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주 < 2018.5.8~5.16>
독일일주여행(상)/<프랑크푸르트/튀빙겐/헤힝겐/퓌센/헤렌인젤/뮌헨/밤베르크>
매년 봄철 여행하기 좋은 시즌에 유럽 여행을 다니고 있다. 예전에는 한나라가 아니라 서유럽,동유럽,북여럽, 그리고 이베리아반도(스페인,폴투갈).터키-그리스.발칸반도 등 몇몇나라를 묶어서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많이들 다녀왔다. 그러나 몇년전부터는 한나라씩 혹은 한나라도 남부ㅡ북부 등 나누어서 상품화 하고 있다. 필자도 남프랑스,영국,이태리,스위스에 이어 금년은 독일 일주여행을 다녀왔다. 9일간이라지만 워낙 먼 거리라 오고 가는데 2일을 빼야 하니 사실은 만 일주일여행이다.만족스런 여행에는 물론 여행지의 풍광이나 유적유물,먹거리 등이 좋아야 하지만 마음대로 선택하기가 어려운 날씨와 우리의 신체적인 건강상태도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필자가 택한 시기는 늘 5월초~중순이 가장 적기라 여긴다.
제1일 인천국제공항-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광교중앙역 버스지하탑승장에서 아침 7시48분 8877번 공항버스를 타고 9시경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온 셈이다. 10시 수속을 마치고 12시20분에 보딩. 12시50분발 KE-905편이다. 늘 똑같은 고생은 비행시간에 잠이 오지 않는 것. 낮시간에 억지잠이 올리 없다. 아예 영화시청으로 마음을 굳힌다. 외화 클레오파트라,황금연못에 이어 방화 남한산성,아이켄스피크 모두 네편을 관람했다. 평소 영화관에 가질 않으니 이런 기회에 보충하는 기분이다. 비행중 식사도 두번(간식포함)- 몇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좋다.
현지시간 5시10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입국수속을 밟고 현지의 대형버스에 오르니 오후 6시20분이다. 한국과 시차가 7시간 있어서 한국시간으로 따지자면 심야 1시가 지나는 시간이다. 기사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마틴이고 현지 가이드는 프랑크푸르트에 10년이상 거주하고 있는 이~선생이다. 가이드에 따라 여행의 만족도는 오르내린다. 다행인 것 같다. 실력있고 친절하다.버스내에 외부온도가 시시각각 알리고 있다. 도대체 맞는가? 29도를 가리킨다. 우리가 도착한 프랑크푸르트는 인구가 68만명으로 허브공항으로 교통의 중심 대도시다. 유럽의 도시는 중국,일본,한국처럼 도시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 독일 도시중 100만이 넘는 4대 도시는 베르린,뮌헨,함부르크,쾰른 단 4개뿐이다. 2시간 30분 가량 남으로 달린다. 5번 오토반이다. 속도는 무제한이나 버스는 100km로 제한되어 있단다.고속도로 통행료는 무료이다. 슈트르가르트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제2일 튀빙겐,헤링겐,퓌센 슈투트가르트 호텔에서 8시정각에 출발했다. 숙소 방크기가 좀 작아서 약간의 불편은 있었으나 아침 호텔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여행기간 내내 우리가 타는 버스는 SETRA라는 100% 독일산으로 공장이 독일에 있단다. 한대값이 우리돈으로 8억이 넘는다고-- 튀빙겐으로 30분가량 달린다. 튀빙겐은 대학도시이다. 인구 2만5천명 중 학생이 1만5천명이다. 튀빙겐대학은 명문대학으로 특히 신학이 명문이다.철학자 헤겔을 배출했다. 대학도시라 가장 젊은 도시에 해당된다.
엄청나게 굵은 푸라타나스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 공원에서 하차하였다. 푸라타나스 굵기가 서울의 가로수의 5배는 되는 것 같다. 굵기만이 아니라 그 만큼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늘을 만든다. 또 마로니에가 지천이다. 마로니에 또한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꽃이 한창이라 아마도 지금이 시즌인가 보다. 첫날 첫 방문지가 심신의 힐링장소가 되는 멋진 곳이다. 공원 옆으로 네카강이 흐르고 건너편이 구시가지이다. 강물에 비친 구시가지의 건물들이 대칭을 이루며 멋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구시가지를 구경했다. 마르크트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가 있고 야채,과일가게,꽃가게가 마치 우리네 장날처럼 북적댄다. 여기에 주목할 포인트-헤르만헷세가 이곳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3년간 지냈다는데 방황하던 시절 여기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는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
버스로 20분을 달려 헤힝겐으로 갔다. 호엔쫄레른성 구경이다. 슈바벤 가문의 성으로 성 안의 가구,실내자재 그리고 그림까지 감상하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좀 아쉬웠다. 주변에 샛노란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어 단연 시선을 끈다. 꽃도 혼자 피는 독불장군도 있지만 뭉치면 산다는 원리를 아는지 천국을 이루고 있다. 호엔쫄레른 성은 멀리서도 높이 보인다. 호엔은 높다는 뜻이고 쫄레른의 쫄레(Zolle)는 세관을 관장하는 곳이란 의미인데 즉 세관역이란 뜻. 미니버스로 건물입구까지 다가가는데 실제는 8세기의 건물을 12세기를 기준으로 18세기에 재건했다고 한다.
점심식사후 퓌센행이다. 3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이다. 독일에 관한 일반사항을 가이드가 알려준다. 독일의 크기는 한반도 전체의 1.8배,남한의 3.5배의 면적이다. 인구는 8,300만명이고 1인당 GDP는 6만불이다. 난민으로 뉴스거리가 되었는데 현재 128만명의 난민이 있다. 사람들이 너무 안보여 물었더니 "베일 뒤의 눈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듯 실내 거주자가 많단다. 퓌센으로 가는 도중 처음으로 화장실에 들렀다. 앞으로 수차 느끼는 일이지만 독일은 화장실문화가 특별하다. 유료화장실만 존재한다. 유럽의 다른나라 고속도로상의 주유소,쇼핑가게와는 달리 무조건 유료이다. 그것도 전부 기계화되어 동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화장실 이용료가 70센트인데 50 센트의 환불 전표가 나온다 이것으로 전국 고속도로 어디서나 쇼핑에 보태 사용이 가능하다. 단지 돈으로 환불은 안된다.
갑자기 우박비가 쏟아진다. 제법 굵은 우박까지--알프스 끝단으로 흰설산이 멀리 보인다. 퓌센이 로맨틱 가도의 끝지점이다. 로맨틱이란 로마로 가는 길이지 로맨틱한 길의 의미가 아니다. 로맨틱가도는 군사보급로라는 정의가 맞다. 퓌센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했다. 이 지방의 생맥주가 나왔다. 500CC, 나는 반잔을 집사람은 입만 대고--맥주맛은 잘 모르지만 한국 맥주 보다는 좀 센 것 같다. 매일 점심,저녁 식탁에는 생맥주가 나온다니-좋다고 생각했는데 술 못마시는 나에겐 부담이 된다. 과연 독일은 맥주천국이구나 싶다. 식사후 아직 밝은 대낮 같다. 비가 온 탓인지 개울에 물이 엄청 많이 흐른다. 눈녹은 알프스 물이 흐르는 강과 뒷 설산, 예쁜 독일 가옥건물과 어우러져 풍광이 예쁘다. 교회 인근 주택가를 산책했다. 집집마다 정원을 너무 예쁘게 꾸며 놓았다. 시내 메인 상가 거리를 산책했는데 6시 폐점이라 가게마다 문을 닫았고 몇곳 일반잡화가게는 문이 열려 있었다. 샤워후 술기운에 일찍 잠이 들었다. 시차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잠을 깨니 11시.2시,4시 쪽잠의 연속이다.
