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식 기자의 이태리 성지순례기-(5)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火山) 유적지에서,
폼페이 베수비오 유적지에서
지금부터 2천여년 전인, 서기 7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남쪽으로 2시간 거리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으며 거대한 용암이 흘러내려 이도시를 덮었다.
이후 이 도시는 인류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잠을 자다가 1748년 샘을 파던 한 농부가 폐허된 극장을 발견하게 되고 밭에서 청동과 대리석 파편을 발견한 이래 오늘날의 폼페이를 발굴하게 된 것이다
■ 베수비오 화산(火山)
베수비오 화산은 로마의 남쪽에 있는 인구 2~5만명이 살고 있는 폼페이에 있는 해발1281m 우뚝 솟아있는 산(山)이다. 1979년, 거대한 화산폭발로 폼페이를 집어삼킨 산으로서 유명하다.
1차로 AD63년 커다란 지진이 도시를 강타해 대규모 피해를 입었고 그 후 AD79년 8월 24일 베수비오화산이 폭발해 한순간에 폼페이를 집어 삼키며 2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 2천 년 만에 환생한 비운의 도시 폼페이.
폼페이를 걸으며 로마시대 당시 최고의 문화를 간직했던 이곳이 왜 이리 큰 화를 당했을까.
생각해보며 그 시대 사람들의 처절했던 순간들을 회상해 보았다.
이곳을 가득 메웠던 고대 사람들의 미소, 화려한 문양의 기둥, 당시 삶을 전하는 벽화, 1만5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진 원형경기장, 죽음과 맞서 싸운 검투사 등의 모습이 한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폼페이는 나폴리에서 얼마 안떨어진 휴양지여서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지금은 내륙으로 되있으나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 강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엿다. 비옥한 캄파니 평야의 관문에 해당해 농업과 상업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제정 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휴양지로 성황을 이뤘다.
당시 생활상이 드러난 유적지를 구석구석 살피며 화려했던 폼페이의 정기가 되살아나는듯 했다. 상업과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폼페이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마치 작은 왕국처럼 꾸며 놓았다.
저녁이면 정원에 모여 사랑, 철학, 예술 등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낭만과 여유가 흐르는 폼페이는 정말 대단한 2000년 전의 도시였다. 하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로마가 쌓아올린 명성과 그들의 삶은 한줌의 재가 됐고, 오랜 시간 화산재 밑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폼페이에 용암이 덮치자 뜨거운 열에 사람의 형체가 녹아 처절하게 죽어갔던 사람들의 모습을 석고로 입혀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대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고대인들의 절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전날 내린 비로 뭉개구름 흘러가는 베수비오화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폼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스탕달은 "폼페이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그 어떤 학자나 전문가 보다도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도 꼭 한번 다녀올 기회 오길 빈다.
■ 폼페이 여행의 거점도시 나폴리(Naples).
폼페이 인근에 있는 세계 3대 미항 나폴리는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이스의 식민지로 출발했다. 그리스어로 ‘새로운 도시’란 뜻의 네아폴리스(Neapolis)로 불린다. 지중해 무역의 거점이 되는 입지조건으로 그리이스를 비롯 로마제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지배를 받아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됐다.
■ 폼페이! 여행정보
△가는 길=대한항공이 인천~로마 구간 직항편을 주 3회(수ㆍ금ㆍ일요일) 운항하고 있다. 약 12시간 소요.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나폴리를 거쳐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이탈리아 기차 여행=이탈리아 국철을 이용하면 경제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열차는 5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1ㆍ2등급이 있는 유로 시티, 국내 도시를 연결하는 인터 시티, 급행열차 에스프레소, 준급행열차 디레토,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 로칼레가 있다. 그 밖에 밀라노 피렌체 로마 등 대도시를 잇는 초고속 열차인 펜돌리노는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티켓은 철도역이나 여행사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글ㆍ사진 = 전대식 평화방송 ‧ 평화신문 편집위원]
▲ 한순간에 폼페이를 집어 삼키며 2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베수비오 화산이 언제 그랬냐는듯 뭉개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 폼페이 주택 정원에 있는 청동 조각상, 당시 화려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젊은이들과 노인들, 짦은 반바지 차림의 젊은여성 순례자들과 대조적이네요.
