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지관쌍수
사마타·위빠사나 함께 닦아야
선정에선 위빠사나 수행 불가
사선정 거치며 수행정진해야
붓다, 성취순서·경로 강요 않아
요즘 필자는 초기불교명상의 두 범주인 사마타 위빠사나명상을 매주 4시간 30분씩 강의하고 있다. 동국대에서 ‘위빠사나 이해와 실습’을, 대원아카데미에서는 ‘사마타 이론과 실습’을 강의한다. 이런 강의를 위해 필자가 준비하는 시간은 수업 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명상원에서도 온라인 명상강의를 늘 두 개씩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뾰족지붕에서 서까래가 위를 향해 하나로 모아지듯이, 필자의 모든 시간은 명상이란 주제로 모아진다.
지난 글에서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의 순서를 네 가지로 나열했다. 여기서 3번째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쌍으로 닦는다고 하는 지관쌍수(止觀雙修)였다. 선종에서는 ‘정혜쌍수’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 명확한 정의나 디테일한 의미는 잘 모른다. 그럼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지관쌍수는 무엇일까?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지관쌍수인가?
‘앙굿따라 니까야’의 ‘쌍 경(A4:170)’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구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쌍으로 닦습니다. 그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쌍으로 닦을 때 도를 인식합니다. 그는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많이 닦고 공부 짓습니다. 그가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많이 닦고 공부 지으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이 경전의 문맥에서는 ‘쌍으로 닦는다(雙修)’는 것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경전들을 통해서 지관쌍수가 어떤 방법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수행자가 호흡명상을 수행하다가 초선정에 들었다(入定)고 해보자. 그러면 그 수행자는 선정에 머물다가 선정에서 나와서(出定)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그럼 선정의 상태에서는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없다는 말일까? 그렇다. 초기경전이나 주석서에 의하면, 본 삼매(색계·사선정·무색계·사처정) 상태에서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 오온의 현상들을 알아차리며 관찰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본삼매 상태는 마음이 대상과 완전하게 하나가 되고 고도로 집중된 심일경성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서 찰나마다 생멸 변화하는 상카라나 법의 현상을 관찰할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선정을 얻은 수행자는 반드시 출정하여 위빠사나(觀)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수행자는 2선정을 성취한다. 거기서 다시 출정하여 본인이 경험했었던 선정의 요소들을 관찰한다든가, 자신의 몸과 마음, 오온 현상을 무상고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리고 삼선정을 증득했다가 출정하여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이렇게 사선정을 거쳐 무색계 공무변처, 비상비비상처정까지 올라가며 사마타 위빠사나를 차례대로 계속 닦아나가는 방법이 초기불교에서 설명하는 지관쌍수(samatha vipassanā-yuganandha)이다. 이런 수행 방법을 통해서 수행자는 최종의 목표에 도달한다.
‘맛지마 니까야’의 ‘차례대로 경(Anupada-sutta, M111)’에 의하면, 사리뿟따 존자는 보름 동안 차례대로 사마타 위빠사나를 지관쌍수의 방식으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의 아들이고 적출이며, 법에서 태어났고 법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하며, “여래가 굴린 위 없는 법륜을 바르게 계속해서 굴릴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공표했다. ‘맛지마 니까야’의 ‘앗타까나가라 경(M52)’과 ‘앙굿따라 니까야’의 ‘자애 경(A4:126)’도 자애명상을 지관쌍수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수행자가 자애명상을 통해 자심해탈이라는 초선정을 얻는다. 그러면 출정하여 ‘이 자심해탈은 조건된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건된 것이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나 다 무상한 것이며, 사라지게 되어있는 법이다’라고 숙고하며 관찰하라고 가르친다.
붓다는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의 순서나 성취의 경로에 있어서 단 한 가지만을 고집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유연성과 지혜로 열려있는 모습, 너무나 아름다운 붓다의 모습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첫댓글 初期佛敎瞑想 - 10. 사마타·위빠사나 차례대로 닦는 方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