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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호흡을 관찰하는 법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어서 머물러 어지럽지 않으면‘대상에 있다’고 함은
호흡을 셀 때는 한마음이 세는 데에 있고,
호흡을 따를 때는 한마음이 오직 따르는 데 있으며,
관觀을 닦을 때는 한마음이 관에만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다고 한다.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으면 다른 마음이 끼어들지 못하므로 마음이 머무를 수 있게 된다.
곧 호흡 따르는 법을 버리고 호흡 관찰하는 법을 닦아야 한다.
수행자가 선정에 든 마음에서 마음의 눈으로 몸속에서 미세하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잘 살피면 그 모양이 허공의 바람과 같다.
또 피부와 힘줄과 뼈와 살 등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6)은 모두 파초와 같이 알맹이가 없고 안과 밖이 모두 더러워 몹시 싫어진다.
또한 숨이 몸에 머무는 것은 마치 구슬을 꿰고 있는 실과 같으며, 차가워지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관찰한다.
6)서른여섯 가지 물질 :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특성에 따라 36종으로 분류한 것으로 제20장 통명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분류한 물질은 경론마다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또 심식心識은 생겨났다 사라짐이 무상하여 한 찰나도 머무르지 않으므로 집착할 곳이 없음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심안이 밝게 열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모든 털구멍에 두루 퍼져 있음을 알게 되고,
안팎의 오장육부와 벌레들까지도 속속들이 보게 된다.
또한 온갖 괴로움이 핍박하고 한순간에 뒤바뀌며, 일체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마음에 생겨나는 슬픔과 기쁨도 의지할 곳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면 곧 사념처四念處사념처란 육신이 고통임을 생각하고, 느낌이 고통임을 생각하고, 마음이 무상함을 생각하고, 법에는 주체가 없음을 생각하는 것이다.를 얻어서 네 가지 뒤바뀐 생각7)을 타파하게 된다.
심식(心識);
불교에서 인간의 정신적 주체와 그 인식 작용을 통칭하는 용어. 좁게는 사물을 분별하는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하며, 넓게는 심(心), 의(意), 식(識)을 합친 심의식
(心意識)의 체계를 뜻
불교의 심식설은 시대와 학파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구조로 나뉩니다.
1. 육식(六識) 구조 (초기/소승 불교)
가장 기본적인 인식 체계로, 외부 대상을 감지하는 5가지 감각과 이를 종합하는 사고 능력을 말합니다.
o 전오식(前五識): 안식(시각), 이식(청각), 비식(후각), 설식(미각), 신식(촉각) — 대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 작용.
o 제육식(意識): 앞의 다섯 감각이 받아들인 정보를 분석, 사고, 판단하는 핵심적인 정신 활동.
2. 팔식(八識) 구조 (유식학파)
마음의 더 깊은 층위를 탐구하여 육식 뒤에 두 가지 식을 더 추가한 구조입니다.
o 제칠 말나식(末那識): '나'라는 집착을 일으키는 자의식의 뿌리.
o 제팔 아뢰야식(阿賴耶識): 모든 경험과 업의 씨앗을 저장하는 근본 마음(함장식).
주요 개념 요약
o 심(心, Citta): 온갖 경험의 씨앗을 모으고(집기) 쌓아두는 근본 마음.
o 의(意, Manas): 사물을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는(사량) 의지처.
o 식(識, Vijñāna): 대상을 구별하고 인식하는(요별) 작용
이미 나와 남이 없거늘 선정인들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이렇게 관觀을 통한 이해가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각覺과 염念8)을 움직인다면 그것 역시 진실한 도가 아니다.
이때에는 방법을 바꾸어 환還과 정淨 등의 법을 닦아야 하는데 그 설명은 제18장 육묘문六妙門에 있다.
