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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th. Jun (토)
08시 양하가 시작되다. 예상외로 늦다. 그나마 오늘은 토요일. 오후2시까지만 한단다. 이런 속도라면 2주일은 더 넘기겠다. 일요일은 완전 휴무라 하지 않는가.
화폐는 Lila를 쓰며 1$:870L란다. 낮에 느닷없이 매선된다는 얘기가 선내에 퍼져 술렁인다. 직장, Saloon Class를 모아놓고 호통을 쳤다 누가 이런 얘길 발설했나?
책임자들이라고 믿고 한, 그것도 업무상의 기밀인데 그렇게 가볍게 아무렇게나하면 어쩌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또 다르다. 선박이 외지에 가면 그곳 Broker들에 의해 용선, 매선 또는 영업을 위한 자료로서 Inspector를 붙이는 것은 당연한 일. 일단 소개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설사 매선이 되면 되는 데로 해야지. 우리가 어쩔 것인가? 사실무근한 낭설에 술렁이지 말도록 각별한 주의를 했다. 보나마나 입 가벼운 C/E의 짓이다. 그러나 저러나 종일을 기다려도 온다던 Inspector가 안 온다.
오후 시내구경을 가다. 의외로 물가가 비싸다. 그나마 오전 9시에서 12시. 그리고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만 영업을 한단다. 철시다. 휘황찬란한 진열이 눈을 끌지만 엄청스레 비싸다. 건물들이 육중하고 규모들이 크다. 전봇대가 전혀 없는 시가지, 인도가 좁다. 길거리에 4-50미터 간격으로 주유소가 간단하게 만들어져 있으나 셀프스비스다. 인도(人道)까지 점령한 Restaurant의 의자들, 길가의 우거진 녹음. 가끔가다 만들어진 넓은 광장과 그기서 유유히 노는 비들기 떼들, 그리고 사람들이 맑고 깨끗하다. 헌옷이나마 흩어러지게 입은 사람이 없어 보인다. 시가지 전체가 이웃 유고와의 국경에 쭉 쌓여있다. 불과 4-500미터 높이의 시내를 둘러싼 산을 경계로 곧 유고란다. 외국인들인가, 내륙지방의 사람들인가 관광버스가 수십대씩 모여 있다. 환전상이 곳곳에 있는 걸 보면 외국인이 많이 오긴 오는가보다. 우연히 갑판장영감과 어울려 모처럼 아가씨를 찾아보았다. 영화! 알지도 못하는 시컴털털한 거로 시간을 떼고 다소 땅거미가 짙기를 기다려 예의 그 골목을 기웃거렸다. 있긴 있다. 두 여인이 부른다. 보자기를 가웃이 둘러썼다. 곁에 가보니 놀랄 일이다. 여인이 아니고 할머니다. 50줄은 충분하고도 남으리다. 달러면 10불, 리라면 10,000리라란다. ‘보승 갑시다’ 아무래도 생각이 동하질 않는다. 좀 야위고 머리가 아주 짧은 그 할머니 ‘One for me, One for you’하며 손가락으로 자기의 가슴을 가르키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보승 생각이 어떻소?’ ‘우리 마누라도 늙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늙었고 또 늙으면 재미가 적소엥-.’ ‘그래도 선장님 엊저녁에 나갔던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젊은 것들은 없다 하던데 -.’ 미련이 있나 보다. ‘보승 그럼 그냥은 도저히 안 되겠으니 어디가서 한잔 걸치고 합니다.’ 길가의 식탁에 앉았다. 맥주 두 잔씩에 Roast Beef. 그리고 Tomato Spaghetti. 일금 12,300L란다. 그간 선내 분위기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별 문제는 없단다. 대체로 원만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미해결된 금전문제. 중도 귀국자들의 문제, 기타 잡다한 건건들이 있었으나 대강 이번 Las에서 모두 쉽사리 해결될 것들이다. 다행이다. 12시 가까워 다시 여인들을 찾았다. 헌데 없다. 그 늙은 할매들도 어느 놈이 차고 가서 씩씩거리고 있나보다. 아니면 영업을 마쳤는가. 담배 한 까치만 사자는 젊은 놈(그도 한잔 걸쳤다). 그냥 한 대주고 불까지 댕겨주며 어디가면 또 있냐고 물었다. 저기 저 골목으로 가란다. 다시 열나게 뒤졌으나 없다. 우중충한 골목. 언덕 위엔 옛날 성터가 있다는 곳이라 그런지 원형극장의 자리가 남아있고 성터의 담 같은 흔적이 주택가에도 있다. 재수 없는 저녁이다. 허나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찌 그런 나이에 그런 업(?)을 할까. 두 사람 곁에서 얘기할 때 저쪽에 서있다 닥아와서 말을 붙이던 그 할머니는 60은 족히 됐을 거라는 보승영감의 얘기다. 나는 분명히 보지는 못했다만. 정말 돈을 벌어먹고 살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이왕 늙은 몸 끝까지 엔조이 하려는 것, 그도 아니면 몸소 벌어 어디 해외관광이라도 가려는 것인가? 설사 얼큰한 기분에 따라 갔을 지라도 아무래도 成事(?)는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남는다.
