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88km)을 달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빨간 표시가 된 날이나 토. 일요일 쉬지만
난 그렇지 않다. 인간 퇴물이 된 탓에
때 늦게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남들이 열심히 일할 때 난 쉰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언젠가 꼭 혼자 달려보리라 마음먹었던 코스를 오늘 달리라 생각하고
새벽 2시에 집을 나서 남부시장에 위치한 할매 국밥집에 들린다.
국밥 한 그릇 3,500원
맛도 좋고 값도 싸여 이따금 들린다.
이 새벽에 손님들이 꽤 많다.
도대체 잠들은 자지 않구 뭐하는 사람들인가?
생각하면서 국밥 한 그릇 시켰다.
앞자리엔 중년의 남녀 3쌍이 꽤나 시끌벅적 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다.
아마 지꺼는 아닌 것 같고 회관에서 부킹한 사이 같아 보인다.
내 뒷좌석엔 젊은 남녀 한 쌍.
그리고 방에도 꽤나 손님이 있었다.
한참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앞자리의 여자들이 먼저 계산을 하고 밖에 나가는데
남자 한분이 주인 여자와 시비가 붙었다.
돈을 자기가 계산 하려했는데 왜 여자한테 돈을 받았냐며
돈으로 여자 얼굴을 때리니 여자가 왜 때리나하며 항변을 한다.
그러자 남자가 주인을 밀치면서 더 세게 돈으로 얼굴을 때리니
주인이 경찰을 불러라 하며 손님을 못나가게 하곤 앞을 가로 막는다.
남자가 좋아! 경찰 불러라, 불러. 내가 언제 니를 쳤냐한다.
주인이 말하길 손님들 다 보고 있다
여기 전부 증인 있잖아 한다.
그래 나도 법 좀 안다
그까이거 벌금 5십만원만 내면된다.
그런데 넌 내 한테 오늘 죽었다며 더욱더 거친 말을 한다.
그러자 자기네 동료들이 와서 말리며 나가자 한다.
그러나 주인이 가로 막으면서 못 나가게 한다.
그때 경찰이 왔다.
싸우고 있는 순간 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가장 가까이 에서 보았는데
내가 증인을 서야 하는거 아닌가?
그러면 난 달리러 가지 못하는데 그럼 어떡하지
그래도 달리러 가야하나?
아님 증인을 서야하나 갈등이 심했다.
그러던 차 내 뒷좌석의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가 경찰을 부른다.
처음 때릴 때 사진은 못 찍었지만
그 다음부터 때리는 장면을 폰으로 촬영하였다며 보여주며
필요하다면 증인도 서 주겠다한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며 젊은 친구에게 감탄했다.
어쩌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쿠 저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고 있을까?
세대 차이를 느끼면서
난 현장을 빠져 나와 차를 몰고 문덕온천장으로 향했다.
새벽녘이라 도로는 한산하여 신나게 질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잘못하여 스티커 끊기면 나만 손해다는 생각이 들어 속도를 늦춘다.
온천장에 도착하니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 졸고 있으며
온 세상은 고요에 빠져있었다.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88km를 절대 걷지 않쿠
꼭 성공 하리라 다짐 하면서 03시에 혼자 외롭게 출발한다.
요즘 허리 상태가 영 좋지 않기에
나의 몸 점검도 할 겸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여 보았다.
앞으로 내가 달릴 수 있을지를
“척추협착증”
지난해(2012년)종단 후 그해 가을 또 다시 횡단을 하다
태기산 급경사 내리막을 빠르게 뛰어 내려오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쳐 270km지점에서 포기 하였다.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지만 허리가 왼쪽으로 활 처럼 기울어져
10m 쯤 달리다 한참 곧 추스려 또 달리곤 하였지만 도저히 달릴 수 없는 상태였다.
만약에 약방에서 허리 벨트를 살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런지 모른다.
곧 바로 내려와 MRI 촬영하니 척추 4번5번이 새까맣게 거의 붙은 상태라 하며.
2009년도 MRI 결과보다 훨씬 심하다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아 조심조심 하였는데 욕심이 과했나 보다.
그러나 쉽게 수술을 결정 할 수 없었다.
신문 전면광고를 보니 척추협착증을 수술하지 않고도
완치 할 수 있다기에 지난 1월엔 서울 "무릅한의원"에도 찾아 가보았다.
치료기간은 6개월이며 일체 운동을 하지 못한다 하며
완치 후 70대 초반까지는 가벼운 등산 정도는 할 수 있다기에
나의 생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그냥 내려왔다
70대 후반 아니 80대 까지 팔팔하게 달리려 하는데 말도 되지 않았다.
새벽녘 공기는 아직도 차가우며 상큼하다
출발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뒤가 마르워 절단이다.
아주 급하다 , 음식을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이상하다
참고 참아 겨우 오천 종합운동장 옆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나니 날아 갈 것만 같고
이보다 더 시원 할 수가 없었다.