3일차 퓌센,헤렌인젤 오늘 일정이 바쁜가 보다. 아침 7시반에 출발한다고 하니- 10분 후에 호숫가에 도착하여 산책을 하였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입장 티켓을 구입하자면 시간이 걸린다고-- 호수 뒷쪽에 있는 야산을 넘으면 오스트리아라고 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인 셈이다. 나무 가로수길이 이어진다. 알레길이라고 한다. 인상파 화가 80%가 알레길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오늘 가는 성이 예전에 와 봤지만 시간이 안되어 성 안에는 못 들어갔던 바로 "백조의 성"이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인상이 남았었는데-- 그 꿈이 오늘 이루어졌다. 45분간 성안을 샅샅이 돌아보았다. 그것도 이어폰을 끼고 한국어 듣기가 가능하니 얼마나 편리한가. 건너편에 보이는 노란 색갈의 막시밀리언2세의 "호벤슈아가우성"은 바이에른 왕가의 여름별장인데 루드비히2세의 할아버지의 성이다.아버지 때 수리했고 여기에 살면서 어린 루드비히는 "더 좋은 거 지을거야"를 말하곤 했는데 그가 이루어 낸 것이 "백조의 성"인 "노이슈반슈타인성" 이다. 영어로 NewSwan Stone(신백조석성)이란 독일어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 바르트부르크 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성을 호엔슈방가우 성 맞은 편에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은 지형이 험해, 그의 계획대로 성을 지을 수가 없었다. 이에 성은 당초 계획과 다른 새로운 형태로 수정 계획되었고, 1868년 건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루트비히 2세는 교권 강화를 둘러싸고 관료들과 마찰을 빚게 되면서 정치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광적으로 건축에 몰두했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외에도 다른 여러 곳에 건축물을 짓게 되면서 국고를 낭비하고, 수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결국 1886년 루드비히 2세는 의료진으로부터 정신병자 판정을 받게되었다. 그는 왕위에서 퇴위당했고, 퇴위당한 지 3일 만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죽으면 성을 부숴버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이에른의 큰 관광명소가 되었고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성도 이 성을 본뜬 것이다
헤렌킴제성 백조의 성을 감동과 함께 구경한 후 헤렌킴제성으로 간다. 배를 타고 가는데 섬 안에 지은 루드비히2세의 또다른 작품이다. 그의 마지막 성이자 최대의 성이다. 2시배를 탔다. 배타는 시간은 15분이다. 섬안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 궁전을 입장하기 위해 제법 긴 거리를 급히 걸었다. 마침내 헤렌킴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 앞에 전개되는 정원과 분수가 너무 아름답다. 프랑스 벨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고 엄청난 돈을 들였다고 한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서 한글 해설로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한참 구경 중에 집사람이 늦은 점심에 급한 속보 탓인지 급체를 당하여 휠체어로 화장실에서 음식을 토하는 등 어려움을 겼었다. 일행이 구경하는 동안 겨우 진정이 되어 돌아올때는 배타는 곳까지 마차를 탔다. 헤렌킴제성-헤렌인젤(Herren Insel)이란 남자의 성이라는 뜻이고 킴제 호수의 남자의 성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배를 타고 나와 버스로 호텔까지 1시간반이나 걸려 뮌헨에 도착하여 송어찜의 저녁식사를 하였다.
4일차 뮌헨,밤베르크,드레스덴 뮌헨이다.인구 180만의 독일 제3의 도시이자 바이에른주의 주도이다.독일어로 뮨셴이라 발음하는데 뮌헨이라는 도시명의 유래는 옛 고산 지대 독일어로 "수도승들의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무니헨(Munichen)에서 유래하였다.뮌헨의 휘장에는 수도승이 새겨져 있다. 뮌헨의 시 고유색은 신성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흑색과 금색으로, 루트비히 4세 시절부터 채택하고 있었다. 어제 뮌헨공항 근처의 메리어트호텔에 숙박을 했는데 방이나 아침조식 모두 만족스럽다.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니 호텔에서 준비한 모양인데 "Good morning, Mr. Soo-Chul Kim"이라는 큼직한 자막이 나를 놀라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한다. 약간의 정성이 고객을 감동시킨다. 아침 8시부터 나서는 걸 보니 오늘도 바쁜 스케쥴인 것 같다. 마침 이곳은 파터탁(파더데이)이다. 우리처럼 어버이날이 아니고 아버지날이다. 성역차별로 생긴 날이다.
시내관광이다. 성모프라우엔교회로 가는 길에 도보로 겔러리아백화점도 지나고 세계 일류브랜드 명품가게들을 지난다. 여자들에겐 가장 호기심 가는 가게들이다. 푸라우엔 교회 성모마리아성당에 입장했다. 2개의 둥근 후추병 두껑모양의 녹색 첨탑의 건물이 뮌헨시내에사 우뚝 서 있다. 114m로 설계했으나 100m를 넘지 못한다는 규정에 따라 실제높이는 99m라고 한다. 일명 달팽이성당이라고들 불린다. 교회 안에 바이에른 왕의 묘가 있다. 전교황 베네딕토16세가 이곳 주교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동상도 안에 세워져 있었다. 이 교회를 세울 때 악마들의 방해로 조약을 맺었는데 밝은 유리창을 악마들이 싫어해 단 한개만 세운다는 조약을 맺었단다. 발자국이 찍혀있는 곳에서는 단 하나밖에 안보이게 설계되었다고-
시청사 앞 마리엔광장은 역시 전세계관광객들로 붐빈다. 17세기에 세워진 성모마리아상이 광장 중앙에 있어서 마리엔광장으로 불린다. 마리엔 광장(Marienplatz)은 뮌헨 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광장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신시청사를 비롯하여 프라우엔 교회 등 관광명소가 집중되어 있다. 광장 주변에는 고급 부티크 및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어, 산책과 쇼핑에 좋다. 중앙에는 시의 수호신 마리아의 탑 Mariensaule이 서 있다.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노천까페와 아기자기하게 예쁜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가끔씩 광장의 거리에 악사들이 공연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신시청사 뮌헨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마리엔 광장에 있는 신 시청사(Neues Rathaus)는 1867~1909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건축된 것으로 네오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시계탑은 글로켄슈필이라 하여 매일 11시(5월~10월에는 낮 12시와 저녁 21시)에는 사람만한 큰 인형들이 나와 인형극이 펼쳐진다. 신시청사가 관공서 건물이라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더니 60센트의 동전을 넣어야 했다. 확실히 이용자부담 원칙이 지켜지는 현장이다.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 모이기로 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오페라극장 옛날 건물은 노랑색인데 새로 지은 집을 말한다.
