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작가 하정민은 다재다능, 만능엔터테인먼트로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기획을 위한 아이디어 창고이다.
만능엔터테인먼트
하정민 작가
글 : 이문자 (전시가이드 편집장)
‘사회공헌예술가’로 불리 우는 화가 하정민은 예술뿐만 아니라 만능엔터테인먼트로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사)대한민국공공미술협회 회장이면서 사드이후에 중국과도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하며 민간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그가 요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5월 대한민국미술문화축전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행사기획을 하고 청각장애청소년들과 동대문
DDP전시장을 둘러보고 기념촬영
공공미술(公共美術)이란 대중들을 위한 미술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조각·벽화·스트리트퍼니처·포장작업(paving)·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며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 등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을 준비하면서 도시 환경 개선의 목적으로 공공미술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품성 보다는 건물의 준공을 앞두고 설치하는 데 목적을 두고 형식적인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공공미술의 중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도시를 계획하는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할 사항과 대중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주변 환경의 주체로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취지로 (사)대한민국공공미술협회가 설립되었고, 회장이 되어 진행하는 공공미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을 넘어선 부분까지 공공미술의 영역에 포함시켜 협회와 협업하면서 미술전반에 도움을 주고, 작가들과 협업, 기업과의 협업 등을 통하여 발전하고 있다.
2017년 하정민 & 레이디스 향수전(뮤제드 파팡)
사실 그는 1987년 대학을 졸업 후 1988년 당시 인기 있었던 그룹 ‘여행스켓치’의 자켓 그림과 글로 알려졌으며 그 후 기독교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긍정의 힘’, ‘지선아 사랑해’와 천주교 이해인 수녀의 베스트셀러들, 80-90년대 최고의 잡지였던 샘터의 표지와 연재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삽화를 통해 친숙하게 알려진 작가가 되었다. 당시 화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생계수단으로 그리는 것이 삽화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그는 당시 작품의 홍보가 부족한 현실에 삽화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삽화와 함께 그의 작품은 한동안 아트페어에서 매진이 될 만큼 많은 판매를 기록했으며 작품성도 1996년 한국화 최초로 4개 부문에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할 만큼 인정을 받았다. 2008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장석용)에서 주최하는 “올 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수상하는 등 미술계에서 많은 수상경력을 비롯하여 심사경력을 가지고 있다. 수상자의 입장에서 심사자의 입장으로 바뀌었을 때는, 그는 작가의 작품성과 함께 작가로서 걸어왔던 모든 것을 종합해서 살펴보며, 작가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까지 감안해서 작가를 선정한다고 한다.
2015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의사 의거를 기념한 ‘안중근문화예술전’에서 조직위원장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특히 한·중문화예술교류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시를 위해 중국을 갔지만 막상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다시 그곳을 찾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전시회와 함께 전시회를 둘러싼 행정적인 부분들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문고리 고치려다 집을 고친다“는 속담처럼 전시를 하려면 전시 행정적인부분들이 중국정부와 협업이 되어야 하고, 그 일들을 시작하다보니 어느덧 중국 문화예술계에 주요인사가 되었고, 그의 ‘한국미술의 기업합작’이라는 강연도 중국에서 인기 있는 강의가 되었다.
2018년 5월 중국 위해시 인민정부와 위해직업대학교가 만든 아름다운 마을 연구원의
(吴永刚 威海职业学院党委书记)
기억에 남는 중국 행사로 2014년 하얼빈에서 열린 첫 번째 “안중근추모예술전”을 꼽았다. 중국 하얼빈시정부를 통해 중국인들이 안중근을 추모하는 공식적인 행사로 만든 그는, 당시 한국특파원들의 놀라움을 받을 만큼 믿지 못할 사건이 되었지만, 다음해 2월, 하얼빈시정부의 공식초청으로 그와 함께 안중근의 뮤지컬 ‘영웅’, 한국기자단 30여 명이 방중을 하여 본격적으로 안중근의사의 행사가 꽃을 피기 시작했다. 2월 하얼빈행사에 이어 3월 안중근의사의 가묘가 있는 용산구에서 ‘안중근추모예술전’을 다시 개최하였고, 그 장면은 KBS뉴스를 통해 방영되었는데 당시 그 뉴스를 보고 총리가 올 정도로 유명한 전시가 되기도 하였다.
