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다 구조되다. / 全員が無事に上陸した。(2023_3_12 주일예배)
https://youtu.be/tjwdOIm5SNs
행 27:39 날이 새니, 어느 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래밭이 있는 항만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배를 거기로 몰아 해변에 대기로 작정하였다. 40 닻을 모두 끊어서 바다에 버리고, 동시에 키를 묶은 밧줄을 늦추었다. 그리고 앞 돛을 올려서, 바람을 타고 해안 쪽으로 들어갔다. 41 그런데 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 끼여들어서, 배가 모래톱에 걸렸다. 이물은 박혀서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졌다. 42 병사들은 죄수들이 혹시 헤엄 쳐 도망할까봐, 그들을 죽여 버리려고 계획하였다. 43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을 구하려고 병사들의 의도를 막고, 헤엄 칠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뛰어내려서, 뭍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였다. 44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은 널빤지나, 부서진 배 조각을 타고 뭍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두 뭍으로 올라와 구원을 받게 되었다.
"朝になって、どこの陸地であるか分からなかったが、砂浜のある入り江を見つけたので、できることなら、そこへ船を乗り入れようということになった。 そこで、錨を切り離して海に捨て、同時に舵の綱を解き、風に船首の帆を上げて、砂浜に向かって進んだ。 ところが、深みに挟まれた浅瀬にぶつかって船を乗り上げてしまい、船首がめり込んで動かなくなり、船尾は激しい波で壊れだした。 兵士たちは、囚人たちが泳いで逃げないように、殺そうと計ったが、 百人隊長はパウロを助けたいと思ったので、この計画を思いとどまらせた。そして、泳げる者がまず飛び込んで陸に上がり、 残りの者は板切れや船の乗組員につかまって泳いで行くように命令した。このようにして、全員が無事に上陸した。"
지난 주일에는 여러분들께서 귀한 외부 강사 목사님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음성을 들으시고 각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의 새로운 지평이 한층 확장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지난 열흘간의 일상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눌 메시지를 통해서도 주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은혜와 감동이 채워질 것을 믿습니다.
저는 지난 3월 3일부터 10일까지 우리 믿음의 성지인 이스라엘과 요단강 동편에 속한 요르단 여러 지역을 순례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모두 주님의 인도하심이었고요. 무엇보다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낮에 인천공항에 도착을 해서, 오늘 새벽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여러분과 함께 이 귀한 예배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버겁고 분주한 스케줄이었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시는… 그 어느 누구도 대신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을 실감나게 체험하시게 된 것을 믿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메시지를 통해서 더욱 실감나게 현장감이 넘치는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탄 배가 두 주간을 표류하던 끝에 드디어 어느 해안에 가까워지고 모두가 구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과정을 매우 생동감이 있게 묘사한 내용인데요. 그 사실적인 묘사에 대해서 하나하나 영상이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이번 순례를 통해 이런 저의 마음을 초기 기독교인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곳들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배경이 되는 지역들인데요. 7박 9일간의 모든 일정을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성지를 순례하면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마음과 생각, 그리고 넓어진 배움의 지평에 관해서는 앞으로 차분히 정리해 가며 여러분과 하나하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 증거가 되는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성경이 말하는 지명이나 장소에는 모두 성당이라 불리는 가톨릭교회나 혹은 정교회라고 불리는 기독교 분파의 예배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공인이 되고 공인된 교회로서의 규모로 자라면서 성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기 때문인데요. 여전히 그 곳에서 오랜 세월 존재하면서 가톨릭 예전이나 정교회의 예전을 지키는 모습들도 있었지만, 건물만 있거나 터만 남아 있는 경우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그런 유적이나 성당에 가면 온갖 그림들과 조각상들로 가득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성상숭배이며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우리와 같은 말씀 중심의 개념을 가진 개신교도 없었고, 기독교라고 하면 바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남긴 유산이 곧 기독교의 유산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모자이크로 만든 그림(이-콘, 혹은 아이콘 이라 불리는…)이나, 조각상들을 그토록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일까… 바로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모든 장소에서 각각 고유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동을 받고 배움의 지평을 넓혔는데요… 전체의 모든 일정들을 돌이켜 보며 배운 것을 만일 한 마디로 정리한다고 한다면… 생동감이 넘치는 현장체험… 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2,000년이 지난 시간의 차이도 있고, 장소적인 차이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성지의 ‘현장성’이 제 마음에 여러가지 도전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피부로 와 닿은 곳은 바로 가이사랴에 만든 총독의 관저였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도 함께 나누었던 본문인데요. 바로 베스도에게 재판을 받던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는 장면입니다. 사도행전 25장 12절과 23절에 관련된 장소입니다.