밤베르크 버스로 약3시간을 달려 독일의 작은 베니스라고 하는 밤베르크에 도착했다. 이번 독일여행에서 밤베르크가 들어간 여행코스를 택할만큼 꼭 와보고 싶었던 관광명소이다.
밤베르크는 마인 강의 지류인 레그니츠 강변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다. 대성당과 수많은 수도원이 서 있는 일곱 개의 언덕은 ‘프랑켄의 로마’, 레그니츠 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작은 베네치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 밤베르크는 독일의 작은 이탈리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밤베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다행히도 폭격의 피해를 받지 않아 중세 시대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밤베르크의 구시가지는 유럽에서도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며, 밤베르크 대성당을 비롯한 수많은 종교 건축물과 시청사, 궁전, 주택 등이 남아 있다.
밤베르크는 인구 7만명의 작은 도시로, 중세도시이면서 물의 도시이다. 도시 한가운데를 레크니츠 강이 흐르고, 이 강가에 중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호텔 식당도 강 위에 세워져 있다. 강줄기를 따라 경치를 감상하면서 15분 가량 걸어 어부가 살던 집들을 구경한다. 어부들이 집 밖으로나오면 바로 강물 위 곤돌라와 보트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작은 베네치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밤베르크는 일반 세속과 교회의 투쟁의 역사로 점철된다, 그 증거가 시청사의 로케이션이다. 어느 편도 들수 없어 레크니츠강의 가운데 즉 신의 지역과 주민구역의 중간지점 강물 위에 지어졌다. 14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 시청사 건물은 여러 차례 증축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이 또한 세계인의 관광거리에 속한다. 세월을 말해주듯 굵기가 엄청난 아까시아나무가 지금 한창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점심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집 물레방아 식당에서 그 분위기에 휩싸여 즐기면서 먹었다. 밤베르크 지방 맥주와 함께--스모키비어이다. 훈제 연어 같은 스모키 향이 나는 독특한 비어이다.
4개의 첨탑이 하늘높이 솟아있는 밤베르크 성당(Bamberger Dom) 일명 밤베르크 주교성당은 뺄수없는 코스이다. 1004년 하인리히2세 황제의 명에 의해 8년이 걸려 완공했고 13세기 후기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길이는 94m. 높이는 26m이다. 내부와 바깥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또 신,구 두개의 주교관저와 신궁전 장미정원을 구경했다. 밤베르크에 남아 있는 두 개의 주교 관저 중 옛 관저인 구궁전은 역사 박물관으로 바뀌었으며, 화려한 새 관저인 신궁전에는 귀중한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주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신궁전의 명소인 장미 정원(로젠가르텐)은 여름이 되면 입구에서부터 아름다운 장미 꽃으로 온통 뒤덮인다. 아직은 꽃이 일러 아쉬웠지만 가지를 잘라 기형으로 만드는 푸라타나스 묘목들도 구경했다.밤베르크의 레크니츠 강도 독일의 모든 운하와 연결되는데 구 형태로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북동쪽으로 이동한다. 드레스덴으로 향해 --온 사방이 구릉지대의 녹색초원이다. 바깥 온도가 17도를 가리키니 선선한 날씨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녹색 초원에 브라운색 농가,파란 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져 멋진 수채화를 만든다. 자작나무 숲이 나타나는가 하면 때론 키가 큰 침엽수 군락지도 나타난다. 가끔 빙글빙글 도는 태양열발전기가 시선을 끌며 결코 지루할 새가 없게 한다. 바람이 없을 때는 돌지않는 풍차가 아니라 돌지않는 발전기가 마치 논에 서 있는 허수아비 같다. 뉴질래드나 호주처럼 양이나 소,말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다 어디 간 것일까? 왼편에 초소를 보란다. 바로 동독의 시작이란다. 사진을 놓쳤다. 드레스덴에 진입하는 과정이다. 밤베르크에서 4시간이 걸려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네카강변 구도시 건물들
헤르만 헷세가 첫 글을 쓰던 곳
호엔쫄레른 성
퓌센의 예쁜 마을 멀리 설산이 보인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일명 백조의 성이라 불린다.
킴제헤렌성 앞의 정원
뮌헨의 호텔-TV화면에 아침 인사가- 기분이 좋다.
신시청사 시계탑에는 11시에 로켄슈틱이라 하여 인형극이 연출된다.
전 교황 베네딕토16세가 이곳 푸라우엔 성당의 주교였다.
밤베르크 구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레그니츠 강변의 예쁜 건물들
점심식사는 밤베르크 물레방아 식당에서
유명한 구 시청사 모습
독일일주여행(중)/<드레스덴,포츠담,베르린>
제5일 드레스덴/포츠담 어제 밤 8시경 드레스덴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쇠고기 안심을 삭혀서 만든 요리라는데 특별하였다. 동독이라 느낌이 다른 건 별로 없는데 우산 고속도로에서 화장실에 아직 돈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용료는 50센트로 동일했다. 통일후 20년이 넘도록 엄청난 통일비용이 들었는데 대부분이 도로건설과 건축비-토목건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향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드레스덴은 박근혜 전대통령이 드레스덴에 와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드레스덴 선언으로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곳이다. 드레스덴은 독일말로 "숲속의 사람들"이란 어원을 갖고 있다.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에 위치한 작센 주의 주도로 엘베 강변에 위치해 있다. 문화 중심지로 유명하여 '독일의 피렌체'로 불리며, 특히 엘베 강변의 '브륄의 테라쎄'는 '유럽의 발코니'라 불릴만큼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드레스덴은 작센 왕조의 예술적이고 사치스러웠던만큼 호화로웠던 수도로서 유구하고 긴 역사를 지니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때인 1945년 2월, 연합군 공군의 폭격으로 도심부가 파괴되고, 2만 5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되어 동독의 중요 도시 중 하나로 공산 진영에 속해 있었고 1990년 독일의 통일이후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저녁식사후 야경 구경에 나섰다. 바깥 온도가 17도라니 선선한 날씨다. 이곳이 독일의 동부에 속하는데 우리나라는 북쪽이 추운데 독일은 서부에 비해 동부쪽이 기온이 낮단다. 동쪽으로 15분만 가면 체코 국경에 닿는다. 야간 투어에 나섰으나 조명은 없고 가로등 불빛 뿐이다. 야간투어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오니 원래호텔이 사정으로 지금 이호텔로 변경된 사유와 사과문 그리고 조그만 선물까지 비치해 놓았다.
오늘은 여유가 있다. 아침을 늦게 먹고 8시반 출발이다. 아침 호텔 식당에는 중국 관광객이 많았다. 온도가 14도라니 좀 서늘한 편이다.아침 일찍 동네 산책을 했는데 집집마다 예쁜 정원이 많았다. 오늘 관광지는 드레스덴 대성당,츠빙거 궁전,프라우엔교회,셈퍼 오페라하우스,벽화 군주의 행열,엘베강 전경 감상 등인데 전부 외관만 보는 것으로 되어 있어 특히 츠빙거 궁전내의 알페마이스트 회화관에 전시된 명화들 감상기회가 없어 크게 아쉬웠다.
