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다시 역사 여행이다.
숙소에서 가까운 분황사를 찾는다.
분황사는 절 이름만 보아도 선덕여왕과 아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황사의 분(芬)자는 향기로울 분자이고, 황(皇)자는 임금 황자로 향기 나는 황제(선덕여왕)의 절이라는 뜻이다.
선덕여왕이 신라에서 처음 여왕에 올라선 것을 나라 안팎에 알리는 상징적인 절이다.
이와 더불어 당시의 여성의 지위에 대해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선덕여왕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왕인 것을 보면 아마도 당시에는 남성과 여성의 지위가 대등했거나 여성이 더 우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 일본의 왕도 여성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 KBS 역사스페셜 –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나?)
고대에는 여성이 남성과는 다르게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하게 하는 창조의 능력이 있고(유화부인), 제사를(신녀) 주관하였으니 남성보다 그 중요성이 더 컸나보다.
요즘에 이르러서야 양성이 평등한 사회가 되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전 양성이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경내의 마당에 있는 주춧돌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절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분황사 가운데 떡하니 큰 탑이 있다.
바로 돌사자상이 보이는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보통 석탑은 외관에서 볼 때 겉이 매끄러운 돌덩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탑은 마치 현대의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란다.
원래는 9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있다.
당시는 9층까지의 탑이었다니 눈을 감으니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이는 멋지고 웅장한 탑이 상상되었다.
바로 옆 황룡사지 9층 목탑과 더불어 이 일대의 랜드 마크가 아니었을까?
자녀들과 이 탑을 함께 보면서 안내판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전달해준다.
비록 자녀들이 어리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니 알게 모르게 공부도 되겠지?
탑 옆 한편엔 직육면체 모양의 홈이 패인 작은 바윗돌이 있다.
바로 ‘분황사 화쟁국사비부’이다.
분황사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펼쳤던 절이기도 하다.
안내판을 보니 이는 원효대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받침돌이다.
지금은 비석 조각만 일부 전해지고 있다.
안내판에는 ‘원효대사가 동방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웠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문구를 보며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성과나 공로가 있을 때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래서 이를 인정받고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마치 지금의 SNS 스타나 유튜버 혹은 연예인들처럼...
하지만 원효대사는 진정 성인군자였나 보다.
위대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덕이 드러나지 않음에 개의치 않았다니 훌륭한 사람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싶다.
이 받침돌을 보며 나 자신에 대해 또 한 번 반성하게 된다.
경주에서 자주 자아반성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구나.
이 여행을 마치면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살짝 기대해본다.
‘분황사대종’을 자녀들과 함께 울리며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하고 다음 여행지로 향한다.
평소 자녀들이 책을 좋아하는데 오늘도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
그래서 두 자녀를 경주시립도서관에 잠시 내려두고 셋째와 함께 밀린 빨래를 하러 전에 찾았던 빨래방을 또 찾는다.
지난번에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크기를 몰라 빨래양이 적어 아쉬웠는데 오늘은 빨래를 꽉꽉 채워서 왔다.
5인 식구라 그런지 아니면 겨울철이라 그런지 쌓인 빨래양이 상당하다.
빨래를 돌려놓고 도서관으로 가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가족 모두가 함께 책 읽는 이 시간이 난 참 좋다.
여행 중에도 이 시간을 꼭 갖는 이유는 독서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공부보다 독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간 도서관 벽면에 이런 말이 쓰여 있더라.
‘책을 읽는데 어디면 어떠하리? 언제면 어떠하리?’
진작부터 가고 싶었던 황리단길로 향한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웬걸 사람이 정말 많다.
주말엔 얼마나 더 많을까?
겨우 겨우 주차하고 황리단길을 걸었다.
온통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이 길은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난 좀 아쉬웠다.
뭔가 의미 있는 것을 기대하며 왔는데 온통 먹거리, 살거리뿐이었다.
황리단길 옆으로 능들이 보여 색다르긴 했지만, 경주만의 색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전주 객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자녀들과 경주 명물인 10원빵, 경주빵, 찰보리빵을 먹어서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그러던 중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역사 발굴 현장을 만났다.
경주는 전체가 문화재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호미로 땅을 파며 문화재를 발굴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멈춰 서서 발굴현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사진에서만 보아왔던 장면을 여기서 이렇게 실제로 보다니 신기한 경험이다.
다들 배가 고픈지 꼬르륵 소리를 낸다.
저녁은 뭔가 의미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먹는 즐거움은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여 오늘 저녁에는 음식을 통해 태국으로 가기로 했다.
태국 전문 음식점을 찾았다.
음식을 통해 자녀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태국 전통 요리인 똠양꿍, 쏨땀, 돼지고기 레드 커리, 전통 볶음밥, 현지식 돼지고기 구이를 시켰다.
아내는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도 많아 자녀들에게 음식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그냥 배고파서 허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먹으면서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음식 공부이다.
다들 배고팠는지 집밥처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잘 먹었다.
태국 요리는 특유의 향신료를 쓰기 때문에 잘 먹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
우리 가족은 입맛도 인터내셔널인가 보다.
다음엔 해외에서 한달살기도 가능하겠다.
벌써 어느새 우리 여행의 절반이 흘러간다.
시간이 잘 가는걸 보니 경주살이에 잘 적응하고 있나보다.
매일이 행복하다.
[초3의 일기]
오늘 일정을 다 끝마치고 튀르키에 음식점으로 가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여행을 가셨다고 해서 뷔페에 가려고 했는데 거기도 문을 닫아서 태국 음식점에 갔는데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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