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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대장이 너무 많은 세상
양 승 본
막 퇴근을 하려는데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권영철 변호사님 좀 바꿔주십시오.”
“제가 권변호사입니다.”
“야, 정말 네가 권영철이야? 나, 민윤범이야.”
“뭐? 민윤범! 야, 너 살아있구나!”
“야, 잇마 내가 너도 안보고 죽냐?”
“그래 지금 어디야?”
“지금 영종도 국제공항에 내렸어.”
“그래? 너 그곳에 가만히 있어. 내가 금방 갈게.”
나는 전화를 이용한 대화를 멈추고 즉시 영종도로 달렸다. 내가 늘 생각하고 보고 싶었던 윤범이가 온 것이다. 나는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있는 시간에 눈을 감고 윤범과 나의 추억을 생각했다.
나와 윤범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 때 나와 만나서 줄곧 고등학교 3년을 같은 반으로 지냈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주먹으로 전교생을 잡았다. 대기업을 경영하는 민회장의 장남인 윤범은 집안에 돈이 많은데도 동료는 물론 상하급생들까지 괴롭게 굴었다. 주로 주먹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과시였다.
그런데도 윤범이는 표면화된 사건만 저지르지 않으면 교사들의 불간섭 속에 지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윤범이가 한 마디 하면 전교생 거의가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소풍을 갈 경우 학생들에게 술을 먹지 말라고 교사들이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교사들 몰래 술을 마셨다. 하지만 생활지도 담당 교사가 윤범이를 불러 지시를 하면 그는 각 학급의 반장들을 불러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면 그 날은 어떤 학생도 술을 마시지 못했으므로 교사의 금주령은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이었다.
윤범이의 주먹 앞에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그런 질서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당시 운범은 학교에서 필요악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어떻든 나는 입학식이 끝나고 약 석 달 정도를 윤범이의 주먹을 이용한 통일시대를 잘 참아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범은 나를 인격적으로 멸시를 했다. 첫 번째 본 중간고사에서 내가 1등을 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그가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나에 대하여 아주 못되게 떠벌린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윤범이보다 덩치는 작았지만 태권도 3단이라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날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는데 윤범이가 입을 열었던 것이다.
“야! 권영철! 이번에 공부 1등 했다고? 공부 잘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못 봤다. 안 그래?”
“…….”
나는 못들은 척하고 참았다. 그런데 다시 그가 말을 했다.
“야! 권영철! 넌 왜 한 번도 나에게 돈 상납을 안 해?”
“……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에게 그는 가까이 오더니 한 손을 이용하여 손가락으로 나의 턱을 톡톡 건드리면서 ‘병신 같다느니, 좀생이 같다느니’하면서 이죽거리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 학생들 앞에서 공부 잘하는 놈도 내 앞에서는 별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나는 째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내가 장학생이 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나는 이죽거리는 것까지도 참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톡톡치는 것이었다. 더구나 뒤에서 윤범이를 따르는 패거리들이 ‘병신! 병신!’하는데 열 불이 났다.
“너, 나랑 맞장 뛰자.”
내 말에 너무 어이가 없었던 윤범은
“완전히 웃기는 놈이구만!”
말을 뱉으면서 내 얼굴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내가 슬쩍 피하자 그는 제 힘에 스스로 넘어지면서 신발장 모서리에 이마를 찍고 말았다.
체면을 살리려고 균형을 잡은 그가 다시 주먹을 날렸을 때 나는 신발장 근처를 벗어나 현관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뒷산에 가서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자.”
내 말에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자식아! 내가 너 같은 좀생이와 맞짱뛰게 됐어? 이 자리에서 묵사발을 만들지.”
그가 내게 걸어오자 나는 재빨리 뒷산을 향해 뛰었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야, 영철이 도망간다. 쫓아가 죽을 정도로 때려 줘.’
라고 떠들었다.
뒷동산에는 학교의 초대교주 무덤이 있었다. 한편으로 잔디가 깔려있었다. 나는 그 잔디 위에 서서 윤범을 기다렸다. 학생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모두 윤범이의 뒤에 서서 내가 얻어터지는 꼴을 구경할 참이었다. 드디어 1:1의 싸움이 시작되자 여기 저기에서 소리들이 들렸다.
‘영철이 오늘 제삿날이다.’ ‘그래.’ ‘병신 같은 놈 윤범에게 대들다니…….’
그들은 모두 나를 불쌍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먼저 윤범이가 단 한 주먹에 나를 때려눕히겠다는 듯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나는 2단 옆차기를 이용하여 거의 날으다시피 하면서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의 얼굴이 찢기면서 피가 났다. 그가 다시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나는 돌려차기를 이용하여 그의 명치를 쳤다. 그가 가슴에 손을 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윤범과 나의 대결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야! 대단하다.’ 탄성이 터지면서 윤범의 뒤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내 뒤로 몰려와 내편에 섰다. 참으로 세상은 기회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주저앉아 있는 윤범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그가 겸연쩍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비겁하지 않았다.