드레스덴대성당(가톨릭궁정대성당) 작센주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다. 젬퍼오페라 맞은편에 위치한다.드레스덴의 상징이라고들 한다. 작센주는 개신교가 지배적인 지방이나 선제후 아우구스트2세가 폴란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왕실성당을 지었다. 1980년 이후 드레스덴-마이센 가톨릭교구의 대성당이 되었고 정식 명칭은 "성삼위일체대성당"이다. 지붕위로 78체의 성인들 석상이 둘러 서 있는 모습이 단연 시선을 끈다. 또 성당 내부에는 18세기 최고의 오르간 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의 최후의 작품 오르간이 유명하다.
드라스덴 프라우엔교회 시민들의 가슴으로 재건된 교회로 유명하다. 1726~43년 바로크 양식의 대가 게오르크 베어에 의해 설계된 루터파 개신교회이다. 높이가 95m 돔은 독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2차대전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되었으나 독일 통일후 시민 기부금으로 재건되었는데 시민들이 돌조각에 번호까지 매겨가며 보관했다고 한다. 독일태생 미국학자 귄터블로벨이 어릴때 본 모습을 상기하고 자신이 받은 상금을 기부하며 1994년에 재건을 시작하여 2005년 10월30일에 완광하였다. 음악공연장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교회 건물 앞에는 루터의 동상이 크게 서 있었다.
츠빙거궁전 선제후 아우구스트2세 시절 지은 작센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드레스덴 레지던츠 맞은편에 위치하며 작센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지어졌다. 츠빙거궁전은 2차대전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1945년 시작된 복구공사가 1963년에 완공되었다. 궁전 안에서 한눈에 보이는 크로넨토어(왕관의 문)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룬 균형미 있는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복구되었다. 궁전 뜰은 십자형이고 4개의 분수가 있다. 알테마이스터 회화관 옆으로 님펜바트(요정의 목욕탕)이 유명하다. 알테마이스터 회화관,무기박물관,도자기컬렉션,동물학박물관,수학.물리학박물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알테마이스터회화관 방향표시판이 있어 가보고 싶었지만--
군주의 행열 츠빙거 궁전 맞은 편에는 작센의 왕들이 살던 레지던츠 왕궁이 있는데 그 외벽에 역대 왕들의 기마행렬이 그려져 있다. 외벽에는 길이가 101m나 되는 2만 5천장의 마이센 도자기 타일을 사용하여 베틴(Wettin)家를 묘사한 군주의 행열이 새겨져 있는데 드레스덴의 역사를 자기 타일로 구워 표현하고 있는게 특이하다. 작센을 다스린 베틴(Wettin)의 800주년을 기념해 35명의 역대 군주를 연대별로 그린 벽화라고 한다. 그림밑에는 작센 군주들의 이름과 시기가 새겨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 폭격의 와중에도 용케 온전히 보존되어 오늘날 드레스덴 관광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유럽 굴지의 명문 오페라 극장의 하나인 셈퍼 오페라하우스를 외관으로 구경하고 사진을 남겼다.셈퍼오페라 하우스 앞에 기마상이 있었다. 작센왕조 요한왕의 기마상이라고 한다.어제 야간광광시 유난히 눈에 띈 유리돔이 궁금했다. 소위 통칭 레몬압착기라 불린다는데 국립미술관이다. 정식 명칭이 Dresden Academy of Fine Arts이다.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강을 구경하고 팊으로 아름답고 멋진 모리츠버거성을 구경했다.강 속에 인공섬울 만들고 그 안에 예쁜 성을 만든 것이다.모리츠버거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성에는 둥근 탑이 4개가 있고 대칭 인공섬에 세워져 있다. 1542~46년 사이에 사냥 롯지가 있는 작센의 듀크모리츠의 이름을 따서 모리츠버거 캐슬이라고 명명하였다.설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시 보물을 마당에 묻고 갔으나 쏘련군이 다 파 갔다고 한다. 빨간 마로니에 꽃이 만발하여 인상적이었다.너무나 아름다운 성을 본 때문인지 모두 만족스러워 하는 듯 했다.드레스덴 관광을 모두 마치고 다음 행선지 포츠담으로 향했다.
포츠담 버스로 2시간 반이 걸려 우리의 역사와 관계가 있는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도시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다. 고전풍의 식당안은 사냥총과 포획한 박제 동물들이 곳곳에 걸려 있어 시선을 끈다. 놀란 것은 화장실 소변기. 와인,맥주 변기가 따로 구분되어 좀 당황하기도 하고 웃음을 주기도(사진참조)-- 포츠담 회담은 1945년 7월 미국, 영국, 소련의 대표가 개최한 회담이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대일본 전쟁에 대한 처리 방침을 협의하였고 일본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며 군국주의를 배제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을 협의하였다.
또한 전범 재판, 영토 제한, 비무장화, 군수공업 폐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독일의 항복 이후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카이로 회담의 결정 내용을 재확인하였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이를 통해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의해 한국의 독립 약속이 재확인되었다.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곳이 "체칠리엔호프"궁전이다.
체칠리엔호프 궁전 이 궁전은 호엔촐레른 왕가에 의해 세워진 마지막 궁전으로, 1917년 빌헬름 황태자와 그의 아내 체칠리를 위해 지은 것이다. 하지만 독일이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빌헬름 황태자는 추방되어 네덜란드로 떠났고 그의 아내만 이곳에 머물렀다.이 궁전이 유명해진 것은 1945년 7월 17일 이곳에서 열렸던 포츠담 회담 덕분이다.궁전에서 회담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영국 수상 쳐칠,구쏘련의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의 회담준비실,회담장면 등을 사진과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궁전은 현재 호텔과 레스토랑,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근처의 경치도 좋기 때문에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과 정원 체칠리엔호프 궁전을 구경하고 곧 포츠담의 필수관광코스인 상수시궁전으로 갔다.상수시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라는 뜻으로, 1747년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지어졌으며, 실내 장식은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시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의 여름 별궁으로 지어진 것인데, 내부에는 프리드리히 2세의 집무실과 왕비의 방, 대리석의 연회장과 화려한 콘서트홀 등이 있다. 궁전 동쪽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회화관(Bildergalerie)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프로이센 왕가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기도 하다.
공원입구에는 높다란 풍차가 있어 시선을 끈다. 궁전안으로 들어가는데는 입장료가 있다.97m나 되는 상수시궁을 사진에 올리려면 20m나 되는 6단의 포도계단 테라스를 내려서야 한다. 호수분수가 있고 조각품이 있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또 좌우로 넓은 공원이 있어 산책길이 이어진다. 공원내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중국찻집이 이국적인 건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시간 내 이곳저곳을 산책하였다. 뮤직 페스티벌 오픈 안내판이 있는 아담한 건물은 공연장인듯 하다.다움 코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독일의 수도 베르린이다.베르린까지는 50여분 걸린다.Estrel Berlin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내일 한나절은 온전히 베르린 관광이다.
