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그림이 탄생하기까지의 삶과 사랑, 가난, 전쟁의 상처, 그리고 치유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작품이 훨씬 깊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해설사는 팔레조의 허름한 작업실에서 문짝을 침대 삼아 생활했던 김창열의 가난한 시절, 프랑스 의사 집안 출신인 마르틴 여사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곁을 지킨 이야기, 우연히 캔버스 위 물방울에서 평생의 예술세계를 발견하게 된 순간 등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관람객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또한 물방울을 단순한 극사실 회화가 아니라 전쟁과 삶의 상처를 씻어내고 기억을 치유하는 상징으로 바라보는 해설사의 시각은 작품 감상에 또 다른 깊이를 더했다. 천자문 연작에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우던 기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연결해 설명하고, 드라기냥 시기의 대형 작품에서는 작가의 변화된 삶과 예술세계를 함께 읽어냈다. 물론 제주4·3이나 작가의 내면과 작품의 관계에 대한 일부 해석은 해설사의 개인적인 견해로 소개됐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만약에 그가 제주에 안 내려왔으면? 하는 생각에 "운명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상현 해설사의 강점은 연도와 작품명을 나열하는 설명이 아니라,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김창열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있다. 그의 해설을 듣고 전시장을 둘러보면 물방울은 더 이상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한 예술가가 평생 품었던 기억과 상처, 그리고 치유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스토리가 있는 해설'이야말로 이번 《파리의 화가 김창열》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