19th. June(일)
우연히 Venice에 가자는 의견에 따라 국장, 1항사. 1기사와 넷이서 나섰다. 09:20분 발 기차로 -. 약 2시간의 거리다. 우선 1인당 10,000L씩을 갹출하여 표를 사고 나갔다. 개찰구가 없다. 출찰구도 없다. 기차는 6명이 한 조로 되어 있는 독방형식이다. 영화에서 가끔 본 일이 있어 낯설지는 않지만 막상 실지로 타보니 감개가 깊다. 모처럼의 기차역, 그것도 외국에서다. 쌓였던 마음의 울적함이 탁 트이는 듯하다. 끝없이 넒은 바다 위에서 트이지 못한 마음들이 땅위에서 산과 들과 나무 그리고 집들로 막혀 있는데도 시원하게 틔어오는 마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렇게 익은 밀밭. 한창 자라고 있는 옥수수. 우거진 이탈리아 뽀푸라 숲덩어리. 아직 열매는 뵈지 않으나 한참 열기를 머금어 가고 있는 포도밭들. 우리의 농촌과 별반 다를 게 없으면서도 군데군데 들어앉아 있는 흰벽, 붉은 기와지붕의 아담한 집들이, 창마다 유난히 빨간 꽃들이 담긴 화분이 놓인 아파트들이 우리와는 전연 다른 감흥을 준다. 싱그러운 녹음이 질서 없이 흩어진 속으로 기운차게 달리는 열차 여행에서 모두들 흡족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도중에 차표 검사가 한번 있었다. 그 후 1항사가 차표를 분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열차원에게 신고를 했더니 자기가 검표를 했으니 염려 말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느 역이고 출찰과 개찰이 없이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으나 단 열차 내에서 검표시 발각될 시는 사정없이 벌금을 물어야 한단다. 공짜 승차 때문에 귀찮스런 검표. 그러나 출찰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Venice에 가는 마지막 역 Mestre에서 약 2마일을 기차와 자동차가 바다 위를 함께 달린다. 얕은 바다위에 75,000개의 파일을 박아 1846년에 육지와 연결했고 기찻길은 1954년에 개통했단다. Venice! 바로 거대한 하나의 도시가 물위에 떠 있다. 역 광장이 곧 Grand Canal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버스는 일반 객선이고 택시는 Motor Boat이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Gondola. 운하를 걸치는 무지게 다리들.
이 Venice의 역사는 서로마제국의 퇴폐와 함께 만족의 침입에 의해 시작되었단다. 이 만족의 침략에 의해 육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 늪지대나 얕은 바다에 산재해 있는 작은 섬에 피난. Aquileia인, Altino인, Padovax인 들은 처음으로 Rialto를 중심지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운하와 다리를 건설하여 교통망을 구축하였으며 이것은 명실공히 도시계획에 의한 것으로 대운하와 소운하를 만들어 400개의 다리로서 118개의 작은 섬을 연결한 것이 곧 Venice란 도시가 됐단다. 유창한 영어를 쓰며 Card, Slid 등을 파는 보리짚 모자를 쓰고 눈이 파란 청년이 친절하게 안내를 하면서 상술 좋게 10,000L 가까운 매상고를 올린다. Taxi라 불리는 모타 보트의 늙은 운전수도 한몫 끼었으나 일단 시간이 되었으니 점심부터 먹고자 골목으로 들어섰다. 붐비는 관광객들, 태반이 유리제품인 기념품상들의 휘황찬란하게 진열해두고 꾀어 들인다. Pizza가 이태리 특유의 음식이라기에 먹어보기로 하다. 쟁반 같은 크기의 납작한 빵 위에 고기, 버섯 등을 양념과 함께 버물려 얹어 토굴 같은 아궁이에 자루 달린 삽 모양의 가래로 집어넣어 구워낸다. 별미로 먹을 만한데 둥근 빵의 태두리가 너무 딱딱하고 질기다. 제기랄 비싸기는 또 -.