제6일 베르린(Berlin) 베르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인구 340만의 독일 최대도시이다.특히 서베르린과 동베르린의 분단에서 벽이 허물어지고 통일과정의 역사가 고스란히 관광자원으로 남아 있다.볼 내용들이 많아서 사실은 어제 오후에 미리 카이저빌헤름교회와 브란데부르크문을 미리 가 보았다.어제 저녁은 처음으로 한식집에서 순수한 한식밥을 먹어서인지 힘이 솟는 것 같다. 그리고 아침 호텔식도 너무 좋았다. 크고 넓은 카페에 메뉴도 다양하고 차종류도 많아서 모처럼 풍족한 느낌을 받았다. 식사후 호텔 주변 흐르는 강물을 따라 산책도 했다. 오늘은 베르린 장벽(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하고 동서독 양군의 대치점 체크포인트 찰리도 현장답사한다. 그리고 유명한 베르린 박물관섬으로 가서 페르가몬박물관을 구경할 예정이다. 먼저 어제 본 카이저빌헤름교회 그리고 부란덴부르크 문에 대해서알아본다.
카이저빌헤름교회 황제 빌헤름1세를 기념하기 위해 1891년~1895년에 세워진 교회로 2차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부셔졌는데 전쟁의 파괴성을 알리기 위해 본래의 교회를 파괴된 채로 보존하고 그 바로 옆에 현대적인 다각형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부서진 교회와 현대적인 형태의 교회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이 개선문은 1788년에 건설을 시작해 1791년에 완공된 것으로, 당시 프러시아 제국의 개선문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건설될 당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 입구를 모델로 했으며, 초기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꼭대기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마차를 이끌고 가는 모습의 동상이 있는데 1793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동상은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군에게 빼앗겨 파리로 옮겨졌었지만 되찾아왔다. 동,서독으로 분단되었을 때, 이 문은 분단선 역할을 했고, 이 문 옆으로 베를린 장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인근에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독일 국회는 어떤가 궁금한 점도 있었지만 사진만 남겼다.북유럽 갔을 때 그곳의 정치인(국회의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비서 없이 솔선해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났기에-- 어제 미리 서둔 이유는 오늘 유명한 세계사이클대회가 베르린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원래 계획했던 관광지를 다 못볼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 베를린 장벽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몇 군데만 일부 남아 있는데, 베르나우어 거리에 있는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이나 슈프레 강과 접하고 있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그렇다. 그중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이스트 사이트 갤러리다. 이 갤러리는 총 길이 1.3km의 장벽에 세계 21개국의 작가 118명이 벽화를 그려 넣어 유명해졌다. 벽화 중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것은 드미트리 브루델이 그린 〈형제의 키스〉로, 소련과 동독의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와 호네커가 입을 맞추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남아있는 장벽 중에는 2중,3중의 장벽도 관광용으로 부수지 않고 보존하고 있었다.
유명한 형제의 키스 앞에서 사진 찍으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스트장벽갤러리 옆 도로에서 사이클 대열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관광객에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협조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림이 하도 많아서 대충 보는데만도 시간이 걸렸다.끝나는 지점에는 "그로니에크 다리" 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유유히 흐르는 슈프레강을 바라보며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채 말이 없다. 일행은 다시 '체크포인트 챨리' 현장으로 갔다.
체크포인트찰리 이곳은 한때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분단 시대의 미군 관할 검문소였다. 예전에 이 주변을 베를린 장벽이 둘러싸고 있었고, 이 검문소를 통해서만 연합군과 외국인, 외교관, 여행객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을 때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0년까지 사용되다가 1990년 6월 22일 검문소가 철거되면서 문을 닫았다. 지금은 검문소 인근에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을 만들어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던 시점부터 무너질 때까지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탈출을 시도했던 방법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한데, 다양한 탈출 도구를 보면 당시 동독인들의 탈출에 대한 열망과 처절함을 엿볼 수 있다.
체크포인트찰리는 우리에게는 탈북민들의 생생한 탈북과정을 들었기에 쉽게 이해된다. 역사는 이런 처절한 애환의 인간사도 고스란히 남기기에 후손들은 교훈으로 삼기도 하고 구경을 하면서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다음 코스는 이번 베르린 관광 중에서도 가장 의미잇는 코스이다. 베르린 박물관 5개가 모여 있는 베르린박물관섬이다. 박물관 앞에 아주 시선을 끄는 돔이 있어 궁금했는데 바로 베르린 돔이란다. 프로이센 때 지은 신교의 교회이다. 그리고 박물관 길 건너편에는 삼성광고판이 있는 공사중인 건물이 있었는데 1600만명의 개인기록 파일을 보관하고 있는 동독문서보관소 건물이라고 한다.
베르린 페르가몬박물관 /함부르크 개항 829주년 유럽의 각 나라마다 유명한 박물관이 많지만 독일 베르린에는 5개의 박물관이 모여있다. 맨 앞쪽에 구박물관(Altes Museum) 그 뒤에 신박물관(Neues Museum) 그리고 오른편에는 구내셔날 갤러리(Old National Galelry) 왼쪽에 우리가 갈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 맨뒤에 보데박물관(Bode Museum)이 있다. 그 중에서도 페르가몬 박물관은 꼭 가볼만한 곳이라 한다.이 박물관은 알프레트 메셀과 루트비히 호프만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1910년부터1930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내부에는 제우스의 대제단(또는 페르가몬 제단)을 비롯한 밀테토스의 시장문,이슈타르문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그대로 옮겨져 실제 크기로 전시되어 있다.고대 그리스 로마 유물 및 중동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이슬람 유물들도 소장하고 있다.박물관 추산으로 매년 85만명이 방문하고 있고 독일에서도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자유시간으로 꽤 긴 시간을 혹은 가이드 해설을 듣거나 자유로이 사진을 찍으며 관람했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중식에는 감자 으깬 것에 돼지고기를 곁들인 맛있는 식사였다.점심식사후 이제 독일에서도 가장 북쪽지역에 해당하는 함부르크로 향해 근 4시간의 긴 여정을 달린다.낮 날씨는 27도나 돼니 꽤 더운 날씨다. 교통체증이 심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일반도로로 달린다.마침내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함부르크는 인구가 190만이나 되는 대도시이다. 특별한 점은 외국인 비율이 극히 낮다.푸랑크푸르트가 27%인데 비해 함부르크는 7%라니--한자동맹의 주축도시이기도 하다. 패스트푸드인 햄버거와 함부르크는 ? 괴테의 파우스트-패스트 푸드의 패스트는? 패스트푸드의 원조가 괴퇴란 말인가? 햄버거와 함부르크 발음이 같으니 -함부르크 어민들이 빵에다 생선을 넣어 먹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나? 믿거나 말거나. 여태 동독을 다녔고 이제 서독으로 넘어 왔다. 레닌동상은 고철로 재활용 되었다고 한다. 함부르크에서는 마침 개항 829주년 축제기간이 마치는 날이었다. 유람선과 군함까지 동원된 큰 행사였다.축포와 불꽃놀이가 요란하고--가게에는 기념품과 먹거리로 흥청였다.모처럼 좋은 구경을 했다.
