명화가 안된 거예요.
출연자들: 분노폭발! 스페인 정복자들 한 마리 두 마리네!
이시원: 금이 24톤이면 유물이 엄청났던 거잖아요.
강인욱: 중남미 박물관에서도 다 털려서 잉카 유물을 찾아 보기 힘들어요.
허준: 왕 살린다고 다 줘?
최원정: 사실 숫자도 말이 안되고 기술력의 차이 동맹국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한 문명이 삽시간에 멸망이 되고~난 지금 이게 이해가 안가요.
이시원: 한쪽은 600명, 한쪽은 180명, 어떻게 그렇게 적은 인원에 거대문명이 무너질 수가 있지요?
최태성: 사실 저도 아무리 그래도 적은 군인으로 이렇게 한 문명을 몰살시킨다고 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진짜 스페인에 혁혁한 공을 세운 지원군이 있었어요. 아까 원주민 동맹 말고 혁혁한 공을 세운 스페인의 지원군, 그게 바로 바이러스예요.
최원정: 바이러스~?
최태성: 천연두 바이러스라고 당시 아스테카 문명인구가 2500만 명인데 이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는 거에요. 면역력이 없으니까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는 거예요. 2500만 명 인구가 30년 만에 10분의 1로 줄어들어요. 이걸로 초토화 시켜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무력적인 것 이외에 바이러스라는 엄청난 힘이 있었기에 하나의 문명이 쓰러지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온 거죠.
김대륜: 근데 천연두 이야기 할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될 대목이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병원균을 옮겼고 그러므로 유럽인들은 신대륙 원주민 멸절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 나가는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 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14세기 중반에 흑사병이 서유럽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적게는 유럽 사람들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이 죽었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사람들이 한 두 세기가 걸리긴 하지만 그 흑사병이 발생하기 이전에 인구로 회복을 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잉카나 아스테카나 신대륙에 있는 사람들은 예전의 인구를 회복하지를 못해요. 다른 말로 바꾸면 이 사람들이 노동력 착취, 학살 등 원주민들이 굉장히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증거죠. 그래서 유럽인들이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이시원: 프랑스 몽테뉴가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우리야 말로 모든 야만스러움에서 그들을 능가한다. 어찌보면 야만스러움을 가진 것은 유럽인들이 아니었을까. 원주민들의 야만성을 핑게를 댔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의 다양성,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던 유럽인들이 가진 그들의 야만성이 이런 사태를 만든 거 같애요.
최태성; 그래요.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행했던 잔혹한 역사를 스페인 신부 라스 카사스가 기록한 게 있는데 이걸 지금 제가 꼭 좀 읽어 드리고 싶더라고요.
“기독교도들(스페인인들)은 원주민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잔혹성을 보였다. 어린이, 노인, 임산부, 혹은 출산 중인 여인까지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머리를 단 번에 잘라낼 수 있는 가에 대해 서로 내기를 걸었다.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이를 낚아 채 강물에 집어 던지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자식들아, 그곳에서 펄펄 끓어라”---라스 카사스---
이시원: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네요.
최태성: 그러게요.
최원정: 콜럼버스, 코르테스, 피사로, 오늘 계속 이름이 나오는 이 사람들이 원주민들에게는 어떻게 각인 됐을까요? 그게 궁금해 지네요. 지난 2015년 이었죠.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중죄를 사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15년 7월) 교황 프란치스코 볼리비아 방문, 아메리카 대륙 토착민들에 대한 심각한 범죄들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 저질러진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라틴 아메리카의 문명을 파괴한 지 약500년 만의 사과---------------------
이시원: 어찌보면 한 종교의 수장이라 상징인 분이 이런 식으로 사과를 했다는 거는 진짜 진정 어린 사과로 느껴지고 이게 정말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이런 인식이 있었다면 이런 노예화, 학살 등이 훨씬 적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네요.
최태성: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과 사랑을 이야기 하는 종교인 만큼 더 빠른 사과가 이루어졌어야~ 하는 생각이 드네요.
최원정: 오늘 금을 찾고자 하는 한 명 한 명의 욕망들이 정말 아메리카 대륙에 어떤 재앙을 불러 일으켰는지 이야기를 나눠 보았는데 인신 공양을 시작해서 한 민족이 멸망되는 절멸의 과정까지 굉장히 저희가 많은 걸 얘기한 것 같애요.