버스를 타고 Grand Canal을 거쳐 St. Mark's 광장을 구경, 다시 유리제품의 생산지인 Murano섬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버스비 일이당 100L. 싼 편이다. Grand Canal을 군데군데 거친다.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웅장한 교회 그리고 각색의 건축양식, 바로 문 앞까지 찰랑거리는 물결, 틈틈이 보이는 소운하(그게 바로 골목이다)를 오르내리는 곤도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센트 마르크스 광장. 대사원을 향해 폭이 57미터의 넓이로 건축가 Anarea Tirale가 1723년에 粗面岩을 써서 건설했단다. 대사원 내부에 전 벽과 천장에 장식된 모자이크의 섬세함이 놀랍다. 그림 한 조각은 전부 모자이크이며 기둥과 기타 벽면은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윗층의 층계와 각 실 구조 등이 지금까지 영화에서만 보아왔던 중세기 수도원이나 사원 바로 그것이다. 광장에 수많은 사람과 함께 그 복잡함을 더해주는 비들기 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노닌다.
한 Restaurant앞에 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팀의 악단이 감미로운 연주로 나그네의 시름을 달래준다. 아코디온을 켜는 머리가 하얀 그 영감님 젊었을 때는 제법 한가락 했을 성 싶다. 일본인으로 본 모양인지 일본노래 한가락을 뽑아준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으려면 들어와서 찍으라고 권한다. 광장 옆으로 지금은 모두 상점가로 되어있다. 한쪽 벽면에 女神像이 크게 부각되어 있는데 두 여인이 마주보고 서있다. 그런데 오른쪽 여신은 半裸人이나 천을 둘렀는데 마침 한쪽 볼기짝이 살짝 들어나 보인다. 헌데 그 부분만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기에 하얗게 닳았고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다. 나 역시 한번 만져보았지만 결국 나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저렇게 되었으리라. 사람의 마음(아니 전부가 남자였으리라 전 볼기짝을 만지고 간 사람들은-)은 똑 같은가보다. 더 탐스러운 양 젖무덤이 벗어진 체 있으나 손이 닿기에는 너무 높다. 손이 닿지 않으니 먼지만 쌓인 체 걸려있다.
St. Mark's 대사원, 이것은 공화국의 정치 종교 사회의 모든 역사적 보고란다. 829년 총독 Giustignano Partecipazio(?) 시대에 복음전도자 성 마르크를 이 도시의 수호신으로 모시기 위해서 창설. 927년에 화재로서 소실, 1043년 -1091에 걸쳐 재건되었단다. 건축양식은 Byzantine교회로 지었고 Greek 십자형의 설계도로서 원형지붕(Dom) 으로 덮었다.
그러나 Romanesque양식의 감각이 있고 처음의 교회는 간소했으나 시대와 함께 모자익이나 대리석, Byzantine양식, Gothic, Islamic 그리고 Reneissanc양식으로 동양풍의 장식이 곁들어 황금의 대사원이라 불리며 미술적으로 Venice의 걸작이라고 한다. St. mark's 사원 곁에 있는 Ducal Place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이 있다만 지정된 날 이외는 개방하지 않는다니 부득이하다. St. Mark's 소광장 맞은편에 떠있는 듯한 San Giorgio Maggiore섬은 마치 꿈의 궁전같다. 982년말부터 Benedictine파의 수도승이 살았으나 지금은 Gforgio Cini Foundation (국제예술문화진흥회)가 설치되어 있단다. 다시 5번 버스를 갈아타고 Murano섬으로 가다. 이 섬의 유리세공은 1289년부터 시작. 15-16세기에 찬란하게 꽃피우다가 일시 쇠퇴했으나 지금 다시 수공예 상품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되찾고 있단다. 공장 견학을 무료로 시켜주고 자기의 제품을 판다. 이글거리는 가마속에서 쇠 꼬챙이에 찍어낸 유리액을 조그만 핀센트 모양의 집게하나로 마치 떡 주무르듯 자유자제로 만들어 나간다. 숙련이리라. 근 7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공장치고는 너무 규모가 작고 초라하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이름이 남나있는지도 모른다. 유리로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할만큼 갖가지 상품을 만들어낸다. 비싸지 않고 보관하기만 쉽다면 몇 가지 쌌으면 싶어진다.
현란한 샨데리아, 금박, 은박을 한 유리집기들, 값이 붙은 만큼의 가치는 있으리라 싶다.
Murano 이웃의 Burano섬에는 여성들의 Lace가 유명하단다. 이 수공예술은 경제를 변영시켰으며 한 개의 바늘로서 창작해내는 그 기묘하고 다양한 작품을 15세기부터 세계각국의 여성들이 애용해왔고 프랑스 왕비 Medici가의 Catherine는 노련한 레이스자수를 보호했단다.
오후 5시반 역까지 왔다. 겉만 보고 만 셈이다. 많은 박물관과 그 안에 있다는 미술품들을 못보고 가는 것이 못내 서운함이 되어 뒤를 돌아보게 한다. 없는 놈이 이만한 여행도 과분한 것이렸다고 자위하는 수밖에 -. 재떨이와 라이타를 한 벌 쌌다.
