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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모섬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요한
계1:10-16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10-16)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아멘.
우리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단어들이 많이 나오죠?
구약성경에 다 나와 있는 말이에요.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릴 텐데, 13절까지만, 공부를 할 거 같아요.
지난주에, 사도 요한이,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이, 9절 말씀이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에서 우리 성도들의 신분을, 아울러 확인을 했죠?
우리는 서로 형제(兄弟)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감격 속에 확인을 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사도 요한이 그 계시(啓示)를 받은 날이,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날이 바로 주의 날에! 주의 날에! 주의 날에, 사도요한은 성령 안에서 무언가를 보는 거예요.
여기서 ‘주의 날’이라고 번역이 된 말은, ‘큐리오케 헤메라’라는 말이에요. ‘큐리오케 헤메라’ 원래 구약에서도 ‘주의 날’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요.
아모스 5장 18절(아모스 5:18)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그러죠? 이게 히브리어로 ‘예호바 욤’이라는 말이거든요. ‘주의 날’이라는 말이에요.)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주의 날! 심판의 날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스바냐서 1장 18절(스바냐 1:18)
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예호바 욤’이에요.)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여기도 ‘주의 날’이 나오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우주적(宇宙的)인 멸망(滅亡)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죠?
이사야서 2장 12절 (이사야 2:1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예호바 욤’ 똑같은 말이에요.)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이사야서 13장 9절(이사야 13:9-10)9 여호와에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여호바 욤’ 주의 날이에요. 그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10 하늘에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날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요엘서 2장 31절 (요엘 2:31)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여호바 욤’ 주의 날이에요.) 그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이처럼 구약의 ‘주의 날! 여호바 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적들에게 진노(震怒)하시는 날!
즉 심판(審判)의 날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신약에서도, 이 심판의 날인, 주의 날에 대한 묘사가 여러 군데, 나오고 있어요.
베드로후서 3장 10절 (베드로후서 3:10)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주의 날! 나오죠?)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채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들어나리로다
심판을 이야기하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 (데살로니가전서 5:2-3)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에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멸망의 날! 심판의 날을 상징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쓰인 단어는 조금 달라요.
만약에 오늘 본문에 쓰인 그 말이, 심판의 날! 멸망의 날을 가리키는 것이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미래주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미래주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이 계시록의 일이 전부, 저 미래에, 어떤 심판의 날에 올 것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지금 교회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그 마지막에 일어날 일을 포함해서, 지금 교회시대에 일어난 일이 기록돼 있는 게, 요한계시록이잖아요? 자세히 보시면, 여기에서 쓰인 단어는, ‘큐리오케 헤메라’라고요.
딴 데서 쓰인 말은, ‘큐리오 헤메라’에요. ‘큐리오케 헤메라’라는 말은, 여기 한 군데 밖에 없어요.
‘큐리오 헤메라’라는 말은, 주님을 이야기하는 게, 헬라어로 ‘큐리오스’거든요.
그 ‘큐리오스’의 소유격이 ‘큐리오’에요.
그래서 딴 거는, 주의 날! 심판의 날! 멸망의 날은 전부, ‘큐리오 헤메라’예요 소유격!
오늘 여기에 쓰인, 계시록 1장 10절에 쓰인 ‘주의 날’은, 형용사가 쓰였다고요.
거기에 ‘큐리오케 헤메라’ 지금 어떠한 한 날을, 형용사가 수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날은, 그 미래에 어떤 막연한 어떤 날이 아니라, 멸망의 날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상에 있었던 한 날을 가리키는 거예요.
이 단어를 성경에는 없지만, 초대교회 교부들이 쓴 책을 보면은, 그 사람들이 ‘큐리오케 헤메라’라는 말을 여러 군데서 썼는데, 그 날을, 그들은 무엇을 가리키느라고 썼냐면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 바로 오늘! 이 날을, ‘큐리오케 헤메라’라고 썼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주의 날’은, 바로 ‘주일’을 가리키는 거예요.
사도 요한이 ‘주일에’ 이런 뜻이라고요.
제가 말씀드린 ‘큐리오케 헤메라’ 이 말이, 어떠한 특정한 한 날을 가리킨다고 해서, 구약이나 다른 신약 여러 곳에 쓰인, 그 심판의 날! 멸망의 날! 그 의미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에요.
여러분!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퍼부어지는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날’이죠?
영적으로! 그 일이 언제 이루어 졌습니까?
십자가에서 이루어 졌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성이 됐다고요.
주일날 ,우리는 그 부활을 기념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서, 세상의 심판을 보시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은 여기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잔치에 참여하고 계시는 거라고요.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오늘 자세하게, 제가 설명할 시간이 없구요.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그레함 골즈워디가 쓴 ‘가스펄 인 레벌레인션(Gospel in Revelation)’이란 책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아주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사도 요한이 여기서 ‘큐리오케 헤메라’라고 표현한 것은, 그 날은 역사상에 존재했던 어떤 특정한 한 날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예요.
