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순진리회
구한말의 종교가인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가르침을 따르는 증산계통 종교로, 분열에도 불구하고 증산계통 종교 중에서는 교세가 가장 크다.
규모
강증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교파들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다른 증산계통 교단들이 분파는 많으나 대부분 교세가 미미한 상황과 대비된다.
한때 신도수 400만을 주장했다.
이는 과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영생교, 천부교의 최대 신도수를 합친 것보다 크고 370만 명의 신도 수를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리고 인구주택총조사 종교항목에서 명시된 8개 항목 중 하나를 차지한다.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통계는 10년마다 실시하는데, 1995년부터 대순진리회가 정식항목으로 들어갔다.
2005년에는 대순진리회 대신 '증산교'로 되어있는데 '증산교'라고 하면 증산계열 종교를 모두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심지어 교명이 '증산교'인 교단까지 있다.
결국 증산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신도가 모두 이쪽으로 잡히는 문제점이 있었고, 반대로 대순진리회 신자들이 증산교가 아닌 '기타'를 고르는 일도 왕왕 있었기에 당시 통계가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인지 2015년에는 '증산교' 대신 '대순진리회' 항목이 부활했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종교통계가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신도수 파악은 어렵다.
대순진리회 측에서는 현재 신도수가 꾸준히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교리
태극도에서 갈라졌으므로 교리는 당연히 태극도와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의례체계나 교리는 태극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전으로는 전경(1974 년 초판)을 사용하는데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이 수집한 기록들을 토대로 편찬, 장병길 교수 그리고 박한경이 감수하였다.
보통 대순진리회 사람들은 전경을 읽는다.
교리개요
음양합덕(陰陽合德) ․ 신인조화(神人造化) ․ 해원상생(解寃相生) ․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종지(宗旨)로 하여 성 ․ 경 ․ 신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 ․ 안신(安身) 이율령으로 수행의 훈전을 삼아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 구제창생(救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이룩한다.
종지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
신조
사강령: 안심, 안신, 경천, 수도
삼요체: 성, 경, 신
목적
무자기(無自欺) 정신개벽(精神開闢)
지상신선 실현(地上神仙實現) 인간개조(人間改造)
지상천국 건설(地上天國建設) 세계개벽(世界開闢)
역사
연원: 태극도
대순진리회는 기본적으로 연원을 증산계 종교의 교조인 증산 강일순(통칭 강증산)과 그 영적 제자로 자처한 정산 조철제에게서 찾는다.
태극도 자료를 따른다면, 조철제가 15세였던 1909년 음력 4월 28일(양력 6월 15일)에 꿈에서 증산이 나타나 "나는 구천상제요 너는 옥황상제라"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는 아직 증산이 사망하기 약 2개월 전으로 이때부터 조철제는 자신이야말로 증산의 참 후계자요 영적 제자이자 또한 옥황상제라고 자처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조철제의 주장일 뿐이다.
조철제는 강증산의 제자도 아니었고, 강증산을 생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대순진리회 전경에 따르면 강일순은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아올 테니 그때 전해주라면서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맡겼다는 구절이 있다.
대순계 자료에서는 강일순의 예언대로 을미생 조철제가 1919년 정월 보름에 선돌부인을 찾아가 봉서를 받아갔다고 서술한다.
강증산이 사망한 이후에 부인들과 외동딸, 직계제자들이 사분오열되어 각자 교단을 세우면서 서로 다툰다.
이때 증산계 교단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성한 곳은 강증산의 제자 차경석이 세운 보천교였다.
그러나 보천교는 차경석 말기에 친일적 활동을 보이다가 조선총독부가 내린 유사종교해산령으로 해산되었다.
광복 이후 교단을 재건하였으나 지금은 명맥만 간신히 잇는 수준에 불과하다.
참고로 차경석의 손자가 바로 후암미래연구소 대표와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을 맡았으며 언론에선 종종 예언가로 소개하는 차길진 법사이다.
조철제도 이들 중 일부와 함께 1925년에 <무극도>(혹은 무극대도)를 세우고 증산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였다.