최태성: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여기야 말로 제국주의의 시작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 당시 이런 인간들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을 때 갖게 되는 끔찍한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잖아요. 가만히 보면 지금도 우리는 어마 어마한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 같애요. 그 욕망의 시대를 제어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을 한번 둘러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김대륜: 다른 무엇보다도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저지른 일, 그 근원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혹은 다름에 대한 감수성이 굉장히 무디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잖아요. 다시 말해서 역사를 배우는 일은 굉장히 낯선 것을 보면서 그 낯선 것을 그 맥락 그대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다름을 인정할 때 함께 더불어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최원정: 다음 시간에는 금이 아닌 은의 이야기 또 사냥전사가 본격화된 흑인 노예 무역 이야기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제336회 대항해의 시대 [제3편] 콜럼버스의 거짓말, 비극을 키우다 에서 정리).
① 콜럼버스의 유해는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에 공중부양으로 안치되어 있다, 네 왕들이 그의 관을 받쳐들고 있다. 콜럼버스로서는 대단한 영광이다. 그가 스페인의 황금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가 왜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그의 항해는 누군가에게는 길고 긴 재앙의 시작이었다. 콜럼버스는 첫번째 항해 이후 세번이나 항해를 떠나게 되는데 항해를 떠날 때 마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었다. 세번째 항해에서는 쇠사슬에 묶여 가지고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미국의 보스턴시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있다. 미국은 인종차별항의 시위대가 시당국에다 제발 콜럼버스 동상철거를 요구하였는데 철거가 안되니까 2020년 6월에 저항의 상징으로 보스턴 콜럼버스의 동상 목을 날려버렸다. 콜럼버스는 왕들이 상여를 들 정도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한번 원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콜럼버스의 도착으로 인하여 신대륙의 인구가 약6000만 명에서 100년 후에는 1/10로 줄어들었다.
②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원주민들에게는 대재앙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그의 동상을 각지에 세워놓았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콜럼버스는 극과 극을 오고 가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인물이다. 미국은 10월 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국경일로 기념하는 날이었는데 이제는 그날이 원주민을 추모하는 날로 바뀌고 있는 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콜럼버스가 위대한 탐험가인지 아니면 잔인한 학살자인지 역사적으로 객관적으로 파헤쳐져야 한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에게 제출한 1차 항해보고서에서 그곳에 엄청난 기름진 땅이 있다. 향신료와 면화가 얼마든지 있다, 각종 희귀한 산물들이 많이 날뿐 아니라 금광들도 있다. 이런 식으로 부풀렸다. 왕의 입장에서는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앞서서 주도권을 쥐고 아시아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콜럼버스가 2차 항해를 떠난다고 할 때 지원이 풍부하였다. 1492년 첫번째 항해에 배3척에 선원 90명이었는데 1493년 2차 항해에는 배 17척에다 선원 1500명이었다. 콜럼버스는 가서 열심히 금을 찾았다. 그러나 금은 안보이고 없었다. 금을 찾아 쿠바와 자메이카까지 원정을 갔었다. 여전히 금은 없었다. 콜럼버스의 입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리게 되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중남미는 인도가 아니라 후추나 육두구, 계피 같은 향신료가 생산되지 않았다. 콜럼버스는 심지어 광산에 금이 많기 때문에 광부가 더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콜럼버스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③ 당시 많은 탐험가들이 있었지만 콜럼버스같은 허풍장이는 별로 없었다. 콜럼버스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다. 근데 콜럼버스의 운명을 쥐고 있는 금은 과연 어디에 있나.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났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은 더운 지역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면 금은 태양빛을 띠고 있다. 금이 태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라고 생각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적도 부근이 금의 주요 생산지 라고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콜럼버스도 그걸 믿었다. 적도 근처에서 금을 탐사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금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다. 그리고 남아공, 러시아, 미국 순으로 전세계 곳곳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방문했던 적도,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아이티에도 금광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그곳에서 금을 찾지 못했다.