영국의 문호 섹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 지독한 유태인 상인 샤일록이 어째서 이런 Venice을 배경으로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 그 파란눈의 젊은 청년, 음식점, 기념품상에서 한 푼 에누리없이 받아 챙기는 그 상혼에서 그럴 만하다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는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해상에 세운 피나는 노력의 대가를 잊지 못했으리라. 이 사람들이 수백 년전에 이러한 役事를 하는 동안 우리의 조상들은 무엇을 했던가? 우리의 역사적인 유적인 석굴암, 불국사 등과 비교해 볼 때 그 섬세함이나 정교함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규모면에서 너무 작고 소극적이었음을 느낀다. 각 건물마다 장식된 수많은 조각품들은 이태리예술의 한 부부이라 본다면 어느 정도 그 전체를 짐작해 봄직도 하다.
귀로! 짧은 시간에 쫒긴 피로가 따른다. 잘못 탄 기차. 어김도 사정도 없이 받아 챙기는 차비. 외국인으로서 처음길이라 잘못 기차를 탔다는 한 조각의 동정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두어 시간 더 늦어 자정 가까운 시간에 귀선하다. $20 가까운 돈으로 모처럼 보람 있는 여행을 했다 후련하다.
20th Jun(월) 1977
아침에 냉동기 냉각수배출구에서 원인 모르게 흰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퍼져 주위의 바다를 덮어나간다. 결구 말썽이 났다. 해운당국에서도 조사가 나오고 쓰레기 掃海船 2척이 거품을 치운다. 본선 기관실에 연락, 그 원인을 알아본다. 그럴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단다. Sea Chest를 선저변으로 King Stone Valve를 바꾸어본다. 안 생기다. 이상한 일이다. 아침에 No.3 선창의 Bilge를 몇 바가지 퍼냈을 뿐이라는데 -. 그게 원인이라면 큰일이다. 대리점에서도 왔다. 일단은 본선의 책임으로 보고 소해선 Charge도 Owner가 물어야하는데 보험회사가 어디냐고 묻는다. 몇백 만 리라는 될 것이란다. 여기다 벌금까지 합쳐진다면 -? 더욱이 여기는 요트장이다. 쓰레기를 매일 소해하는 걸 보면 제법 까다로운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쓰레기 운반선도 2-3일만에 한 번씩 왔다간다. 당국에서는 수병차림과 장교차림의 2명이 와서 거품을 채취하면서 저들말로 뭐라고 시부린다. 답답하다. 이걸 어쩐담. 최후에 가서 Owner측 Surveyer를 붙이더라도 우선 Sign은 하지 말아야겠다.
드디어 왔다. 선장의 Passport부터 조사하기 시작한다. 우선 설명부터 했다. 본선의 냉각수는 해수를 쓸 뿐, 그 System부터 -. 지금은 왜 안 나는냐? 선저변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수질이 관계가 된다고 보고 해수의 수질부터 검사하자고 맞섰다. 헌데 선뜻 본선 선수부근의 부두의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구에서 많은 물이 나오는 걸 본 기억이 있어 그길 한번 가보자고 했다. 어거지라도 데를 쓰자 싶었는데, 어라! 바로 이게 범인이다. 지금도 허연 거품이 뭉텅뭉텅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렇지. 봐라. 본선 책임이지 아니지 않느냐? 마침 거품이 본선 선수부분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고 밖으로 밀려나오지도 않은 체 모여 있었다. 큰 덩어리 하나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만약 그 시간에 여기서 거품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전부 뒤집어 쓰야 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이제는 대리점, 항무국 소해선 등 자기네들 끼리 목청을 돋운다. 대리점 녀석에게 나는 아는 바 없으니 간다. 했더니 그래란다. 슬쩍 꺼져 버리는 게 상책이다. 아예 쓰레기도 Sign하고 미리 쓰레기 선에 버리고 기름의 유출도 적극 방지하도록 강조했다. 까딱하다간 큰일날 일이다. 등판에 땀이 나다 만다.
점심시간에 청년 혹은 소년들이 요트놀이를 한다. 조정도 있고 1장 돛을 사용한 소형이다. 그러나 날렵하게 조정해가는 그 모습도 시원스럽지만 어려서부터 바다를 상대로 저러한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정신적 자세가 가상하다. 불과 10여세의 얘들이 몸소 노를 젓고 돛을 펼치며 바다에 도전해 가는 정신이 곧 성장하면서도 항상 무엇인가의 커다란 모험심을 기르고 나아가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를 낳았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그만한 경제적인 뒷바침이 따라야 한다. 근래 보아서 알 듯이 일본에서도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마작이나 빠징고가 극성스레 유행하더니 그 다음이 좀 더 동적인 볼링이 어디가나 성했고 이제는 사양에 접어드는 반면 낚시와 Golf가 대유행을 하고 있고, 더 있는 놈들은 요트를 즐기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하나의 레저로서의 사회적 유행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도 있지만 직접 얘들이 임할 때 받아들여지는 기성세대들의 사고방식 또한 생각해 볼 문제다. 좀 더 활달하고 진취성 있게 하려면 어려서부터 보다 넓고 스케일이 큰 놀이를 경험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딱지나 치고 땅뺏기나 하고 노는 우리 애들!.