이유가 있어요. 제가 조금 있다 잘 설명해 드릴게요.
그 주의 날에, 주일에, 사도 요한이 성령 안에서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죠.
10절에 나오는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그 말은, ‘엔 푸뉴마티’라는 말이거든요.
‘성령 안에서’라는 뜻이에요.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엔 퓨뉴마티’가 세 번 나와요.
그래서 이 ‘엔 푸뉴마티’를 기점으로 해서, 요한계시록 전체 구조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그런 분들도 계세요. 거기까진 여러분들이 잘 모르셔도 돼요.
그 첫 번째 ‘엔 푸뉴마티’가 나오는 거예요.
성령 안에서! 그는 밧모섬이라는 환란의 장소에서, 거기는 환란의 장소죠?
광산에서 부역을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 밧모섬이라는 환란의 장소에서! 주일에 그죠?
주일에 성령 안에서, 엔 푸뉴마티,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죠? 잘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12절, 13절, 다시 한 번 볼게요.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러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주의 날에, 주일에,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어요. 그래서 그 음성이 뭐냐 하면서, 딱 뒤를 돌아봤더니, 뭐가 있었습니까? 금 촛대가 있었어요. 그리고 금 촛대 사이에,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를 보았어요. 그죠? ‘인자 같은 이’를, 여기에서 일곱 금 촛대는 뭐라 그랬죠? 제가 설명해 드렸죠? ‘교회(敎會)’라 그랬죠? 계시록 자체가 설명하고 있잖아요? 계시록 1장 20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1:20)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에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에 사자요 일곱촛대는 일곱 교회이니라
예수님이 직접 설명하시는 거예요. 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다. 그랬죠? 일곱 교회는, ‘일곱’이라는 완전수를 써서,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거라고 제가 설명해 드렸어요. 이미!
그 교회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서 있어요. ‘인자 같은 이’는 어디에서 인용한 거라 그랬어요? 몇 주 전에 제가 설명해 드렸는데, 기억이 나실 리가 없죠? 참 감사해요. 저는 이렇게 빨리 빨리 잊어 버려 주시니까, 제가 먹고 살 수 있는 거예요. 늘 새롭게 들어주시니까! 다니엘서 7장 13절.
(다니엘 7:13-14)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나오죠? 인자 같은 이! 여기에서 인용한 거예요.)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거기에서 인용한 거라 그랬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죠? 다니엘서의 이 구절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구절이라 그랬어요. 거기서 예수님을,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해요. 권세와 나라를 갖고 있는 그 예수님을, 인자 같은 이! 지금 사도 요한은 바로, 그 예수님이, 교회 사이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고 하는 거예요.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변화산에서 봤던 그 예수님이, 지금 교회! 일곱 교회 사이에 서계신 것을 지금 보았다는 거예요. 그 권세와 영광과 능력과 나라를 상징하기 위해서, ‘인자 같은 이’라는 단어를 갖다가 써서, 예수님을 표현하신 거예요.
자, 여러분 여기에서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두고 가셔야 될 것이,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다음에, 절대 타자(他者)로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돼요. 예수님은 지금 교회 사이에 계시다고요. 교회 안에 계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요! 사도 요한이 그걸 본거예요. ‘어! 예수님이 교회 사이에 지금 계시네!’ 여러분! 이 사도 요한의 경험을 부러워하세요? 사도 요한이 부러우십니까? ‘아! 나도 좀 봤으면…’ 그러세요?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지금 사도 요한과 똑같은 현실에 계신 분들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지금 예배를 드리고 계세요. 그죠? 예배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제가 예배 시작할 때 늘 드리는 말씀 있잖아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계시잖아요? 한 번 볼까요? 요한복음 4장 24절.
(요한복음 4:24)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러죠? ‘신령’이라는 말은, ‘엔 푸뉴마티’라는 말이에요. 똑같은 말이에요. 성령 안에서! 여러분이 진짜 예배를 드리는 참 교회가 맞으면, 여러분은 지금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밧모섬이라는 그 답답한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본 사도 요한과 똑같이, 이렇게 지긋지긋한 세상 권세 잡은 자가,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성령 안에서, 여러분이 예수를 보고 계신 거예요. 일곱 교회 사이에 계신 그 예수! 그 현실이 지금 똑같은 현실이에요. 부러워하실 필요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이 진짜 교회가 맞고, 하나님의 백성이 맞으면, 사도 요한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하늘나라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지만, 여러분은 지금 말씀으로, 믿음으로,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신 분들이에요. 사도 요한이 환란의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하늘을 체험하듯이, 여러분도, 이 환란과 핍박의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엔 푸뉴마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신 분들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예배(禮拜)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정말 여기가 천국이세요? 그가 성령 안에서,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밧모섬에서 부역을 하던 그곳에서, 성령 안에서 천국을 봤잖아요? 여러분들도, 분명히 똑같이 여기서 천국을 보시는 분들이라고 하는데, 진짜 여기가 천국이냐고요? 밧모섬에 더 가깝죠? 여기는요, 그죠?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 맞으면, 여기는 여러분의 천국이셔야 돼요. 천국의 삶을 직접 여러분이 경험하는 곳이어야 돼요. 히브리서 12장 22절 보세요.