2018년 11월 22일 홀트학교 강연포스터
그는 작년 중국국가조직인 상해협력기구가 주최하여 34개국 약 3,000명이 참가한 제 1회 세계기능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주도했으며, 이번 코로나19로 중국이 어려울 때 중국을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 많은 중국인들의 감사인사를 받았으며, 중국의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며 역(易)으로 한국을 돕는 민간부문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국에 가장 관심을 갖는 곳을 꼽으라면 안중근의사의 하얼빈과 산동성의 「웨이하이」라고 한다. 특히 「웨이하이」는 한중 FTA시범도시이기도하여 한,중 무역의 교두보로 한국에는 중요한 도시이며 그는 산동대 연구교수와 함께 위해직업대학교 객좌교수를 맡고 있는데, 대학교 안에는 직업대학교의 세계적인 교수로 중국 랴오닝항공모함을 설계한 우크라이나 교수와 함께 그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앞으로 위해직업대학교를 중국의 명문대학으로 오영강서기(吴永刚 威海职业学院党委书记)와 이요화 총장(李耀华 威海职业学院院长)과 함께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2018년 하정민 & 컴퍼니(동대문DDP)
하정민 작가의 머릿속에는 많은 기획을 위한 아이디어 창고이다. “계획은 무조건 잘 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맞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전시를 기획할 수 있지만 나의 기획이 역사를 바꾼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는 「장애인문화예술」에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주고 간 사랑으로 시작했던 봉사가 청각장애인 화가들의 친구가 되는 계기가 되었고, 홀트학교 명예교사와 함께 2018년도 서울시지원사업으로 ‘청각장애 청소년미술학교’을 기획하며 청각장애청소년들에게 화가가 되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며, 할머니가 남긴 사랑의 유산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고자 했던 꿈은 그가 결혼을 하고 딸 윤빈을 낳으면서 바뀌게 된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것보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평범한 아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많은 사람들이 작가로 홍보되지 못하는 부분을 4살 된 딸을 모델로 3년간 노력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다. SNS를 통해 딸을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롯데캐슬아파트 및 전광판 광고 등을 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국내아트페어 등에 출품하였으며, 7살 때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카루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아트쇼핑’까지 출품하여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자아가 형성되며 그는 딸이 평범한 삶을 살길 원하여 가급적 사회활동은 안 시킨다고 한다.
2019년 4월 11일 중국 위해직업대학교에서 저의 방문을 환영하며 학교 관계자들과 예술학부 학생들이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다.
그의 인생에 또 하나의 전환점은 교회에서 장로가 된 것이었다. 장로가 되어 신앙의 모범자가 되어야 되는 입장에서 그는 신앙을 위해 그림을 포기했지만, 결국에 그는 신앙 속에서 그림을 넣어 또 다른 성공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곳이지 학원이 아니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가 출석하는 대성교회에 토요문화학교를 신설하여 성악, 피아노, 우쿠렐레, 드럼, 태권도 등을 교육하였다. 학생들을 모집하는 날, 어머니들이 교회 밖에까지 줄을 설만큼 미술교육은 대성공을 이루었다. 미술로 인하여 최고의 전도가 되다보니 교회는 이후 미술에 대한 지원을 늘려가며, 미술에 대한 관심이 약한 기독교에서 미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성공의 이면에는 "교육은 가장 최고의 교육을 통해 최고의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그의 신념이었으며 이후 많은 교회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현재 12,000여개 교회가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실무임원까지 맡고 있다.
사드의 어려움 속에서 350여명의 중국청소년들이 참석한 2016년 제8회 한중청소년국제친선예술제 개막식(원주)
그에게 최근 가장 아쉬웠던 일은 올 해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 하얼빈을 비롯한 흑룡강성과 큰 행사를 기획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끝나면 중국전역의 국가행사들을 함께하며 10월 26일 기해 ‘안중근추모예술전’을 다시 준비할 것이며 국내에도 많은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정의 회복을 통해 나라가 회복되어야 하고, 예술을 통해 후대들에게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물려줘야 한다는 그의 예술가의 삶은 오늘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내 그림을 비싸게 파는 일도 중요하지만, 비싸게 판 작가가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실천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림도 잠깐 멈추지만, 그 사랑을 다시금 예술 속으로 불러들이는 작가, 다재다능, 만능엔터테인먼트, 사회공헌예술가 등 그 앞에 붙는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오늘 하루 그저 열심히 살 뿐이라는 하정민 작가의 아름답고 멋진 미래의 삶을 더욱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