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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수필, 제대로 쓰려면-방민
저- 방민.네이버 블로그- (방교수의 수필작법)운영
출- 태학사(2018.8.18. 314쪽)
독정-2019. 9. 18
< 수필 쓸거리 >
① 제재 고르기
글감: 세상 모든 것이 대상이고 내용(보이지도 않고 만질수 없는 것도)
제재: 글감(소재) 중 특별히 잡은 주제에 맞게 선택한 재료
-삶의 체험이 주요 글감일 때 제재를 먼저 발견하고 뒤이어 주제를 잡는다.
★ 제재 고르는 방법
-체험(직접 경험한 것)
-관찰(시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 의도적으로 계획적 체험으로 관찰 대상의 전체 구조와 고유 특징이 잘 드러나고 시간 변화 주변 사물과 관계 참구도 함께
-조사(인터뷰, 현장 답사, 문헌 자료)
-독서: 간접 경험
★ 제재 고르는 요령
-주제를 뒷받침할 제재
-풍부하고 다양ㅇ한 자료 수집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며 출처 분명한 자료
-흥미와 관심 끌 수 있는 참신한
★ 제재 분류
-서로 관련되는 내옹용과 관점이 동일한 것끼리 무끽
-핵심적니 것과 종속적인 것 구별하여 주요 사항 앞세우기
-제재가 편파적이거나 편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꽃자리-오세윤(독특하고 인상적인 체험)
“원장님, 편지요오~”
두툼한 편지를 전하느 간화사의 말투가 야살(보기에 얄망궂고 되바라진 데가 있다)하다. 보일 듯 말 듯 돌아서며 흘리는 웃음이 시쿰하다.(깊은 맛이 있게 조금 신 맛이 있다.). 참, 하루도 건너지 ㅇ낳는군. 모르는 척 나는 편지를 그냥 서랍 속에 넣는다. 가운을 걸치고 환자부터 진료한다.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받기 시작한 지 두 달째, 한 주에 두 통씩 온다. (중략)
편지의 내용은 한결 같았다. 그립다고 했다. 오매불망 그립다고 했다. 목련꽃 더불어 피어난 그리움이 모란이 져도 가실 줄 모른다고 했다. 음악 들으면 그리움이 사무쳐 요즘은 오디오도 멀리 하고 지낸다며 시조차도 읽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엔 잘못 배달된 편지인 줄 알았다. 조소를 착각하고 써서 부친 줄 았았다. 하지만 내 이름 글자 하난 틀린 곳 없이 정확했다. 진료하는 내 모습도 정확하게 표현했고 진료실 내부 정경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병원 내에 흐르던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너무 좋아 대시길에 한참이나 앉아 듣다 왔다는 아이기라든가 책상 위에 읽다 놓아둔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가 궁금해 자기고 영품문고에 나가 구했다는 이야기 등 엊구제 장미 꽃ㅉ꽂이를 배우는 게 유행이어서 개중에는 자기가 만든 작품을 병원에 들고 와 장식하거나 쓰고 남은 꽃을 화병에 꽂아 놓기도 해 진료실엔 늘 꽃이 있었다. 하여 나는 그런 엄마 중 한 사람이 편지를 보내는가 싶어 내밀히 살피기도 했지만 누구 한 살마 의심이 갈 만큼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게 행동한ㄴ 살마은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굴까.
누군가가가 날 놀려주려 그러는 건가도 생각해보았다. 세상엔 별의별 살마이 다 있는 법, 할 일이 하도 없어 낚시질하는 사람마 뒤에 죽치고 앉아 하루해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스톱 판에서 갖가지 심부름을 하며 밤을 세우는 사람도 있으니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 못 드는 그 긴긴밤에 사랑을 상상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그런 글은 상대를 설정해 놓아야 그럴듯하게 엮어지는 터라 모르는 새 내가 눈에 띄어 그 대상이 왼 게 아닌가 싶었다.
편지는 반년 나마 이어졌다.
가을 들어 드디어 선친이 기왕에 마련했던 인천 병원 부지에 건물이 완성됐다. (중략)
이사하는 날, 짐을 다 내보내고 쉬는 중에 한 단골 아기 엄마가 층계를 올라오더니 그동안 고마웠다며 포장된 선물 하나를 내밀고는 황급히 돌아서 내려갔다. 평소 말수가 적고 조신해 대하기가 스스럽던 새내기 엄마였다.
창틀에 기대어 포장을 뜯었다. 곱게 수놓은 손수건 두 장과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 시집 갈피에 편지 한 장이 기어있었다. 낮익은 글씨였다. 갱각지도 못한, 발신인은 전혀 엉뚱한 엄마였다. 마지막 편지였다.
피는 듯 꽃은 그렇게 졌다. 30년이 지나 나는 우연하게도 지인의 막내아들 혼례식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예식장에 들어서 하객을 맞고 있는 신랑 부모에게 걸어가는 나를 누군가가 놀란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어머나! 선생님.”
돌아보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신부 어머니. 금세 알아볼 만큼 모습이 여전한 먼 전날의 아기 엄마. 곁에 선 남편에게 나를 소개하며 발갛게 볼을 붉힌다. 연분홍 치마 모란꽃 수가 하느작 흔들렸다.
마음 다스림이 온전하지 못했던 젊은 날, 여인이 당긴 시위를 무모하게 놓고, 내가 잘못 날아온 화살을 맞았더라면 서로의 오늘이 어찌 되었을까. 오늘의 이 기쁨이 가능했을까. 서른 이쪽저쪽이었을 새내기 아기 엄마, 어느 사이 이순을 바라보는 앳된 장모의 자태가 곱다. 뒤안길이 따뜻하다. <에세이 문학>2016.가을:독특하고 인상적인 체험
<초록 손가락>김경희: 관찰한 것
한 지붕에 다섯 식구가 사니 복작거린다. 물을 한꺼번에 쓰는 아침에는 세면대나 싱크대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건 예삿일이다. 고만고만한 형편들이라 위세 부리는 이가 없으니 어우러져 사느 맛이 괜찮다. 옥상에서 가꿈 푸성귀를 나누고 김치를 담그면 보시기를 들고 위층 아래층 오르내린다. 다가구주택 대문을 함빡 뒤덮은 담쟁이가 소박하게 사는 이들을 응원하듯 초록빛으로 넘실댄다. 골목에서 여는 집과 다른 것은 담벼락에 낡은 손수레가 전복처럼 엎어져 있는 풍경이다.
