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곧잘 자신의 운명에 대해 궁금증을 안고 있다. 보이지 않는 운명에 대한 궁금증,풀리지 않는 의혹, 현실에 대한 불만족,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한가닥 희망이라도 얻고 싶은 마음을 안고 철학관,무당을 찾는다. 나는 철학관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온 사람인지라 한눈 팔지않고 학원에 다녀야만 했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했다. 하숙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학원을 걸어 다녔다. 아마 10월1일부터 다녔을 것이다. 사주를 배우기 위한 예정된 코스였다. 웬 할아버지가 강단에 섰고 그분이 학원 원장님이었다. 30년간 강단에 섰으며 아주 훌륭한 인품을 갖은 정통파 역학 학자라고 본인도 밝혔다. 뿌리가 든든하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도 족보가 아주 중요한 모양이었다. 사주학,추명학 등 고상한 이름도 있지만 통상 용어로 '사주'다. 굳이 고상하게 '학문'이라는 단어까지 붙일 필요가 없다. 역학이라는 단어를 붙여 품위를 높이려 하기전에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먼저 마음공부가 깊어야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멋진 복장,머리끝에서부터 윤기가 흐르고 번쩍 번쩍 빛나는 구두까지 온 몸을 두르고 있는 장식품은 필요 없다.
철학관을 개업하면 누구한테서 배웠으며 무슨 책을 공부했으며 족보가 어찌되는지 등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만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그 세계에서 귀에 익게 들었다. 그러나 신촌에서 간판 걸고 1년반정도 철학관을 하면서 그들이 그토록 중요시한다는 '수료증'도 걸지 않았었다. 나중에 이사할때 보니 책상 구석에 찌그러진채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철학관 협회 가입을 하며 회비를 매월 내면 보호를 받고 그렇지않으면 행정,세무,경찰 등의 간섭을 받는다는 말도 들었지만 다 무시했다. 무식한 촌놈들 겁 주어 뜯어먹는 식의 그런 단체를 아주 싫어한다. 이런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괜찮은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이 인간성이 썩어빠진 사람들이 많다. 문턱 닳도록 이런 곳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제발 제 정신 차려야 한다. 사기꾼 근성이 깊고 풍부해야만 돈 많이 벌고 번쩍거리는 복장에 좋은 차 타고 다닌다. 아무리 폼 잡고 다녀봤자 '사주쟁이' '무당'일 뿐이다.
인간성 좋은 사람들은 '선생님'소리 듣는다. 학원에 잘 다녔다. 녹음도 하고 필기도 열심히 했다. 60갑자를 외워야 하는데 나는 지금도 다 외우지 못한다. 들으면서 잊어버리는 독특한 두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인맥도 모두 끊고 공부만 하라'는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도 '실속없이 남 좋은 일만 하는 바보'를 탈피하고 싶은 부분도 있어 나름대로 애는 썼다.
내가 공부했던 책은 제목은 밝힐 수 없지만 6권짜리의 전통있는 책이었다. 한자가 많이 적혀있어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읽어볼 마음이 일지 않는다. 그 세계에서는 쉽게 읽지 못하는 책이 품위를 높인다. 당초의 저자는 훌륭했나보다. 이런 예가 있다. 1백여년전에 맹인 사주가가 있었는데 손님이 찾아가 친척의 사주를 넣으니 '난 죽은 사람 사주는 보지 않소!'했다. 지금 생생히 살아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따졌더니, "한달 후 죽을 사람 사주 봐서 뭣 하겠소!"라 했고 한달 후 죽었다. 또 '가서 송장이나 치르쇼'했는데 집에 가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아주 정확히 본 것이다. 사주를 통계학이라고 밀어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무식의 소지다. 과학임에는 틀림없다. 주역도 그렇다.
'책 읽는 소리에 神이 응한다'는 말이 있는데 맞다. 그러기에 책으로 공부한 철학원 사람들도 자주 산에 가고 산신령에게 기도를 한다. 산신령에게 미안하지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던 나는 산신령에게 빌어본 기억이 없다. 석가모니부처님한테도 마찬가지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원장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한번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남들은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저 학원 원장이니 '원장님'이다.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나는 학자를 싫어한다.
그 원장님은 가끔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영업하는 사람들 95%는 사기꾼이다.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아는체하는 나쁜놈들이다"라고. 나도 95%가 부실하다는 말에 적극 찬동하며 인정한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내가 읽고 배운 그토록 유명하다는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에 '오탈자'가 몇군데 있기 때문이다. 매달 몇십만원씩 돈 내고 학원 다니는 우리들에게는 오자와 탈자의 정정을 해주었다. 고맙기도 하지. 그렇지만 일반 서적에 비해 무지 비싼 돈 들여 책 사서 지방에서 달달달 외우며 공부하는 사람들은 불쌍하게도 틀리게 외웠으니 사주풀이가 빗나갈 수 밖에 없다. 수십년동안 그 오탈자를 바로 잡지 않고 비싼 값에 잘 팔아먹고 있는 원장님을 어떻게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 존경하겠는가? 죽으면 안된다고 건강하시기를 비는 학생들의 정신에도 문제가 많다며 같은 학생과 싸우기도 했다. 죽어 천당,극락을 간다면 내가 쫓아가서 염라대왕을 패 죽이겠다고 말했다. 물론 원장님은 내 말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설령 알아도 상관없다.
