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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평등의 변증법
10.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사유방식
1. 어떤 정치적 발언이나 언론보도물 혹은 영화나 드라마 등등을 접할 때마다 그것들이 상부구조로서 토대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습관은 자본독재 극복과 평등사회 건설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다른 현실적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상부구조물들은 무수히 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지고 무한히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상부구조물들과 토대의 관계도 단순명료하지 않다. 특정 상부구조물의 어떤 요소들은 자본주의적 토대를 비판하지만 다른 요소들은 옹호할 수도 있다. 또 모호하거나 양가적인 요소들도 얼마든지 있다. 정치권력의 문제들을 비판하면서 그 토대인 경제적 지배관계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표면 현상들을 비판하면서 근본적 지배관계를 간접적으로 옹호할 수도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실제 학교폭력 사례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인공 문동은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박연진 등 가진자들에게 초인적 노력으로 복수하지만, 또 다른 가진자 주여정에게 의지하고 그와 하나가 된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폭력적 성격이 이 지경까지 왔구나 하는 자각과 비판의식은 그 폭력의 뿌리인 자본주의적 불평등 관계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한다. ‘나이스한 개새끼’와 ‘그냥 개새끼’라는 냉소적 범주로 가진자들을 분류하는 장면 등 작품 곳곳에서 풍자의 묘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더 글로리]는 자본권력의 야만적 현상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따뜻한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에 도달하며 자본주의 너머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욕구를 별로 일깨우지 못하는 점에서 허전하다. 상부구조들을 바라보는 노동자민중의 시선은 최종 척도인 토대에 대한 적극적 역할과 관련해 엄격할수록 좋을 것이다.
현실 속의 복잡한 대상들, 특히 상부구조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그 요소들을 구분하여 각각의 의미를 살피고 아울러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때 요소들을 어디까지 세분화해서 볼 것인지는 대상의 특성 및 실천적 요구에 달려 있다. 구체적 인식을 추구한 맑스는 생산에 대해 논하면서 ‘일정한 사회적 발전 단계에서의 생산’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생산 일반’이라는 추상 자체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생산 일반은 하나의 추상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공통적인 것을 강조하고 고정시키며, 따라서 우리에게 반복을 덜어주는 한에서 이해를 돕는 합리적 추상이다.”(요강1,53) 이처럼 ‘합리적 추상’이 있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합리적 세분화’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상을 무한정 세분화할수록 더 탁월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상부구조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위해서는 대상의 ‘살아 있는 본질’, 즉 토대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파악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의 합리적 분석과 동시에 대상의 전체적 의미를 판단하기 위한 종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레닌은 변증법을 간단히 ‘대립물의 통일에 관한 학설’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주요 요소를 1) ‘개념 및 사물 자체를 관계 및 발전 속에서 고찰’, 2) ‘모든 현상 속의 모순적인 힘과 경향’, 3) ‘분석과 종합의 통일’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이 세 요소를 16가지로 세분화한다. 여기에는 ‘부정의 부정’, ‘양질전환’, ‘대립물의 통일’ 등과 함께 ‘고찰의 객관성’, ‘현상에서 본질로, 좀 더 깊은 본질로 심화되는 인식의 무한한 과정’ 등이 포함된다. ‘분석과 종합의 통일’도 이 16가지 요소들 속에 다시 등장한다.(철학177-178) 헤겔 역시 분석적이면서 동시에 종합적인 판단을 변증법의 주 요소로 보았지만(철학176), 그보다 훨씬 앞서 변증법의 태동기에 이미 플라톤부터도 ‘분석과 종합의 통일’을 변증법의 핵심으로 받아들였다.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말하거나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하나의 이데아로 모으는 일”(종합)과 “형상들에 따라 나누는 능력을 갖추는 일”(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나눌 때에는 “본성적으로 갖춰진 마디를 따라 나누어야지 미숙한 푸주한이 그렇게 하듯 부분을 쪼개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이 본성적으로 하나로 모이면서 여럿으로 나뉘는 것을 통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면, 나는 그의 뒤를 ‘마치 신의 발자국을 좇듯’ 따라가네.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내가 붙인 이름이 옳은지 여부는 신이 알겠지만, 이제껏 나는 그들을 변증가라고 부르지.” 이데아 또는 형상을 종합과 분석의 척도로 삼는 점에서 플라톤은 관념론자다. 하지만 이때 이데아나 형상은 인식 주체의 자의적 산물이 아니라 대상의 본성 내지 본질에 더 가깝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분석과 종합을 통일하는 사유방식은 이론적 관심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천 영역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갖는다. 예컨대 전통적 민족문화의 산물들이나 자본주의의 문화물들 혹은 사회주의적 유산들을 활용하는 문제에서 분석적 인식 없이 통째로 유산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언어도단일 것이다. 