몇 해 전 초여름에 60대 후반 부부가 반 지하 방에 이사 드는 날이었다. 조붓한 골목으로 꽃수레가 들어옸다. 희한한 일이었다. 2층 창문에서 내다보다가 궁금증을 못 참아 내려가 보았다 . 수레에는 올망졸망한 화분들이 가득했다. 수레 손잡이 앙쪽 귀퉁이에소 줄기가 늘어진 아이비, 트리안 화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꽃집을 하다가 정리하고 남은 것들인가 했다. 뚱뚱한 아주머니는 다리 한쪽을 절고 비쩍 마른 아저씨는 말이 어눌했다. 두 분은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약간의 보조금을 받지만 여의치 않아 아주머니느 동사무소에서 청소하고, 아저씨느 폐품을 주워 판다고 했다. 화초를 싣고 온 수레가 바로 그 도구였다. 간소한 세간를 실은 이삿짐 트럭은 나우에야 들엉왔다.
어둑새벽이면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최씨 아저씨가 수레를 끌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주워 온 물건들은 저물녘 대문 앞에 너지분히 부려놓는다. 종이, 전선, 옷걸이, 캔, 기름때 붙은 프라이펜, 고개 숙인 선풍기... 없는 것 빼고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먼지가 날리고 어질러진 대문 앞이 벼룩시장 같지만 부부가 두런거리며 팔만한 것들을 추려내느라 구부린 등은 볼수록 정겹다. 목장갑을 끼지 않나 손끝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인 걸 보면 애처롭기도 하다.
폐품을 종일 모아 팔아도 고작 몇 천원 남짓이라 들었다. 폐품 더미를 싣고 고물가게로 가는 날은 축 처진 근육에 깡마른 몸이 번쩍 들린 손잡이에 다랑귀(두 손으로 붙잡고 매달리는 짓) 뛰듯 한다. 무게를 당해내느라 부들부들 떠는 팔뚝이 너무나 안쓰럽다. 최씨 아저씨는 별난 분이다. 그렇게 애쓰시고 얼마를 받으면 화초를 사느라 몽땅 털어버리니 아주머니는 고시랑거린다. 화초에 치여 궁둥짝 내려놓을 자리도 없으니 작작 사들이라고, 속사포의 지청구(까닭없이 남을 꾸짓고 원망하는 꾸지람)에도 아저씨는 들은 척도 않는다. 흙살을 뒤적여 숨구멍을 열어주느라 모종삽을 재바르게 움직일 뿐이다. 간단한 셈도 못하고 공과금 고지서도 읽지 못하면서 곷 이름은 외래종까지 줄줄 꿰는 아저씨를 동네 사람들은 덜떨어졌다고 수군댄다.
하누는 대문을 막 나가려는데 아저씨가 어눌한 발음으로 손짓하며 불렀다. 시계 꽃 알라타가 피었다고. 따라 들어갔더니 열댓평쯤 되는 두 칸짜리 방은 미미 식물원이었다. 아침나절에나 공책 크기만 하게 햇빛이 잠깐 들까 싶은 어둠침침한 방에 보살핌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화초들이 싱싱하지 신기했다. 햇빛을 가득 받길 좋아하는 시계 꽃이 핀 것이 놀라웟다. 창 쪽으로 고갤ㄹ 트는 마삭줄, 인시그네는 가난하지만 눈가에 웃음꽃이지지 않는 아주머니 아저씨를 똑 닮았다.
푸새를 좋아하는 나는 달개비, 괭이밥, 풍선초 풀들을 집안에 들인다. 꽃집을 지나다가 요것조것 화초를 사 오지만 야무지게 키워내지는 못 한다. 서서히 말라 비틀어지는 제라늄을 봄 한숨을 내쉬다가 화분을 안고 최씨 아저씨 댁으로 내려가 맡긴다. 입원시키는 셈이다. 아저씨 손이 닿기만 하면 죽어가던 화초가 며칠 만에 생기를 되찾으니 그 비결이 뭘까 싶다.
최씨 아저씨가 이산 온 후 집 곳곳이 싱그럽다.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대문 밖에 내다 버린 화조도 안아와 초록으로 살려 계단 모퉁이마다 놓아주시는 마멉의 손, 장미만 두 그루 있던 대문 안 자그만 화단을 아기자기해졌다. 평상시는 사는 데 급급해 바빠 지나치가가도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나면 사람드이 한데 모여흔다. 곷을 반기는 ㄴ웃음판이 벌어진다. 반 지하 방 아주머니도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나와 곱다고 손뼉 치며 틀니 걸소가 보이도록 환히 웃는다.
“꽃 지랄이여, 꽃 지랄!”
1층에 사는 욕쟁이 김씨 할머니가 통박(몹시 날카롭고 매섭게 따지고 공격함)을 놓는다. 꽃이야 어여쁘지만 빠듯한 살림에 여차하면 꽃을 사들고 오니 걱정되어 하시는 말이다.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는 어느 시 구절처럼 어쩌면 최씨 아저씨는 헛헛함에 화초를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꽃이 사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최씨 아저씨 부부는 자식이 없다. 손가락이 두어 개 모자라도 괜찮으니 아기를 간절이 바랐지만 얻지 못했다고, 아저씨한테는 화초가 자식이란다. 그래서일까? 엎드려 앉아 한 손을 꽃대에, 또 한 손은 동그랗게 모아서 귀에 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청진기를 대고 진찰하는 의사가 따로 없다. 식물 자식들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찬찬히 귀 기울이는 것이리라. 아비의 마음으로.
