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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시녀가 상서께 고하였다.
“우리 낭자가 상서께 예로써 알현(謁見)합니다.”
상서가 놀라 피하고자 하나 좌우 시녀가 붙잡으니 어쩔 수 없었다. 용녀가 예를 갖추어 절을 한 후에 상서가 시녀를 명하여,
“전상(殿上)에 모셔라.”
하나, 용녀가 사양하고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자 상서가 말하였다.
“양소유는 인간 천하 사람이요, 낭자는 용궁 선녀인데 어이 이토록 과히 하십니까?”
용녀가 일어나 재배하고 말하였다.
“첩은 동정 용왕의 딸입니다. 부왕(父王)이 옥황상제께 조회(朝會)할 때, 장진인(張眞人)을 만나 첩의 팔자를 물어보니 진인이 말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천상 선녀입니다. 죄를 짓고 용왕의 딸이 되었으나 인간 양상서의 첩이 돼 영화를 얻어 백년해로하다가 다시 불가(佛家)에 돌아가 극락세계에서 천만 년을 지낼 것입니다.’ 부왕이 이 말을 듣고 첩을 각별히 사랑하셨는데, 천만 뜻밖에 남해 용왕의 태자가 첩의 자색을 듣고 구혼하니 우리 동정은 남해 소속이라 부왕이 거역하지 못하여 몸소 가 장진인의 말로 변명하셨지만, 남해왕이 요망타 하고 구혼을 더욱 급히 하였습니다. 그래 첩이 생각다 못해 피하여 이 물에 와 살고 있는데, 이 물의 이름은 백룡담(白龍潭)입니다. 물빛과 맛을 변하게 하여 사람과 물상을 통치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서를 청하여 이 더러운 땅에 오시게 하여 신세를 부탁하니 상서의 근심은 첩의 근심이라 어찌 구완치 아니하겠습니까? 그 물 맛을 다시 달게 할 것이니 군사가 먹으면 자연 병이 나을 것입니다.”
상서가 말하였다.
“낭자의 말을 들으니 하늘이 정한 연분입니다. 낭자와 동침함이 어떠합니까?”
용녀가 말하였다.
“첩의 몸을 이미 상서께 허락하였으나 부모께 고하지 아니하였으니 불가하고, 또 남해 태자가 수만 군을 거느리고 첩을 얻고자 하니 그 우환이 상서께 미칠 것이요, 첩이 몸의 비늘을 벗지 못하였으니 귀인의 몸을 더럽힘이 불가합니다.”
상서가 말하였다.
“낭자의 말씀이 아름다우나 낭자의 부왕이 나를 기다리니 고하지 아니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몸에 비늘이 있으나 신선의 연분을 정하였으면 관계치 아니하며, 내 백만 군병을 거느렸으니 남해의 태자를 어찌 두려워하겠소.”
하고, 용녀를 이끌고 취침하니 그 즐거움은 꿈도 아니요, 인간보다 백배나 더하였다.
날이 새지 않았는데 북소리가 급히 들리거늘, 용녀가 잠을 깨어 일어나 앉으니 궁녀가 들어와 급히 고하였다.
“지금 남해 태자가 무수한 군병을 거느리고 와 산 아래에 진을 치고 양상서와 사생을 다투고자 합니다.”
상서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미친 아이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
하고, 일어나 보니 남해 군병이 백룡담을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함성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남해 태자가 외치며 말하였다.
“네 어떤 것이기에 남의 혼사를 방해하느냐? 너와 사생을 결단하겠다.”
하거늘, 상서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동정 용녀는 나와 부부의 인연이 있어 하늘과 귀신이 다 아는 일인데, 너 같은 버러지가 감히 천명(天命)을 거스르느냐?”
하고, 깃발로 지휘하여 백만 군병을 몰아 싸우자 천만 수족(水族)이 다 패하였다. 원참군(參軍) 별주부와 잉어제독을 한 칼에 베고 남해 태자를 사로잡아 죄를 묻고 놓아주었다.