금을 찾기 힘든 이유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금의 원자번호는 79번 이다. 원자번호가 높으면 높을수록 무거운 물질이다. 원자번호는 순번 1번에서 118번까지 있다. 원자번호가 79번이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지구가 처음 만들어질 때 무거운 금은 중력에 의해서 중심쪽으로 강하게 이끌려 갔다. 그 때문에 지표면에서 발견되는 금의 양은 많지가 않다. 예를 들면 2019년 철광석의 한 해 생산량이 약 25억톤인데 금은 한 해 생산량이 아니라 전체 매장량이 약 25만톤이다. 그 중에서 20만톤은 사람들이 캐서 사용하고 있고 현재 남은 매장량은 고작 5만톤뿐이다. 그런데 지표면의 대부분의 금들은 암석에 흩어져 있거나 바닷물에 극소량 포함되어 있어서 채취하기가 힘들다. 육지의 금은 크게 산지에서 나는 산금과 부서진 형태로 강가에 있는 사금이다. 당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로 사금을 채취해서 금을 얻었다.
④ 사금채취로 금을 얻는 것은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콜럼버스가 봤던 원주민들의 금 장신구들은 시간이 걸려서 만들어졌다. 몇 십년 대대로 물려받은 금 일수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금은 덩어리 채 있는 것은 없고 대부분 사금이다. 강에서 사금을 캐는데 그게 상류에 금맥이 있으면 씻겨 내려오면서 모래에 가라앉는다. 19세기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러시아 알타이에서 일년 동안에 한 명이 금50g을 채취하였다. 그래서 금이 귀하다. 콜럼버스의 2차 항해에서도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왕한테 지원을 요청했다. 왕도 고민이 되었다. 결국 이때 영혼까지 끌어모아 준다. 그런데 선원 모집이 안되었다. 죄수들까지 모우게 되는데 살인을 했던 죄수 10명이 항해에 동참한다. 콜럼버스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콜럼버스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1948년 콜럼버스가 3차 신대륙을 건너가는데 이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린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쿠 다 가마가 출항 11개월만에 인도 캘리컷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스페인 왕실은 충격에 빠졌고 궁지에 몰린 콜럼버스는 위기를 타계할 새로운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⑤ 원주민을 노예로 쓰자. 콜럼버스의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는 원주민들에게 스페인 말과 예절을 가르치고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면 이들이 유순하고 순종적인 노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노동력을 활용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 스페인 왕한테 보고서를 보내는데 보낼 때 샘플로 원주민 남녀 550명을 뽑아서 보낸다. 원주민을 잡을 때 사나운 개를 풀어서 포획하고 원주민을 셀 때 한 마리 두 마리 짐승 취급을 하였다. 사람을 가축으로 보았다. 콜럼버스의 기발한 생각은 원주민을 사금채취 강제노역에 동원하는 거다. 그래서 1503년에 스페인 왕이 강제노역을 합법화 하고 그때부터 7년 동안 19톤의 사금을 생산하였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당시 콜럼버스가 금채취를 위해 원주민을 대하는 모습은 폭압적이었다. 사냥개는 물론 조금만 잘못하면 귀를 자른다든지 엄청 공포적인 방법으로 다스렸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자살율이 높았다. 원주민들은 너무 무섭고 공포스러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콜럼버스는 거짓말로 시작해서 더 이상 못 막겠으니까 흑화해 버렸다. 3차 항해에서 콜럼버스는 스페인 사람들 통제를 못해서 결국 쇠사슬에 묶여가지고 압송되어 왔다 (1500년 10월). 이렇게 되면서 콜럼버스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남긴 3가지 유산이 있다. 첫번째가 신대륙, 두번째는 원주민 노예, 세번째는 금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세 가지가 스페인 사람들한테는 뭔가 목표점을 만들게 하였다. 이러면서 제2, 제3의 콜럼버스가 생기면서 이제 아메리카의 비극은 본격화 되었다. 우리의 가장 큰 오해는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했다고 배웠다. 그런데 원래 16,000년전 몽골계 사람들이 시베리아에서 베링해를 건너가서 남미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아메리카 역사의 주인공은 아시아에서 기원한 몽골계통의 사람들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콜럼버스는 서양 사람 중에 최초가 아니고 11세기경 바이킹 족이 캐나다 뉴펀드랜드섬에 도착하였었다.
⑥ 늦게나마 이제 고증과 탐사에 의해서 콜럼버스는 그냥 침략과 학살의 기원자다 라고 말하면 될텐데 그의 동상이 공원 여기 저기에 있으니까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16,0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엄청난 많은 잉카-마야-아스테카 문명과 도시 유적들이 아메리카 대륙 밀림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마추픽추는 고지대에 건설된 마야문명이다. 많은 세계인들이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문명은 아스테카, 마야, 잉카 문명이다.