책은 제대로 써야한다. 잘못 씌어진 책을 공부한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모두 사기꾼이 될 수 있다. 역학학원을 다닌다는 말을 들은 친구,선배,후배들이 5만원씩 보내오며 자신의 운명감정을 부탁했다. 1건에 5만원인데 2건이나 3건을 함께 봐 주니 고마움을 느껴야한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아주 이쁘게 쓴 붓글씨 형태로 감정서를 써 준다. 모두 한자이기에 잘 메모했다가 설명해주었다. 년초에는 1년 신수를 봤으며 '복서정종' '육효점'을 토대로 점도 쳤다. 주의해야할 날짜는 분명하게 달력에 표식을 하고 일체 외부출입도 금하도록 단단히 일렀다. 사람들은 잘 잊는다. 절대 외출을 하지 않겠다면서 달력에 빨간 펜으로 굵게 적었던 사람들도 그 때가 되면 잊고 외출을 한다.
전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하는 아줌마가 있었다. 언젠가 그 싯점이 지나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았더니 달력을 뒤적이며 살폈다. 외출하면 교통사고로 일가족이 위험하고 재산손실이 크다는 그 날에 그녀는 계약을 많이 했기에 평소보다 돈 많이 벌었던 날이다. 선배님은 어떤 날에 재난이 겹치고 또 어떤 날에는 어머니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다. 두번 세번 잘 살펴주시길 부탁했는데 그 해를 절대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 선배님의 어머니는 몇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 싯점에 건강에 장애가 왔는데 잘 아는 무당 겸 스님이 '저승사자가 다녀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다 틀리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임신이 안되어 시험관 아기를 희망했던 후배는 말했던 싯점에 임신이 되었다. 그 원장님한테서 13년째 공부하고 있다는 아줌마도 있는데 유명 정치인이 깜짝 놀랐던 사례를 가끔 말한다. 10년 이상 원장님한테 배우고 있는 아줌마도 철학관 개업의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1년 몇개월 공부한 내가 간판을 올리니 나보다 더 공부 많이 했던 사람들이 봤을때 얼마나 건방지고 황당하겠는가. 더군다나 왕초보에서부터 공부한 사람인데......17년동안 사주 등 역학을 공부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내 소개로 학원 몇달 다니다 너무 멀어 그만뒀다. 2시간 차 타고 와서 2시간 공부하고 2시간 걸려 집에 갔던 친구다.
그 친구는 몇 몇 사람의 사주를 나한테 말하며 감정을 요구했고 나름대로 즉석에서 풀어줬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17년 공부한 그 모든것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사유로 그 친구는 열등감이 더해지게 되었다. '용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수십년 공부한 사람도 알기 어려운 것이다. 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그런 어려운 것은 무시했다. 이러니 같이 학원에서 공부한 친구는 날 염려하며 근심이 컸다. 자주 다투기도 했다. 어렵게만 볼 필요가 없는데 사람들은 어렵게만 풀려고 하니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학원다니면서 예습,복습을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여름에는 책 들고 하숙집 근처의 공원 벤취에 누웠다가 잠 들곤 했다. 처음 몇달동안은 컴퓨터,텔레비젼도 없었지만 바둑게임을 하고 싶어 시골 형이 쓰던 것을 갖다 인터넷 설치를 했다. 물론 동생한테는 공부에 도움된다고 거짓말 했다. 텔레비젼에 대해서는 대학 입시 등 시사에 밝아야 한다고 둘러붙이며 5만원짜리 중고를 샀다. 밤낮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냈다. 밤 늦도록 텔레비젼을 보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학원에 늦거나 빠지기도 했다.
학원에 일년정도 다닌 후 개업할 것을 독촉 받았다. 동생은 당초 몇개월 공부하면 될것이라고 판단했는데 나는 자신이 없어 고집했고 1년이 다 되었다. 심한 독촉을 강한 반대로 맞섰고 점 치는 법을 공부하는데 몇달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이 없었기때문이다. 점 치는 법을 배웠지만 '6효'에 대해 어물쩡 넘어가면서 '복서정종'을 공부해야 점괘가 잘 나온다고 강조하는 원장님 말씀을 나는 믿지 않았다. 현명했다. 온통 한자로 씌어진 수백페이지짜리 두꺼운 중국 책 '복서정종'을 공부하려면 몇년은 더 걸리며 학생들은 몇년동안 학원에 돈 갖다 바치며 시간낭비를 해야만 한다.
이때 정읍 백학농원에서 점혈로부터 '연산역'이야기를 듣고 아주 쉬우며 정확도가 훨씬 높은 연산역을 배우게 되었다. 농초 박문기선생님이 쓰신 '대동이'5권째에 연산역이야기가 점치는 법과 함께 나와있는데 쉽게 점치는 법을 함께 연구했고 그 내용까지도 이 까페에 당시 모두 올려두었다. 역학인들은 연산역에 대해 2천년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또 전설처럼 이름만 남아있을뿐이라는 사람도 있고 아예 연산역의 단어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연산역으로 풀면 점괘가 너무 쉽게 나오니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다.
학원에 다니면서 독촉에 못이겨 16개월만에 신촌에 단독주택을 얻어 간판을 올렸다. 그러고도 5~6개월 정도 학원에 더 다녔다. 사실 학원에 가 공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친구가 보고 싶어 다녔었다. 간판 올리기 전에 시험을 봤다. 한 여인의 사주를 동생이 보내왔고 이멜로 답장을 보냈는데 90%이상 맞았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는데 동생과 왕래가 잦은 날 서울로 불렀던 무속인의 딸 사주였다. 용케 잘 찍었던 것이다. 시인인 선배님이 '현암심화연구소'라는 간판 이름을 지어 주었다. '00철학관'이라고 하지 않고 시인답게 고상한 이름을 지었으니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손님이 없었다. 나중에 그 밑에 '사주,신수,건강,성명'이라고 써 붙이니 몇 사람씩 찾아왔지만 글씨를 잘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군남의 서울일기-4 <추명학의 허실> 2008.3.1 토요일 오전 9:00 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