“내가졌다.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
“아니야. 잘못한 것은 나야. 좀 더 참았어야 했고 단둘이 대화로 풀어야 했 어.”
“아이냐. 네가 대화로 풀려면 내가 응하겠니? 내가 너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왔는데……이번 기회에 네 힘을 알게 되어 다행이야..”
그 날 우리는 윤범의 이층 방에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대화를 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따뜻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더구나 그 시절 째지게 가난했던 나는 윤범이의 제안으로 함께 그의 이층 방을 쓰면서 살기로 했다. 가끔 점심을 굶었던 나는 윤범이 어머니의 배려로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주먹을 포기한 윤범의 성적이 올라가자 그의 집안에서는 나를 가정교사로 대접하고 용돈까지 주었다.
윤범이가 주먹을 사용하지 않게 되자 학교는 비슷한 주먹끼리 수없이 난투극이 벌어졌지만 운범과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
강한 두 개의 주먹이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게 되자 학교는 저마다 주먹대장으로 지내려고 계속 어지러워졌다. 웬만한 녀석들은 모두가 잘났고 모두가 대장이었다. 그 대장들은 소그룹을 형성하고 소그룹끼리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우리학교는 대장이 너무 많다.’고 불평들을 해댔다. 전에는 윤범이가 ‘조용히 해.’하면 끝났지만 윤범과 내가 주먹을 사용하지 않게 된 이후 교사들이 입실하기 전까지는 모둔 교실들이 거의 난장판이었다. 권투를 하는 학생, 도시락을 미리 먹는 학생, 콘돔을 들고 낄낄거리는 학생, 지우개를 던지면서 장난을 하는 학생, 슬리퍼를 천장에 던지거나 벽에 쾅쾅대면서 자국을 내는 학생 등. 그래서 유리창은 깨지고 벽에 구멍이 나고 칠판이 찢기고 정말 요란한 생활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공부만을 향해 전진했다.
그 결과 졸업 후 윤범은 G대 건축과를 들어갔고 나는 명문인 S대 법대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윤범은 계속 나의 대학학비를 준비해 주었으며 사법고시를 하는 책이나 경비고 맡아주었다.
나는 그 덕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부장검사생활을 거친 후 변호사 개업을 했다.
한편 윤범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건축 일을 하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더니 주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평검사 시절 그는 미국에 영주권을 갖고 떠났다.
“변호사님! 공항입니다.”
“생각보다는 빠르게 왔군. 이기사가 내 마음을 알아서 차를 급히 몰았구만.”
내가 차에서 내리자 윤범은 ‘야! 권영철!’ 소리를 치면서 어린아이처럼 달려왔다. 우리는 긴 포옹을 했고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기쁜 표현이 끝났을 때 나는 그를 호텔로 안내했다.
“며칠 간 머물 꺼야?”
“국내상황 좀 보고 아주 귀국을 하려고.”
“그래? 좋지. 이제 늙어가니까 조국에서 같이 살자.”
“하여간 좀 곳곳을 둘러본 후 다시 이야기하자. 미국에 있는 식구들과도 의논해야 하니까. H대 출강문제도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그날 밤 우리는 정말 많은 양의 양주를 마시면서 지냈다.
그렇게 귀국 첫날밤을 세우다시피 하면서 술을 마신 후 우리는 잠시 헤어졌지만 이틀이 멀다하고 만났고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지냈다. 또 가끔은 고급 식당을 전전하면서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나와 지내면서도 국내생활에 대하여 별 말이 없었던 윤범이가 약 석 달 정도를 지냈을 때 보고싶다면서 전화를 했다.
자주 만나는 편인데 그날따라 보고 싶다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어 보였다. 나의 평생 은인이기도 한 그였기에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즉시 그가 머물고 있던 호텔로 달려갔다.
그는 미리 술자리를 준비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다. 오늘은 특별히 네가 보고 싶더라.”
“싱겁긴 엊그제 봤는데…….”
“그래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사무실의 전화를 받고 이렇게 바람처럼 달려왔다. 언제나 나는 네 가 부르면 이렇게 달려 올 수 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세계정세에 대하여 대화를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역사 이야기가 나왔으며 결국에는 국내문제를 이야기 하다가 그가 대화의 결론을 내렸는데 나로서는 가슴 아픈 결론이었다. 그가 한국을 다시 떠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결론 부분이 가까워질 때 그가 말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주먹으로 아이들을 다 잡았 다가 너에게 당한 후 주먹을 버리고 제법 공부를 했잖니?”
“그랬지.”