화초를 얼뚱아기(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러운 아기) 돌보듯 하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이야기 속의 한 인물이 생각난다. 엄지손가락을 갇다 대면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자라는 그 아이, 그래서 생겨난 말인지 모르지만 죽어가는 식물도 살려낼 만큼 화초를 잘 가꾸는 살마을 ‘초록 손가락’이라 부른다. 신은 아마도 최씨 아저씨께 아기 대신 신비의 초록 손가락을 주신 것 같다. 그 초록 손가락 덕에 한 지붕 사람들은 고단해도 웃음을 짓는다.(<수사자의 꼬리>에세이문학출판부에서
<기생충에 조정 당하는 숙주들>-김애자: 조사한 것
곤충학자들은 기생충을 죽이는 약물을 개발하면 기생충들도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고 한다. ‘감히 기생충을 대적하려는 신은 없다.’ -프왈드 메머슨
<전 삼일, 후 삼일>-류창희:독서 한 것
제사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나는 맏며느리가 아니다. 내가 혼자 제상에 올릴 음식 한 가지 번듯하게 다하는 적은 ㅇ벗다. 제사 사흘 전 방보기, 다듬기, 탕국거리 방정하게 썰기, 동그랗게 문어 데치지 등 재료를 준비한다. 그중 주 업무는 제사 당일, 전이 몇 가지가 되든 프라이팬에 구어내고, 도미 조기 민어 가자미 등의 생선을 익힌다. 말하자면 지지고 볶는 역할이다. 음식만 지지고 볶겠는가. 나는 30년 넘게 조율이시, 홍동백서, 아동육서, 좌포우혜로 격을 갖춰 제상을 차려내기 위한 소품 담당이다
제사 때는 조상이 앞에 계시는 듯 정중하고, 산천의 신을 모실 때는 신이 앞에 있는 듯 경건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체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음과 같다.” 제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가 있겠느냐?” 다시 묻기를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하자 공자께서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라고 답하신다. 이처럼 공자의 철학은 ‘살아있는 사람’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와 바른 행실에 중점ㅇ르 둔다. 공자의 사상은 지극히 현실적, 실천적, 지성적이다.(후략)<에세이 문학, 2016. 가을
<잃지 않은 편지>-장현심
영화를 보며 전사한 상사가 유서로 남긴 편지를 읽지 않는 중위. 그 장면에서 목구멍이 빽빽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우린 화해도 못했어요. 떠날 때 나쁜 말만 했단 말에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대신했다. 남편이 시작한 사업은 손봐야 할 곳이 많은 자돛차 같았다. 매연과 소음이 심했고 제동 거리도 길었다. 정비를 하자고 여러 번 권했지만 번번이 내 의견을 무시하더니 결국 차는 멈춰 버리고 말았다.
내 인생이 진창길에 처박힌 고장 난 차 같았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이가 간 셋집은 풍뎅이 등딱지만 해서 풀지 못한 짐 더미 사이에 이부자리를 펴야 했다. 자연스레 별거를 했다. 정만 있으면 삿갓 밑에서도 산다는데 방이 좁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멀어서 였을 것이다. 불행의 원인이 모두 그에게만 있는 것 같았다. 내 주변을 맴도는 걸 알았지만 애써 외면했고 어쩌다 마주치면 베어버릴 눈초리에 날을 세웠다. 이번 기회에 다시는 자기 멋대로 집안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단단히 버릇을 들이겠다는 각오뿐이었다.
말뚝도 무른 당에 박힌다는데 땅벌처럼 독이 올라 있던 내개 말인들 붙일 수 있었을까.( 써보낸 편지를 돌려보냈는데 남편이 죽었다.)
사과도 용서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대가 지나면 소용없다는 것을 몰랐다. 마음이 오가기를 바라서 다리를 놓는 심정으로 편지들을 썼을 텐데 나는 그 다리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힘들어할 때 “안아줄까?” 늦게 들어온 날 밤에는 조용히 내 무릎을 내 주어도 좋았을 것인데 처지 ㄴ어깨 쓸어주며 ‘너무 걱정 말아요’ 꽁냥꽁냥 했더라면 이렇듯 가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움 없는 고요한 마음이 평화라면 난 가끔 평화를 잃는다. 그 편지가 읽고 싶다.<에세이 문학. 2016년 겨울>
<알람브라는 나를 꿈꾸게 한다>-정해경
흐름이 그랬다. 연달아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로 음높이를 정하는 것 같은 트레몰로 기법의 빠른 음 하나와 머뭇머뭇 걸음을 데듯 느리고 굵직한 음 하나, 마치 두 살마이 하는 합주처럼 드리지만 한 사람의 독주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렇다면 빠른 음은 마음이고 느린 음은 걸음일까. 빠른 음이 현란하게 변하는 대목은 더듬을 때 느끼는 급한 손길이고 느리고 굵은 음은 주저하는 더딘 발길을 뜻할까 장님이 더듬으며 가는 것이 연상되었다.
<쓸거리의 범위는 좁혀서 써라>
어버이 사랑에 감사한다는 막연하다. 아버지 눈물에 뭉클하다. 어머니 손길은 언제나 따스하혔다로 좁혀야 수월하다. 육안으로 안 보여 현미경으로 보듯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돋보기로 보아서 건져 올리듯 좁혀야 한다.
<문> 최장순
강이 광꽝 얼러 있다. 누군가 던져놓은 돌을 껴안은 채 살금도 미동도 없는 저 강은 지금, 두 손을 깍지 낀 단호함이다. 제아무리 문고리를 잡아 흔들어도 기척이 없는 닫힌 문이다.
문은 소통이다. 걸음이 들고 나는 속에서 정이 오가고 말이 통한다. 살짝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는 안과 내다보는 바깥은 은밀하게 통한다. 문이 없다면 벽을 허물거나 월담을 해야 한다. 월담은 불미스런 소문이 담을 넘의 불법, 문은 정정당당한 통과의례가 아닌가
문은 신분이다. 걸음이 들고 나는 속에서 정이 오가고 말이 통한다. 대문은 집 안팎을 구분하지만 방 안팎을 경계 짓는 방문이 있다. 세상과 속세를 구분하는 일주문이 있고 도성의 망루를 겸한 성문이 있다. 나제통문처럼 암벽을 뚫은 동굴도 거적을 달면 문이 된다.
