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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교수하다가
지금은 고향땅 영천으로 귀촌한 김정욱
40대때 대구시내와 구미해평 낙동강 솔밭에서
때론 우중雨中임에도
밤새 술퍼먹고, 입담으로, 탬버린으로 발광하듯 흔들어 재끼던 친구들.
늘 반복되는 세속적인 것에서
남들이 다해도 난 않았구
남들이 모두 피하지만 우린 접근해서
나대로 그 내막을 알고픈
묘한 입김의 감도로 세상을 알아가는
상당히 반항적인 모습인게 그와의 닮은점일까..
영천의 시골촌늠 정욱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사랑하는 가족의 걱정은 뒷전에 쳐박아두고
태연하게 마시고 피우기를 두어달 후後
수술해 달라고 병원을 찿아들고
1년쯤 지나 급한불은 껐다싶을 즈음
병원에 검사하러 간다해서 혼자 갔는데
이참에 대장 검사도 해보자 권해서
또 말기 판정 받고도
가족들은 위암치료 결과만을
소식 오기를 기다리다가 답이 감감 무소식이니
50여회나 폰을 하며 애간장을 태우건만
MRI 검사시 끈 폰 그대로 영천 시골까지
대구시내 국수먹고 또 어디 들리며
아는길따라 빙글빙글 터벅터벅
오후늦게사 나타나니 이 무슨 해괴망측 황당함이요.....
그럼에도 자전거로 전국 누비고 친구 만나기를
석달여 또 뒹군뒤인 구정지나서
가족들한테 대장암임을 밝히고
병원 수술대에 나타나선
"의사인 넌 수술만 해라, 살리고 죽이는건 내가 할테니...."라며 모두를 아연실색케 하는
이 괴물,
그런 두가지 암에서
스물 대여섯번의 항암과
스물 대여섯번의 방사선 치료를
검은 머리털 하나 변하지 않는걸 보면
몸이 변태인가
생각과 행동까지 이상야릇하니
하여간 세상사는 내 맘먹기 따라
여유라는 늠도 따로이 오가며 향락을 나누는듯 하다
ㅡ세상살이엔 답이 없다
ㅡ비밀도 없다
ㅡ그리고 공짜도 없더라
이따위 지론으로
어차피 찿아든 암(癌)인데
누가 되돌리겠냐
그러니 나 때문에 가족과 친구를 우울하게 할 필요 있냐고
일단 내가 먹어야 살 힘이 생긴다고
설사가 일어남에도
수술후 이틀만에 식사를 청하고
15번 설사하면 16번 먹으뿌면
한번은 몸 속에 쟁이지 않겠냐고,
쟁여진 그게 결국 나를 살릴테니 일단 먹고보자고.....
고약한 심뽀에 대단한 엉터리니
몸인들 짜여진 각본이 있을까나...
모두가 맞는듯 틀린듯
희한하게 괴변인건
거침없이 내 뿜는 재미나는 입담에
온몸을 불사르며 먹고 마시고
양손에 쥔 탬버린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타고내리는 모습 등에서
단련되고 숙달된 능숙함이렸다
먹지 말아야 할 건 오직 네가지,
즉, 술 담배 찰떡 감만 피하고
먹고픈건 다 먹자
근데 찰밥에 콩고물을 바르면 찰떡일까 찰밥인지 궁금하다나.....문댕이...
특히 기본 세끼는 제때에 절대 거르지 말고
그리고 자전거 타기로 내 몸의 순환을 도모하자고 작심했다나
그래서 만 3년을 넘긴 지금은
100키로 넘던 강건했던 몸이 50키로대이다가
지금은 60키로대를 넘더니
곧 70키로대를 오를것이라며
병원에서 좋은 결과의 최후통첩을 받았단다
평소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90% 잘라내고 10% 남았어도
남들보다 늘어난 위는 상당히 큰 상태로 잔재했다는 우스개꺼정.
내 부모를 개새끼 다루듯
씻고 닦고 빗질해줘 봐라
사랑받지....라든가
큰아버지댁 사촌간에 얽힌 감정문제를
직접 나서서 온가족이 드나들며 추진함에
할아버지 제사까지 함께 모시자고 약속 후
자기 아버지께도
지애비 제사니만큼 비용만은 따로 더 부담하시라 라며
거둬서 큰 집에 전달했다니.....ㅎ
의사들이 찿아와서 진료결과를 들려주는데
매번 눈을 마주치지 않기에
왜 자꾸 딴데를 보면서 말하냐고 따졌더니
의사도 트라우마라는게 있어서
암환자와의 눈 마주침을 피한다고....