이때 용녀가 음식을 장만하여 군대를 축하하고 천 석 술과 천 필 소로 군사를 먹이며 양원수가 용녀와 함께 앉았는데, 한참 후에 동남쪽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공중에서 내려와 상서께 고하여 말하였다.
“동정 용왕이 상서의 공덕을 치하코자 하였지만, 맡은 일을 떠나지 못하여 지금 응벽전(凝壁殿)에서 잔치를 베풀고 상서를 청하십니다.”
상서가 용녀와 수레 위에 오르니 바람이 수레를 몰아 공중으로 날아가더니, 한참 후에 동정호(洞庭湖) 용궁에 이르자 용왕이 멀리 나와 맞아 들어가 장인과 사위의 예를 베풀고 잔치할 때, 용왕이 잔을 잡고 상서께 사례하며 말하였다.
“과인이 덕이 없어 한 딸을 두고 남에게 곤란한 일이 많았는데, 양원수의 위엄과 덕망으로 근심을 없애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소.”
상서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다 대왕의 신령하심인데 무슨 사례를 하십니까?”
상서가 술에 취하매 하직하여 말하였다.
“궁중에 일이 많으니 오래 머물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낭자와 훗날 기약을 잊지 마십시오.”
하고, 용왕과 함께 궁문 밖에 나오니, 문득 한 산이 있으되 다섯 봉우리가 높이 구름 속에 둘렀는데 붉은 안개가 사변에 둘러있고 층암절벽이 하늘에 연하였거늘, 상서가 물어 말하였다.
“저 산은 무슨 산입니까?”
용왕이 말하였다.
“저 산의 이름은 남악산이라 하거니와 산천이 아름답고 경개가 거룩합니다.”
상서가 말하였다.
“어찌해야 전 산에 올라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용왕이 말하였다.
“날이 저물지 아니하였으니 올라 구경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상서가 즉시 수레를 타니 벌서 연황봉에 이르렀다. 죽장을 짚고 천봉만학(千峰萬壑)을 차례로 구경하여 말하였다.
“슬프다.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버리고 전쟁의 북새통에 골몰하니 언제야 공을 이루고 물러가 이런 산천을 찾을까?”
하더니, 갑자기 경쇠 소리가 들리거늘 상서가 찾아 올라가니 한 절이 있는데 법당이 아주 맑고 깨끗하고 중이 다 신선 같았다. 한 노승이 있는데 눈썹이 길고 골격은 푸르고 정신이 맑으니 그 나이는 헤아리지 못하였다. 문득 상서를 보고 모든 제자를 거느리고 당에 내려와 예를 표하고 말하였다.
“깊은 산중에 있는 중이 귀먹어 대원수의 행차를 알지 못하여 산문 밖에 나가 대령치 못하였으니, 청컨대 상공은 허물하지 마십시오. 또 이번은 대 원수가 아주 오신 길이 아니오니 어서 법당에 올라 예불하고 가십시오.”
상서가 즉시 불전에 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하고 계단에 내려올 때 발을 헛딛어 잠을 깨니 몸이 옥장(玉帳)속에 앉아 있었다. 동방이 점점 새거늘, 상서가 여러 장수를 불러 말하였다.
“공들도 꿈을 꾸었는가?”
여러 장수가 말하였다.
“소인들도 다 꿈을 꾸었습니다. 장군을 모시고 신병귀졸(神兵鬼卒)과 크게 싸워 장수를 사로잡아 뵈오니 이는 길조(吉兆)인가 합니다.”
상서도 꿈의 일을 역력히 말하고 여러 장수를 모시고 물가에 가보니 부서진 비늘이 땅에 깔리고 피가 흘러 물이 붉었다. 상서가 그 물을 맛보니 과연 달거늘 군사와 말을 먹이니 병에 즉시 효험이 있었다. 적병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즉시 항복하거늘, 상서가 명령하여 승전한 첩서(捷書)를 올리자 천자가 크게 기뻐하였다.