7)네 가지 뒤바뀐 생각(四顚倒) : 일체의 세간법은 무상하고, 고통스러우며, 주체가 없고, 더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영원하고, 즐거우며, 주체가 있고, 깨끗하다고 보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8)각覺과 염念 : 호흡에 대한 지각과 사념처를 말한다.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897b01-c01)
| 제18장 육묘문六妙門 육묘六妙란 첫째 수數, 둘째 수隨, 셋째 지止, 넷째 관觀, 다섯째 환還, 여섯째 정淨이다. 왜 묘문妙門이라 하는가? 이 여섯 가지 법을 통해 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묘문이라 한다. 앞의 세 가지는 선정법이고 뒤의 세 가지는 지혜법이며, 유루이면서 무루라는 뜻17)이 여기에 있다. 수행하여 깨닫는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모든 선이 다 육묘문六妙門에 속하나 지금은 단지 순서대로 생기는 양상만을 취해 도에 들어가는 바른 요체로서 육묘문을 밝히겠다. 첫째, 수數란 호흡을 세는 법에 따라 닦아 익히는 것이다. 호흡을 세는 법이 이루어져 호흡이 허공이 엉긴 듯하게 되면 마음의 모습이 점점 미세해지면서 호흡을 세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이때 세는 법을 버리고 수隨를 닦는다. 둘째, 수隨란 호흡을 따르는 법에 의거하여 닦아 익히는 것이다. 마음과 호흡이 서로를 의지해 뜻과 생각이 즐거워지면 호흡을 따르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이때에는 호흡을 따르는 법을 버리고 지를 닦는다. 셋째는 지止이다. 지에는 세 가지 법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방편문 중 제35장에 나온다.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제심지법을 이용해 대상에 대한 모든 생각을 그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선정에 들어간다. 이 선정법으로 마음을 지속시키면 저절로 동요함이 없게 되는데, 이때는 관법을 닦아야만 한다. 제35장 삼지三止 무릇 도를 닦고자 하면 먼저 지止를 수행해야 한다. 지란 편안하고 조용히 하며 그치고 고요히 하여 선정에 드는 것이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대개 모든 선문의 공덕은 다 안으로 안정된 데서 생기는데, 지는 마음을 제어하고 산란함을 그침으로써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경에서 “제어하여 한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34)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지는 선을 닦는 첫 번째 문이다. 사람들의 스승이 된 자가 만일 도안道眼을 얻은 뒤 근기를 관찰하고 법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본습本習을 북돋우고 대치하는 법을 잘 알 것이다. 본습이란 숙세에 익힌 것이다. 그가 익혔던 것을 바탕으로 법을 가르쳐 주면 공부가 쉽게 이루어진다. 사리불은 근기와 인연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사자金師子35)에게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고, 완의자浣衣子36)에게 수식관數識觀을 가르쳐, 오랫동안 익혀도 아무런 효과가 없고, 도리어 사견만 생기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한번 보시고 서로 바꾸어서 수행하도록 가르쳐, 곧 도를 이루게 하셨다.37) 이것을 본습을 북돋우는 것이라 한다. 나머지 사람들, 즉 도의 안목이 없고 근기를 알지 못하는 스승일 경우엔 모름지기 먼저 지止의 문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번뇌의 생각들이 점차 잦아들고 도의 마음이 점차 늘어나면 곧 홀연히 선정 가운데에서 선과 악의 근성이 일어나게 된다. 선근이 일어날 때에는 그 나타난 근성에 따라 본습을 북돋워서 닦고, 악의 경계가 나타날 때에는 많은 것부터 대치해 없앤다. 이러한 까닭에 지의 문은 후세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쳐 주는 바른 뜻이 된다. 진실로 그렇지 못할 경우 선과 악의 근기를 분별하기가 어려워 인연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된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이다. ‘계繫’란 마음을 한곳에 붙들어 두어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매어 두는 곳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이고, 넷째는 마음을 배꼽 사이에 매어 두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이다. (첫째)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어둡고 가라앉으면 잠이 많아지므로 머리 위쪽에다 마음을 안치한다. 그러나 오래 하면 사람의 기운을 들뜨게 해 갑자기 중풍이 든 것처럼 되기도 하고, 신통을 얻어 날 것만 같기도 하니 항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머리털은 검은색이고, 살은 흰색이어서 마음이 머물기 쉬우며 숙세에 익힌 백골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하면 눈이 위쪽으로 쏠리기 쉽고, 혹은 꽃이나 구름 같은 노란색, 빨간색 등이 보여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전도시키니, 또한 항상 사용해선 안 된다. (셋째)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코는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지각하면 무상을 깨닫기 쉽다. 또한 숙세에 안반安般을 익혔던 것을 북돋워안安은 생生이고 반般은 멸滅이다. 