위험하다고 자전거도 마음대로 못 타게 하는 우리 사회의 부모들이 좀 더 먼 훗날을 바라보는 의미에서도 고려해야 할 문제일거다. 인생이란 곧 생활과 그 체험이자 가벼운 추상이나 기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 우리도 항상 부단한 노력과 함께 스스로 찾아 움직여 가는 생활의 습관을 기르고 익혀나가야 할 것이다.
21st. Jun(화)
Agent 사무실을 찾았다. 德丸, 대아, 그리고 집에 띄우는 우편물 때문이다. 德丸에는 통신용 Battery교환 때문에 여러 번 Telex가 오갔다가 여기서 Change 하기로 했는데 정작 보니 Size와 Capacity가 안 맞다. Las에서 하기로 하되 사전준비를 의뢰하는 것 등 몇 가지가 된다. Mr.Abrami, 콧수염이 여덟팔자형으로 아주 멋있게 긴 녀석이 훤칠한 키에 반겨 맞아준다. 어제 거품사건이 신문에 났는데 너의 배는 아무관계가 없단다. 16면의 ‘IL PICCOLO' 신문의 4면에 거품을 소해하는 사진과 함께 실렸다 본선의 船名이 났으나 읽을 수가 없어 물었더니 해수오염을 탓하는 내용일 뿐이란다. 만약 본선의 Miss였더라면 개망신에 큰 Claim을 덮어 쓸뻔했다.
오후 다시 들렀더니 통신장이 이번에 Las에서 교대한다는 전문이 있다. 영감님이 어린애 같이 좋아할 모습이 떠오른다만 내게는 다시 염려가 된다. 다시 이런 사람이 교대를 해올 것인가? 좋은 사람이어야 할텐데 -. 작년 ‘TUNGHO’의 林岡(무라오카)같은 놈을 만나면 지랄이다. 저녁 후 혼자 거리에 나왔다, 분명한 목적이 없는체-. 그저 걸어보고 싶었을 뿐. 자꾸만 마음이 비고 그 자리가 점점 커져간다. 마음의 공허는 마음 아닌 다른 것으로 매꿀 수는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초조함과 안정되지 못한 정신, 거기다 점점 심해가는 불면증세, 환상, 종일 어리한 상태, 분명히 병적 증세 같기도 하다. 거리에 나서고 광장을 거닐고 해서 다소 마음이 안정되고 풀려지는 것은 아니다. 찬란하나 Show Window에 진열된 고급상품, 갖고 싶은 욕망, 또한 그를 가능성이 없다는 실망감을 위로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벌어야 한다.’는 -, 그래서 나도 내가 설 땅위에서 가지와 잎을 거느리고 충실하고 굳굳하게 자라야 한다는 되새김질! 그러나 간사한 눈과 마음은 자꾸만 외형적인 가치만을 닮아가고 따라간다. 그것은 드디어 내 자신을 먼 꿈속의 나라로 빠져들게 하고 만다. 엄연한 현실 속을 걸어가고 있으면서도 내 내면의 세계는 먼 곳이 되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엇갈려 작용한다. 이태리제가 유명하다는 구두, 가죽제품들, 바닥과 끈만으로 만들어진 여자용 구두, 그 부피나 무게가 값으로 친 지폐만큼의 무게도 안 되리라 생각되는 가격. 마누라의 좋아할 모습. 시퍼런 몇 장의 귀한 $가 줄어드는 환상. 한국돈으로 환산했을 때의 놀라움. 그 물건의 가치는 단순히 가격 그 자체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자신을 잃고 쳐다보다가 민망스러워 물러나길 여러 차례. 세계적인 유명화가들의 명작집. 저런 것 한 질쯤은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는 여인들의 채취, 그리 짙은 화장도 아닌데 향기로움이 있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도 있다. 살결이 너무 곱다. 희다 못해 하얗다. 보얀 살결이 마치 어린애 같다. 동양인으로는 도저히 흉내내거나 따라 갈 수 없는, 본래의 바탕이 다르기는 하지만 진짜 곱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 한국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단연코 우리의 여인들이 예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생리가 닮아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분명히 중년 이상의 서양 여인들은 보기가 좀 뭣하다. 허나 어린애들과 그 예의 살결 고운 여인들만은 그렇지가 않다. 탐스러운 얘들은 꼭 갖고 싶은 노리개 같기도 하다. 반면에 탐욕스런 여인도 있다. 브레지어도 없이 얇은 샤스 한 장만 걸치고 엉덩이살이 비쳐뵈는 짧은 바지, 아니면 착 달라붙은 브르진 차림의 여인들이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출렁이는 젓무덤과 젓꼭지의 움직임! 가뜩이나 어리한 정신을 더욱 침울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공해의 하나다. 그것이 한쌍을 이루었을 땐 더욱 심한 공해가 된다. 