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삼매
3)수능엄삼매도
수능엄삼매도는 벽산이 『금강심론』 제3편 「수능엄삼매도결 상」에서 설한 내용을 수행 계위를 위주로 세 가지 원상(圓相)에 나타낸 그림이다. 즉, 화엄‧천태‧밀교‧우주론‧법수 등의 제 불교의 법상(法相)과 행상(行相)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낸 도식이다.
무주는 수능엄삼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의 모든 일진법계(一眞法界) 현상을 이렇게 도시한 것이다. … 팔만 사천 법문 가운데 중요한 법문들이 발췌되어 도식화되어 있다.… 한 가운데에 있는 아미타불은 바로 대일여래로서 법신‧보신‧화신의 삼신일불이고 바로 자성미타라고 하는 자성의 명호이다.
위와 같이 수능엄삼매도는 일진법계 현상과 팔만 사천 법문의 핵심을 도시하였으며, 도상 가운데 아미타불은 삼신일불이고 자성미타의 명호라고 말한다. 또한 무주는 수능엄삼매도에 대해 '이지불이(理智不二)'를 말하는데, "원융무애인 경계이기 때문에 '이(理)' 따로 있고 '지(智)'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이(理)와 지(智)가 원래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법'이라는 것은 원래 원융무애한 경계이지만, 중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분별 지혜로 구분한 것이라는 뜻이다.
도상의 상단에는 수능엄삼매도라는 제목과 부제로 반야바라밀‧금강삼매‧사자후삼매‧불성 등이 있고, 그 아래는 성신회(成身會)의 1061존위라 적혀있다. 도상 좌측에는 화엄의 『법성게』 여덟 구절이 있고, 우측에는 밀교의 '무장애연화삼매송' 여덟 구절이 있다. 서문에는 "본 도결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고, 공(空)을 본체를 하며 성품과 모양을 작용으로 한다." 또 "불타와 조사의 약간의 명구(名句)를 원문이나 지은 글의 증거로 본 도결의 서론으로 대신한다."라고 말한다.
(1)『법성게』의 여덟 구절
『법성게』는 주지하듯이 한국 화엄의 초조인 신라 의상(義湘, 625~702)의 저술이다. 공식 명칭은 『화엄일승법계도』로 화엄의 대의를 칠언 삼십구 이백십자[210]로 요약하고 있다. 법계도인(法界圖印)과 의상이 주석한 법계도기(法界圖記)가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게송 부분만을 칭하여 『법성게』로 많이 알려졌다. 한국 불교에서는 거의 다라니처럼 지송되며, 법계도인 또한 밀교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의상의 해설을 보면 법성게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처음 열여덟 구절은 자리행(自利行)을 나타내고, 다음 네 구절은 이타행(利他行)을 드러내며, 마지막 여덟 구절은 수행자의 방편과 이익 얻음을 분별한다. 수능엄삼매도에는 일곱째 구절에서 열넷째 구절까지의 여덟 구절이며,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하나 중에 일체이고 많은 것 중에 하나이며/ 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하나의 미세한 티끌 속에 세계를 품고/ 일체 티끌 중에도 그러하다/ 한량 없는 긴 세월이 곧 한 생각이며/ 한 생각이 곧 한 없는 세월이다/ 구세(九世)와 십세(十世)가 서로 하나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별도로 이룬다/
위의 여덟 구절은 전술한 것처럼 자리행(自利行)이고 화엄의 법계연기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첫 두 구절은 서로 들어가는[相入] 하나의 모습[相卽]인 경계이며, 이러한 법계연기의 제법을 다라니법이라 한다. 그 연기의 실상 다라니법을 보고자 하면 '수십전유(數十錢喩)'를 깨쳐야 함을 역설한다. 즉, 동전을 세는 방식은 인연과 연기로 각기 속제(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에 연결되며, 두 가지의 중도를 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 2구는 다라니의 이용(理用)을 기준으로 법을 거둬들이는 영역의 분별로, 다라니의 이치 작용‧현상‧시간‧계위 등으로 하나의 법이 일체법을 섭수한다.