어느날 빈자리로 남는 모습에
인생의 서글픔과 의사로서의 한계에 상흔이 찿아 든다고
그래서 낯익음을 피하는게 암병동 의사들의 고충이라고...
ㅡ살만하니 병이 왜 찿아오누;
내가 병들 짓을 한거다
이따위 탓보다는 지금부터 살 길을 찿아서 행하자.
ㅡ왜 하필 내게 이런 병이;
병이 누굴 가리는가
병이 찿아들 공간은 내가 만들어 준거라
지금부터 청소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
ㅡ울상 지어서 죄없는 가족들을 침울하게 만들지 말고
긍정 마인드로 웃음과 감사 표현부터 자주하며
담담하라고.
ㅡ잘 먹어라.
설사를 하더라도 먹지 말라는것만 피하고 (술 담배 찰떡 감)
소식으로 다식해서 체력을 비축하라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재는 따르지말고
ㅡ끼니부터 잘 챙기는데 너무 가리지 말고 평소의 일상의 음식을 운동까지 겸해서 실천하라
자기는 자전거 타기를 권한다고.
♡♡♡보태고픈 나의 지론♡♡♡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농약(극약)이다
두번 다시 먹지 않아도 효과 100%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몸은 꾸준히 먹어주는 음식에 반응하여
충분히 생명력을 이어가나니
ㅡ깨끗한 물
ㅡ맑은 공기
ㅡ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일상적으로 즐겨 먹되
ㅡ꾸준한 운동겸 활동으로 체體 내외간의 신진대사 활동을 촉진하라
냉장고와 생각과 몸을 창고로 활용치 말라.
머물고 잠기면 좋은게 없더라
고정관념이 문제고
가둬두면 변질되고
머물면 하나의 부패로 멀쩡한것도 효과가 반감이라
비록 타인에게 득得이 될지라도
일단 이 몸이 움직이면
결과적으로 나부터 변화된 도움이 오더라는것.
그리고 한가지,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사실에 여러가지로 많은 고민을 하는데
내게 일어나고 변화하고 반응하는 그 모든것들의 영향력이 지대함을 볼때
그 환경을 중히 여기고
핏줄의 흐름에 대한 남다른 숙제를 안고 살아간다
음~~~ 자연은 세상사가
그리고 인간사가 제아무리 변해도
우리는 순응해야 할 책무가 한켠에 분명히 있고
또 그만큼 가치를 주나니
조화로움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때가 또는 그곳이 어드메쯤인지가 확신이 없어서
의식의 끈만은 느슨하지 않기를.....
사람도 배우는 중요한 시기가 있고
내 생각과 판단과 능력과 바램의 한계를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나를 감싸고 도는 그 모든 상황들이
자신의 능력 의지 노력과는 무관함을 볼때
탓보다는
대처하고 개선하려는 환경을 미리 헤아리고
사사로움보단
자연계의 흐름에 건전하고 보편적인
인간사로 잘 반응하는 순응의 모습으로
일상사가 좀 더 부드럽게 매몰되기를
가족사의 골 깊은 애환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과제로 담은 내용이 된다
어머니께서 고달프고 아픈 성장기를 거치시고
아버지께서도 7남매중 막내로 출생 일주일만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어
성장기가 시련이셨지만 가문의 영광으로 잊으신듯 하다가
6,25이후 전멸의 가족사에 혼자 남겨지셨다가
6남매의 맏이로 내 나이 마흔도 되기전
97년 65세에 돌아가시고
98년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99년 저의 아내가 위암으로
2001년엔 국내에 남겨진 유일한 사촌 형님 사망.....
(일제시대때 만주 하얼빈으로 가신 둘째 큰아버지 후손의 사촌들 2남1녀와 연락이 됨)
명예 부 권세에 매달리는 모습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동참할수 있는 모습의
배움과 익힘과 실행들이
세습적인 부드러움으로 자리매김 한다면
한평생 살면서 가장 아름답고 자신도 뿌듯하고
남보기에도 무난함을 느낀다는거죠
우리집 6남매 12명이 수시로 만나고 여행가고
처가쪽도 우리집 모습을 본받아서 그렇게 변하고
또 동생네 시댁들이나 가족들도 배우려하고...