(히브리서 12:22-24) (표준새번역)
22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 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은 축하행사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과
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에 집회와 만민에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께 나아왔고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하게 말하는 그가 뿌리신 피 앞에 이르렀습니다. 계시록 7장 9절로 갑니다.
(요한계시록 7:9-11)
9 2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에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여러분도 믿음으로, 또 말씀으로, 이곳에서, 지금 읽으신 말씀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보셔야 하는 분들이라고요. 우린 지금, 천상의 삶의 모형을, 믿음으로, 말씀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어줍지 않은 간증 같은 것 듣고, 감동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사도 요한을 부러워하세요? 사도 바울을 부러워하십니까? 펄시 콜레라는 인간을 부러워하세요? 여러분? 천국을 갔다 왔다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 하시냐고요?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맞으면, 여러분은 수시로 천국을 들락날락 하시는 분들이에요. 성령 안에서! 엔 푸뉴마티!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서요? 여러분은 성령 안에 있다면서요?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여러분은 천국을, 이 땅에서 이 현실 속에서 체험하실 수 있어요. 방법을 몰라서 그래요. 방법을 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방법을 몰라서! 여러분! 정말 천국 가고 싶으십니까?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천국가고 싶으세요? 그러면 그 천국이 얼마나 좋고, 왜 좋은 곳인지 진짜 알고 계시냐구요? 만약 아신다면, 여러분이 지금 천국에 가셨어요. 하나님이, ‘얘야! 잠깐 할일이 있는데, 잠깐만 내려갔다 올래?’ 그러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고 내려오시겠어요? 거기가 어떤 곳인지 진짜 아신다면, 입이 한 댓 발은 나올걸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또 내려가라는 거예요? 하나님!’
그런데 그 천국을 아신다는 분이, 왜 거기 갔다가 살아나왔다는 인간들이 간증하고 다니는 거를, ‘야! 하나님이 놀랍게 축복하신 사람이야! 저 사람은! 뭔가 대단한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냐고요? 진짜로 그 사람이 천국에 갔다 왔다면, 그렇게, ‘야! 기쁘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축복하셔서, 날 다시 살려주셨어요.’ 이렇게 간증하고 다니겠냐고요? 입이 이만큼 나와서, ‘어떻게 나를 또 돌려보낼 수가 있어? 거기까지 어떻게 갔는데….’ 그럴 거 아니냐고요? 천국을 모르는 거예요. 천국이 가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쫓아다니면서, ‘야! 어떻게 살아났을까? 어떻게 살아났을까?’ 그게 왜 신기하냐고요? 그게 왜 신기해요? 여러분!
솔직히 아직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잘 모르시죠? 제가 오늘 그 날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거예요. 어떻게 그 나라를 맛보며, 그 나라를 배울 수 있는가? 바로 말씀과 교회입니다. 결론은 늘 한가지예요. 그죠? 여러분은 말씀으로 천국을 보고, 교회 안에서 천국을 실습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인 천국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에 도우심으로, 성령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신다고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현실 속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맛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에베소서를 공부할 때, 성령이 뭐로 오셨다고 했죠? 보증(保證)으로! ‘알라본’이라고 그랬잖아요? 보증이 뭐라 그랬어요? 나중에 주실 그 기업의 일부를 미리 주신 것! 그게 ‘알라본’이란 뜻이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있으면, 그 천국을 당연히 맛볼 수 있어요. 당연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경험하면서, ‘와! 그 완전한 거!’ 사과 천 개 중에 하나를 맛봤다 말이에요. 그러면 ‘그 천개를 내가 다 먹을 수 있다니!’ 하고, 이걸 소망할 수 있게 하는 게 성령의 역할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이 안 계신 분들은 천국을 모르는 거예요. 가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분명히 천국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경험하실 수 있어요.
왜 사도 요한이,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를 본 그 장소와 시간을, ‘밧모섬! 주의 날’이라고 이렇게 명확하게 기록해 놓으셨는지 아세요? 그 말 없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왜 그 귀한 파피루스에다 그걸 썼을까요? 그때가 ‘주의 날’이란 특정한 한 날이었고, ‘밧모섬’이라는 특별한 장소였다는 것을, 왜 기록했을까요? 여러분!