보이는 것만이 문은 아니다. 의식의 문, 통과의례의 문이 그렇다. 입신출세를 위해서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등용문이 그것이다. 이때의 문은 목표 지향성이어서 기꺼이 그곳을 통화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 문의 통과 여부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갈리고 기쁨과 슬픔이 일거나 소렴한다. 문은 절대 호락호락 저를 열어주지 않는다. 영원히 닫혀 있지도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문이라도 당당히 열 수 있는 자격을 쥔 자에게는 공손해진다.
문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허공을 날고 싶은 인간은 새를 키워 하늘을 얻는다. 든든히 먹이를 주어 날려 보내고, 다시 그들이 수집해온 먼 곳의 소식을 듣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아 다르 ㄴ곳으로 몸소 날아가곳 ᅟᅵᇁ어 한다. . 그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주는 것이 비행수단이다. 공한은 공중과 땅을 연결하는 문이다. 지상에서 발을 뗀 비행기가 최대한 오를 수 이쓴ㄴ 허골까지를 하늘이라 한다면, 공한은 하늘로 오르거나 지상에 내려오기 위한 관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구원의 세계에삳 마음의 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의 영역이 아무리 두렵고 단단해도 믿음으로 부단히 두드리고 갈구하지 않느가.
씨앗은 겨우네 얼어있던 딴딴한 흙을 열고 나온다. 땅가죽을 열고 나온 새순이 자라고 수많은 가지가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다. 이렇듯 땅에는 계절을 관장하는 문이 있기에 봄은 문을 ㅇ려고 겨울은 문을 닫는다. 이간은 땅속으로 들어가면 죽음이다. 죽음은 단힌 문이다. 그러나 영적 세계가 있다고 믿는 인간은 사후의 또 다른 문을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항구와 포구는 바다와 물을 연결하는 무이다. 항해에 지친 배들의 휴식처인 동시에 큰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물을 밀어낸 배가 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것은 밤새 거친 파도아 싸운 배들을 품는 항구가 있기 때문이다. 포구는 비릿한 생계를 낡은 아딜의 귀노하능ㄹ 반기는 분, 고단한 하루를 씻어내는 왁자한 웃음을 문고리로 달고 있다.
이성과 감성이 한 몸이 될 때에야 열린 것이 마음의 문이다. 이 문을 열어야 세상이 보인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몸도 말을 듣지 않는다. 고집이 불통을 낳고 대화단절이 고립을 부른다. 열기보다느 닫기가 더 쉬운 문이다. 쉬운 것이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믿음이 깨어진 자리, 아픈 상처는 커다란 자물쇠를 채운다. 이 문을 여는 첫 열쇠는 입은 닫고 귀를 먼저 여는 것. 입은 하나지만 귀가 두 개인 것은 말에 앞서 ㅁ너저 경청하라는 까닭이다.
오래전 어느 영화 포스터의 “통하였느냐”라는 문구가 유독 와 닿았다. 통한다느 것은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이 서로 닿았다는 것, 닫힌 문을 열어젖혔다는 것. 냉기가 온기로 바뀌고 위와 아래, 부와 빈, 좌와 우가 모두 한통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아 불통은 페쇄된 문이나 다름엇아. 그건 분명 죽은 문이다. 죽은 문은 벽이나 다름없다.
빗장을 풀지 않는 강, 그 닫힌 문을 여는 열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풀에 지쳐 스스로 깍지를 풀거나 저 안쪽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르 풀려야만 하는 것, 그 문이 스스로 열리기까지 저 안에 봄이 스며들어야만 한다.
닫힘의 끌은 열림이다. 저 강처럼 나ᅟᅳᆫㄴ 얼마나 나르 단단히 껴안고 있는다. 얼마나 뻑뻑한 마음의 깍지를 끼고 있는가. 견고한 내 안쪽을 슬쩍 들여다본다. 수필 문학에서 2016.
풀이: 주제의 폭이 넓은 글이다. 폭을 넓히려면 여행. 책, 전문가 찾기. 좋은 사람 만날 수롤 좋은 주제 얻는다.
<주제문 쓰기>
잛고 간명하게 써야 좋다. 의문문이나 비유적 문장, 부정문 따위는 삼가. 주어아 서숭러가 갖ㅊ우어진 평서문으로 분명하게 써야 좋다. ‘친구는 잘 지내느가?’의문문은 제목으로는 적당하지만 주제문으로는 부적당. ‘아버지의 사랑은 위대하다’처럼 명확하지 않은 문장도 메시지를 약화시키므로 삼가. 주제는 암시적이어도 주제문은 구체성을 띠어야 집필하는 데 중심 잡고 통합성을 갖는다. 간명한 평서문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 ① 나는 철수가 껄껄대며 웃는 것이 좋다-구체적 이유
× ② 나는 철수가 웃는 것이 좋다-이유를 밝혀 쓴 것
× ③ 나는 철수가 좋다-개략적 사실만 쓴 것
○ ④ 나는 껄껄대며 웃는 철수를 보면 즐거워져 좋다-구체적 이유와 정서 방응싸기 분명하게 쓴 것
<수필 문장 쓰기>
① 단어를 둘로 나누지 않는다(을/가/이/를을 생략할 것)
나는 말을 했다.에서 ‘을’ 빼고 나는 말했다로 써야 간결하다.
② 하나의 생각은 주어와 서술어가 하나씩인 단문, 한 문장으로
③ 문장 줄기는 명사화 동사이아. 수식어는 부수적이다. 줄기는 굵고 곁가지는 작아야 좋다.
수식어인 광형사와 관형사형 쓰지 말고 부사로 바꿔 씀이 좋다.
문장은 주어보다 서술어. 명사보다 동사가 의미 중심이기 때문이다. 주어와 명사를 수식하는 관형사보다. 서술어와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를 쓰는 것이 더 정확하고 간결하다.
× 많은 사람이 왔다.
○ 사람이 많이 왔다.
