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10
1. 질문 : 양쪽 어깨가 당기고 아픈 것이 계속되었는데 이제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답변 : 좌선을 할 때나 경행을 할 때 머리를 너무 숙이거나 턱을 너무 들지 말고 똑바로 세우고 하라.
참고 : 좌선을 할 때 고개를 숙이면 목에 무리가 가서 목에 단단함이 생기고 통증이 생깁니다. 또 턱을 위쪽으로 쳐들고 수행을 하면 뒷목이 당기고 어깨근육이 긴장해서 통증이 생깁니다. 턱은 들거나 숙이지 말고 바르게 세워서 머리의 무게를 몸에 실어서 분산시켜야 합니다.
오래 도록 어깨가 긴장한 상태로 있으면 단단해져서 머리로 가는 피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두통이 생깁니다. 특히 허리가 굽은 수행자는 좌선을 할 때 허리를 펴기 위해 턱을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자세가 오래 계속되면 어깨의 통증과 두통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바른 자세는 부드러운 몸을 만들어 수행의 향상을 돕습니다. 머리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이런 무게를 지탱할 때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무리가 갑니다. 그러므로 머리의 무게를 자세를 바르게 해서 몸에 얹저야 합니다.
경행을 할 때도 시선은 서너 걸음 앞에 두고 걸어야 합니다. 걸을 때 고개를 숙여 발을 쳐다봐서는 안 됩니다. 또 고개를 들고 멀리 쳐다보고 걸어서도 안 됩니다. 시선은 서너 걸음 앞에 두지만 마음은 발에 집중하여 움직임에 밀착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멀리 쳐다볼 때는 즉시 다른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발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바른 자세가 갖춰지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가서 수행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2. 질문 : 좌선을 할 때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답변 :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기가 힘들면 앉음과 닿음을 차례로 하라.
참고 : 처음에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는 몸에서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생명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항상 숨을 쉬지만 정작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그래서 마하시 명상원에서는 호흡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 앉음과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의 앉음은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리고, 닿음은 발의 복숭아 뼈 부분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한국명상원에서는 처음부터 바로 호흡을 알아차리지 않고 좌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수행은 마음이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일하는 마음을 살펴서 마음의 긴장을 풀고 조용히 마음을 현재에 모읍니다. 그런 뒤에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느낌을 차례로 알아차립니다. 이때 빠르게 알아차리지 말고 약 1분 정도씩 알아차립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몸 전체를 알아차리면서 몸의 긴장을 풉니다. 이때 몸의 어느 부분에서 일어남과 꺼짐의 움직임이 잡힙니다. 그러면 그곳에 마음을 모아서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립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마음이 긴장하지 않고 몸이 이완되어 자연스럽게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래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경우에는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 부분을 좀 더 길게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어느 땐가 몸의 호흡이 약하게 일어납니다. 이때 호흡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처음에 호흡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마음을 모아서 대상에 정확하게 겨냥해야 합니다. 마음이 들떠 있으면 알아차림의 순도가 낮아서 호흡에 겨냥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려는 의도에 약간이라도 힘이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몸이 긴장해서 호흡이 숨습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각의 기능을 하지만 워낙 빠르게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알아차리는 수행인데 처음에는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힘이 들어가서 몸이 긴장합니다. 그 외에도 과식을 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호흡을 만들어서 하면 욕망을 가지고 대상에 개입하는 것이라서 위빠사나 수행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피로가 누적되고 몸에 병이 나서 수행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우면 다른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몸에는 호흡이 아닌 알아차릴 다른 대상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호흡을 정확하게 겨냥하되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집중이 되지 않아서 호흡이 미약하면 미약한 상태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집중이 되어서 호흡이 미약하면 미약한 상태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의 상태에 따라 대상은 항상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방법입니다.
3. 질문 : 좌선 중에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다가 호흡이 약해지거나 망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답변 : 일어남과 꺼짐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도록 하라.
참고 : 몸과 마음에 있는 대상은 반드시 일어남과 사라짐이 연속됩니다. 몸과 마음은 일어남 하나만 있을 수 없고, 사라짐 하나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최소의 단위를 구성하는 것은 일어남과 사라짐이라는 두 개의 단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숫자로 표기할 때 1(1/2)라고 적습니다. 이때 괄호 안에 있는 (1/2)는 일어남과 사라짐을 말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보면 바로 무상입니다. 이것이 과학이나 현상계의 질서로 보면 진동입니다.
그래서 호흡을 말할 때 일어남 꺼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실재라서 진실입니다. 수행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무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단지 일어남 꺼짐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호흡을 계속해서 알아차리기도 힘든데 대상이 가지고 있는 무상의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대상에 마음을 기울여서 알아차리다 보면 집중이 되어 언젠가 무상의 법이 드러납니다. 법은 얻으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조건의 성숙으로 얻습니다.
이처럼 수행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릴 때도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는 단계가 있고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때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은 수행자의 근기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다가 수행이 향상되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일어남 꺼짐의 다음 단계로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에 일어남 하나만 알아차리도록 하고, 다음에 꺼짐 하나만 알아차리도록 하고, 좀 더 집중이 되면 일어남 꺼짐을 하나로 묶어서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그런 뒤에 일어남 꺼짐 쉼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알아차리도록 하기도 합니다.
호흡의 일어남 꺼짐은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과 같습니다. 여기서는 호흡은 상징적으로 일어남 꺼짐이라고 하고 무상은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표기합니다. 호흡의 정확한 실재는 공기가 부풀었다가 꺼지는 바람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호흡을 일어남 꺼짐이라고 하며, 부풀음 꺼짐이라고 할 수도 있고, 팽창과 수축, 밀고 당김이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호흡의 명칭은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이러한 용어의 구별은 스승과 면담을 할 때 호흡과 무상을 혼돈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말할 때 스승은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을 말하는 줄알고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 이때 수행자의 호흡은 사념처 중에서 신념처고 스승의 무상은 법념처입니다. 이런 오해로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가 있어 수행을 할 때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호흡의 시작과 중간과 끝은 집중력이 생겼을 때 하면 좋습니다. 호흡의 시작은 일어남이고 중간은 꺼짐이고 끝은 쉼입니다. 일어남과 꺼짐 뒤에 있는 쉼은 호흡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이때의 호흡을 숫자로 표기하면 1(1/3)입니다. 이것이 호흡의 시작과 중간과 끝입니다. 호흡의 끝은 호흡이 순간적으로 정지된 상태인데 이것을 알아차리려면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호흡에서 쉼의 발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수행자가 졸음에 떨어지거나 망상에 빠지는 것은 짧은 순간의 쉼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가 일어남과 꺼짐은 움직임이 있어서 알아차리기 쉬운데 움직임이 정지된 쉼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때의 짧은 순간에 알아차림이 달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쉼을 알아차리면 수행이 더 밀밀하게 되어 집중이 됩니다. 이렇게 집중이 될수록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법을 향해서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도 인위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아직 쉼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집중력이 없는데 쉼을 하면 스스로 호흡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작은 욕망이 불씨가 되어 수행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수행은 자기 힘에 맞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것이 욕망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