사도 요한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정신이 나가서 혼수상태로 만났다는 게 아니에요. 정확하게 객관적인 어떠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봤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땅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을 그렇게 만나셔야 돼요. 우리 주위에 보면, 뭐 ‘입신했다. 하나님 만났다.’ 그러면은 완전히 뿅 가서 그렇게 만났다고들 이야기한다고요. 막 거품 물고 쓰러졌다 일어나고, 그런다 말이에요. 여러분은요, 그리스도인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볼 수 있는 자들이에요.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2천 년 전 골고다에 실제로 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믿음을 정리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흔들리지 않아요. 내 기분으로, 내 감정으로, 구원과 믿음을 정리하고 있으면, 늘 흔들려요. 내가 진짜 구원 받은 거 맞나? 기분 좋으면, 할렐루야! 아니면 또 아니고! 그리고 여러분은 객관적인 이 현실 속에서, 여러분의 이 환란의 장소인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니깐요. 말씀과 믿음을 통해서요!
여러분! 진정한 영성은요, 신비적인 체험을 많이 한다거나, 현실은 무시하고,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면서 사는 게, 아니에요. 영성이라는 거, ‘영성! 영성!’ 하는데, 영성은 그거 아니에요. 요즘 TV에 나와서 뭐 수십만 불 수백만 불씩 전파료 지불하면서 집회하는 거! 그런 거 방영해주죠? 미국 목사님들! 그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게, 전부 쓰러뜨리고, 병 낫게 하고, 예언하고, 이러는 거라, 기독교가 의례히 그건 줄 알아요. 사람들이!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기독교는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오히려 병을 들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시는 분이에요. 고쳐주시기도 하죠. 예언이요? 여러분! 동양철학에서도, 사주팔자, 관상, 수상, 족상 보면서, 남의 미래를 이야기해주는, 그런 무당들도, 수상불여족상(手相不如足相)! 족상불여관상(足相不如觀相)!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뭐냐면, 수상(手相)! 손금과 손의 형태를 가지고 미래를 점치잖아요? 이 수상은, 족상(足相)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발의 모양과 발금이 있다고요. 족상도 봐요. 여러분!
족상불여관상(足相不如觀相)! 족상은, 관상보다 못하다. 관상이 더 확실하다는 거죠? 그런데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관상과 사주팔자가 똑같은 인간들을 보니까, 어떤 사람은 잘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되더라는 거예요. ‘마음에 달린 거다!’ 그러는 거예요. 동양철학! 무당들도 그래요. 무당들도, ‘사람의 미래는, 마음에 달린 거다.’ 그래요. 여러분의 마음에는 예수가 계시다면서요? 그 예수님이 여러분에 삶을 이끌고 가실 거 아닙니까? 그걸 안 믿으시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이 알고 싶어 하는 미래가 뭐예요? 진짜 하늘나라에 관한 거예요? 예언을 통해서 알고 싶은 게 뭐냐고요? 이 땅에 관한 거 아니에요? 나의 미래가 불안하니까! 그죠? 여러분이 여러분의 미래를 불안해 한다는 건, 뭐예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불신자예요. 여러분! 그래서 예언하는 자나, 예언을 받는 자나, 죄인(罪人)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불신자들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는 거예요. 무당들도 미래는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걸 쫓아다니느냐고요? 영성은 그런 거 아니에요. 어떻게 목사가 되어서, ‘그분이 오셨다!’ 이거랑 똑같은 짓을 하고 다니느냐? 말이에요. 예? ‘그분이 오셨어요.’ 이거 아니에요?
진정한 영성이라는 건요, 복음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을 믿고, 그것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거룩을 향한 발을 한발씩 내 딛는 것을, 영성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잘 정리하고 계셔야 돼요. 우리가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아는 만큼, 이 땅에서 그 나라를 누릴 수 있어요.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 안에 여러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이 현실 속에서,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을, 조금씩 알려 주시는 거예요. 11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대,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로 보내라!’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 교회 순서는, 여기 흑해가 있고, 지중해가 있으면, 여기 그리스가 있어요. 여기가 소아시아! 터키라고요. 고 에베소가 요 아래에 있는데, 고 옆에 밧모섬이 있다고요.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4미터 50센티가 되는 파피루스에 적었다 그래요. 얼마나 길어요? 그걸 접어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거예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대,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가 전부, 30마일, 40마일 정도로, 이렇게 떨어져서 원으로 이렇게 연결된 교회라고요. 그래서 우체부가 가기 쉬운 방향으로 이렇게 써 놓은 거예요. 지금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대,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는요!
그렇게 에베소에 가서 편지를 딱 받았어요. 에베소 교회 사람들이! 그러면은 또 사본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원본은? 서머나 교회로 보내는 거예요. 서머나 사람들이 받아서, 또 파피루스에 적는 거죠. 그렇게 해서 사본들이 계속 생긴 거예요. 그리고 이 원본은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2장, 3장을 자세히 보시면은, 분명히 여기서는 예수님이, 나팔 같은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는데,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 말미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라!’ 그런다고요.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각 교회의 편지 끝에는, ‘성령이 이야기하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그래요. 한 군데만 확인하자고요. 계시록 2장 7절이요.