무극도는 1935년 일제의 유사종교해산령으로 보천교처럼 해산당하나, 해방 후에 조철제가 <태극도>라는 이름으로 재건한다.
대순진리회의 탄생
1958년 조철제가 사망한 후 박한경(朴漢慶, 1917-1996. 호는 우당牛堂)은 자신이 조철제로부터 교단의 전권을 받았다고 주장하여 태극도가 분열되었다.
물론 이 부분은 대순진리회와 태극도간 주장이 서로 다르다.
조철제의 아들 조영래를 중심으로 反박한경파가 결성되어 교권 장악을 가로막자, 박한경은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을 데리고 감천동 신앙촌에서 나와 1969년 서울 중곡동에 대순진리회를 창교하였다.
박한경은 태극도에서 사용한 도전(都典)이라는 직위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대순진리회 도전이 되었으며, 강증산에게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줄여서 구천상제)를 붙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편
태극도는 여전히 감천동에서 소규모 신앙 활동을 하는 중이다. 삼강오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발전과 문제점
1969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을 창건하였고 1986년 경기도 여주에 여주도장을 준공하였고 1993년에는 종단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도장으로 이전하였다.
1984년 학교법인 대진학원을 설립한 뒤 종합대학인 대진대학교를 비롯하여 대진고, 대진여고, 분당대진고, 대진디자인고, 일산대진고, 대진전자통신고 등 고등학교 6곳을 운영하며, 1992년 대진의료재단을 설립하였고 1998년에는 분당 제생병원을 개원하는 등 그 위세가 절정에 이른다.
곧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1984년에는 추적 60분에서 '아내의 가출' 이란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고 2000년대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다뤘었다.
포교방식에 있어서도 몇몇 방면과 도인들은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기나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등으로 포교활동을 하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박한경의 사망과 분열
1995년 8월에 박한경(1917년생)은 자신의 처남이자 종무원장을 맡던 경석규(1919년생)를 두고 "경 원장은 나이도 들었으니 자유롭게 두고 들든 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라는 발언을 하는데 이게 갈등의 씨앗이었다.
이는 경 종무원장을 해임할 것인지 유임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이 아니었고 여전히 등기상 대표는 경석규로 등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한경의 인척인 경석규가 아닌 여주본부도장의 원장이던 이유종이 종무원장의 권한을 일부 위임 받으면서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게 되었고 박한경은 후임자를 지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당시 도헌에는 경석규 종무원장의 임기는 죽을때 까지로 되어 있었다.
도헌에는 박한경 도전 유고시 대표는 경석규 종무원장, 종의의장 순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한경 도전은 1996년 1월 23일 사망하면서 교단은 일부 욕심이 가득한 사람들 때문에 분열과 대립에 빠져든다.
분열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이유종은 이후 사망하였다.
분열의 표면적 이유는 신위변경 문제였다.
대순진리회의 도장에는 영대라는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신격, 신명들을 봉안하였다.
특히 영대 4층에는 강증산을 한가운데 진영으로 봉안하였고 그 우측에는 조정산, 좌측에는 석가불을 봉안하였다.
이미 박한경이 살아있던 당시 박 모 선감이 석가불 대신 박한경 도전의 진영을 모시자고 주장하였으나 박한경은 이를 불가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고 한다.
박한경 사후 천안/성주/서울 방면 등은 석가를 대신해 박한경 도전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반면 부전/금릉/안동/포항 방면 등은 이를 반대하였다.
반대하는 측은 도전 본인이 생전에 자기 진영 모시기를 반대한 점, 박한경을 모실 경우 주문과 절을 하는 회수도 바꿔야 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분열에는 교리문제 뿐만 아니라 종단권력과 교단 예금 4천억원 문제도 있었다.
박한경 도전의 처남 경석규 종무원장과 여주본부도장 이유종 원장이 서로 갈등하여 교단 법인계좌의 대표가 경석규에서 이유종으로 불법으로 바뀌자 세무서는 교단의 사업자등록을 말소하였고, 이로 인해 계좌가 동결되었다.