× 그녀는 예쁘게 웃었다.
○그녀는 웃음이 예뻤다.(예쁘다를 더 강조한다.
④ 불필요한 주어나 군더더기 말은 생략한다. “나”를 안 써도 말이 통하고 더 간결하고 부드럽다. 한 문장은 20자 내외에서 최대 50자를 넘지 않게 잛게 쓴다.
⑤ 중복 표현을 피한다.
⑥ 목저어가 길 경우 목적어+주어+서술어 순으로
× 대부분 학생
○ 학생 대부분
× 자동 커피 판매기
○ 커피 자동 판매기
문장에서 두 개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장을 모호하다. 이르 피하려면 조사나 어미를 바르게 다듬거나 쉼표를 사용하여 해결한다.
⑦ 한 문단 안에 같은 구조의 문장이 반복되면 단순하고 구조가 다른 문장이 섞이면 느낌이 다양하다. 풍부한 어휘와 다양한 구조의 조합으로 문단을 다양하게. 즉 짧고 단순한 문장과 길고 느슨한 문장이 섞이고
단문과 중문, 또는 복문과 혼뭄을 두루 섞어 쓴다.
연결어미와 종결어미의 적절한 사용으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문체로
⑧ 주제 문장을 간명하게. 보충문장은 속성에 따라 또는 복잡하게 서술할 수 있다. 길고 짧ㅇ른 문장을 섞어 의미의 강약심천을 담도록
독자는 필자와 동일 수준이나 약간 기준은 낮추거나 높게 잡고 쓰는 것이 무난하다.
문장은 필자의 집에 초대하여 여러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손님을 함부로 상대해오 안 되고 적합한 품위를 갖추어 대접해야 한다. 필자를 회화하거나 비하할 수도 있지만 결코 품위를 잃어선 안 된다. 품위는 바로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⑨일기나 편지와 다르므로 대우법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독자에겐 객관적 이야기이 등장인물이므로 읿ㄴ 서술에는 평어체로 쓰고 신문기사에선 결코 경어체로 쓰지 않는다. 공적 글이고 일반 대중이 독자라서 이를 따른다.
본래 한국어는 조사를 잘 쓰지 않는다. ‘의’는 쓰지 않는 게 좋다. ‘에 있어서’는 ‘에서’로
‘었’을 ‘았었’으로 사용한다든지 ‘겠’을 중복 사용하면 안 된다. 피동 문장 삼가 능동 문장으로 서술할 것
<문단 조직>
① 들여쓰기로 형식 표지를 삼믄다. 같은 내용이면 이어 써야 하고 다른 내용이면 주을 바꾸어 써야 한다. 문단은 앞뒤 여백을 둠으로써 드를 문단과의 차별성을 지면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② 문장이 소주제를 뒷받침할 보충 문장이 필요하며 최소 문장 수는 셋이다. 문장이 셋이란 것은 서로 다른 독립된 의미 셋이라는 말이다.
즉, 머리-몸통- 꼬리/초가삼간/ 삼세번/ 삼위일체/ 천지인/ 삼재/ 3박가, 아침, 점심, 저녁 삼시새끼 등
시작-중간- 끝의 3분 서사 구조는 우리 시조 3장 구조. 시 소설 드라마의 3대 장르 등으로 확산 전이하였다. 서론- 본론-결론
탄생- 생활- 사망 도 3단계다.
항상 서두-중심- 결미를 갖춰 생명이 있는 유기체로 형상화해야 한다.
문단은 문장보다 품이 큰 단계이므로 복수 문장이 문단의 중심 생각인 소주제를 뒷밭침해야 한다.
문단나누기:
소주제문을 어디에 배치하는가에 따라 넷으로 나눈다.
두괄식
미괄식“이런 곳을 약수터라 부른다. 즉 세부 내용을 보충하여 구체화하는 연역적 방식
양괄식:두괄식의 변형으로 두괄식처럼 소주제문을 앞에 내혼다. 긑에 그것을 반복하여 다시 강조한느 방식이다.
중괄식
논설문은 두괄식고 양괄식을 주로 사용 생각을 은유하게 감정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수필은 미괄식이나 중괄식이 잘 어울린다.
<소주제문이 문단에 없는 경우>
소주제는 있지만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는 암시적 소주제(추상적 문단 쓰기)-필자의 감정 상태를 단정하거나 집약하지 않고 여러 문장으로 표현하여 종합적으로 제시할 때 유용하다.
<서울의 봄> 노천명
소주제문을 중심으로 문단을 재구성하고 소주제문에 밑줄을 쳤다.
한 문단은 세 개 이상 문장으로 구성해야 한다.
두괄식과 미괄식을 함께 사용하였다. 두괄식은 연연 서술에 어울리고 미괄식은 귀납 서술에 적합하니 이 세 문단의 구성 방식을 다양하게 변화를 주면서 혼용하려 리듬감을 살렸다.
① 서울의 봄은 눈속에 온다. 남산의 푸르던 소나무는 가지가 휘도록 칠 겨운 눈송이를 안고 함박꽃이 피었다. 달아나는 자동차와 전차들도 새로운 흰 지붕을 이어?ㅆ다. 아스팔트 다진 길바닥. 펑퍼짐한 빌딩 꼭대기에 백포가 널렷다 가라앉는 초가집은 무거운 떡가루 짐을 잔 채,그대로 찌그려질 듯하다. 푹 꺼진 기와골엔, 흰 반석이 디디고 누른다. 비죽한 전산주도 그 멋갈없이 큰 키게 잘 먹지도 않는 분을 발랐다.
②이 별안간에 지은 세상을 노래하는 듯이 바람이 인다. 은가루 옥가루를 휘날리며 어지러운 흰 소매는 무리무리 덩치덩치 흥에 겨운 갖은 춤을 추어 제낀다. 갈이길이 제 세상을 누릴 듯이.