잠시나마 자신을 잊고 몰두하기에는 그래도 영화가 좋은 편이다. ‘LISE’, 작금의 영화도 점점 잔인무도해져 간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사람을 개에게 먹히게 하는, 어쩌면 극을 이루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러한 것이 하나의 사회상을 고발하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또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들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그 여부는 고사하고라도 가장 잔인하고 극악한 것이 인간뿐임을 시사한다. 간간히 나오는 Porno장면, 너무나 적나나한 Scene에 오히려 이상한 흥분과 반감을 자아낸다. 극장을 나서니 후두둑 비와 함께 바람이 분다. 저녁이면 사람의 인적이 드물어지는 거리에 비바람은 뿌리는데 아무도 없다. 내 자신의 발걸음소리가 저 골목까지 울려 퍼진다. 제법 돌풍 같은 바람이다. 거리의 잔모래가 날려 얼굴과 눈을 때린다. 으스스한 한기마져 느껴진다.
22nd. Jun(수)
부쩍 불면과 우울증이 심한 하루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는데 -. 소화장애도 오는 듯하고, Camera나 Tape Record라도 사서 그기에 정신적으로 몰두 시켜볼까?
너무 비싸고 마땅한 것이 없기는 하다만. 아니면 촬영기와 영사기를 사서 취미를 붙여볼까? 다시 시내를 나섰다. 기분에 맞으면 살 각오로 호주머니에 100$짜리도 두어장 넣었다. 결과는 마찬가지 -. 꼭 비싸고 마음에 든 것이 없었다는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미지근한, 결단성이 없는,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만 그놈의 성격탓이었으리라. Camera와 촬영기는 그 효과에 대한 의식적인 작용이 있기는 했다. 그게 내 자신을 위해 기념이 된다는 것 말고는 정말 무슨 보람이 있을까? 차라리 이런 곳의 풍물이나 자연을 담아서 후일 얘들에게 좋은 참고를 만들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벌써 이번에 나와서 거친 나라수만 해도 5개국이다. 도시로 치면 7개 지방을 다닌 셈이다. 처음부터 만들어 보았으면 좋은 것이 되었으리라. 유태인들은 평소에 그렇게 박식하고 모든 분야에 전문가 못지않는 상식을 가지고 세계어디를 가나 누구를 상대하거나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게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각처의 풍경과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부모들이 얘기해서 접하게 해줌으로서 막상 처음 당하게 되었을 때도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해주기 때문이라 했다. 그걸 위해서 여행하는 나라의 풍습, 습관 등을 소형 카메라나 스라이드에 담아 기록하여 보관하였다가 가족이 단란하게 모였을 때 즐기면서 소개를 한다고 한다. 스라이드를 모으고 만들어보자. 비록 오늘 결정을 못 내리고 어정거리고 말았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으리라. 그래서 정신을 한곳에 모으자. 이래서는 안 된다. 하루의 생활이 공상에 떠있다.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가? 하루는 오직 내 것이고 정해져 있으며 변함없는 속도로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돈? 여자? 돈은 계속 벌면 되고, 여자는 돈으로 사면되지 않는가. 과연 산 여자에게서 흡족한 뿌듯함을 느낄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 결코 실망과 후회와 한동안의 염려를 갖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여인이 있다면 주저할게 뭐 있는가? 돌이켜 보아라. 지난날의 경험을! 그걸 너무나 뼈저리게 몸소 겪은 바이기에 지금도 분명히 自意的으로 피하고 있지 않는가? 집을 향한, 아내를 그리는 연민의 정, 얘들에 대한 사랑의 선망,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몇 년째다. 또한 앞으로 얼마나 더 물길을 갈 것인가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왜 이 길을 택했는지 그 근원적인 이유부터 따지고 재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 휘황했던 꿈이 곧 엄연한 현실이 되어 지금 끝 끌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분명히 이룰 수 있다는 자신과 또 실지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心機一轉! 왜 다시금 전에 없던 신경쇠약증세가 나타나는가? 이것은 분명히 내 스스로의 정신자세에서 오는 탓이다. 벌써 며칠간이 책을 들지 못하고 있다만 꼭 쳐 박혀서 책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이 유익한 게 아니다. 한 치의 시간이나마 마음 흡족하게 후회 없는 순간이 되도록 하면 된다.