⑦ 멕시코의 아스테카 문명은 거의 예상치 못했던 문명이라서 고고학자들이 인구를 추산해 봤다. 어떤 분은 최대 2500만명이다. 어떤 분은 600~700만명이다. 적어도 600만은 모두가 동의한다. 아스테카의 수도엔 무려 30만 명이 살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런던 파리가 10만명이었다. 아스테카 제국은 멕시코의 자랑스러운 역사인데 스페인의 침략으로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콜럼버스의 죽음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스페인에 의한 정복의 시대가 열린다. 약200년간 이어지며 수준 높은 문명을 발달시킨 아스테카 제국, 그러나 1519년 약2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아스테카 제국은 600명의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힌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재앙이 벌어진 순간이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기 전에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을 국토에서 몰아내는 레콩키스트 (718~1492) 라는 재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던 (1492년) 그 싯점이 재정복 운동의 마지막 싯점이었다. 재정복운동이 마무리가 되니까. 제대 군인들이 할 일이 없어진 거다. 이들이 이제 바다를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전략은 이 정도 숫자 라고 해도 만약에 지금에 있는 중앙 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에 있는 문명에 기술과 군사력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이때 새로운 제국에 금이 엄청나게 많다 라고 하는 얘기가 퍼졌다. 금 정도가 아니라 황금의 제국 엘도라도가 있다. 그 엘도라도에 가면 인생역전이 온다. 너도 나도 배에 몸을 실을 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가게되면 원주민이 있고 원주민은 쉽게 지배할 수 있고 이들을 내 휘하에서 부리면서 나는 영주가 된다. 그런 와중에서 드디어 1519년 제2의 콜럼버스, 에르난 코르테스 (1485~1547)가 등장한다. 그는 스페인의 가난한 귀족이었는데 스페인 총독 밑에 있던 군인들을 끄드긴다. 우리 한 번 같이 가보자 해가지고 군사를 모운다. 군인 600명 말 16마리를 데리고 아스테카 제국으로 향하였다.
⑧ 당시 스페인 군은 오랜 레콩키스트 전쟁을 통해서 전술이 발달한 상태고 군사들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상황이었다. 스페인군이 사용한 검은 16세기 세계 최강의 검인 톨레도(Toledo) 검이었다. 톨레도 검은 빠르고 치명적인 찌르기로 한 명이 여러 명을 상대해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화승총도 있었다. 당시 세계 최초로 화승총을 전술체계에 편입하였다. 아스테카 전사들이 총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두려워했다. 신대륙에는 거대 포유류가 없어서 말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말이 나타났다. 말 위에 무장을 한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자신들에게 돌격해 올 때 아스테카 전사들은 어마 어마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스테카 전사들은 약한 헝겁 옷이나 가죽 갑옷을 입었으며 전사들의 무기는 내구성이 약한 흑요석(칼날)을 이용한 몽둥이 같은 무기였다. 철기나 철제 갑옷을 쳤을 때 칼이 깨져버렸다. 스페인군에다 전혀 대미지를 못주었다. 전쟁의 문화도 달랐다. 일반적인 전쟁의 목적은 상대방을 살상해서 가장 빠른 시간에 군사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건데 아스테카 전사들은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산채로 잡아서 태양신에게 인신공양 제물로 바치는 게 목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전투의 접근방식이 달랐다. 이는 결국 제국멸망의 빌미가 된다.