“그 때 아이들은 내가 주먹에서 너에게 졌으니까 나 대신 네가 학교전체를 주먹으로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막상 네가 나를 이긴 후 넌 계 속 공부만 했었지. 그래서 나도 너의 흉내를 내느라고 열심히 해서 지금 교 수까지 됐지만 말이야. 다 너 덕분이야.”
“나도 너 덕분에 사법고시에 합격을 한 것이지.”
“그건 겸손의 말이고.”
“사실이야. 난 그 때 법률서적을 살 돈 도 없었어. 고맙다. 윤범아!”
“나도 고맙다. 영철아!”
둘은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영철아! 나 말이야. 서울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가려고 해.”
“그럼, 우리는 또 헤어져야 하게?”
“내가 자주 들어오면 되잖아?”
“말처럼 그렇게 쉽니?”
“어떻든 한국이 싫어졌어. 내 조국이고 내가 태어난 곳인데 싫어졌다고.”
“고쳐가면서 살면 되잖아?”
“자신 없어. 도도히 흐르는 풍토를 내 힘으로 고치기에는 너무 불가능해.”
“그렇다면 넌 도피냐?”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않해. 왜냐하면 내가 살던 곳이며 나의 직업을 도로 찾아가는 것이니까.”
“그건 너의 변명이고 그 변명을 통하여 너를 합리화시키려는 것이야.”
“네가 그렇다면 그러겠지만 한국이 나를 받아주지 않아.”
“어떤 무엇이 너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야.”
“우리나라에는 대장이 너무 많아.”
“대장?”
“그래 대장.”
“무슨 뜻이야 그건?”
“너, 우리가 조금 전에 고등학교 시절 말했지?”
“그랬지.”
“그때 내가 너 때문에 주먹을 쓰지 않게 되자 너는 너대로 공부를 하기 위 해 얌전하게 지냈었지. 그 때 우리 고등학교 상황과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 이 너무나 비슷해.”
“그건?”
“그러니까 내가 너와 함께 주먹을 멈추자 그 다음의 주먹께나 사용하는 학 생들이 서로가 자신이 잘났다고 설쳐댄 것 말이야.”
“참, 그랬었지. 그때 너와 내가 빠지자 우리학교는 주먹대장들이 너무 많았 지.”
“그러니까 주먹의 춘추전국시대가 계속된 거지.”
“맞아. 그랬었어.”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내가 특별강사로 대학 강의를 맡으면서 보니까 다 잘났더라. 모두가 총장이고 모두가 학장이며 모두가 머리 부분에 앉아서 지 휘하려고 하더라구.”
“현재 우리 사회와 비슷하군.”
“그렇지. 그러니까 일부의 대학에서는 총장파, 학장파가 있는가 하면 출신대 학별로 된 모임이 은근히 또 다른 파를 형성하고 있더라구. 더구나 보수니, 혁신이니 하고 갈라지는가 하면 중도파는 또 중도파 되로 계열이 있더라구. 거기다가 학위에 따라 국내파, 국제파로 갈라져 있기도 하더라구.”
“나도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
“그러니 나 같은 계열은 발붙일 곳이 없더라구.”
“…….”
나는 윤범에게 술 한 잔을 다시 권하면서 잔을 부딪혔다. 반쯤 마신 후 TV를 켰다. TV에서는 촛불시위를 비추고 있었다. 또 다른 TV에서는 춘투(春鬪)니, 하투(夏鬪)니 하면서 시위를 알리거나 예고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TV화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우리나라는 시위가 많은 나라야.”
“그래, 나도 보니까 너무 시위가 많아. 물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하겠 지만 저러다가는 경제가 무너질까봐 걱정이야.”
“좀 더 대화를 하고 협의를 하면서 조금씩 양보를 하면 시위를 면할 수 있 을 텐데.”
“그건 좀 힘들 꺼야. 시위현장에 보이는 저 글귀를 보라고. 사투(死鬪)란 단 어가 많이 눈에 띄잖아.”
“하긴 그러네. 결사투쟁(決死鬪爭)의 단어도 보이고 말이야.”
“바로 그거야. 죽을 결심으로 투쟁하겠다는 것이야.”
“하긴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든 사(社)측의 잘못이든 서로가 문제 해 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경우니까 저렇게들 난리를 치르겠지.”
“내 생각에는 저런 현상도 대장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어. 사(社)측도 노(勞)측도 내가 더 강하다는 기(氣)싸움도 있을 수 있을 테 니까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내 생각은 속된 말로 서로 대장노릇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정말 대장이 너무 많은 사회가 우리나라인 것 같아.”
나는 다시 윤범이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로마 역사에서 나오는 ‘파르살로스 회전’을 생각했다.
“윤범아! 너 고등학교 때 세계사시간에 배웠던 ‘파르살로스회전’을 기억하 지?”
“그럼.”