반대로 각각의 유산들을 그 요소들로 분해하여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종합적 판단에 이르지 못하면 수용과 활용의 방향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민족문화의 두 측면’을 명시하면서 레닌은 상부구조의 본질과 관련한 분석과 종합의 통일을 예시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민족에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민중이 있고 “이들의 생활조건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문화 요소가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분석적 사유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민족은 또한 단순히 ‘요소들’이 아니라 지배적인 문화의 형태로 부르주아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종합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를 결합하여 어떤 민족문화와 관련해서든 지배 문화를 종합적으로 비판하면서 동시에 노동자민중의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문화 요소, 혹은 해방적 요소들을 분석해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유방식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변혁운동의 모델을 대상으로 삼을 때에도 필요하다. 분석과 종합의 통일을 꾀하는 변증법적 사유에서는 기존의 특정한 사회를 통째로 인류의 미래사회를 위한 단일 모델로 삼는 것보다, 주요 모델들로부터 풍요로운 평등사회에 필요한 요소들을 분석적으로 파악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완벽한 이상사회는 아직 존재한 적 없고 어느 사회에나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으며, 또한 적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 소련과 동독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국가나 중국⋅쿠바⋅베트남⋅조선 혹은 사민주의 복지국가들만 아니라 심지어 제국주의국가들로부터도 긍정적으로 활용할 만한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 원래의 맥락과 분리하여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생산력을 자본독재가 아닌 노동자민중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사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분석을 통해 파악된 각 요소들이 기존 사회모델들 속에서 작동했던 방식을 그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인식하거나, 그 사회모델들 자체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데에는 종합적 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종합적 사유는 미래사회를 위해 각 요소들을 그 비중에 맞게 새로운 맥락 속에 재배치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더욱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이러한 종합은 생산력 발전상태 및 계급관계를 비롯한 우리의 실천 조건과 주체적 역량, 노동자국가와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궁극 목표 등을 함께 고려하면서 제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이다. 아직 출발단계에 머물고 있는 이 주체적 종합작업을 통해 향후 풍부하게 산출되어야 할 자본독재 너머의 평등사회를 위한 장기계획들과 세부 정책들, 그리고 독점과 지배가 아닌 공존과 공영의 관점에서 인간과 세계를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상 등은 노동자민중이 자본독재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제압하고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일어서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이론적 사상적 무기들을 충분히 생산하고 널리 공유해가는 일도 노동자정치운동의 시급한 당면과제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3. 노동자정치운동이 노동자민중의 잠재력을 결집하여 노동자국가 건설의 현실적 에너지로 분출시키는 데에는, 제반 조직과 정파들의 분열상태가 무엇보다 심각한 장애요인이라고 여겨진다. 모두가 공감할 만한 어떤 노선을 통해 사상통일이 이루어지고 분열상태가 극복되기를 기다리기에는 각 조직과 정파들의 자기확신과 조직논리가 너무 견고해 보인다. 그 배후에 축적된 운동 경험상의 갈등 앞머리에는 대개 상이한 변혁모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변증법적 사유방식을 통해 변혁모델을 주체적⋅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공동작업을 민주노총이나 노동자 대중정당 차원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운동의 통일로 가는 길을 넓히는 것도 가망 없는 일은 아닐 듯하다.
이 과정에서 자본독재체제 내부의 진보적인 분파로서 국회나 지방정부에서 몇 자리 확보하는 것은 설혹 대중적 영향력 확대 등을 위해 필요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공동작업의 핵심과제는 자본독재를 넘어서기 위한 구체적 대안들을 풍부하게 개발하고 그 성과물들을 노동자민중이 효율적으로 폭넓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론⋅사상의 지속적 생산⋅유통⋅검증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결코 어느 뛰어난 천재적 개인들이나 탁월한 개별 조직 차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물론 자본권력의 지배를 받는 재벌기업 부설 연구소나 국책 연구소 혹은 직업양성소로 전락한 대학들이 떠맡을 만한 일도 아니다. 그것은 지식노동자들을 포함해, 노동자국가와 평등사회 건설에 적극 나서는 노동자민중 모두가 힘을 보태야 가시적 성과들을 거둘 수 있는 지난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 성과들은 자본독재 극복의 주요 무기이자 분명한 지표가 될 것이다.
대안이론 생산을 위한 공동작업에서 피하기 어려운 의견 차이와 충돌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본독재를 상대로 하는 전쟁에 함께 몸을 던진 동지들을 향한 무제한의 존경과, 그때그때의 의견 차이를 운동의 분열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 생산의 에너지로 전환해내는 창의적 종합능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식도 헌신도 권력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리고 권력은 수시로 도취를 유발하고 독선적 배타적 자세와 함께 운동의 분열을 부추긴다. 그럴 때마다 파리코뮌의 주요 교훈, 즉 언제라도 헌신의 위치 혹은 권력에서 소환될 수 있다는 평등사회의 정치원리를 거울삼아, 자신의 지식 권력과 이론적 자부심을 기꺼이 실천적 요구의 바다에 던질 필요도 있다. 물론 이러한 반성보다는 노동자민중을 위해 성능 좋은 무기를 생산하는 지식노동이 더 우선적이다. 분석과 종합의 통일을 꾀하는 변증법적 사유방식은 그 자체로서 노동자정치운동의 통일을 위해서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해방 무기를 생산하는 데에도 매우 효율적인 무기다.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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