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라즈 파텔 텍사스대 오스틴 정책대학원 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이사, 유정길 녹색불교연구소장이 참가한 가운데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경향포럼>에서 ‘모두의 번영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기후위기 속 새로운 돌파구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경향신문 6월28일자 기사 참고. <2023 경향포럼>“노동시간 줄일 AI, 환영할 일” “AI가 노동 지식 침범 땐 우려”)
경향신문은 토론자들이 “탈성장이란 급격한 방향 전환을 이루지 않고서는 불평등, 기후위기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봤”으며, “챗GPT 같은 새로운 기술을 끌어안고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했다”고 전한다. 또한 경향신문은 “최고 가치로 여겨졌던 ‘성장’의 반대말, ‘탈성장’이 새로운 가치로 주목되는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장 일변도의 기존 경제 시스템은 한계에 부딪혔다. 경제 불평등 심화로 정치·사회 갈등이 깊어지고, 기후 위기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문제로 남겨둘 수 없는 상태다.”
2
‘탈성장’, ‘탈성장 사회’, ‘탈성장 코뮤니즘’은 사이토 고헤이 교수(이하 사이토 교수)가 오늘의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들이다. 나 역시 사이토 교수의 ‘진단’과 ‘대안’에는 동의하는 입장이다. 다만, 진단을 통해 대안으로 가는 ‘방법’에서는 홍승용 소장(현대사상연구소)의 ‘노동자정치에 의한 노동자국가를 통한 풍요로운 평등사회’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두 사람(사이토 교수와 홍승용 소장)은 맑스의 [자본]을 다시 읽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으면서 공개적인 논의(글, 인터뷰, 토론회 등)를 이어가고 있는데 나 역시 그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따라가고 있다.
<2023 경향포럼>을 통해서 경향신문이 전해주는 사이토 교수의 발언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탈성장에 마르크스 관점이 필요하다. 근로 계층 노동자 운동, 노조주의, 환경주의 사이에 연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환경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건 노동자들이 듣기에 엘리트주의나 중산층 이야기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녹색성장, 그린 뉴딜, 그리고 임금을 높이고 노동자들도 더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노동자들과 환경주의자들도 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식민지나 남반구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다.”
위 대목에서 “근로 계층 노동자 운동, 노조주의, 환경주의 사이에 연결이 필요하”며, 그들 사이의 간극을 극복할 유일한 방안이 “임금을 높이고 노동자들도 더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눈길이 간다. 이러한 주장은 홍승용 소장이 주장하는 ‘노동자정치’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여긴다. 다만, 사이토 교수의 주장에서 ‘구체적인’ ‘주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이토 교수가 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자운동’과 ‘노조주의’를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실천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3
사이토 교수가 진단하는 위기의 현실에 대한 발언들에 동의한다. “탈성장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고, 정책으로 구체화 되지도 않았고 정치인들은 성장만 얘기한다” “일본 정치인은 대부분 남성이고, 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이다”와 같은 일본의 현실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일본만의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정치의 보수화를 넘어 자칫 파시즘적인 정치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변화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사회에 큰 충격이 가해질 텐데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가”라는 질문에 사이토 교수는 “기후위기”라고 답한다. “코로나19처럼 해가 지나 백신이 생겨서 사라지는 위기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만성위기이고 더 악화될 것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난민, 전쟁 등 사회경제적 불안정성과 혼란이 점점 더 가중될 것이다”고 진단한다.