드레스덴의 야경
츠빙거궁전
드레스덴 대성당
드레스덴 레지던트 궁전
군주의 행렬
모리츠버거 성 포츠담 체칠리엔 궁전정원
상수시궁전 계단
베르린 브란덴부르그문
형제의 키스/ 베르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르린 월 미군초소
베르린 돔
독일 일주여행(하)/<함부르크,브레멘,쾰른,로렐라이,뤼데스하임,푸랑크푸르트>
제7일/함부르크,브레멘 어제 오후에 함부르크에 들어와 함부르크 개항 829주년 축하행사를 참관하면서 과연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임을 실감하였다. 숙소인 크라운플라자 호텔은 위치도 환경도 좋았다. 아침에 동네가 깨끗하고 예뻐서 산책을 하였다. 집집마다 정원이 많고 특히 만병초가 대단히 많았다. 오늘은 느지막히 9시 출발이란다. 먼저 함부르크시에 대해 알아보자
함부르크 함부르크는 독일 북부에 있는 주이며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인구 190만의 독일 제2의 대도시이다. 정식이름은 함부르크한자시이다. 알스터강, 빌레강과 엘베강이 흐른다.서기 811년 카를대제가 함마부르크성을 쌓은 것이 도시의 기원으로 950년경 엘베강 유역에 함마부르크가 건립되고 중세에는 한자동맹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815년 자유도시로 독일연방에 가입하였다. 시민은 개신교가 많고 현재인구는 190만명으로 외국인 비율이 적은것이 특징이나 항만에 근무하는 외국인은 많다.
함부르크 시청사 오늘 우리가 관광할 목적지는 함부르크 시청사,노이어발 거리 그리고 미카엘 교회 이다. 9시 호텔을 나서서 첫번째 찾은 곳은 함부르크 시청사.함부르크 시청사는 함부르크 남쪽 시가지 중심부에 자리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영국 버킹검 궁전보다 화려하고 웅장하다. 1886년~1897년에 건축된 매우 중후한 석조건물로 함부르크 주정부와 의회가 들어서 있다. 각종 리솁션과 회의장소로 활용되는데 방의 수가 버킹검보다 많은 647개이고 지하에는 레스토랑 라츠바인켈러가 있는데 와인이 유명하다. 중앙에 우뚝 솟은 첨탑은 112m의 높이이다. 외부의 화려함 만큼이나 시청사 건물 안도 구경거리가 많다. 천정과 벽의 그림도 조각들로 화려하다. 또 주요 관광지 사진과 설명도 있고 큰 건물사진도 소개하고 있다.
바깥으로 나와 시내를 관통하며 걷는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명품 옷가게도 보이고 우리에겐 좀 낯선 2층버스도 지나간다. 여행객들에게는 낯선 도시의 문물이 모두 새롭기에 카메라에 풍경을 담기 바쁘다. 광장에는 쇼맨이 놀라운 묘기를 보이며 손을 벌린다. 역시 물의 도시답게 운하가 시내를 관통하며 한가로이 유람선이 다니고 있다. 높은 시멘트 기둥이 있어 보았더니 1914년~1918년 전쟁의 와중에 4만의 조국 아들들이 목숨을 바친 안타까운 사연을 적어 놓았다. 넓고 큰 알스터 호수에는 백조와 유람선이 한가로이 떠다니며 평화스러운 모습을 자랑하는 듯 하다. 다음 코스인 미카엘교회로 갔다.
미카엘 교회 함부르크 5개의 루터교회 중 하나로 18세기에 건축된 북독일 지역의 주요 바로크 양식 교회로 유명하다. 이 교회는 두번의 화재로 인한 소실이후 1906년 복원되었다. 개보수 과정에서 원래 바로크 양식에서 여러가지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엷은 청록색의 첨탑은 높이가 135m에 이르며 교회 안은 개신교이지만 카토릭과 비슷하고 약간 화려한 편이다. 미카엘 이라는 소박한 시민의 이름으로 친숙한, 브루클린의 아름다운 교회로 건립시에는 Ernst Georg Sonnin이 당대 최신기술을 도입하여 교회탑을 건설하였으나 그는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Sonnin은 건물, 아니 돼지우리 조차 지어본 적이 없다"라고 혹평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교회는 세계적인 음악인과 관계가 있다. 바흐가 이 교회에 안장되어 있고 브람스가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교회 입구에는 오랜 세월에 푸르게 변한 청동의 루터 동상이 관광객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의 진실된 복음이 전달되는 듯 하다. 교회안에는 화려한 파이프 오르간이 온 시선을 끌고 나무,금세공의 조각 장식물도 교회 명성만큼이나 화려했다.
노이어발 거리(Neuer Wall) 융페른슈티크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거리로 고급 부티크가 줄지어 있다. 거리는 알스터호와 엘베강을 잇는 샛강을 따라 나있으며, 오랜 벽돌 건물과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멋지게 조화를 이룬 가게가 즐비하다.노이어발 거리는 유럽의 10대 럭셔리 쇼핑거리에 꼽힌다고 한다.
브레멘 약 2시간이 걸려 브레멘에 도착하여 점심부터 먹었다. 브레멘은 정식 이름이 브레멘자유한자도시국가이다.독일 브레멘주의 주도이며 행정구이다. 북해로부터 70km 정도 떨어져 있고 베저강을 끼고 있는 독일 제2의 항구로 역동적인 공업도시이다. 브레멘은 역시 동화의 도시인가? 시내 입구로부터 동화에 나오는 동물들의 조각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시장통에는 명품가게,백화점,길거리 카페도 있고 시장광장으로 들어서면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브레멘광장(Bremen Marktplatz)과 시청사(Town Hall of Bremen) 중앙역에서 어느 정도 조금 걸어가면 중심 시가지로 들어가는 길목이 등장하는데, 그 길이 보행자 전용도로인 Oberstrasse이다. 그 거리에서 큰 길을 따라 들어가면 시장 광장(Marktplatz)이 나온다. 바로 그곳에 브레멘의 대표적인 명소 중의 하나인 시청사가 있다. 1405년에서 1409년까지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가 17세기 초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한자운동의 발전상과 브레멘주의 위상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현재까지 원래 형태를 잃지 않고 보존되어 왔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브레멘의 시청사도 역시 어느 도시의 시청사 못지않게 건물의 웅장함과 예술적 가치가 뛰어 나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이곳 시청사의 지하에 Ratskeller라는 포도주 창고가 있는 데, 이 곳에는 약 600여 종의 포도주가 있어 유명하다. 이 시청사 건물의 내부는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된 나선형의 계단들과 천장으로 부터 늘어뜨린 배 모형이 독특하다.