(요한계시록 2:7)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 말이 계속 말미에 반복이 된다 말이에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자들은, 성령을 통해서, 하늘을 듣고, 예수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예요.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서요? 여러분은 눈을 감고도 천국을 보실 수 있는 분이셔야 돼요. 성령 안에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가짜들은 못 봐요. 아시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8절 보십시오.
(베드로전서 1:8)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눈으로, 우리가 가시적으로 못 봐도, 믿음으로, 우리가 보고 즐거워 한다는 거예요. 기뻐한다는 거예요.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 나라를 본다니깐요.
여러분! 모세가 누렸던 하늘의 영광이,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천국의 풍요가,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경험했던 천국의 전율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경험될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늘나라를 아는 만큼, 믿음으로! 그러니까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을 열심히 들으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시라는 거예요. 묵상하시라는 거예요. 상고하시라는 거예요. 왜요?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 로마서 10장 17절 보십시오.
(로마서 10:17)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에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증거를, 자꾸 듣고, 공부하고, 연구하셔야,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돈독히 쌓여지는 것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기쁨과 즐거움에, 하늘나라의 삶에, 동참할 수 있다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천국을 보고, 예수를 볼 수 있는 믿음은, 들음에서 밖에 못 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 앞에 진지해 지시라는 거예요. 제가!
천국이 뭔지, 하늘나라가 진짜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소원 들어 주는 데만 쫓아다니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예수 믿고, 지옥 간다니깐요. 여러분! 이게 첫 번째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천국의 영광을,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내는 거예요. 교회가 교회답게 살아내는 거! 거기에서 여러분은, 천국을 볼 수 있어요. 천국을 경험할 수 있어요. 여러분!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뭐죠? 일하는 겁니까? 거룩이에요! 교회는 이 땅에서 일하는 거 아니에요. 교회는 거룩하게 지어져 가는 게, 목적이에요.
하나님이 교회를 이 땅에 던져 넣으신 목적은, ‘거기 가서 거룩하게 되어서 와라!’라는 것이지, 여기서 뭔가, 무슨 스쿠알렌 팔고, 유람선 사업하고, 두유 팔아서, 일하라는 거 아니에요. 거룩하게 만들어져 가라는 거예요. 뭔 일들을 그렇게 하려 그러는지 몰라요. 성경은 개뿔도 모르면서, 이단들보다도 몰라요. 어떻게? 이단들보다도! 이단들 앞에 가서 꿀 먹은 벙어리에요. 성경으로 쫙 이야기해주면은, ‘맞는 거 같네요!’ 자, 히브리서 12장 14절 보세요.
(히브리서 12:14)
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죠? 거룩한 백성들이 사는 곳이 하나님나라예요. 하나님나라에는 거룩한 백성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거룩을 연습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래서 교회의 목적을 ‘거룩’이라고 성경에 명시(明示)해 놓고 계시다고요. 에베소서 1장 4절 보세요. 우리가 공부했죠? 이미!
(에베소서 1:4)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는 거예요.)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이유는, 거룩하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2장 10절 보세요.
(에베소서 2:10)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에요. 우리가 왜 새롭게 창조되고, 새롭게 지으심을 받았느냐?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우리는 거룩하게 되어서, 천국을 살아야 돼요. 그런데 이 땅에서, 그 천국에서, 우리가 살아내야 할 거룩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서 연습을 하면서, ‘아! 이거구나!’라고, 여기서 조금씩 맛을 본다는 거예요. 그 거룩한 삶으로, 천국을!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거기에서 천국 백성들이 사는, 그 식양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주는 못하지만, 살아보면서, ‘어! 이거구나! 천국에서의 우리가 사는 모습은 바로 이거구나!’하고 천국을 조금씩, 조금씩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왜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쭉 적어갖고 다니면서, 매일 매일 확인하고, 일주일에 한 번 또 확인하고, 한 달에 한 번 또 확인하고, 일 년에 한 번 또 확인하고, 이렇게 확인했는지 아세요? 왜 조지 휘필드 목사님이, 설교 때마다, 경건에 대해서 그렇게 피를 튀기면서 설교를 하셨는지 아세요? 경건하게 살아야 천국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요! 경건한 삶을 통해서, 천국의 풍요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우리의 삶에서는, 그리고 당연히 그런 삶이 나와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 우주는, 하나님 성전의 거대한 모형이에요. 이사야서 66장 1절 보십시오.
(이사야 66:1)
1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그래요.)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고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그런다고요. 하늘이 보좌고, 땅이 발등상이면, 이 우주 전체는 뭐라는 거예요? 성전(聖殿)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성전!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나라! 그 성전의 그 원형을 갖고, 모형으로 성막! 성전! 에덴! 우주! 심지어는 노아의 방주까지, 하늘나라의 모형으로 만드신 거예요. 에덴도 역시 삼중구조라 그랬죠? 우리 공부했잖아요? 더 이상 설명 안 해드릴게요.