안반이란 수의삼매守意三昧로서 호흡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져 능히 선정을 일으킬 수 있다. (넷째) 마음을 배꼽 아래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배꼽은 기의 바다(氣海)이며, 또한 중궁中宮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배꼽에 매어 두면 여러 가지 병을 없앨 수 있고, 혹은 안으로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볼 수 있어 십육특승 등의 선정이 생긴다. (다섯째)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발은 가장 아래에 있어서 기운이 마음을 따라 내려가면 사대가 조화로워지고, 또 숙세에 익힌 부정관을 북돋우게 된다. 이 다섯 곳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비유하면 원숭이는 뛰어오르고 건너뛰고 집어 던지며 잠시도 조용히 있을 때가 없지만, 만약 기둥에 매어 두어 오래 지나면 저절로 길드는 것과 같다. 마음 또한 이와 같다. 마음이 멈추어 머무르긴 했으나 아직 선정에 들어가기 전인 때에, 다시 하나의 지가 있으니 이것을 응심지凝心止라고 한다. 만약 선정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모두 사라진 듯 자유자재하고 저절로 고요해지면 이것이 곧 선정에 들어간 지이다. 둘째는 제심지制心止이다. 마음은 형체와 색깔이 없고 일정하게 머무는 곳도 없는데 어찌 경계에 매어 둘 수 있겠는가. 이것은 허망한 생각으로 대상을 반연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그것을 억제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른다면 다시 억제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저 그 마음을 집중하여 여러 어지러운 생각을 그치기만 하면 곧 이것이 지를 닦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들뜨고 요동치면 의지로써 마음을 아래에 두어 그치게 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위에 두어 그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아래에 두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이익이 많으니, 첫째 마음이 쉽게 안정되고, 둘째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바른 지혜로써 음陰·입入·계界·삼독三毒·구십팔사九十八使·십이인연十二因緣·삼계인과三界因果 등 모든 법이 다 공적하다고 체득한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 설한 것처럼,38) 색이 그대로 공이요, 색을 멸하여 공한 것이 아니다.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니 공이 곧 색이고, 색이 곧 공이며, 색을 떠나서 공이 없고, 공을 떠나서 색이 없다. 수·상·행·식 등 일체 모든 법이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음·입·계 등의 모든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我·인人·중생衆生·수명壽命39) 등 일체의 전도된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이라는 것을 아는가?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모든 법은 다만 무명으로 전도되어 허망하게 헤아린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허망하게 헤아려 생긴 법은 일체가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 꿈이나 허깨비와 같고 이름만 있는 것인데, 이름이라는 법 또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곧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 또한 없어지며 마침내는 텅 비고 고요하여 허공과 같아진다. 만일 수행자가 일체법이 허공과 같다고 체득하여 안다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무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없게 된다. 마음에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물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곧 일체의 전도망상과 생사에 묶어 두는 업을 짓는 일이 모두 다 그친다. 하는 것도 하고자 함도 없고, 생각이나 행위도 없으며, 만들거나 짓는 것도 없고, 보여주거나 말함도 없으며, 논쟁이나 다툼도 없어서 텅 빈 듯이 청정해지니 마치 대열반과 같다. 이를 ‘참된 지(眞止)’라고 한다. 이는 그칠 바 없는 것을 그치는 것이요, 그침 없이 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진지이다. 다음으로 지를 닦으면 오륜五輪이 발생하는 것을 증득한다. 오륜이란 첫째 지륜地輪, 둘째 수륜水輪, 셋째 풍륜風輪, 넷째 금사륜金沙輪, 다섯째 금강륜金剛輪이다. ‘윤輪’이란 구른다는 뜻으로 이곳을 떠나 저곳에 도착하는 작용이 있다. 예를 들면 지륜의 경우 낮은 곳을 떠나 굴러서 더 높은 곳에 이르고, 내지 금강륜은 굴러서 가장 높은 무학과無學果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윤이라고 한다. 지륜地輪이란 다음과 같다. 땅에는 머물고 지탱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지止로 인하여 미도지정을 증득하면 홀연히 마음이 맑아지고 몸과 마음의 상이 공한 것을 자각하여 텅 빈 듯이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선정법이 마음에 유지되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머물고 지탱한다’고 한다. 미도지정으로 인해 초선의 여러 가지 공덕이 생겨나는 것이 땅에서 만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므로 지륜이라고 한다. 수륜水輪이란 다음과 같다. 물은 윤택하게 적시어 생장시킨다는 뜻이 있고, 또한 체성이 유연하다. 수행자가 지륜의 단계에 있다가 수륜삼매를 증득하면 선정의 물이 마음을 적셔 주어 마음 가운데 선근이 늘어나고,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만심을 꺾고 선법을 잘 따르기 때문에 수륜이라고 한다. 