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생활 5년차.
학원 강사로 긴 시간 일해왔던 탓에 '공무원으로서의 교사'라는 직업의 영역이 낯설고 몸에 맞지 않아 힘들었던 때가 있다.
사실 지금도 이 옷이 내 몸에 꼭 맞다고는 못하겠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이해가 안 되어도) 지난 시간 동안 해 왔던 관성의 법칙처럼 처리해 내야 하는 일'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올해는 좋은 선배 교사를 만나서 평가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내가 꿈꾸었던 평가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서술형(논술형) 평가'
그렇지만 이런 식의 평가가 처음이다보니(쓰다보니 반성하는 마음이 든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자료를 찾아보았더라면 더 좋은 문제를 출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문제를 만들고 다듬는 과정과 그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더 좋은 문제를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지지난주와 지난주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길었다.
추석 연휴가 끼어있었던 지지난주, 그리고 금요일이 한글날이었던 지난 주.
코로나 때문에 멀리 갈 수도 없었던 터라 늘 가던 길안천지생태공원에서 평소에는 꿈꿔보기 어려웠던 3박 4일간의 캠핑을 2주나 연속으로 할 수 있었다.
긴 휴식의 시간들에서 많은 시간 내 머릿 속을 채우고 있었던 걱정들은 1학년 서술형 평가의 문제와 그 문제를 다듬는 과정이었다. 어떤 문제를 출제해야 하나. 서술형 논술형 평가의 취지에 맞는 문제를 출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출제한 문제를 풀고 정말 아이들에게 능동적 읽기와 비판적 읽기 능력이 길러지겠는가?하는 고민들...
사실 더 깊이 있는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1학기 때처럼 어렵다는 아우성들을 감당해 낼 용기도 많이 부족했다. 아직 아이들과 래포가 충분히 형성되지도 않은 것 같고 나 역시 모르는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은 현실에서 이상을 쫓다가 현실에서 이미 지쳐버린 아이들의 외면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되도록 문제를 쉽게 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논술형 평가의 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다. 아직도 그 찝찝함은 남아 있고.. 평가가 끝나고 채점까지 마무리해봐야 이 고민의 결과를 조금이나마 탐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 위해서는 아니었는데 사설이 너무 길었다.
삶에서 불안을 느낄 때 내가 가장 먼저 위안을 찾는 곳은 바로 책이지 않은가?
이번에 읽은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이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고 그의 책 몇 권을 읽기도 했지만 사실 기억에 남아 있는 책은 없다.
-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거야."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아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평가의 적절성과 평가의 공정성 등등 평가와 관련하여 많은 압박을 받고 있던 차에 저 문장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도 익숙해지고 경험치가 쌓이면 점점 더 좋은 문제를 만들고 평가다운 평가에 가까워질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고민은 더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문학의 힘은 이렇게 크다. 2주 넘는 시간 동안 졸아붙다 못해 새카맣게 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 문장
- " 우린 누구나 벽장 속에 시체 하나쯤, 아니, 여럿을 간직하고 살아요.
흑역사라고 해야 하나. 다시 돌려보기도 싫을 만큼 찌질하고 못한 내 모습이 어느 순간 떠올라 숨고 싶어질 때가 가끔씩 있는데 그 때 이 문장이 효과적인 약 처방이 되리라.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누구나 벽장 속에 시체 하나쯤 간직하고 사는 것 아니겠느냐고.
- " 그건 도시가 파괴되고 나서 우리가 전에는 몰랐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감정들에 휘둘리면 안돼요. 그러다간 우리도 항시적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테니까요.
절대 마음의 평정을 잃으면 안 돼요. 그게 우리의 최대 강점이잖아요.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어도 우리한테 벌어지는 일은 모두 우리를 위한 거예요."
종교의 힘으로 소인들을 효과적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믿던 순간에 게브와 누트는 공격을 받게 된다. 판도라의 실수로 열린 상자 안에 있었던 수많은 부정적인 것들을 덮어주는 말이 바로 희망이었던 것처럼 어떤 순간에도 게브와 누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나간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한 말.
참 괜찮은 삶이었어.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중간중간 정리가 안 되거나 틀린 정보들이 많네..
다시 정리할 때까지 생각이 도망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단은 써 두는 것.
지난 2주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오들오들 떨던 내 마음을 편안하게 누그려뜨려 주었던 책
기억에 대한 두서없는 독서기록.
결론은
항시적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
그러니 삶을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것.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며
최악의 상황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는 미래라는 것.
과거에 빠지지도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현재를 씩씩하게 살아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