지나가던 소년 하나와 7-8세 되어 보이는 머슴애가 자꾸만 배를 쳐다본다. 큰놈이 가자고 해도 작은놈이 미련이 남는가보다. 아마 배에 올라와 보고 싶은가보다. 오라고 손짓을 했다. 저네들끼리 뭐라 수근거린다. 아마도 형이 안 된다고 하는가 보다. 둘 다 같이 오라고 하나 두 녀석이 좋아라고 뛰어 올라온다. 좀 있으니 어머니인듯한 중년 여인도 왔다. Bridge도 구경시키고 Radar도 뵈주는 등 구경을 시켰다. 오스트리아인이란다. 고맙다며 꼬마가 악수를 청한다. 약간은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버릇이 된 모양이다. 가면서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준다. 신기한 모양이다. 코가 유난히 오똑하고 머리가 갈색인 꼬마의 즐거운 표정이 내게도 만족스럽다. 어시장에 붙은 자그만 水族館에서 살아있는 海馬 세 마리를 처음으로 봤다.
23rd. Jun(목)
새벽4시 C/O가 깨운다. C/S 韓有成이 과음 끝에 소란을 피운단다. 엊저녁에 술기가 있는 것을 보고 불러서 주의를 했는데도 -. 큰일이다. 저 작자의 술버릇은 내가 진작부터 안다. 술의 양이 많아서가 아니다. 한 잔의 맥주에도 사람이 돈다. 보통사람의 취기와는 전연 다르게 마치 정신이상자와 같다. 올 때 벌써 수없이 다짐을 했고, 벌써 금주했기에 그 동안 몇몇 배를 무사히 마쳤다는 실적이 없었다면 거절했을 사람이다. 전에 동방51호시절 姜 勳 선장의 처이모부되는 사람이다.
난감한 생각이다. 당장 귀국조치시키는 것이 상책이긴 한데 -. 너무 멀지만 않으면-.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말은 정상이다. C/E와 싸웠단다. 그 작자도 개새끼다. 나이들고 책임자인 주제에 -. 종일을 그냥 두게 하다. 술이 깨지 않는 한 왈가왈부해봐야 소용이 없다. 아침까지 술을 먹었단다. 전 선원이 들고 있어난다. 작년에도 C/S 때문에 말썽이 있었다. 이름이 김경태이던가? 젊은 놈이 쥐뿔도 배운 게 없는 작자들이 그렇다. 역시 인간이란 그가 타고난 인간성이외도 교양과 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혹시 내 자신에 어떤 결함이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감하다. 물론 C/S란 직책 자체에 대한 고충이나 성질을 이해는 한다. 그래서 항상 인간성의 회복, 인간관계의 유지, 믿음 그게 없으면 안 된다고 늘 주장하고 유의를 해왔다. 그것은 기술이전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포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맛있는, 좋은 음식보다 성의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성실한 자세를 먼저 보이라고. 한마디로 그는 이 일을 한 성격의 소유자가 못된다. 3개월밖에 안됐는데-. 일단 Las에서 교대를 의뢰했을 때 역시 문제가 남는다. 그 한 달 뒤에 있을 6개월 연장자들의 교대, 엄청난 교대비용. 작년에 이어 다시 3개월만에 C/S의 문제가 되는 회사의 견해. 3개월만에 온다는 것을 알고 올 다음 사람과 보냈다는 현 선원들의 묘한 감정의 갈등 등.
일단은 술이 완전히 깬 다음의 태도를 보자 횡설수설한 얘기의 내용에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종일을 꾸리한 기분 속에 보낸다. 빌어먹을 놈들. 꼭 한 두 놈이 속을 썩힌다. 설친 잠이 자꾸 눈까풀을 아프게 한다. 기다리던 Broker 놈들이 오늘에사 왔다.
24th. June(금)
국장이 몸이 불편하다고 병원을 의뢰한다. 너무 하역이 늦다. 이런 상태론 이 달말까지 걸리겠다. 야간작업과 육상크레인 사용문제가 있으나 Stevedore가 없으니 안 된겠단다. 그기다 가끔 Strike까지 곁든다. 빌어먹을 -. 노동자들에 대해 대리점이나 Foremen이 꼼짝을 못한다. 그만큼 노동자들이 Power가 막강하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어느 정도까지 자기들의 일을 수행한 다음에 쟁의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전부터 이태리의 파업은 신문에서도 간혹 읽은 적이 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실감이 난다. 지나친 파업이나 태업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봐서 커다란 손실이다. 더구나 외국관계인 선박업무에 있어서 滯船料를 만약 貨主인 이태리회사가 문다면 그들의 무성의한 작업지연으로 인한 외화의 낭비를 초래한다. 하여간 좀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독촉차 Agent를 방문했다. 그놈 콧수염을 길게 기은 Mr, Abrami, 저도 동감이란다. 11시 다시 오란다 병원 수배한다고-.
