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성군 모 부대 본부중대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내가 상병이었을 때 후임인 최성훈 일병이 웃기는 일이 있다고 나에게 공문을 하나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최 일병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대대장님께서 병사들의 수류탄 투척 훈련을 일상화하기 위해서 식당 입구에 수류탄 투척 훈련장을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대대장님의 의도는 병사들이 식사하러 갈 때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수류탄 크기의 돌멩이를 서너 개씩 목표 지점에 투척하고 나서 밥을 먹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육계인 최 일병이 그 훈련장의 위치며 규격, 시설물 등을 상세히 계획하여 기안을 올렸다. 그 계획에는 투척장 옆쪽 조그만 언덕에 큼직한 입간판을 세워 병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려는 세부내용이 포함되었고, 최 일병은 그 입간판에 새길 표현으로 “더 멀리, 더 정확히!”라는 그럴듯한 문구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 기안을 검토한 대대장님이 그 문구를 사인펜으로 좍좍 그어버리고 공문을 반려한 것이다. 이유는 입간판에 새길 문구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고, 본인이 직접 “너도 나도 던지자!”라는 문구로 수정해서 지시했다. 최 일병과 나는 대대장님의 언어 감각에 대해 어이없어 했고 ‘군발이’ 사고방식이라고 비웃었다. 어쨌든 결국 흰 바탕의 입간판에서 “너도 나도 던지자!”라는 큼직한 검은 글자들이 병사들의 훈련 참여를 독려하게 되었다. 나중에야 나는 대대장님의 언어 감각이 타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언어를 직설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기교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기교의 한 방식인 비유적 언어는 의도나 현상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그와 비슷한 다른 현상이나 사물을 빌려 표현하는 기법이며, 또 다른 방식인 수사법은 말이나 글을 논리나 어법의 기교를 사용해서 설득력을 높이는 기법이다. 의도나 감정,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비유나 개념어 등을 사용하거나 말이나 글을 꾸미고 다듬는 기교를 사용하는 것이다. 말도 그렇겠지만 특히 글쓰기는 조각가가 조각하는 것과 비슷해서 거듭해서 깎아내고 다듬고, 또한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표현으로 바꿔 덧붙이는 행위가 작업 과정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초점이 맞은 렌즈처럼 가장 선명하게 표현되었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언어를 그처럼 기교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고도 쓸모 있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수사적이거나 비유적인 언어 사용은 사용자의 감정이나 의도와 그가 표현하는 언어 사이에 거리를 발생시키는 것이어서, 그 틈새에 속임수와 현혹이 끼어들 수 있다. 반면에 직설적인 언어는 정직하고 원초적인 표현 방식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더 강한 힘을 가진다. 우리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비유나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직설적인 언어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비유나 수사에 의한 상징성이나 모호성은 풍부한 의미를 갖게 하는데 효과적이지만, 타락의 징후가 되기도 한다. 직설적인 언어 사용이 부러워지는 때가 종종 있다.
첫댓글 인간의 속성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는데요(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지요). '타락' 지표로 수사법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세어보면 될 것 같아요. ㅎ
더 정확히!는 이해가 되는데, 더 멀리는 이해가 안 되는 게 더 멀리 던지는 거랑 정확히 목표지점에 던지는 것은 상충되는 것 같아서요. 군대 훈련을 안 받아서 그러는 걸까요?^^ 혹시 목표 지점 근처도 안 가게 던지는 군인들, 자기 발 밑이나, 동료들 근처에 던지는 군인들이 많아서 그 때문에 더 멀리, 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대대장님이 기안 반려 후, 본인의 사진을 붙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조금 불충한 생각을 했습니다만... 글을 읽으면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더 멀리서 던져야 적과 맞닥뜨리지 않으니 더 안전할 것 같긴 합니다만, 저도 실전 경험이 없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은유나 수사를 가장 즐겨 사용하는 부류가 시인과 정치인입니다. 둘 다 믿을 만한 부류가 아니죠. ㅎㅎ
너도 나도 던지자… 묘하게 중독성 있는 말이네요. 어쩐지대대장을 비웃으며 수류탄 연습을 하게 될 것 같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