광장 주변의 골목을 자유로이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3시가 가까워진다. 유명한 인형시계가 곧 작동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그 시계 쪽으로 관광객이 모이기 시작했다. 정각3시가 되자 종소리와 음악이 나오고 가장 유명했던 전제군주의 초상화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움직인다. 이 인형시계는 12시,오후 3시 그리고 오후6시에 작동한다. 재미있어서 동영상으로 찍어 보았다. 이곳에는 시청사를 비롯해서 1404년에 만들어 진 자유도시의 상징인 로란트 석상, 그리고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 등이 한데 집중되어 있어 꼭 들러 보아야 할 곳 중의 하나이다.
로란트 석상(Bremer Roland) 구시청사(Alte Rathaus) 앞에 서 있는 높이 5.5m의 동상은 롤란트 (Bremer Roland)의 상이다. 유럽의 도시를 수호하는 성자 롤란트Roland는 샤를마뉴 대제(카를 대제)의 군인으로 전쟁을 치를 때마다 큰 공적을 올렸다. 이에 이후 유럽 각지에서 수호의 아이콘이 되었다고 한다. 긴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시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브레멘 음악대 브레멘광장의 서쪽 입구 옆에는 동화에서 보던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의 동물 동상에는 항상 어린이들이 북적거리고 있고, 여행객들의 사진 촬영 장소로서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설에 따라 하도 많이 만져 다리부분이 반짝이고- 동물음악대의 네 주인공은 닭,고양이,개,당나귀인데, 전설의 내용을 모르면 재미가 없다.
브레멘 음악대(The town musician of Bremen)는 그림 형제가 쓴 고전 동화이다. 농장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 당나귀, 개, 고양이 그리고 수탉은 주인에 의해 학대받고 버림받게 된다. 그들은 농장을 떠나 자유로운 땅,브레멘으로 가서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브레멘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빛이 흘러나오는 집을 보게 되고 그 안에 네 명의 도둑들이 자신들이 훔친 전리품을 감상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은 음식을 얻기 위해 사람인 척 행동하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도적들은 모두 도망가 버린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동물들은 집을 차지하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그 날 저녁, 돌아온 도둑들은 집안을 정찰하기 위해 동료 한 명을 보낸다. 어두운 집안에서 그는 고양이의 빛나는 눈을 보지만 그는 그것이 촛불일 거라 생각한다. 바로 그때 고양이는 그의 얼굴을 할퀴고, 개는 그의 다리를 물고, 당나귀는 그를 발로 차며, 수탉은 문 밖으로 그를 내쫓는다.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 자신이 마녀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도둑들은 집을 포기하고 동물들은 그곳에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다.
성베드로 성당(성 피터 성당) 브레멘 음악대 앞쪽에 두개의 높은 첨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성당이 있다. 성베드로성당(성 피터성당)으로 브레멘의 유명 성당 중의 하나이다. 1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성 베드로 대성당(St.Petri Dom)은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 두 개의 탑을 우뚝 세운 고딕 양식의 거대한 성당이다. 탑의 내부는 높이가 92.31m나 되는 종탑이다.훗날 루터파 개신교의 교회로 변경되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가 1982년에야 다시 짓게 되었다. 현재는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 중이다.
뵈트허 거리 브레멘州의 주도 브레멘에 있는 거리 이름이다. 중세 수공업자의 거리를 복원한 것으로 당시의 상가,술집,여관,서점,극장 등이 모여 있다. 커피상인 루트비히로젤리우스가 중세거리를 재현키 위해 1904년부터 1934년에 만든 100m 남짓되는 거리로, 도로 양 옆으로 골동품,수공예품,화랑 그리고 한자 상업시대 전성기에 로젤리우스가 만든 커피관련 로젤리우스 박물관이 있다. 로셀리우스하우스 박물관 입구 쇼윈도에 마틴 루터의 부인이었던 카타리나 폰 보라(전 수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적갈색 벽돌골목을 수많은 관광객이 붐빈다. 브레멘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다음 행선지인 본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장장 4시간을 달려야 저녁무렵 본에 도착한다. 내일 일정인 쾰른으로 가기 위해 쾰른과 가까운 본 시내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
제8일 쾰른/로렐라이/뤼데스하임/프랑크푸르트공항
어제 밤 본에 도착하여 MARITIM BONN 호텔에 체크인하였다.오늘 아침 바로 쾰른으로 향하니본에 대한 관광기회는 전혀 없는 셈이다. Bonn은 원래 라인강 좌안에 위치한 소도시였으나1949년에 서독의 임시수도가 된후 비약적으로 발전한다.옛 본의 시역 안에는 국회의사당이 신축되고 코블렌츠가에는 대통령 및 수상관저가 자리했다.쾰른과의 사이에는 1932년에 완성된 아우토반이 개통하고 코블렌츠와의 사이에는 유람선이 운항되며 시내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뮌스터 교회가 있다. 본은 악성 베토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본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쾰른에 도착했다.
쾰른(Köln,콜론) 쾰른은 독일에서 4번째로 큰 도시(베르린,함부르크,뮌헨,쾰른)로 AD1C-4C에 라인강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주로 로마군이 주둔하였고 로마제국과 게르만족의 국경으로 서쪽은 로마의 유적이 한없이 묻혀 있으나 동쪽은 전혀 유적이 없다고 한다. 중세 때에는 동,서유럽간 교역로 상의 주요 거점으로 번성하였고 루네상스 시기 까지도 알프스 북쪽의 최대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가장 심하게 폭격을 받은 도시 중 하나로 당시 인구의 95%가 줄었다고 한다. 현재는 라인지구의 문화적 중심지로 30여개의 박물관,수백개의 갤러리가 산재해 있다. 발굴된 로마시대 유적물로부터 현대 조각,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시되고 있다.
쾰른 대성당 (Kölner Dom) 쾰른대성당은 독일 쾰른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이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쾰른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라 쾰른 주교좌 성당이라고도 불린다.이 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이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쾰른 대성당을 일컬어“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라고 묘사하였다.매일 2만여 명의 관광객이 이 성당을 찾는다.쾰른 대성당은 높이 157.38미터로 울름 대성당(163m)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세계에서는 세번째로 높은 로마네스크,고딕양식 성당이다.
신성로마제국 시절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가져온 동방박사 3인의 유골함을 안치하기 위한 건축물로서 1248년부터 짓기 시작하였다.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지만,오랜 건축 기간을 거쳐 결국 1880년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완공되었다.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라인강변 언덕위에 지어졌으며 대성당 주변에는 쾰른 중앙역과호엔촐레른 철교, 루트비히 박물관, 로마 게르만 박물관 등이 있다
대성당 내부에 들어갔다. 모자를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외관이 높고 화려한 만큼 내부 또한 대단했다.스텐인드그래스의 규모도 크지만 화려한 색상이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다행히 스테인드글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리 해체하여 안전한 곳에 보관해두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부의 압권은 아기예수를 경배하러 찾아온 동방박사 3인의 유골함이다. 이것이 쾰른 대성당의 출발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공수하여 쾰른에 보관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찾아오는 순례자가 너무 많아지자 큰 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 지금의 쾰른 대성당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유산은, 바로 이 유골함을 위한 안식처인 셈이다.