의상이 강의할 때 제자들의 기록이라는 『법계도기총수록』에 의하면 첫 구절은 인과도리문을 밝힌 것이다. 즉, 하나를 얻되 열을 얻음이 정해지고 열을 얻되 하나를 얻음이 정해지며, 인(因)을 얻되 곧 과(果)를 얻고 과를 얻되 곧 인을 얻는다. 열이 곧 인이고 이뤄지는 하나가 과인 것이다. 둘째 구절은 덕용자재문(德容自在門)이라 하며, 이것이 곧 저것이고 저것이 곧 이것이니, 장애가 없고 기울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2구는 현상에 즉하여 법을 섭수하며 하나가 시방세계를 섭수하는 것이며, 다음 4구는 세간 시간을 기준으로 법을 섭수하는 것을 보인 것이다. 각기 삼세에 다시 삼세가 있고, 총상(總相)의 일념을 제시하여 시간마다 일체 시간을 섭수하고 있다. 말하자면 모든 이치 작용, 생멸 현상, 삼세 시간, 수행자의 발심에서 정각까지, 전 단계가 자연히 '연기다라니법'으로 원융무애하게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있다. 또 세간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은 이른바 구세를 말하는 것이며, 삼세가 상즉‧상입하여 일념으로 총(總)과 별(別)을 합하여 밝히기 때문이다. 십세가 일념이 되는 것은 현상과 생각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이 같은 연기관은 법계의 전체상이 낱낱 존재 속에 충만하여, 원융무애하고 중중무진(重重無盡)함을 관하여 법계에 증입(證入)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속(眞俗)의 상즉성으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가 펼쳐지는 것이다. 법계도인으로 말하자면 기하학적 대칭과 균형감은 해인삼매의 경지를 생각하게 한다. 현재 한국 불교의 법성게 수행은 밀교적 송주행(誦呪行)과 정토적 염불행으로 실천되고 있다.
불교사적으로도 신라 중대 불교는 사상적으로 대체로 화엄교학이 주도하며, 밀교의 새로운 사상도 화엄세계 안으로 포섭되는 경향이었다. 밀교는 화엄사상과 원리적인 면에서 상통하며, 화엄사상이 밀교의 신라 전래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또한 『법성게』에 나타나는 화엄의 '구래성불(久來成佛)'은 밀교의 즉신성불과 같은 궤를 형성하며, 이후 선종의 견성성불(見性成佛)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표 9> 법성게 여덟 구절의 구조
구분 | 과문[범주] | 상입상즉 | 구절 |
1‧2구 | 理用[이용] | 일 ↔ 일체 | 일중~일즉 |
3‧4구 | 卽事[현상] | 일미 ↔ 시방 | 일미~일체 |
5‧6구 | 世時[시간] | 일념시 ↔ 일체시 | 무량~일념 |
7‧8구 | 世時[시간] | 일념시 ↔ 일체시 | 구세~잉불 |
자리행 ⇨ 연기분 ⇒ 실상다라니 |
(2)무장애연화삼매송
'무장애연화삼매송'은 수능엄삼매도의 우측에 기재되어 있고, 『묘법연화삼매필밀삼마야경』처음에 나오는 '본각찬(本覺讚)'의 여덟 구절이다. 예전부터 삼세제불의 몸을 따르며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게송이라 한다. 당대 불공(不空, Amoghavajra, 705~774)이 번역한 『법화경』을 밀교적으로 해설한 경전이다.
경명(經名)의 대의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묘법연화삼매이고, 두 번째는 비밀삼마야이다. 전자는 중국 천태종의 2조로 일컬는 혜사(慧思, 515~577)의 전적에 나온다. 그는 지의의 스승으로 『수자의삼매』에서 아래와 같이 설한다.
보살위(菩薩位)에서 속히 불지혜(佛智慧)를 얻어 들어가려면, 먼저 마땅히 염불삼매를 구족하고 반주삼매와 묘법연화삼매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모든 보살이 처음으로 응당히 수자의삼매를 배우는데, 이 삼매를 만약 성취하면 수능엄삼매를 얻는다.
인용문에는 보살이 불지혜를 얻으려면 먼저 염불삼매를 구족해야 하며, 반주삼매와 묘법연화삼매도 배워야 함을 역설한다. 더욱이 수자의삼매를 성취하면 수능엄삼매를 얻는다고 한다. 지의도 사종삼매에서 수자의삼매를 설하는데, 넷째인 비좌비행(非坐非行)삼매가 각의삼매‧수자의삼매이다. 이것은 마음이 일어남을 비추어 알아차리고, 그것을 수습하여 마음이 청정한 삼매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비밀삼마야는 밀교의 삼마야(samaya)인데, 삼매야로 하기도 하며 평등‧경각(警覺)‧제장(除障)‧본서(本誓) 등의 의미이다. 또 중생과 부처‧삼밀의 평등 관념을 기초로, 일체중생의 구제를 서원으로 온갖 번뇌를 제거하는 의미이다.