풍륜風輪이란 다음과 같다. 바람에는 허공을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움직이게 하며 능히 파괴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풍륜삼매風輪三昧를 얻으면 궁극의 깨달음과 비슷한 지혜(相似智慧)와 걸림 없는 방편(無礙方便)이 발생해 바람이 허공을 돌아다니듯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된다. 이런 방편의 도로 세간을 벗어나는 여러 가지 선근을 일으키고, 또한 지혜의 방편으로 온갖 견해와 번뇌를 타파하므로 풍륜이라고 한다. 금사륜金沙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金’은 참된 마음을 비유하고, 모래(沙)는 집착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수행자가 견혜見慧40)와 사혜思慧41)의 참된 지혜를 일으키면 물들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그리하여 삼도三道의 과果42)를 얻어 일체의 티끌과 같은 번뇌를 타파하므로 금사륜이라고 한다. 금강륜金剛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강은 체성이 굳고 작용이 예리하여 모든 물건을 부술 수 있다. 금강삼매金剛三昧도 이와 같아 망상과 미혹이 침범하지 못하고 모든 번뇌를 끊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루게 한다. 넷째는 관觀이다. 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혜행관慧行觀이니 참된 지혜를 관하는 것이고, 둘째는 득해관得解觀이니 즉 가상관假想觀이며, 셋째는 실관實觀으로서 현상 그대로 관하는 것이다. 혜행관과 득해관은 사제四諦·십이인연十二因緣·구상九想·배사背捨 등에 설명이 있고, 실관은 관식법觀息法에 있다. 마땅히 세 가지 관법에 따라 닦아 익혀야만 한다. 다섯째는 환還이다. 관법이 이루어져 관하는 생각이 움직이게 되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관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인가,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마음으로부터 생겨났다면 마음과 관이 다른 것이 된다.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앞에서 호흡을 세는 법·호흡을 따르는 법·그치는 법을 닦을 때는 왜 관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그러면 곧 “관하는 마음은 본래 스스로 생겨나지 않았다. 생겨나지 않았으므로 있지 않고, 있지 않으므로 곧 공이며, 공이므로 별도의 관하는 마음도 없다. 이미 관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관할 대상이 있겠는가?”라고 알게 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대상과 앎이 함께 없어지고 마음과 지혜가 개발되니, 이것이 ‘근본으로 되돌리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返本還源)’이다 . 여섯째는 정淨이다. 근원으로 돌이키는 법이 이루어졌으면 깨끗이 하는 법을 닦아야 한다. 색의 깨끗함을 알기 때문에 망상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망상의 더러움을 쉬고, 분별의 더러움을 쉬고, ‘나’에 집착하는 더러움을 쉬면 주체와 객체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활연히 마음과 지혜가 상응하여 걸림 없는 방편이 저절로 개발되고 바른 삼매에 들어 마음에 의지함이 없게 되며, 나아가 무루의 지혜가 발생해 삼계의 더러움이 다하게 된다. 따라서 깨끗함이라고 한다. 또한 중생이 공함을 관하므로 ‘관’이라고 하고, 실제법의 공함을 관하므로 ‘환’이라 하며, 평등공을 관하므로 ‘정’이라고 한다. 또한 공삼매空三昧18)와 상응하므로 ‘관’이라 하고, 무상삼매無相三昧19)와 상응하므로 ‘환’이라 하며, 무작삼매無作三昧20)와 상응하므로 ‘정’이라고 한다 18)공삼매空三昧 :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긴 것으로서 거기엔 어떤 주체도 실체도 없음을 관하는 삼매이다. 공삼매·무상삼매·무원삼매를 흔히 삼삼매三三昧 또는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 한다. 19)무상삼매無相三昧 : 모든 법이 공이므로 남자나 여자, 같다거나 다르다는 등 차별되는 모습이 있을 수 없음을 관하는 삼매이다. 20)무작삼매無作三昧 : 무원삼매無願三昧라고 한다. 일체법에 차별상이 없으므로 얻을 것도, 지을 것도, 바랄 것도 없다고 관하는 삼매이다. 또한 모든 외관外觀을 ‘관’이라 하고, 모든 내관內觀을 ‘환’이라 하며, 모든 내관도 외관도 아닌 것을 ‘정’이라고 한다. 또한 보살이 가假로부터 공空에 들어가는 관을 ‘관’이라 하고, 공으로부터 가에 들어가는 관을 ‘환’이라 하며, 공과 가를 한마음으로 관하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 또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도에 들어가는 초입에 먼저 육묘문으로 근본을 삼으셨다. 그러므로 보살이 육묘문에 잘 들어가면 모든 불법을 갖출 수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902a01-c01) |
觀息第七章
心常在緣。止而不亂。在緣謂數息時。 一心在數。隨息時。一心在隨
修觀時。一心在觀。故曰心在緣中。心常在緣。他念不干。故心得以止也。 即當捨隨
修觀。行者。於定心中。以心眼。諦觀身
中微細出入息。相如空中風。皮筋骨肉
三十六物。如芭蕉不實。內外不淨。甚
可厭惡。又觀息住身中。如珠中縷。爲
冷爲煖。爲損爲益。又觀心識。生滅無
常。刹那不住。無可著處。如是觀時。心
眼開明。覺息出入。徧諸毛孔。徹見內
外臟腑。及諸蟲戶。見得衆苦逼迫。刹
那變易。一切諸法。悉無自性。心生悲
喜。無所依倚。即得四念處。四念處者。念身是苦。念受是苦。
念心無常。念法無我也。 破四顚倒。旣無人我。定何
所依。觀解旣發。覺念流動。亦非眞實
之道。爾時轉修還淨等法。在六妙門中
也。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897c01-c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