하루는 천자가 황태후께 아뢰어 말하였다.
“양상서의 공은 만고의 으뜸이니 환군(還軍)한 후에 즉시 승상을 봉하겠지만, 난양의 혼사를 양상서가 마음을 바꾸어 허락하면 좋거니와 만일 고집하면 공신(功臣)을 죄 주지 못할 것이요, 혼인을 우격다짐 못할 것이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매우 민망합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양상서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정사도의 여자에게 다른 혼인을 급히 하게 하면 어떠한가?”
상이 대답지 아니하고 나가니 난양공주가 이 말씀을 듣고 태후께 고하여 말하였다.
“낭랑은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가의 혼사는 제 집 일인데 어찌 조정에서 권하겠습니까?”
태후가 말하였다.
“내가 벌써 너와 의논코자 하였다. 양상서는 풍채와 문장이 세상에 으뜸일 뿐 아니라, 퉁소 한 곡조로 네 연분을 정하였으니 어찌 이 사람을 버리고 다른 데서 구하겠느냐. 양상서가 돌아오면 먼저 네 혼사를 지내고 정사도 여자로 첩을 삼게 하면, 양상서가 사양할 바가 없을 텐데 네 뜻을 알지 못하여 염려스럽구나.”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소저가 일생 투기(妬忌)를 알지 못하니 어찌 정가 여자를 꺼리겠습니까? 다만 양상서가 처음에 납폐하였다가 다시 첩을 삼으면 예가 아니요, 또 정사도는 여러 대에 걸친 재상의 집입니다. 그 여자로 남의 첩이 되게 함이 어찌 원통치 아니하겠습니까?”
태후가 말하였다.
“네 뜻이 그러하면 어찌 하면 좋겠느냐?”
공주가 말하였다.
“들으니 제후에게는 세 부인이 가하다 합니다. 양상서가 성공하고 돌아오면 후왕(侯王)을 봉항 것이니, 두 부인 취함이 어찌 마땅치 아니하겠습니까?”
태후가 말하였다.
“안된다. 사람이 귀천이 없다면 관계치 아니하겠지마는 너는 선왕(先王)의 귀한 딸이요, 지금 임금의 사랑하는 누이다. 어찌 여염집 천한 사람과 함께 섬기겠느냐?”
공주가 말하였다.
“선비가 어질면 만승천자(萬乘天子)도 벗한다 하니 관계치 아니하며, 또 정가 여자는 자색과 덕행이 옛 사람이라도 미치기 어렵다 하오니 그러하면 소녀에게는 다행입니다. 아무튼 그 여자를 친히 보아 듣던 말과 같으면 몸을 굽혀 섞임이 가하고, 그렇치 아니하면 첩을 삼거나 마음대로 하십시오.”
태후가 말하였다.
“여자의 투기는 예부터 있는데 너는 어찌 이토록 인후(仁厚)하냐? 내 명일에 정가 여자를 부르겠다.”
공주가 말하였다.
“아무리 낭랑의 명이 있어도 아프다고 핑계하면 부질없고, 더구나 재상가의 여자를 어찌 불러들이겠습니까? 소녀가 직접 가보겠습니다.”
이때 정소저가 부모를 위하여 태연한 체 하지만 형용은 자연 초췌하였다.
하루는 한 여동이 비단 족자를 팔러 왔거늘 춘운이 보니 꽃밭 속에 공작이 수 놓여 있었다. 춘운이 족자를 가지고 들어가 소저께 고하여 말하였다.
“이 족자는 어떠합니까?”
소저가 보고 놀라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런 재주가 있는가? 인간 사람이 아니다.”
하고, 춘운을 명하여,
“이 족자는 어디서 났으며, 만든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여동이 말하였다.
“우리 소저의 재주인데, 우리 소저가 객중에 계셔 급히 쓸 곳이 있어 팔러 왔으니 값의 많고 적음을 보지 아니합니다.”
춘운이 말하였다.