까맣게 보이는 진전지 호수를 돌아
진전령(15km)에 이르니 냉기가 온 몸을 감싸기에
따뜻한 율무 한잔을 뽑아 우선 목을 축인 후
송편 4조각을 꺼내어 먹곤 기림사 방면으로 향한다.
경주'감포 갈릴길인 안동 3거리(25km)에 이르니
이제 먼동이 트려는 듯 동녘 하늘은 붉으스럼 하며
길모퉁이 한 켠에 서서 남은 송편을 다 먹곤 다시 출발한다.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화장실에 4번이나 갔지만
그런대로 아직까진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돼지국밥의 효과일까....
경주. 토함산 자연 휴양림 갈림길인 3거리(27.5km)에서
초코바 1개와 밀감 한개 그리고 물을 마신 후
사탕 한 개를 입에 넣어 석굴암 주차장을 향한다.
오르막 11km, 절대 걷지 않키로 마음먹고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를 외치며 달린다.
고개를 숙인 채 반보로 달려 보지만 숨이 턱까지 찬다.
어찌 하여튼 한 번도 쉬지 아니 하구
석굴암 주차장(38.5km)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라 관리인도. 차량도 아무것도 없으며 바람만 휑하니 분다.
하늘아래 땅위에 살아 숨 쉬는 것 오로지 나 하나 뿐인 느낌이었다.
예정시간 9시 보다 15분 일찍 도착하였다.
그런대로 컨디션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자판기에서 율무 한잔을 뽑으니 율무대신 희멀건 물만 나온다.
그래도 따뜻한 물이라도 나오니 다행이었다.
물 한 컵에 400원 주고 빼 온 셈이다
진전령에서는 500원이었는데 그래도 100원을 벌었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따뜻한 물을 들고 화장실에 들린다.
화장실은 깨끗하다 못하여 옛날 어릴 때 살던 집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빵 한 개를 먹곤 9시 정각에 불국사를 향한다.
불국사 내려가는 길은 8km
누군가 말하길 아흔아홉 구비라 하였다
정말 아흔 아홉 구비인지 몰라도
돌고 돌아도 또 구비 길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좁혀지기 마련이다
강태공이 세월은 낚듯이
나두 시간을 낚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생각하고 달린다.
불국사(46.5km) 도착 예정 시간 10시인데 10분전에 도착하였다.
아직 점심 먹기엔 이르고
가게에 들러 빵 한 개를 사먹으려 하였으나
빵이 없다기에 따뜻한 음료 한 병을 구입하여
평상에 나와 배낭에 남은 마지막 빵 한 개를 꺼내어
맛있게 먹곤 정상을 향하여 달린다.
석굴암 휴양림 갈림길 까지는 오르막 5.5km
11시까지 도착예정 이기에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달리다 보니 어느 사이 고개 정상(53km)
고개 정상에서 부터는 안동 3거리 까지는 내리막길
이제 큰 고비는 넘긴 상태이기에
초코바와 곶감 2개를 먹곤 내리막을 천천히 달린다.
허리가 좋지 않기에 내리막은 더욱더 조심한다.
올라 갈 땐 몰랐는데 내리막이 이렇게 가파른지 몰랐다
내가 올라간 사이 누군가 가파르게 길을 깎아 내린 것 같았다
이젠 뒤통수가 땅에 다이는 듯하였다.
조심조심하여 내려오니 그래도 오를 땐 보다 덜 힘들다.
안동 3거리(63km)에 12시 30분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곤
1km 정도 걷고는 곧 바로 기림사를 향하여 달린다.
이제 마지막 힘든 고비다.
그런데 점심을 든든히 먹은 탓인지
그렇게 힘 드는 줄 모르고
기림사 고개와 진전령 재를 쉬지 않고 치켜 올린다
예정시간 3시였지만 간식 먹는 시간과 점심 먹는 시간 탓에
3시 30분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73km지점)
이제 내리막 15km 뿐이다. 그런데 내리막이 더 신경 쓰였다
행여 허리에 충격을 줄까봐 조심조심하여 달린다.
문덕온천장에 도착하니 5시 20분
원래 목표는 88km-14시간 목표였으나 20분이 초과 되었으며
밥 먹고 잠시 걷는 것을 제외하곤 걷지 않았다는 것과
언제가 꼭 한번 완주하고 싶었던 코스를 완주 하였기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온천장에 들러 온천욕을 즐기고 싶었지만
들어가면 시간이 꽤나 오래 소요될 것 같기에
곧 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여 간단히 샤워하곤
맥주 1캔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치 세상 전부를 얻은 느낌이었다.
허리가 아파 과연 완주 할 수 있을까 심히 염려를 했는데
천천히 라도 완주 할 수 있었기에
희미하게나마 재기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더욱더 기뻤다.
622km 종단을 앞두고 2013, 3, 21,
첫댓글 팔팔하게 팔팔뛰며 팔팔거리며 달리는 삶의 여정들이 모두에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