③그러나 보라! 이 사품(어떤 동작이나 일이 진행되는 바람이나 겨를)에도 봄 입김이 도는 것을. 한결같이 흰 자락에 실금이 간다. 송송 구멍이 뚫린다. 돈 짝만 해지고, 쟁반만 해지고. 댓님만 해지고 댕기만 해지고, 그 언저리는 번진다. 자배기만큼 검은 얼굴을 내놓은 땅바닥엔 김이 무럭무럭 떠오른다. 겨울을 태우는 봄의 연기다. 두께두께 언 청계천에서도 그윽한 소리 들려온다. 가만가만 자취 없이 가는 듯한 그 소리, 사르르사르르 이따금 그 소리는 숨이 막힌다. 험한 고개를 휘어 넘는 듯이 헐떡인다. 그럴 때면 얼음도 운다. ‘쩡‘하며 부서지는 제 몸의 비명을 친다. 언 얼음이 턱 갈라진 사이로 파란 물결은 햇빛에 번쩍이며 제법 졸졸 소리를 지른다.
④ 촉촉한 담 밑에는 눈을 떠 이은 푸른 풀이 닷분이(한 치의 반)나 자랐다.
끝장까지 보는 북악에 쌓인 눈도 그 사이 흰 빛을 잃었다. 석고 색으로 우중충하게 .흐렸다.
그 위를 싸고 도는 푸른 하늘에는, 벌써 하늘하늘 아지랑이가 걸렸다. 봄이 왔다 눈길, 얼음 고개를 넘어, 서울에 순식간에 오고만 것이다.<한국대표현대수필선>
<문단 조직의 삼형제>-응집성, 연결성, 통합성
문단은 응집성, 연결성, 통합성이 서로 도와 주직해야 한다.
① 응집성: 문단을 구성하는 모든 문장이 소주제로 초점이 모아져 하나로 뭉치는 것
② 연결성: 모든 문단이 글 구성 단계에 맞게 전후 문단과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
③ 통합성: 문단의 모든 문장과 소주제가 그 글의 주제로 통합해야 하는 것
① 응집성-
각 문단이 조주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뭉친 것인데 한 문단이 모든 문장은 의마 상통하여 소주제로 귀일해야 한다.
-소주제문의 의미가 명확해야 한다
-소주문의 구조가 간명해야 한다
-소주제문과 보충문장이 내용상 일치햐야 한다.
-보충문장은 소주제문에 종속되어야 한다.
작품 보기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한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닐 것이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오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김진섭 백설부에서
(풀이) 백설부에서 보면 두 문장으로 조직해서 원칙에 어긋난다.
이어진 문장은 소주제와 상관성이 약하다. 앞에선 사람은 거의 눈을 좋아할 것이라고 하고 뒤에선 개와 어린이가 눈을 즐겨한다고 하더니 눈이 온 뒤의 느낌을 적었다. 응집성을 살리려면 사람이 왜 눈을 싫어하지 않는지, 또 얼만 좋아하는지 등으로 연결해야 한다. 고요한 환호성의 느낌을 좋아하는 이유로 들었지만 필자 자신의 느낌일 따름이다. 앞에서 일반인을 말하고 뒤에선 자기 감정만 드러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 사람에 대한 것을 먼저 말하고 자신의 것도 함께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② 연결성: 각 문단은 앞뒤 문ㄴ단과 의미상 연결이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워햐 한다. 개별 문단이 전후 문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주제로 통합하는 제 기능을 발휘한다. 각 소주제는 앞뒤 문맥과 연결하여 문단을 조직하고 주제를 뒷받침해야 한다 .문단이 연결성을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영연결성은 이중적 의미다 먼저 한 요점에서 다음 요점으로 진행하느 것이고 다음은 문장(문단)에서 다음 문장(문단)으로 구성 요소를 기밀하게 맺는 것이다.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문장과 문단 간의 전후 관계를 분명히 알게 한다. 이 연결성은 그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확보해야 한다. 접속어와 지시어를 자주 사용하느 것은 최소화해야 문장이 산만해지지 않고 글의 리듬을 방해받지 않는다.
<까치소리>-윤오영
1.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각‘은 앝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이 좋다.
2. 반포지효를 안다고 해서 효조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고비라서 그 해에 안변부사로 영전 되었다던가, 서제 남창 앞 높은 나무 가지에 까치가 아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을 날렸다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3. 아침까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러싸하게 느껴진다. 오애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간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4. 나는 가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무 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5.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다. 내가 완지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이유도 그런 정서에서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하고 풍요로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풀이: 예문은 응집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연결성까지 문제가 생긴다.
1문단은 소주제가 둘이다. ‘가치 소리는 반갑다’와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이다
2문단의 소주제는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와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의 양괄식으로 둘이다.
여기까지 1 문단의 소주제가 두 개라 응집성의 문제는 있어도 이 둘은 2문단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3문단에서 다시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고 하면서 2문단의 반가운 것만 연결하고 4문단에서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로 까치에서 까치집으로 이동하며 연결한다. 작가느 까치소리와 그에서 연유한 까치집가지 좋아서 가치집 같은 사랑채를 짓고 싶어한다. 그런데 좋아하느 것과 반가운 것을 혼동하여 뒤섞은 것이 문제다. 둘은 다른 것이므로 분단해서 조직해야 옿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이 수정한다.
5개 문단을 4개 분단으로 축소했고 ‘반가운 편지’의 3문단을 1문단의 소주제인 ‘까치소리는 반갑다’에 종속시켜 한 문단으로 묵었다. 1문단의 두 번째 소주제인 ‘까치 소리가 좋다’를 2문단으로 보내어 양괄식의 ‘반갑고 기쁘다’로 1문닥과 여결시켰다. 그리고 까치집에 관한 것과 사랑채에 관한 것은 그대로다. 위아 아래를 비교하여 다시 읽어 보라. 응집성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연결성도 확보할 수 있다.