“너의 소저는 뉘집 낭자이며, 무슨 일로 객중에 머무느냐?”
여동이 말하였다.
“우리 소저는 이통판(李通判)의 누이입니다. 이통판이 절동(浙東) 땅에 벼슬 갈 때, 부인과 소저를 모시고 가는데 소저가 병이 들어 가지 못하여 연지촌 사삼낭(謝三娘)의 집에 처소를 정하여 계십니다.”
정소저가 그 족자를 많은 값을 주고 사 중당에 걸어두고 춘운에게 말하였다.
“이 족자의 임자를 시비를 보내어 얼굴이나 보고 싶구나.”
하고, 즉시 시비를 보냈다.
시비가 돌아와 고하였다.
“억만 장안을 다 보았지만 우리 소저 같은 사람은 없었는데, 과연 이소저는 우리 소저와 같았습니다.”
춘운이 말하였다.
“그 족자를 보니 재주는 아름다우나 어찌 우리 소저 같은 사람이 있겠는냐? 네가 잘못 보았다.”
하루는 사삼낭이 와 부인과 정소저께 고하였다.
“소인의 집에 이통판댁 낭자가 거처하고 있는데, 소저의 재덕을 듣고 한번 뵙고자 청합니다.”
부인이 말하였다.
“내 그 낭자를 보고자 하였지만 청하기 미안하여 못 하였는데, 그대 말을 들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다음날 이소저가 흰 옥으로 꾸민 가마를 타고 시비를 데리고 왔다. 정소저가 나와 맞아 침실에 들어가 서로 대하여 앉으니, 월궁(月宮)의 선녀가 요지연(瑤池宴)에 참예한 듯 그 광채가 비할 데 없었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마침 시비에게 들으니 저저(姐姐)가 가까이 와 계시다 하나, 나는 팔자가 기박하여 인사를 사절하였기 때문에 가 뵈옵지 못하였는데, 저저가 이런 더러운 곳에 오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이소저가 말하였다.
“나는 본디 초야에 묻힌 사람입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을 의지하여 배운 일이 없어 마침 소저의 아름다운 행실을 듣고 한번 모시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는데, 더러운 몸을 버리지 아니하시니 평생소원을 푼 듯합니다. 또 들으니 댁에 춘운이 있다 하오니 볼 수 있겠습니까?”
정소저가 즉시 시비를 명하여 춘운을 부르니 춘운이 들어와 예로써 알현하자 이소저가 일어나 맞아 앉았다.
이소저가 춘운을 보고 감탄하여 말하였다.
‘듣던 말과 같구나, 정소저가 저러하고 춘운이 또 이러하니 양상서가 어찌 부마를 구하겠는가?’
이소저가 일어나 부인과 소저께 하직하며 말하였다.
“날이 저물었으니 물러가지만 거처한 곳이 멀지 아니하니 다시 뵐 날이 있겠습니까?”
정소저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사례하여 말하였다.
“나는 얼굴을 들어 출입하지 못하기에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오니 허물치 마십시오.”
하고, 서로 이별하였다.
정소저가 춘운에게 말하였다.
“보검은 땅에 묻혔어도 기운이 두우간(斗牛間)에 쏘이고, 큰 조개는 물 속에 있어도 빛이 수루(戍樓)를 비추니, 이소저가 같은 땅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일찍이 듣지 못하였으니 괴이하다.”
춘운이 말하였다.
“첩은 의심컨대 화음 진어사의 딸이 상서와 <양류사>를 화답하여 혼인을 언약하였다가 그 집이 환란을 만난 후에 진씨가 아무 데도 간 줄을 모른다 하는데, 반드시 성명을 바꾸고 소저를 쫓아 연분을 잇고자 함인가 합니다.”
소저가 말하였다.
“나도 진씨 말을 들었지만 그 집이 환란을 만난 후에 진씨는 궁비정속(宮婢定屬)하였다 하니 어찌 오겠는가? 나는 의심컨대 난양공주가 덕행과 재색이 만고에 으뜸이라 하니 그러한가 한다.”