호에거리와 라인강변 쾰른은 하이델베르크나 프랑크푸르트 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고급스런 느낌의 쇼핑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유명한 쇼핑거리가 바로 대성당에서부터 시작되는 호에 거리다. 호에 거리를 쭉 거닐다가 좌회전하여 가다보면 라인강변에 다다르게 된다. 라인강변에는 작은 공원들과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어 강을 조망하면서 걷기에 좋다.호엔촐레른 다리는 철교와 인도가 같이 설치되어 있고 철도 수송량도 대단히 많다. 이 다리가 유명한 것은 다리에 사랑의 자물쇠가 매달려 있는데 전세계 관광객들의 사랑이나 소원이 적혀 있다. 한글로 된 자물쇠도 발견했다.
로렐라이 언덕 라인강변을 따라 차는 달린다. 이번 행선지는 로렐라이 언덕이다. 쾰른에서 2시간 정도 달린다.독일의 높은 지대에 있는 성들이 호기심을 자아낸다.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끼? 로렐라이 언덕이 가까워진다. 아주 오래전에 건너편에서 로렐라이 언덕을 바라보며 사진을 남긴 기억이 나지만 이번에는 로렐라이 언덕을 올라가서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을 감상할 순서다. 이곳에는 로렐라이라는 처녀가 신의없는 연인에게 절망하여 바다에 몸을 던진 후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여 조난시키는 반인반조의 바다 요정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니 정상은 넓은 정원이 있고 로렐라이 카페 찻집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곳에 제주도 돌하루방이 큼직하게 서 있었다. 내용을 알아보니 2009년도 11월 제주시와 이곳이 자매결연을 맺고 돌하루방 문,무 두기가 여기에 섰다는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언덕 전망대에는 로렐라이 석고상이 라인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사랑의 배신을 이젠 용서하려는지?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믈 바라보며 로렐라이언덕의 노래를 입속으로 흥얼거려 본다.
뤼데스하임 마지막 여행 행선지는 뤼데스하임이라는 아주 예쁘고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할 소도시이다. 작년 스위스 여행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 뤼데스하임을 들렀는데 기억이 생생하다.뤼데스하임은 헤센주의 도시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골목마다 중세의 특징을 가진 목조건물과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매력이 있는 상점이 즐비하다. 골목도 가게도 너무 예쁘다. 안내판도 디자인이 특별하다. 조그만 시내를 투어열차가 골목골목을 다닌다. 그리고 독일 포도의 주산지인 이곳에는 산비탈이 온통 포도밭이다. 리프트를 타고 정상 니더발트 고원에 오르면 1871년 독일의 통일을 기념하여 1883년에 세운 게르마니아 여신 기념비가 웅장하게 서 있다. 작년에 갔기 때문에 리프트 타기는 생략했다. 개인적으로 갈 사람은 7유로를 내고 오를 수 있는데 대부분은 마을 가게에 정신이 팔려 단 두사람이 다녀왔다고. 티티세(참새)골목이라 불리는 드로셀가세에는 포도주 가게와 기념품점이 많다. 충분한 시간을 주었는데도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쇼핑을 즐기는 여성들-이 또한 여행의 특별한 즐거움이요 행복이 아니겠는가?
함부르크 개항 829주년 축하행사
함부르크 시청사
알스터 호에는 유람선과 백조가 평화롭다
미카엘 교회
브레멘 시청사
브레멘 음악대 인형시계
쾰른 대성당
호엔촐레른 철로와 인도교
로렐라이 언덕에서 반갑게 맞는 제주 돌하루방
로렐라이 석상
참새골목이라는 별명의 드로셀가세
이제 공식적인 관광지 여행은 모두 마친 셈이다. 프링크푸르트 공항에 붙어 있는 면세 쇼핑가게에 들린다. 미처 사지 못했던 쇼핑의 기회를 주는 마지막 기회이다. 저녁 7시 40분발 KE-906편 10시간 이상 걸리는 여정이다. 수면권유제까지 준비해 갔지만 무용지물. 영화를 무려 4편을 또 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한국에 와서 시차 극복을 할 겨를도 없이 중국 초한전 격전지를 따라 시안,낙양,한청 등지를 여행해야 한다. 무리한 여정이지만 시차 극복은 중국 여행하면서 하기로 하고---
독일관광에서 느낀 소회 *유럽 여행에서 아마도 단일국가 여행지로서 독일은 거의 마지막 수준이라고들 한다. 독일은 그만큼 여행지로서 매력이 적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우리 부부도 남프랑스,영국,이태리,스위스를 다녀오고 난 다음 독일을 택하면서 단일국가로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선입견에 불과하고 역사적으로나 풍경으로서도 빠지지 않는 여행상품이었다. 이번 패키지 여행에는 15명이 참가했는데 나이대로는 우리 부부가 가장 노년으로 대부부 50~60대가 주축을 이루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여행의 고수랄까 진정한 매니아들이 참으로 많았다. 여성끼리 짝을 이루어 온 60대후반 두사람은 정말 대단한 여행경력- 남미를 네번 다녀왔고 에집트도 세번에 걸쳐 지역을 쪼개서 다녀왔다고 했다.나중에 알았지만 암환자임에도 여행으로 신체적인 핸디를 극복했다고 하니.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경제적인 강국이다. 소득도 1인당 GDP가 6만불로 우리의 2배를 넘는다. 독일 전국을 다니면서 도로를 다니는 화물차량은 엄청 많았다. 유난히 작년부터 금년에는 화물 통행량이 많아졌는데 이는 상승하는 경제지표를 의미하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같이 예전엔 분단국가로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통일을 달성한지 20년이 훨씬 지나서 이제는 시너지 효과가 커지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독일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어쨋든 언젠가 통일한국이 될때까지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화장실의 애로사항을 가끔 여행기 중에 토로 했다.우리로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현지의 독일인들은 전혀 느낌이 다른 듯하다. 화장실 이용에는 이용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어찌보면 이런 사고가 합리적인 사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예전 합작기업의 경우 가장 까다로운 나라가 독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대충 적당히--라는 사고로는 통용이 안되며 규약 하나에도 엄격했던 독일의 합리적인 사고가 몸에 베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도시가 폭격으로 파괴되었지만 빠른 시간에 복구하는 저력을 보면서 문화를 사랑하는 전국민의 열망과 국가적인 지원을 실감하였다. 온고이지신 정신- 옛것을 복구,보존하고 사랑하고 유지보존하는 문화민족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유럽에서도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전통문화에 비해 게르만족의 도약으로 이룩한 문명이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 민족성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우리 한국은 유구한 역사와 수많은 문화유산을 갖고 있지만 전세계 관광객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관광공사 사장이나 문화재청장, 문화부장관등 행정가들이 너무 자주 바뀌고-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장점인 IT기술을 이들 관광객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 정말 편하고 유익한 여행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유럽여행은 건축양식에서 대부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서지만 도리어 그들이 한국으로 여행시는 전혀 다른 건축미를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은 처음이지? 라는 프로에서 보듯 그들이 선택하는 관광지는 한국 고유의 전통사찰, 전통가옥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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