이 문제는 법원으로도 갔지만 법원에서는 경석규와 이유종 둘 다 종단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종은 종무원장의 권한을 일부 행사했지만 정식 종무원장 임명을 받은 이력이 없으며 박한경이 생전에 한 발언이 사실상 경석규 경질이라고 해석한 셈이다.
12년간 묶인 예금 4000억… 대순진리회의 고민(조선일보, 2011년 5월 7일.)
두 세력은 대치를 거듭하다가 안동/금릉/경석규 세력이 여주도장을 점거하고 농성하였다.
이때 이유종 세력과 천안방면 도인들과 대치하고 경찰 15개 중대가 출동하는 등 사건이 커졌지만, 결국 부전 방면이 여주본부도장을 점거하고 이유종은 여주도장에서 쫓겨났다.
여주도장에서 밀려난 이유종과 천안방면 측이 반 년 뒤인 2000년 1월 6일, 천안방면 도인들과 폭력배를 동원하여 여주도장을 급습하여 탈환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 2차 사태도 종결되었다.
소위 '여주 사태'라고 불리는 이 두 번에 걸친 대규모 폭력사건과 일련의 분열을 언론사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대순진리회의 분열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 여주 사태에는 대립하는 양쪽이 모두 조직폭력배 혹은 용역을 대규모로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유종 여주본부 도장 원장은 중곡동 도장을 중심으로 하는 천안방면과 그 방계조직들의 수장이 되었고, 경석규 종무원장은 부전/금릉방면과 갈등을 빚고 다시 갈라져 나왔다.
따라서 1999년부터 대순진리교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각 방면들이 서로 갈등을 빚으면서 병존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가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확실한 것은 본래 본부도장이었던 중곡동 도장을 점유하던 천안방면의 수장인 이유종의 세력이 상당히 강했고, 종무원장을 경석규는 부전, 금릉, 안동 방면의 이탈로 인해 상당히 세력이 약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유종 원장은 자체적으로 종무원장 칭호까지 썼고 반대파가 소송을 걸어서 이를 못 쓰게 막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1년 1월 22일 그것이 알고 싶다 786회 "2400억을 둘러싼 진실게임-어느 종교 단체의 10년 전쟁" 편에서 여주사태 등 대순진리회의 분열을 다루기도 했다.
여기선 종단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4대민족종교의 하나인 D교단으로만 나온다.
이 방송에 출연한 종단간부들은 저마다 자신이 박한경 도전의 후계자라면서 다른 간부들을 맹비난하였다.
다만 방송에서 성**이라는 제보자는 D종단 원장이 여주지검에서 조사받던 중 자신을 칼로 찔렀다고 주장했으나 2013년 자해에 따른 무고죄로 2년형을 받았다.
방송 직후 재판이 종결되면 재판결과에 따라 사과방송과 다시보기 프로그램 중지를 합의하기로 함에 따라 현재는 다시보기가 되지 않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에서 786회를 찾아보면 그 내용이 짤막하게 나와 있다.
분열의 치유와 오늘날
계속되는 분열 속에 각 세력들간 고소와 맞고소가 난무했고 관련 소송도 수십 건이 제기되었다.
핵심인 종단 대표자 소송이 지리하게 계속되다가 대법원에서 임시종무원장을 선임하면서 잠시 주춤하게 된다.
임시종무원장 체제가 계속되다가 분열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경석규와 이유종이 사망하는 등 상황이 변화하자 주요 세력들의 합의가 이루어져 고소와 소송 대부분이 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 여주본부도장, 서울 중곡도장, 포천도장을 중심으로 중앙종의회에서 공동대표 3명을 선출하여 드디어 오랜 분열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었다.
현재 인터넷에서 대순진리회를 검색하면 중곡동도장에서 운영하는 대순진리회와 여주본부도장에서 운영하는 종단 대순진리회 웹사이트 2곳이 뜬다만 현재 중곡도장(천안방면) 쪽은 사이트 관리를 안 하고 있다.
대순진리회는 교주 박한경 생존시에 서울 대진고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여러 곳과 대진대학교를 개교하고 이를 한데 묶어서 교육법인 대진대학교를 만들었고, 또한 의료법인 대진의료재단 산하에 분당제생병원을 운영하였다.