내가 성장과정부터 윗대부터 쭈욱 봐오지 못한것이 아쉽지만
지금 이렇게 되도록 좋은 성품주신 부모님과 윗대분이 고맙고
이런 흐름이 좀 더 발전되기만을 희망하는데
과연...
이런점은 정욱이 친구네 가정사를 두번의 기회에
영천 시골집을 머물면서 밤새 나눈 얘기에서 깊이 공감했던 바,
편향적일지라도 이기적이지 않고
모두를 위한 길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지한 가족사 피의 흐름을 내내 확인함이다.
요약하면
어디서 무얼하든지
직업의 귀천이 사라진 요즈음은
꾸준한 활동이 생명력이요
가족간 소통이 애환을 잠재우며
자연스러움의 원만함들이 소통의 귀재로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귀한 분을 만들고
나도 너도 우리도
하나의 장에서 함께 행복을 키우는 비법 같아서
부디 자연스럽게 오가는
자연스러움으로
나도 자연도
더더욱 여유롭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니다.
P,S
가족간에서 발견한 허물은 내가 수련으로 극복할 대상이지
피하기를 하면 안된다는 사실 입니다
남의 허물은 내가 안만나면 끝나지만
가족은 피의 연계성이 있고
내 몸속에도 그 허물은 움츠린채 잔재하고 있기에
나를 통해서
내 형제나 후손이나 다른 가족을 통해서
언젠가 발현될때
한탄조의 한숨보다는
다스리면서 함께해야 할 대상의 과제로 주어지니까요.
그리고 또
나는 너무미워서 소통을 않더라도
내 다른 가족들까지 소통을 막으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반복을 거듭하게 하는 더 큰 잘못이 되기에...
가을이 깊게 느껴지는 마당의 나락.
집에서 바라본 과수밭
사과 깍두기
시골집에서
이 친구는 요즘 병원을 통해서 당사자를 확인하거나 만나고파 찿아온 분들에게
자기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면서
현재 진행형의 극복을 이어가고
주어진 값진 삶을 이어갈 따름인거다
출렁달이에서 바라본 보현산 천문대정상과
한때 매입을 노렸다는 사찰인 법륭사
보현산 출렁다리 ㅡ예전엔 계곡에 물고기가 엄청 많아서
해마다 같이 놀았다는데.
댐에서 친구가 사준 커피 한잔
여름에 갔을땐 어둑해져서 못다본 곳을
두번째만에 60년이 훨 지나 찿아본 보현산이요
친구가 귀촌한 덕분에 공부꺼정 보태준 보현산.
차로 정상아래까지 오르고
5분쯤 걸으면 정상의 천문대인데
너무 맑은날이라 사방이 훤하기만 하다
동해바다의 파도가 산에서도 일렁인다
영천 정각 봄미나리 그곳이다
여기 보현산은 이 친구가 싸구려 자전거로 오르내리면서 건강관리하는 산이다
정상 능선에서도 오가면서 얘기꽃은 그칠줄 모르게 길은 널렸다
ㅡ저기 방문이 닫혔으면 난 외출중이라는 표시요
열려있으면 집안에서 업무중이 된단다
모두가 보기좋은 장소에서
우리들 모두가
터놓고 웃음 나누는 모습을
저는 매우 아름답다 말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낙엽편지 / 홍해리
제 무게에 겨워
스스로
몸을 놓고
한없이 가벼움으로
세월에 날리며
돌아가고 있는
한 생(生)의 파편,
적막 속으로
지고 있다
가벼이
다 버리고
다 비우고도
한평생이 얼마나 무거웠던가.
이제
우주가 고요하다
눈썹 위에
바람이 잔다.
인천의 백마식당에서
한끼식사가 4천원이다
그렇다고 맛이 없거나
영양가가 부실한건 아니다
무정설법이요
1700공안....
무자진경.
ㅡ나는 내게 힘을 주면 못하는것이 없을뿐이다
어떤늠이 잘잘못을 재단한단 말인가...
하느님!
제 뒷사람.
제 뒤에오는 사람들,
부디 잘되게 해 주십시오.
걷자,
걷다가 지겨우면 뛰고
뛰다가도 속터지면 달린다.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것도 되는게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