에덴도 역시, 성전의 모형을 본 따서 만든 거예요. 거기에 있는 인간은 뭐예요? 에덴이 성전이면, 성전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살아있는 벽돌이었어요. 인간은요! 그런데 이 벽돌이, 보좌에 앉겠다고, 반역(叛逆)을 한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서 이제 회복된, 살아있는 벽돌로 회복된 자들이 있다고요. 그게 교회예요. 여러분들!
그 성전은, 자체가 빛을 내고 있어요. 계시록 21장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22-23)
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그러죠? 성전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빛이세요. 요한복음 전체에, ‘그분은 빛이시다! 빛이시다! 빛이시다! 그런데 왜 너희들이 빛을 못 알아보냐?’ 그 얘기 아니에요?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에요. 여러분은 거기에 연합되어서,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 연합되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죠. 당연히 여러분은, 그 성전의 일부이면, 여러분의 몸에서 빛이 자연스럽게 나야 된다는 거예요. 아니면 가짜라는 거예요. 여러분에게서는 반드시 빛이 나야 돼요. 그래서 교회를 ‘촛대’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촛대는, 성전 안에서, 성막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죠? 성막은, 빛이 요만큼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에요. 거기다가 24시간 향이 타고 있기 때문에, 컴컴하고 매퀘하고, 앞을 볼 수 없는 곳이에요. 그 연기 때문에! 거기에 유일하게 빛을 비추는 존재가, 촛대예요. 그게 여러분이라고요. 이 깜깜한 세상 안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여러분이라고요. 그게 교회예요.
그런데 빛이 안 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가짜예요! 여러분! 촛대가 일곱 개가 있어요. 촛대 하나마다 등불이 일곱 개가 있어요. 총 불이 몇 개입니까? 마흔 아홉 개! 49하면 생각나는 게 뭐 있어요? 희년! 희년이 뭡니까? 이스라엘은 7년마다 한 번씩, 안식년을 가져서, 땅을 쉬게 해야 돼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거죠? 농사짓는 사람들이 한 해 농사를 안 지으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그렇지만 농사를 안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떻게 먹여 살려 주시겠지. 그게 일곱 번째 되는 대 안식년이 희년이라고요. 그때는 노예도 다 풀어줘야 돼요. 땅 산 거 원주인에게 다 돌려줘야 돼요. 땅은 너희들 꺼 아니라, 하나님 꺼라는 의미에서!
그러니까 뭐예요? 안식과 자유를 상징하는 게 희년이라고요. 49! 안식과 자유에 동참한 교회인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촛대라고요. 그래서 촛대에 불이, 마흔아홉 개가 있는 거예요. 그들은 빛을 발해야 돼요. 도망갈 수 없어요. 빛이 안 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빛을 내면서, 비로소 천국을 맛볼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속 빛을 내게 만드세요. 보세요. 로마서 8장 35절 보십시오.
(로마서 8:35-39)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떠한 환란,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건, 뭐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그 길에서, 우리를 방해할 것은, 어떤 것도 없다는 거예요. 환란은 뭐라 그랬어요? 지난주에 ‘들립시스’라 그랬죠? 트리뷸레이션(tribulation), 탈곡기라 그랬어요. 그죠? 우리는 이렇게 밟아서 데굴데굴 굴리는, 그런 탈곡기였지만, 그때 당시에 탈곡기는 쇠 철판 위에다가 곡식을 넣고, 거기에 이렇게 뿔뚝뿔뚝 나와 있는 날카로운 쇄 철판을, 위에서 딱 덮어가지고 밀었다고요. 환란! ‘들립시스’는 그런 말이에요. 여러분의 삶에 그런 게 있죠?
곤고(困苦)는 뭐예요? ‘스테노코리아’라는 말은, ‘곤고’라는 말은, 앞뒤가 꽉 막힌, 그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디를 봐도 탈출할 곳이 없어요. 비상구가 없어요. 여러분이 인생을 사시면서, 예수를 믿으면서, 그러한 상황에 처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도대체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나가야 될 줄 모르겠어요. 그게 ‘스테노코리아! 곤고’예요.
핍박(逼迫)은 뭐예요? 디오구모스! 종교로 인한 억압, 고난도 이야기하지만, 그 ‘디오그모스’라는 말은, 무언 가에 쫓기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 내가 이 나이쯤이면, 이 정도 돼있어야 되는데, 내가 이 나이쯤이면, 벌써 애를 낳아서 애가 국민학교 지금 가야 되는데…,’ 뭐 그런 거! ‘내가 이런 대학을 졸업했으면, 이런 직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야? 예수를 믿고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참 개뿔도 되는 게 없네!’ 그게 ‘디오그모스’예요 핍박이란 말이에요.
기근이나 위험! 위험은 ‘김노테스!’ 창피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칼은 뭐예요? 전쟁! 그런 것들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만들어져 가는 그 길에서, 그런 것들이 여러분을 방해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일이 있다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에 삶에! 그런 일이, 여러분에 삶에 있다는 거예요. 그걸 ‘다 없애줄게’가 아니라고요. 그런 일이 있는데, 그런 일이 너희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31절로 한 번 올라가보세요.