다듬은 글:
1.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각‘은 앝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이 그저 반갑다. 아침까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러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2.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이 좋다. 반포지효를 안다고 해서 효조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고비라서 그 해에 안변부사로 영전 되었다던가, 서제 남창 앞 높은 나무 가지에 까치가 아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을 날렸다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3. 나는 가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무 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4.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다. 내가 완지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이유도 그런 정서에서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하고 풍요로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통합성-수필 내적 모든 요소가 동등하게 주제로 구기결하여 모든 문장과 단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주제로 모여야 한다. 즉 글에서 주제와 상관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 연결성은 문단 간의 무관계를 더 강조하고 통합성은 주제와 수필 전체의 모든 요소와 연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통합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글 내부의 모든 것이 주제와 관계를 맺는다. 일반적 화제가 아니라 주제와 관련된 것을 진술해야 한다.
-응집성처럼 종속화를 꾀한다. 주제의 하위 개념 여부를 판단하여 이를 조정해야 한다.
-응집성을 갖추도록 연결 고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 응집성은 통합성 확보에 유용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구름도 한몫>-방민
구름이 한가롭게 서쪽 하늘에 떠 있다. 조금 전에도 안 보이더니 순식간에 나타나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 새 하늘 화면 틈새로 잠입해 여러 형상으로 재주ᅟᅳᆯ 피운다. 스페인 카미노의 봄철 하늘은 늘 변화가 무쌍하다. 구경거리 하나 더 늘어나 좋지만 비라도 뿌리면 차림새를 바구는 번거로움을 지불해야만 한다.
①푸르기만 한 하늘은 밋밋하여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한다.
②마음이 툭 터져서 시원하지만 담아두고 가끔씩 꺼내어 즐길 간식거리는 아니다.
③ 사진으로 남길 장면으론 좀 부족하다.
④ 빈 하늘보단 무언가 있어야 제격이다.
⑤ 구름도 없이 푸르기만 하다면 눈만 시리다
⑥ 오래 바라볼 것도 아니지만 그 이상 눈의 흥미를 끌어내기 어렵다.
응집성 검토:
소주제 문장은 ①이고, 명확한 개념의 소주제를 드러낸다. ‘푸르기만 한 하늘은 밋밋하여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한다.’는 주어(하늘)+서술어(밋밋하여)+보어(풍경)+서술어(되지 못한다)의 기본 문형으로 구조가 간명하다. 그 뒤의 다섯 문장은 모두 ①에 종속되는 보충 문장이다.
②와 ③은 간식거리가 아닌 것과 사진으로는 부족한 장면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한 ①과 내용상으로 일치한다. 이 내용을 변화 발전시켜서 ④의 무성이 더 있어야 함으로 부족함을 서술하고 ⑤의 눈만 시림의 폐해를 덧붙인 뒤 ⑥에서 마지막으로 ① 소주제 문장의 의미를 한 번 더 강조하며 마무리 지어 응집시킨다.
3. 정지된 화면처럼 맑기만 한 하늘은, 눈에 띄니 쳐다보고 오늘 한씨 좋네하고 한 마디 뱉으면 끝이다. 달라질 것 없는데 계속 마주할 인내심은 인간에겐 애초에 유전되지 않았다. 달리 동물로 분류가 되었겠는가. 참선 수행에 나선 소수만이 태생적 본질을 벗어나려고 고행의 시간 여행에 나선 걸 가끔 본다. 속세의 범인은 변화를 좋아하고 그 속에 있어야 편한 게 속성의 하나가 아닐까
4. 구름이 몇 덩이뿐이더니 얼마 안 걸었는데 밀려와 검게 저편 하늘을 변색시킨다. 시커먼 낯빛이니 그 쪽에는 이미 비가 내리나보다. 흐르는 방향으로 보아 머잖이 여기도 빗발이 방문할 기세다. 반갑잖은 손님이나 온다니 대비해야겠다. 배낭세어 우비를 꺼내어 어깨걸이 끈에 질러 넣고 커버를 씌운다. 바람까지 불며 모자챙을 흔들기 시작한다.구름 조각이 멋지다고 몇 컷 짝은 게 언젠데 벌써 천면 시프트인가. 하늘을 원만한들 무엇 하나. 이럴 땐 순조의 미덕을 만에 새기는 게 더울 현명한 일앋.
5. 우비를 쓰면서 문득 아, 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 번개처럼 번쩍 다가온다. 구름 없는 하늘처럼 밋밋하기만 한 인생은 어떨까. 사는 재미도 없고 시시하기만 하지 않을까. 앞길이 보지이 낳는 밀림에 갇히기도 하고, 지끈대는 고뇌의 밤을 맞기도 하고, 이대로 삶이 끝나버리는가 심신아 함께 물먹은 휴지가 되어 갈 때도 있다. 그만 사느냐 죽느냐를 선택하는 공을 밤세워 허공에 던지며 맘을 조며 보는데, 어느새 아침 햇살이 맑게 쏟아지느 순간이 찾아오는 게 인생살이의 참맛이 아닐까
6. 이른바 복지국가의 젊은이들이 쉽게 자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상적 삶이 우리에겐 백일몽으로만 존재하던 그들 미래의 삶이 어쩌면 지루한 푸른 하늘만 같다고 예단한 성급한 결정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광막한 하늘에서 구름 한 조각도 제 몫이 있듯, 인생사에도 역경이 끼어들어야 도전하며 사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걸 걷어낸 뒤에 다가오는 황홀한 행복감, 인생사진첩에 멋진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연결성 검토)
1문단은 ‘하늘에 구름이 떠있다’는 것으로 글을 시작. 이것을 년결하여 2문단을 ‘구름이 없는 하늘은 밋밋하다’라고 하늘과 구름의 상관성을 해석. 3문단은 2문단의 해석에 대한 원인을 인간 속성(뱐화 욕구)로 논리화. 4문단은 3문단의 ‘;하늘과 구름의 변화’를 제시하여 3문단을 연결시켜 강화 발전시킨다. 5문단은 전환의 문단으로 하늘과 구름의 변환을 인생에 비유, 6문단은 결미 문단. 5문단에서 전환된 하늘과 구름 관계‘를 인생사에 연결하여 글의 주제를 제시하며 마무리한다.
통합성 검토- 예문의 문단별 소주제는
1문단은 구름이 하늘에 떠 있다.