▲ 폼페이 입구에 있는 과일가게, 비옥한 캄파니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는 이지역은 농업과 상업이 번창했던 지역으로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휴양지로 성황을 이뤘다.
▲ 당시 생활상이 드러난 유적지를 구석구석 살피며 화려했던 폼페이의 정기가 되살아나는듯 했다. 상업과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폼페이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마치 작은 왕국처럼 꾸며 놓았다.
▲ 폼페이 입구의 이 도로는 2천년 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며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인들이 놓은 길이 그대로 있다.
▲ 베수비오 폭발로 폼페이 전 도시에는 화산재가 4~5m 쌍였다.
▲수백년 동안 발굴된 유적들
▲ 마치 잠을 자고 있는듯 그렇게 희생됐다.
▲ 이곳엔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일까.. 인간들의 본능은 모두 같지요^^
▲ 항구도시라 창녀촌이 있었는데, 안에 들어가보니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들이 있어 어떤 이는 상세히 관찰하고 또 어떤 여성들은 그냥 스쳐 가는것 같지만 휠~끗 더 관심있게 새겨보곤 했다.
▲ 돌 침대하나 겨우 들어서는 장소에서 그들의 욕정을 즐겼다.
▲ 올림피아 신화에도 나오는 여인들은 뇌쇄적이어서 남성들의 본능을 맘껏 자극했다.
▲ 이곳을 방문한 이태리 정부고위 관계자가 이 벽화가 야설적이다고 그동안 공개를 하지 않다가 최근 공개한것이라 더욱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
▲ 어따 이건 또 뭘꼬, 가만히 보니 이곳을 안내하는 돌 조각이었네요. 자상하시기도..
▲ 2천년 전, 폼페이 주민들의 갈증을 채워주었던 우물,
▲ 대형 사우나로 들어가는 길, 당시에도 이런 대형 목욕탕이 있었다니..
▲ 사우나 안에는 검투사들의 벽화들이 있었다.
▲ 폐허속에 되살아나는 야생화
▲귀족들이 살았던 주택정원
▲ 1748년 부터 본격 발굴된 이도시는 현재 옛 시가의 절반 정도가 발굴 됐을 뿐이다.
▲ 당시 사용했던 항아리엔 부활의 꽃을 피우고,
▲ 노부부의 정겨운 모습, 다리아픈 부인을 정성을 다해 부축하며 관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평온한 노상카페
▲ 이태리엔 이런 수십미터의 큰 소나무들이 가로수로 놓여있어 기품있어 보인다.
▲ 특별한 증명사진도~
▲ 멋쟁이 로마 병정 아자씨
▲ 폼페이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언덕위 하얀성당, 베수비오 화산은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인데도 주민들은 근처에서 살고 있다.
▲ 숙소인 로마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길은 로마로 통한다' 당시 도로가 보였다.
말을 타고 내달리는 로마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 숙소로 오니 풍성한 과일이 기다리고 있네요,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첫댓글 잘 안보이는 사진들은 오른쪽 마우스 눌러, '사진표시' 를 클릭하면 보입니다. 사진이 넘 많아서 그런가 봄,
나도 92년에 가 본곳이지만 사진을 보니 옛추억이 되살아 나는군. 사진작가다운 사진들이군
사진전문작가의 해외 순례기~~감흥과 재미를 넘어 감동이 있습니다.
생생한 사진과 작가가 보고 느끼는 주관적인 유머러스한 해설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저절로 동화되는 기분입니다.
" 전대식 사진작가의 세상밖으로 뛰어라" 라는 제목으로 책 한권 냅시다.
이상성 선생님 안녕 하세요, 무더위 건강하시지요, 언제 뵈올길 고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