(로마서 8:31)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만들어져 가는 그 길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있으면, 다 부셔버리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밑에는 뭐예요? 환란과, 기근과, 핍박과, 권고와, 위험과, 적신과, 칼이 있어요. 뭔가 안 맞잖아요? 그죠? 다 부셔준다며? 왜 그런 건 있냐고요?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만 잘 이해하셔도, 기독교가 뭔지 금방 아실 수 있어요.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는데,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고, 진짜 막 그렇게 두들겨 패면서, 억압을 하는, 대적들이 많이 있습니까? 진짜 많아요?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냐고요? 성경에서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기록해 놓을 만큼, 그렇게 여러분 대적이 많아요? 별로 없어요. 솔직히 이야기해보세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성경은 왜 여러분에게 대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냐 말이에요?
여러분이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있어서의 대적은, 옆에서, ‘너 예수 믿으면 죽어!’ 이렇게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한 대적들이 있다는 거예요. 뭐예요? 돈! 출세! 건강! 명예! 자식! 그런 거 이루고 지켜내느라고, 여러분은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잖아요? 하나님이 대적을 부셔버리겠다는 것은, ‘네가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데, 너를 방해하는 대적을 내가 부셔버리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돈을 버느라고 신앙생활을 잘 못하면, 하나님은 그 대적을 부수시는 거예요. 사업이 망하는 거예요. 너무 건강해서, 맨날 술을 퍼마셔도, 난 다음날이면, 멀쩡해 !그리고 너무 건강해서, 맨날 골프 쳐야 돼요. 그것 때문에 신앙생활 못하면, 하나님이 그 대적을 치신다니깐요. 부셔요. 병이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요! 자식이 속 썩이는 건 뭐예요? 내가 신앙생활 하는 데, 얘가 방해가 되는 거예요. 너무 너무 귀하니까, 하나님은 대적을 치신다니깐요.
그 모습이 하나님이 대적을 계속 쳐가시는 모습이, 우리의 삶에, 환란과, 기근과, 곤고와, 핍박과, 칼과, 위험과, 적신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로마서 8장만, 잘 이해해도, 기독교가 뭔지 금방 아실 수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미친 듯이 사랑하세요. 미친 듯이! 맹렬한 사랑! 불경한 표현인줄 알지만, 제가 새벽기도 때 인도하면서, 이 단어가 퍼뜩 생각나서, 우리 유은선이하고 저하고만 막 웃었어요. 미친 듯한 사랑! 미친 듯한 사랑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만 보세요. 그 하나님과에 관계에 있어서, 다른 게 방해가 되면 다 끊어 버리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져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다 부셔버리세요. 다 부셔버리세요. 그 맹렬하고 그 미친 듯한 그 사랑! 그 사랑을 여러분이 아시냐고요? 그게 피조물인 우리가 유일하게 살 길이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고린도후서 1장 8절 보세요. 지난주에도 우리가 한 번 봤는데,
(고린도후서 1:8)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니라
‘나만 사랑해라’라는 말이에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나머지 대적들은, 하나님은 언제든지 다 부셔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기독교예요. 여러분! 그게 기독교예요.
여러분! 오직 우리만을 바라보시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신 그 사랑을, 정말 아십니까? 그 사랑이 우리의 거룩을 방해하는 것들을, 부셔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빛을 내며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하나님이 부셔줌으로써!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천국에 삶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거예요.
예수님은, 성령 안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나팔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러죠? 오늘 본문에서! 성경에서 나팔은, 레위기에서 나팔은, 언제 쓰던 거였어요? 나팔? 나팔을 만들어라 그러잖아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울 때, 쓰던 거예요. 진군할 때! 떠야 할 때! 나팔을 부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거예요. 나팔을 부시는 거예요. ‘교회야! 교회야! 내 말을 좀 들어라! 깨라! 좀! 너희들이 지금 도미티안 황제 치하에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고 있지? 그래, 내가 안다. 그러나, 그러나, 그 환란의 정체를 좀 제대로 알아라! 거기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오히려, 하나님이 나의 대적을 부수고 계신 장면이라는 것을, 좀 명확히 알라는 거예요.
