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전공한 지 30년이 지났다. 처음엔 서양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황당하기만 했다. 수많은 이름, 장소, 사건, 사상 등등은 나를 짓눌렀다. 읽어도 다른 내용을 읽으면 읽었던 내용을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난다고 하더라도 연결 짓지 못하는 일이 수년간 반복했다. 한국어로 된 교외 역사책이 없었기에 짧은 영어 실력으로 방대한 수천 페이지와 수백 권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읽고 정리하고 또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읽고 정리하는 시간이 여러 차례 반복하자 마침내 10년이 지난 즈음에 전체 역사의 맥을 잡을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보람되고 억센 시간이었다.
처음엔 흥미로 시작했지만 점차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정신을 찾기에 이르렀다. 2,000년 역사를 정리한 몇 년 전까지 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궁금하고 몰라서 호기심이나 지식을 채우려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이제는 역사의 줄기를 간취한 후에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갈 길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지만 인간은 변하지 않기에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역사의 형태이나 형식을 정할 수 없지만 인간의 형태와 형식은 정할 수 있다.
역사 속에 드러난 인간은 미화되는 것이 너무 흔하다. 실제와 진실과는 무관하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의 도구로 전락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같은 역사이고 사실이지만 터무니없는 해석과 조작으로 역사의 진실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자신의 이념에만 몰두한다. 인간의 이성을 설득시키는 큰 도구는 역사이다. 지나온 것이기에 인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기에 설득할 수 있다.
역사는 일어난 일이나 사건이다. 일어났다고 하니 일어난 것으로 안다. 그렇게 쓰여있다고 말하니 역사라고 여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이다. 가시적으로 나타나니 역사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는 다른 영역이다.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이 사실인지는 다른 것이다. 봤다! 들었다! 안다! 말하지만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인지 문맥을 보고나 들었거나 아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실? 팩트라고 하지만 전체를 모르는데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실? 사실이라고 신빙성 있는 것이 아니다. 첼로리스트 사건을 안다. 사실이지만 그렇게 말했다고 하여 국회에서 언급했지만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말은 일어난 역사이며 전후 문맥을 알 필요도 없는 채로 정치적인 사욕을 채우려고 사용한 사실에 불과하다. 사실인 것도 불명확하고 신빙성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경은 어떨까? 천국은? 신앙고백은? 난 역사가로서 실제 일어난 역사? 사실 증명은 했나? 그 증명을 믿을 수 있나? 이성으로 의심하는 한 해본다. 증거 수집을 해보는 한 해본다. 내가 인정한다고 해서 진실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진실한 것도 아니다. 객관적 증명과 확인이 아니다. 나는 집요하게 매달린다. 제한적 이성이 무한의 하나님을 이해하겠다고 덤벼드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지 알고팠다. 난 이제 그 길을 찾은 듯싶다. 인간을 믿지 않는다! 이성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도 믿지 않는다! 믿을 것은 없다! 경건하게 성경만을 믿는다고 난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읽고 아는 식의 성경 해석일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찾지도 못하고 없지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에겐 구세주가 요구된다. 쌓인 죄들을 해결해야 하는 양심의 가책이 나를 짓누른다. 오염된 이성으로 그분을 구하기에 턱없이 더러운 자신이기에 그분의 선처만을 바라는 것은 분명하다. 드러나는 자신이 두렵기에 늘 깨어서 그분의 말씀과 지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또 어떤 나 자신의 어두운 면이 드러날지 난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그분의 도움을 간청한다. 내가 그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