현재 대진대학교와 대진의료재단은 양쪽 홈페이지에 모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서울중곡동 도장이 운영하는 대순진리회 홈페이지는 산하기관에 사회복지법인 <상생복지회>가 들어있으며, 상생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주요시설에 소개가 있다.
반면에 여주본부도장이 운영하는 종단 대순진리회 홈페이지에는 <상생복지회>의 이름은 없으며, 여주본부도장이 2007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대순진리회복지재단>이 올라있다.
현재 대순진리회복지재단은 경기도 여주 강천면에 대진요양시설과 대진요양병원, 대진노인복지센터, 대진청소년 수련원을 운영한다.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었다고는 하지만 분열되었던 시절의 잔재라고 봐도 될 듯 하다.
현재 대순진리회는 단일대표가 아니라 가장 큰 3개의 세력이 공동으로 대표를 뽑아 운영하는 것이 현실인지라 여주본부도장 홈페이지의 이런 표기는 상생복지회의 운영을 중곡도장의 독자적 행보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큰 불을 끄는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잔불은 남아있는 듯 하다.
2022년 2월 중순에 중곡동 도장의 점유를 두고 계파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을 정도.
대순진리회에서 분리된 단체들
아래의 단체들은 대순진리회에서 떨어져나가 공식적으로 연관이 없는 단체들이나, 별도 문서를 작성하기에는 지명도가 매우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편의상 이곳에 서술한다.
성주방면과 서울방면은 최초 분열 사건 이후 여주에서 밀려난 이유종의 천안방면에 동조했지만, 2000년 12월 천안방면과 성주, 서울방면 역시 분열한다.
이듬해에는 성주방면과 서울방면도 서로 갈라섰다.
성주방면은 이후 대진성주회를 만들면서 사살싱 독자행보를 걷는다.
한편 여주본부도장에서 밀려난 이유종은 스스로 "종단 대순진리회 종무원장"을 자처하면서 대외활동을 하다가 2003년 11월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결로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대순진리회 대표자 명칭 사용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상술한 대진성주회는 자신들이 대순진리회의 지회라고 주장하지만, 대순진리회 측에서는 별개의 단체라고 설명한다.
(대순진리회 vs 대진성주회 - 현대종교, 2015년 9월 25일.) 대진성주회 산하에는 중원대학교가 속한 학교법인 대진교육재단을 비롯해 화양리의 제인병원(구 제인한방병원), 대진요양원, 강원종합박물관, 동해약천온천 실버타운, 가야호텔, 동해보양온천 컨벤션호텔 등이 있다. 대순진리회 신도라면 이쪽 병원에 취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제인병원의 경우 내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도가 아니라도 취직은 가능하다고 한다.
청주시 사직동 종합체육관 근처에 있으며 버스를 타고 청주 시내를 다니다 보면 한 번쯤은 보게 되는 5층 목탑은, 대순진리회의 한 분파로 용암방면에서 유래한 용화대미륵선도(용화미륵수도회)에서 만든 것이다.
그것도 건물 전체를 금박을 씌워서.
2022년 1월 4일에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4050위원회 종교본부 발대식 및 임명장 수여식 사진을 보면 황금색 용포를 입은 용화미륵수도회 김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8년에 김찬성 회장에 대한 폭로글이 올라왔다.
2003년경에는 연천의 한 분파인 대순진리성도회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생명명수를 마시면 질병이 낫고 죽은 시체에다 뿌리면 죽은 자가 부활한다고 주장하며 직접 실행했다.
멀쩡히 나을 수 있는 환자들조차 엮여서 돈을 뜯기고 죽었다.
사람을 죽이고 생명수를 주입하면 살아난다고 믿고 직접 실행한 것으로 유명한 생명수 사건이 있었다.
PD수첩에 보도된 바 있고, 결국 포천수도장 등지에서는 대순진리성도회 소속 신도의 참배를 금지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했음을 드러냈다.
그 외에 대순진리회에서 파생된 군소 종파로 대미륵봉심회(김명중), 대순성도회(구천미륵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