사이토 교수는 위기의 해법에 관하여 “루비니 교수님의 (…)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결론에는 반대한다”, “위기는 인지하고 있는데 해법이 약하다”, “위기는 너무 다중적이고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이토 교수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서 급진적인 표현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악화되고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이토 교수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지 묻고 싶다. 사이토 교수는 다른 인터뷰(「“성장 계속해도 풍요로워지지 않는 사회, 이상하지 않은가”」,『경향신문』, 2023년 6월 21일자 기사)에서 ‘모두’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자본주의적 경제 위기와 기후 위기가 ‘인류 모두’의 문제라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서 사이토 교수의 발언처럼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한계, 성장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이토 교수의 또 다른 발언처럼 “정의롭고 평등한, 다른 사회의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는 게 일본의 문제”라고 진단하는데, 왜 그런 문제가 존재하는가 질문했을 때 ‘자본주의의 한계, 성장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그렇다고 숫자에 연연해하고 있을 만큼 한가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사이토 교수는 “일본 내에서 구체적인 예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에서의 운동 등을 언급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그렇기에 더더욱 ‘탈성장’ 사회로 이끌 ‘우리’가 누구인지 구체화하여 앞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괜찮은 대안을 제시해도 실현할 주체가 없다면 문제일 것이다.
사이토 교수도 잘 알고 있듯이, ‘무한 성장’을 통해 발전하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에서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가계급과 그들에 의해 포섭된 자본국가 기구의 운영자들과 정치인들이, 즉, 실질적으로 자본독재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이 ‘탈성장’을 지향할 리 없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인 취약계층, 소외계층과 함께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앞장서서 ‘우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각의 노동자들이 처지는 다르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임금노예라는 점에서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범위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기후위기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다면 그제서야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넘어 ‘탈성장 사회’,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갈 교두보로서 ‘노동자국가’를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국가’를 통해서 ‘탈성장 사회’,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홍승용 소장은 ‘노동자정치’를 통해 ‘노동자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일 테다.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에 의해 ‘노동자국가’를 통할 때 ‘탈성장 사회’가 지향하는 자본주의 너머의 사회든 ‘풍요로운 평등사회’든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일 테다. 사이토 교수가 주장하는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확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노동자정치’의 한 측면일 수 있을 것이다.
사이토 교수와 홍승용 소장의 주장에 동의하는 만국의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든, 노동조합, 협동조합, 노동단체들을 통해서든 ‘지금, 여기’에서부터 가능한 노동자들부터라도 단결하여 ‘노동자국가’를 실현할 ‘우리’가 되어가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및 기후위기’에 대해, ‘탈성장’과 ‘노동자국가’에 대해 만국의 노동자들의 공개적이고도 활발한 논의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4
“최근 생성형 AI가 도래하면서 AI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행하는 게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AI 도래가 성장이나 번영 키워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사이토 교수는 “챗GPT가 화두인데, (AI 기술 발전은) 우리가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된다는 의미인데 왜 두려워할까”라고 반문하면서 “제도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무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제도가 아니라면, 무한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 기술을 활용해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사람이 필요한 교육, 돌봄, 요리 등 노동집약적인 분야의 일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화이트칼라 일자리 없어진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사이토 교수는 ‘AI 기술을 활용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무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제도가, 무한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사이토 교수가 보수화한 일본의 정치 현실을 언급했듯이 정치인들과 국가기구의 운영자들이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 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제도를 바꾸려면 정치인들과 국가기구의 운영자들이 제도를 바꾸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제도를 바꾸게 할 것인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회구성원들 중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에 의해서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사이토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AI가 발전하면 우리 데이터를 빼다가 이익 추구를 위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쓸 것이다. 그건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기구에 의해 통제당하고 싶지 않은 ‘우리’가 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정치인과 국가기구 운영자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5
“도래한 것에 대해서 대응하는 모드로 간다면 근원적인 해결책 내기가 어렵다. 30년 전에 했어야 되는 일을 안 하고 미뤘다는 것이다. 30년 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사이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더 이상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거다. 기후위기는 불가역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취약계층, 소외계층이 느끼는 건 훨씬 클 것이다. 우리 아이들, 손주들은 어떤 일을 겪을까를 상상해봐야 한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더 지속 가능한 삶, 평등한 삶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는 사이토 교수의 진단은 더 이상 그의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러한 진단에 동의하는 지구의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한계, 성장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라는 사이토 교수의 주장처럼 그런 이야기를 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위기를 넘어설 ‘근원적인 해결책 내기’에 ‘좋은 일’, ‘객관적 가능성’으로 보인다.(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