이러한 네 가지가 서로 연결되고 협력하는 가운데 완전한 삼매야의 뜻이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 평등의 뜻이 다른 세 가지를 모두 섭수하게 된다. 아래에서 '무장애연화삼매송'의 여덟 구절을 살펴보기로 한다.
본각심(本覺心)의 법신에 귀명하오니/ 묘법의 심련대(心蓮臺)에 상주하여/
본래로 삼신불을 구족하고/ 여래의 삼십칠존이 심성에 머무르도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삼매로/ 인과법을 멀리 여의여 본래면목을 갖추니/
한량없는 덕해(德海)는 본래로 원만하여/ 내 마음 오로지 자성의 제불에 정례하노라/
위의 여덟 구절은 네 구절씩 밀교 금강계와 태장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먼저 네 구절을 보면 본래 깨달은 마음의 법신에 귀명(歸命)하고, 청정한 자성의 마음에 상주하며, 원래 삼신불을 구족한 여래의 삼십칠존에 머문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금강계 지법신(智法身)의 공덕인 삼십칠존의 지혜를 설하고 있다.
아래 네 구절도 보면 한량없는 삼매로 유위법(有爲法)을 멀리 여의고 본성을 갖추며, 무량한 공덕은 본래 원만하므로 오직 마음은 자성불에게 예배한다고 한다. 이는 태장계의 본래 공덕이며 태장대비삼매의 권능을 뜻하는 것이다.
또 경전에는 "위 네 구절은 금강계회 삼십칠존이 월륜의 중대(中臺)에 머무는 것이며, 아래 네 구절은 팔엽제존의 보문삼매가 법에 맞는 만다라회이다." 또 "일심 가운데 묘법연화는 금강계 삼십칠존의 지혜이고, 팔엽은 태장계의 보문삼매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인용문에서 말하는 월륜중대는 금강계만다라 월륜 형상의 사불(四佛) 가운데, 대일여래가 위치함을 말하며 대일여래를 포함하여 모두 오륜(五輪)이 된다. 다음의 팔엽제존은 태장계만다라 중대팔엽원의 제불보살이다. 즉, 여덟 연꽃 모양의 불보살 가운데 중앙에 대일여래가 앉고, 사방에 각기 보당‧개부화‧무량수‧천고뢰음의 사불이 있으며, 네 간방에는 보현‧문수‧관자재‧미륵의 네 보살이 각기 위치한다.
다음 인용문의 37존은 대일여래의 자내증(自內證)을 서른일곱 가지로 나타낸 것이다. 대일여래를 비롯한 오불과 사방과 간방에 열여섯 보살, 여기에 열여섯 공양보살을 합한 것이다. 또 보문(普門)삼매는 태장계를 설할 때 등장하는 술어이며, 태장대비삼매의 무량과 장엄을 뜻하는 것이다.
위의 여덟 게송 가운데는 37존과 보문삼매가 핵심적인 구절이라 볼 수 있다. 바로 금강계 지혜와 태장계 삼매를 의미하며 양부(兩部)가 조화롭게 하나됨을 설한다. 무주는 수능엄삼매도의 게송을 번역하면서, 중요한 사항과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작은 종이에 필사한 내용 가운데는 "게송 여덟 구는 현밀(顯密) 극지(極地)를 설하였다."라고 적혀있다. 즉, 현교와 밀교의 지극한 경지를 설한 게송이라는 뜻이다. 좌측의 『법성게』는 현교의 화엄 법계연기를 설한 것이고, 우측의 '무장애연화삼매송'은 밀교 금강계와 태장계의 요의를 설한 것이다. 그것은 밀교에서 말하는 즉신성불의 가르침이다. 경명으로 보면 '묘법연화삼매'는 수능엄삼매를 뜻하는 현교의 뛰어난 가르침이고, '비밀삼매야'는 밀교의 묘의를 설한 가르침인 것이다.
<표 10> 양대 밀교와 무장애연화삼매송
태장계[理性] | 금강계[智德] |
성격 | 理 | 因 | 本覺 | 化他 | 智 | 果 | 始覺 | 自證 |
경전 | 『대일경』[태장계만다라] | 『금강정경』[금강계만다라] |
수인 | 비로자나불 法界정(定)印 | 비로자나불 智拳印 |
대승 | 중관‧화엄 관련 | 여래장‧유식 관련 |
각부 | 불부 | 연화부 | 금강부 | 불부 | 금강부 | 보부 | 연화부 | 갈마부 |
게송 | 팔엽 제존 | 보문 삼매 | 만다라회 | 월륜중대 | 삼십칠존 | 금강계회 |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