⑨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은 전세계 공통적으로 있긴 있었다. 피라미드 높은 꼭대기에서 인신 공양시체가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스페인 군인들이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끔찍하고 두려웠다. 이게 하루에 한 명 죽이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을 죽이는데 심지어는 새로운 신전 완공기념으로 한 번에 2만 명을 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도 무덤에 순장을 하였다. 진 시황의 14대조 진경공 사후에는 순장을 150명 정도를 했다. 보이지 않게 죽이고 무덤에 넣는 풍습들은 다 있는데 다만 아스테카 사람들은 다른 지역과 교류 없이 자기들만의 패턴과 방법으로 개발했으므로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는 몇 배 잔인하게 보였다. 아스테카 제국은 인신 공양을 위한 제물을 얻기 위해 주변국과 계속해서 전쟁을 해야 했던만큼 주변에 많은 적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것이 결국 아스테카가 몰락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스테카에 당했던 주변의 부족들은 당연히 스페인 정복자들을 환영했다. 코로테스가 아스테카로 향하던 중에 원주민 부족이 도와주고 길잡이 해 줄게 아스테카를 무찔러 줘 라고 해서 동맹을 맺기도 했다. 코르테스 입장에서는 적은 병력으로 엄청난 아스테카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마야(멕시코 남부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 문명 같은 경우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마야 문명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의 시선으로 정말 용서가 되지 않는 만행을 저질렀다. 마야 문명은 언어가 있었고 수학도 발전했고 달력을 만들 천문학도 발전했고 의학도 발전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발전의 결과물들을 전부 문서화해서 책으로 남겨왔는데 스페인의 사제들이 이게 악마의 언어로 씌여져 있다고 해서 전부 불태워 버렸다. 마야 문명이 남긴 문헌은 현재 딱 세 점만 남아 있다고 한다. 찬란한 문화유산인데 너무 아깝다. 잉카(지금의 안데스 페루지역) 제국은 더 비참했다. 제3의 콜럼버스, 피사로가 180명을 데리고 잉카 제국으로 들어가서 왕을 만나자고 면담 요청을 해놓고는 총과 기병을 이용해서 왕을 순식간에 사로 잡은 후에 금을 주면 풀어주기로 협상을 하고는 무려 24톤의 금을 받은 후에 피사로는 왕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복수를 막기 위해 그랬다. 피사로 진짜 나쁘다. 굉장히 간교하다. 잉카 왕이 살기 위해서 모아준 금은 콜럼버스가 엄청난 노예들을 7년간 부려서 모은 금보다 더 많았다. 왕을 살려야 되니까 전국에 있는 모든 금을 다 끌어 모운 거다.
⑩ 진짜 스페인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한 건 24톤 황금 덩어리가 아니라 24톤 금은 각종 공예품 왕관 액세서리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그걸 다 녹여서 금궤로 만들어서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스페인의 대형 박물관에는 24톤 되는 금이 나와야 되는데 그런 게 없다.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도 분노하지만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예술품을 파괴한 스페인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신라금관 녹여서 금괴로 만든 거다. 거꾸로 말하면 이 당시 유럽인들은 문명화가 안되었다. 중남미 박물관에서도 다 털려서 마야 유물을 찾아 보기 힘들다. 한쪽은 600명, 한쪽은 180명, 적은 인원에 거대문명이 무너질 수가 있는 것의 수훈자는 바로 바이러스였다.
천연두 바이러스라고 당시 아스테카 문명인구 2500만 명은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었다. 면역력이 없으니까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었다. 2500만 명 인구가 30년 후에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제국이 초토화 되었다. 어떤 무력적인 것 이외에 바이러스는 하나의 문명이 쓰러지게 되는 엄청난 힘이 있었다. 유럽인들은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행했던 잔혹한 역사를 스페인 신부 라스 카사스가 기록한 게 있다.
“기독교도들(스페인인들)은 원주민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잔혹성을 보였다. 어린이, 노인, 임산부, 혹은 출산 중인 여인까지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머리를 단 번에 잘라낼 수 있는 가에 대해 서로 내기를 걸었다.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이를 낚아 채 강물에 집어 던지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자식들아, 그곳에서 펄펄 끓어라”---라스 카사스---
⑪ 콜럼버스, 코르테스, 피사로, 이 사람들은 원주민들에게 어떻게 각인 됐을까. 지난 2015년 7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이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중죄를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2015년 7월) 교황 프란치스코 볼리비아 방문, 아메리카 대륙 토착민들에 대한 심각한 범죄들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 저질러진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라틴 아메리카의 문명을 파괴한 지 약500년 만의 사과였다-----------------
어찌보면 이런 사과가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과 사랑을 이야기 하는 종교인은 더 빠른 사과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당시 금을 찾고자 하는 한 명 한 명의 욕망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어떤 재앙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아 보았다. 인신 공양으로 한 민족이 멸망되는 멸절의 과정도 살펴보았다.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제 제국주의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 당시 이런 인간들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을 때 갖게 되는 끔찍한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어마 어마한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욕망의 시대를 제어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을 한번 둘러보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배우는 일은 굉장히 낯선 것을 보면서 그 낯선 것을 그 맥락 그대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다름을 인정할 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