아직 사진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직접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만… 제 동행일기를 통해서 이미 공개한 곳입니다. 언젠가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곳은 바로 지중해 바닷가에 건설된 장소였습니다. 지중해에서 밀려오는 바람과 파도소리가 웅장한 해변에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었습니다. 그 관저의 한 켠에 사도 바울을 심문하던 접견 장소가 있었던 것인데요. 제가 현장에 가서 보기 전까지는 사실, 그저 성경에 기록된 문자적인 내용과 그 의미에만 집중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성지순례를 통해 현장을 방문하고 나니 바울의 심정과 그가 처했던 환경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장성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휴양지와도 같은 분위기로 조성되어 있던 로마 총독의 가이사랴 관저에 구금되어 있던 바울이 총독과 분봉왕 아그립바 앞에서 당당하게 나는 황제에게 상소하겠다고 외치던 장소에서 바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파도소리의 웅장함이었습니다. 어쩌면 바울은 지중해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파도소리(저도 들었던 그 파도소리)를 들으며 저 파도 너머에 있는 로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중들 앞에서 선포하며, 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결처럼 보여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웅장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울이 섰을 것이 분명한 그 접견장소 유적에 서 보았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서 바다가 직접 보였지만, 당시에는 벽이 있었던 건물이었겠지요. 그러나 분명 파도소리를 타고 드려오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였던 바울은 당당히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그리고 그는 바로 총독의 관저의 경내에 있던 항구를 통해서 로마를 향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지지난 주일까지 함께 매주일 나누었던 내용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육지에 상륙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육지는 이탈리아 남해에 위치한 ‘몰타’라는 이름의 섬입니다. 이 몰타 섬에서 있었던 일은 다음 주일에 함께 나누게 될 것이구요.
몰타 섬에 오른 배의 승객들과 죄인들은 모두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이 모두 섬에 상륙하여 구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언을 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성취된 것이지요. 이처럼 말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현실 안에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비록 죄인들로 가득한 저주받은 세상이라 할 지라도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오늘 우리는 성찬을 받는데요. 성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과 나누셨던 마지막 식사이며, 유월절 전통을 따라 식사를 하시면서 행하신 만찬을 기억하며 행하는 예전입니다. 그 만찬이 행하여졌던 장소라고 알려진 곳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불리는 장소입니다. 이 장소의 모습도 기회가 되면 여러분과 함께 나눌텐데요. 이 마가의 다락방, 정확히 말하자면 마가복음의 필자인 마가의 어머니가 소유한 2층집의 윗층 공간에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성령강림의 사건도 일어납니다. 물론 이번 성지순례에서 그곳에도 방문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왔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찬은 단지 종교적인 행위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저 작은 전병 조각과 포도즙을 먹는 행위를 모방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기 위한 우리의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다만 성찬뿐만이 아닙니다. 주일예배를 지키는 것과 매일 주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바로 주님의 권능이 우리의 현장에서 실감나게 역사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시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주일에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예배를 드리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때를 따라서 행하는 은혜의 자리에 참석하는 순종을 통해 우리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실감나게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체험하는 일상을 살며 누리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높고 험난한 파도가 일렁이는 현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이 파선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오늘 본문의 말씀이 증언하듯이 우리 중 그 누구도…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육지에 상륙하여 구조되는 것처럼, 우리도 모두 마지막에 최후 승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바울에게 역사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감당하는 삶의 현장에서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친히 나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주님의 강한 권능이 저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지켜 주시는 은혜와 사랑은 창조 전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며 그 현장의 은혜를 체감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성지를 다녀오게 된 것은 그 장소만이 거룩하고 특별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이스라엘 땅이라는 현장에서 현실로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도 지금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다녀 온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스라엘의 성지만큼이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현실에서의 삶과 쌓여지는 궤적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행하시는 거룩한 삶의 현장이오, 성지로서 주님께서 주목하시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