국장과 함께 병원을 가다. 조그만 아파트 하층에 자리 잡은 내과의원. 의외로 국장의 肩痛이 심한가보다. 렌트겐을 찍는 것이 아니고 직접 비춰본다. 사람의 내부, 특히 뼈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허파의 움직임도 나타난다. 신기하다. 마치 자신의 겉뿐만이 아니고 속까지 완전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은 별로 안 좋다. 왼쪽 어께 관절부분에 약간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노환이 곁던 것도 같다.
C/S 사직서를 들고 왔다. 어제 오후 다시 불렀더니 술기가 남았고, 그 횡설수설이 그치지 않아 내려보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술기가 갔다. 술만 들면 술 이외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그. 두 눈이 충혈됐고 퀭한데다 얼굴이 말이 아니다. 가여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이 40세. 집에는 하늘같이 믿고 기다리는 처자식이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귀국하는 것만이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아니고 하나의 인생살이에 낙오가 아니냐. 이 사람아! 술을 다시 마신 이유가 뭐냐? 낮에 나한테 20$를 가불해가면서 ‘뭘 그리 많이 써느냐?’고 한 말에 화가 났었단다. 에라이 병신같은 사람아!. 그게 말이라고 해. 그 말이 그렇게 충격을 주던가?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가불해주면서 그냥 순순히 내주지는 않았다.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없는 우리 형편에 한 푼이라도 아끼고 집으로 가져가자는 뜻에서, 또 그것이 선장으로서 마땅히 할 수 있고, 해야 할 입장이므로 해왔다. 물론 네 돈이지만 정식으로 지급되기까지는 네 것이 아니고 내가 편리를 봐주는 거다. 정말 그게 더럽고 가는 것이 좋고 배를 안 탄다니 보내주마. 육상에서도 그런 정신상태면 뻔하다. 오히려 배가 몇 십배 쉽다. 이것은 인간 한유성이를 보는 나 개인의 견해로서 참고하라고 이르는 말이다. 고개가 푹 숙여지고 충혈된 눈에 김이 서리고 -. 최선을 다하고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으니 한번만 용서를 -. 어쩌구 한다. 이제는 전 선원이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술 먹고 한 소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스스로 한번 알아봐라. 꼭히 그렇다면 오후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자.
오후 5시. Saloon Class 와 양 직장이 참석한 회의가 3시간 결렸다. 본인을 불러놓고 따지고 묻고 퍼부었다. 과연 그가 참고 견디어 가는가 보고자 했다. 그 과정은 쓰지 않기로 하자. 결과는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단 행위자체는 어긴 것이 분명하니 징계조치하고 본인으로서 다시 음주했을 때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이 항구를 출항시까지 상륙을 금지시키고 전원에 대한 이해는 각 사관 및 직장들이 시키도록 끝을 맺었다. 일단락을 지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시원치 않다. 과연 그가 끝까지 지켜줄 것인가. 그것은 한유성이란 개인이 자신과 싸워 승패를 가름하는 자신의 투쟁이 있을 뿐임을 잘 안다. 그걸 기대하는 수뿐이다. 내일은 토요일 기관부 갑판부 어울려 13명이 베니스를 구경간단다. C/E의 책임과 인솔하게 다녀오기로 하다.
25th. Jun(토)
식전 5시경 깨운다. Venice에 간다고 야단이다. 돈 좀 더 빌려달라고도 한다. 다녀오겠다고 깍듯이 인사를 하는 이도 있다. C/E에게 거듭 안전여행을 당부, 06시차로 보냈다. 오후 2시까지밖에 작업이 없다. 놈들! 어제 Agent는 오늘은 종일 내일 일요일은 오전까지 한다더니. 역시 Stevedore들의 부족 때문이란다.
조용한 하루였다. 오후부턴 비가 온다. 많은 비는 아니나 가끔 뿌린다. 선원의 반수가 떠난 뒤 선내는 텅빈 빈집 같다. 오후 4시 심기일전의 심정으로 시내를 뒤졌다. 꼭같은 녹음기인데도 값의 차이가 심하다. 녹음기 Philip제 Austria조립품을 60$에 구입. 전원이 220V로 선내 전원과 맞지 않아 변압기까지 사야했다. 이걸 계기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쏟아보자. 궂은 날씨 탓인가 왼쪽 어께의 통증이 계속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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