2문단은 구름이 없는 하늘은 밋밋하여 아름답지 않다
3문단은 말근 하늘을 계속 보는 살마은 없다
4문단은 구름이 밀려와 비가 올 것 같다.
5문단은 구름 끼고 비 오듯 인생도 변화가 있어야 참 낫이 난다
6문단은 인생사도 역경이 있어야 도전하며 사는 맛이 난다
이글의 주제는 하늘에 구름이 기듯 인생도 역경을 맛고 극복해야 행복하고 멋진 인생이다. 위 여석 개의 문단은 모두 이 주제의 핵심어인 하늘, 구름, 인생, 역결의 의미를 연결하여 조직 통합성을 갖는다.
<문단의 표지와 형식>
문단의 외형상 표지는 한 글자 들여쓰기다
문단의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 이어 써야 하고
새로운 문단을 시작하면 줄을 바꾸어 한 글자 들여 쓴다.
특히, 큰따옴표로 인용하는 대화도 한 문단처럼 들여 써야 한다. 그러나 대화 다음 문장이 관련된 내용이렴 당연히 앞 문단과 이어야하므로 들여쓰기를 하면 안 된다.
문단의 형식 표지과 관련된 오류는 문단 인식의 부족에서 빚어진다. 한두 문장을 쓰고 분명한 이유엇이 줄 바꾸거나 한 문단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경우다.
·가끔 문상을 간다. 하얀 국화꽃에 싸인 고인의 얼굴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나면 사람들은 곧장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은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방금 다녀온 빈소의 짓눌린 정적과 향냄새에 섞여 떠도는 슬픔의 기운은 그릇 부딧는 소리와 음식 냄새로 그만 희석되어버린다.
3월는 내게 봄이 아니다. 피어나는 꽃을 두고 한 생이 져버린 그 3월은 봄이 아닌 것이다.
·화장장에서 진액처럼 쏟아내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처럼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대다니. 민망하다 못해 내 존재 자체가 아물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은 걱정은 오히려 뒷전이었다. 순간 너무도 다른 내 모습이 어찌나 낯설던지 혐오감이 울컥 올라왔다.
<연을 쫓는 여자>-지영선
긴 실을 감았다 풀었다 다시 되감기를 하던 그가 급히 손을 뻗어 허우적거리듯 연줄을 휙휙 잡아당긴다.
튕기면 맑은 소리가 날 석 같은 초겨울 하늘가. 남자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을 따라가 본다. 머리를 거꾸로 박고 떨어지던 연이 한 바퀴 재빠르게 공중제비를 돌과 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치며 요리조리 몸을 흔들고 있다. 그 자채가 천상을 거니는 여인처럼 요염하다. 지상에서 얼레를 잡고 있는 남자의 분주한 손길이나 팽팽한 긴장감은 아랑곳없이 연은 허공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얼레에서 풀려나간 한 올 실오라기 끝에 매달려 유유자적 날고 있는 연, 연줄을 밀고 당기며 연을 바라보는 남자의 환한 얼굴, 트랙을 걷다 연과 연을 날리는 사람을 훔쳐보다 몇 걸음 간격을 두고 멈추어 서서 연을 쫓는다. 아니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연이 되어 춤을 춘다. 원색 의상을 걸치고 이승과 저승을 춤추듯 넘나드는 신들린 무당처럼.
하늘은 왜 파란빛일까. 너무 멀어서일까. 그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거미줄보다 끈근하고 촘촘하게 얽히고 설킨 삶의 궤적 같은 인연의 끈, 쉼 없이 내 존재를 확인시키고 지탱해주는 그 끈이 가끔 거추장스럽다.
아버지와 오바가 공들여ㅕ 연 만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태극무늬 선명한 방패연이었다. 내가 어리기도 했지만 아마도 계집아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방패연에 쓰고 남은 자투라 한지로 작은 가오리연을 만들어주셨다. 그것을 들고 좋아라. 넓은 들켝을 뛰어다니곤 했다. 연에 매달린 실을 잡고 힘껏 내달려도 연은 내 머리 뒤꼭지 언저리에서만 팔랑거릴 뿐, 더 높이 날지 않았다. 오빠의 방패연은 매번 아득한 곳에 떠 있는데. 높고 먼 곳에 대한 나의 갈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붉은빛으로 가득했던 서쪽 하늘을 서서히 검보랏빛이 덮는다. 남자가 실을 감아 연을 거두어들인다. 나의 연은 별이 된다. 연은 어쩌면 비상을 꿈꾸는 날개 없는 뭇 생명들의 간절한 염원의 표상이 아닐는지.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처럼 내가 떠나온 그 자리에서 별이 된 내 연줄을 붙잡고 있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네게로 돌아올 누군가를 미련스럽게 기다리며 끈을 놓지 않는 나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불현 듯, 나와 함께 어우러져 울고 웃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얼굴들과 나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립다.
연은 줄에 묶여 있을 때 비로소 허공을 치고 날아올라 자신으 존재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연에게 줄은 구속이 아니다. 나뭇가지에 마른 풀숲에 처박힌 연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의 분신과 같은 소중한 것을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끈 떨어진 갓 신세라고 한다. 줄 끊어져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연이나 끈 덜어진 끈 떨어져 제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넓은 잔디구장에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다. 연줄을 감던 남자가 고개를 쳐들고 저문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를 흘끗거리며 지나쳐간다. ‘저 여자 뭐야?’하는 표정이다.
‘아저씨, 그런 눈느로 보지 마세요. 나도 연을 날리고 있다구요. 연날리기 솜씨로 치면 아무래도 아저씨보다 내ㅔ가 한 수 위 아닌가요? 비록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트랙을 향해 걸였ㄷ. 세상천지 어디에서 연이 되어 하늘을 나는 여자를 본 적 있나요.
<에세이 문학. 2015. 겨울>
윗글의 각 문단은 공간을 뜻하는 단어가 들어있다. 이 단어들이 글의중추를 이루므로 빠지거나 없다면 글은 성립할 수 없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작가의 트랙 위의 현재와 과거, 연에 관련한 회상을 펼친다. 즉 이 작품에서 작가가 사용한 방식은 공간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