다음날 또 시비를 보내어 이소저를 청하여 춘운이 함께 앉아 종일토록 문장을 의논하였다.
하루는 이소자가 와서 부인과 소저께 하직하며 말하였다.
“내 병이 잠깐 나아 내일은 절동(浙東)을 가려 하니 하직합니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더러운 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자주 부르시니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버리고 돌아가시니 떠나는 정회를 어이 헤아리겠습니까.”
이소저가 말하였다.
“한 말씀을 소저께 아뢰고자 하나 좇지 아니하실까 염려됩니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소저가 말하였다.
“늙은 어미를 위하여 남해 관음보살의 얼굴과 모습을 그린 그림을 수 놓았는데 문장 명필을 얻어 제목을 쓰고자 하니, 원컨대 소저는 찬문(贊文)을 지어 제목을 써주시면 한편으로는 위친(爲親)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서로 잊지 못할 정표나 해주십시오. 소저가 허락하지 아니하실까 염려하여 족자를 가져 오지 않았으나 거처하는 곳이 멀지 아니하니 잠깐 생각해 주십시오.”
정소저가 말하였다.
“비록 문필은 없으나 위친하시는 일을 어이 좇지 아니하겠습니까?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가셨으면 합니다.”
이소저가 크게 기뻐하여 일어나 절하고 말하였다.
“날이 저물면 글쓰기가 어려울 것이니 내가 타고 온 가마가 비록 더러우나 함께 가셨으면 합니다.”
정소저가 허락하니 이소저가 일어나 부인께 하직하고 춘운의 손을 잡고 이별한 후에 정소저와 함께 흰 옥으로 꾸민 가마를 타고 갈 때, 정소저의 시녀 여러 사람이 따라갔다.
정소저가 이소저의 침실에 들어가니 보패와 음식이 다 보통과 달리 이상하였다. 이소저가 족자도 내놓지 아니하고 문필도 청하지 아니하자 정소자가 민망하여 말하였다.
“날이 저물어 가는데 관음화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절하여 뵙고자 합니다.”
이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하여 군마(軍馬) 소리가 진동하며 기치창검(旗幟槍劍)이 사면을 애워쌌다. 정소저가 크게 놀라 피하려 하자 이소저가 말하였다.
“소저는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난양공주로 이름은 소화입니다. 태후 낭랑의 명으로 소저를 모셔 가려합니다.”
정소저가 이 말을 듣고 땅에 내려 재배하여 말하였다.
“여염집 천한 사람이 지식이 없어 귀한 공주를 알아 뵙지 못하고 예의 없이 하였으니 죽어도 아깝지 아니합니다.”
난양공주가 말하였다.
“그런 말씀은 차차 하겠지만 태후 낭랑께서 지금 난간에 의지해 기다리시니, 원컨대 소저는 함께 가십시다.”
정소저가 말하였다.
“귀한 공주께서 먼저 들어가시면 첩이 돌아가 부모께 고하고 이후에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공주가 말하였다.
“태후가 소저를 보시고자 하여 어명을 내리신 것이니 사양치 마십시오.”
정소저가 말하였다.
“첩은 본디 천한 사람입니다. 어찌 귀한 공주와 가마를 함께 타겠습니까?”
공주가 말하였다.
“여상(呂尙)은 어부였지만 문왕(文王)이 한 수레에 탔고, 후영(候嬴)은 문지기였지만 신능군(信陵君)의 고삐를 잡았습니다. 더구나 소저는 재상가 처녀인데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하고, 손을 이끌어 가마를 타고 갔다.
난양공주가 소저를 궐 문 밖에 세우고 궁녀에게 명하여 호위케 한 후, 공주가 들어가 태후께 입조(入朝)하고 정소저의 자색과 덕행을 아뢰었다.
태후가 감탄하여 말하였다.
“그러하다면 양상서가 부마를 어찌 사양치 아니하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