그들은 구약을 줄줄 외웠던 사람 아니에요? 스가랴서 4장에서 뭐 배웠습니까? 촛대에, 감람나무에서 금 기름이 계속 부어져서, 빛을 발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단 한순간도 빛을 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이 되었다고요.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의 삶에, 환란과, 곤고나,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이 있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겨랴! 이겨라! 이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준거니까 이겨라! 죽음조차도, 그 사랑에서 너희들을 끊어 내지 못하니라! 죽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이 망한 것이 그렇게 아까우십니까?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고, 빌빌대는 게 창피하세요? 여러분이 홀아비가 되고, 과부가 된 게, 그렇게 부끄러우십니까? 여러분! 인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에요. 여러분은 세계관과, 인생관과, 우주관을 바꾸셔야 돼요. 유교라는 것이, 이 기독교에 얼마나 큰 해악을 입혔는지 몰라요. 여러분의 인생관! 세계관을 바꾸셔야 돼요.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요, 축복일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고 너무 행복하면 안 돼요. 여기 청년들도 많지만, 너무 좋은 사람하고 결혼해도 안돼요. 그게 기독교예요. 여러분! 그런 얘긴 제가 안 하려고 했지만, 여러분은 훈련 교관을 만나야 돼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거룩을 향해서 가는 그 이유밖에 없어요. 교회의 목적!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 잊지 마세요. 거룩이에요. 그것은!
미우라 아야꼬라는 분이, 70에 돌아가셨어요. 70평생에, 40년을, 대장암과, 폐결핵! 디스크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분이에요. 그분이 말년에 쓴 책에, 이런 글이 있어요. ‘하나님! 왜 나만 편애(偏愛)하세요. 하나님 왜 나만 사랑하세요?’ 그분의 진심이었어요. ‘하나님! 왜 나만 이렇게 사랑하세요?’ 여러분의 현실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게, 그리스도인이에요. 여러분!
재작년에 세상을 떠나신, 필라델피아 제 10교회,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설교 중간에, ‘오늘날의 교회는, 우리 교회는, 노미날(nominal) 크리스찬으로 꽉 차있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썬데이 크리스찬!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가짜들로 우글거린다는 거예요. 자기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잔스토트 목사님, 잔 맥아더 목사님,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찰스 스펄전? ‘여러분! 이 중에 90프로 이상 다 가짜입니다!’ 왜 자기 교회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사랑하는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요? 여러분은 매일 매일 점검하고 확인하셔야 되는 거예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게 중요한 거예요. 사느냐 죽느냐에 문제 아닙니까? 그게!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매일 매일 좀 확인해 보래는 거예요.
종의 기원을 썼던, 그 진화론을 완성한, 찰스 다윈은요, 캠브리지 대학에 신학생이었어요. 목사가 되겠다고 분연히 일어섰던, 신학생이었다고요. 칼막스도,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신학생이에요. 그가 졸업논문으로 쓴 요한복음 15장 강해는, 아직까지도 아주 굉장히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고요. 그런데 왜 그들이 말년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로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됐냐 말이에요? 여러분은 자신 있으세요? 여러분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종교생활 열심히 한다고, 진짜라는 확신이 있냐구요? 뭘 근거로 이야기하실 거예요?
여러분이 이단들보다, 성경도 모르고, 이단들보다 경건하게 살지도 못하고, 뭘 근거로 여러분이 진짜라고, 이야기하실 거냐? 말이에요. 매일 매일 확인하셔야 돼요. 성경을 근거로! 매일 매일 확인하셔야 돼요. 여러분!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는가?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 맞는가? 매일 매일 확인하셔야 돼요.
여러분! 교회는 성전으로서 빛을 발할 때만, 천국을 체험할 수 있어요. 성령 안에서, 말씀 속에서만, 천국을 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어디에 진지해지셔야 되는지 아시겠죠? 여러분은 요한이 밧모섬이라는 그 환란의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하늘을 보고, 예수를 보고, 기뻐 뛰었듯이, 이 지긋지긋한 현실 속에서,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하늘을 보고, 예수를 보실 수 있어야 되는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진짜예요. 아니면 다 가짜입니다.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고,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지옥 갈 거예요. 매일 매일 확인하세요. 매일 매일 확인하세요. 더욱 더 성경 앞에, 말씀 앞에 진지해 지십시오.
여러분은 이 주의 날에, 주일에,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천국을 보셔야 됩니다. 여러분의 거룩한 삶 속에서, 천국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고, 돈이 벌리고, 소원이 이뤄지는 것으로, 여러분이 얻는 행복! 아닙니다. 그러한 나의 상황과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나에게 부어지는, 풍요와 자유와 안식! 그 하늘의 풍요와 자유와 안식을, 추구하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그 처절한 상황이, 오히려, 여러분의 빛의 삶을 막는, 대적을 하나님께서 부수고 계시는, 축복의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을 깨달았으면, 좌절의 자리!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이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크게 이야기해주세요. ‘하나님! 왜 하나님은 나만 이렇게 사랑하세요? 하나님! 하나님은 왜 나만 이렇게 편애하십니까?’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만, 그리스도인입니다.
환란을 당하고 계신 여러분! ‘예수를 믿고도 왜 일이 이렇게 안 풀리는 거야?’ 고통스러운 여러분! ‘왜 앞뒤가 꽉 막힌 이런 상황은 나한테만 있는 거야? 왜 이런 부끄러운 일은 나한테만 있는 거야? 나는 왜 이렇게 세상에 늘 쫓겨서만 살아야 돼?’ 그렇게 환란 속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은 잘 가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이 진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