“요즘 우리나라가 그 파르살로스회전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해.”
“그렇지.”
‘파르살로스 회전’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결전은 카이사르의 완전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 전쟁은 당연히 폼페이우스의 승리로 끝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무장 보병은 카이사르의 2만 2천명에 비하여 폼페이우스는 4만 7천명, 기병은 카이사르의 1천기에 비하여 폼페이우스는 무려 7천기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 측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면 축하파티를 하기 위하여 고급음식과 화려한 축하장식을 해두었지만 모두 허사가 되어버렸다. 뒤이어 폼페이우스의 죽음과 카이사르의 영웅화의 길은 더욱 확고하게 이루어져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승리의 원인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카이사르에게는 카이사르라는 대장이 하나였지만 폼페이우스에게는 폼페이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장들이 너무 많았다. 그 대장들은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저마다 승리후의 논공행상을 놓고 야단들을 치고 있어서 모든 것이 어지러웠다. 또 카이사르에게는 대대 단위로 직접 전투를 맡는 중간 지휘자와 지휘자를 믿고 따르는 병사가 많았지만 폼페이우스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더구나 폼페이우스의 대장들은 모두가 잘났다고 설쳐대고 있었다. 그래서 늘 혼란스러웠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대장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야. 학교에서는 담임선생 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될 지각사유 같은 것을 가지고 전화를 걸어 교장 을 바꾸라고 하거나 직접 찾아간다고 하더라구. 이런 현상은 일반 행정 관 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 작은 민원 하나를 가지고 시장을, 군수를 바꿔달라고 큰소리를 친다거나 만나서 해결하겠다고 야단들이라는 거지. 일 반 회사도 마찬가지야. 담당 사원을 만나서 해결할 일도 상무를, 사장을 바 꾸라고 소리를 치거나 만나러 오거든. 그들의 관념은 ‘나도 너의 관공서의 기관장과 같은 위치의 사람이니 기관장을 바꾸라.’는 식이지. 사람으로 치면 머리가 너무 많아서 명령하고 큰소리만 치려고 하는 현상과 같아서 실제로 움직여주어야 할 손과 발이 적은 세상이 된 것이지. 속된 말로 ‘모두가 똑 똑하고 잘나서’ 왕자와 공주요, 귀족이며, 지휘자의 입장에서 호령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수를 차지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어. 그래서 우리 조 상들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잕야.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공감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장의 위치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어. 이 쪽으 로 가라, 저 쪽으로 가라, 아래로 가라, 위로 가라!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하 나인데 도대체 저마다 자기 주장과 눈높이와 자기의 입장에서만 목소리를 크게 내고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름 뜨면 어쩌란 말인지. 왜 오늘의 대 한민국은 이렇게도 곳곳이 시끄러운 것인지 모르겠어. 문제는 법과 질서가 우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야.”
“바로 그거야. 민주주의란 협의와 대화이며 이해와 질서인데 그런 민주주의 의 핵심들은 어디로 가고 떼를 쓰면 된다는 생각과 힘으로 밀어붙이면 할 수 있다는 사상이 가득 찼어.”
“참으로 걱정이야. 우리의 몸에 머리는 하나만 있어야 하거든. 나머지는 손 과 발이고 각 맡은 바 기관이어야 하고 그 기관의 책임완수가 건강한 우리 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대한민국이란 몸체도 대장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
“그래,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손발이 되어 일하는 국민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바람이다.”
“…….”
나와 윤범은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마감시간이 지난 TV를 켰더니 유선방송이 나왔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뉴스장면이 나왔다. 역시 시위장면이었다.
핵폐기 시설 반대 시위, 납골당 설치 반대시위, 쓰레기 소각장 반대시위 등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윤범아! 나는 저런 시위를 보면 왜 민주시민들이 대화로 안 될까 하는 생각 을 하곤 해.”
“영철아! 모두가 자신이 제일 최고여야 하고 내 의견이 최고라야 하니까 안 되는 것이지. 핵폐기 시설이든 납골당 시설이든 쓰레기 소각장이든 일단 설 치가 되면 그 고장이나 국민들이 혜택을 입을 것이잖아? 그런데 어느 지역 이나 반대를 하면 말이야, 예를 들어 핵폐기시설을 모든 지역이 반대를 하 면 원자력 발전소를 통한 전기 공급이 안 될 거잖아?”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 지역에 전기 공급이 안 될 거잖아?”
“그렇겠지.”
“그렇다면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봐. 그 지역주민들이 가만히 있겠어?”
“극한 시위를 벌리겠지. ‘우리에게 전기를 달라. 밝은 세상을 달라.’고 소리 를 치겠지.”
“바로 그 점이 문제야. 시설은 싫고 혜택만 달라. 그런 모순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하다 못해 남녀문제만 하더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으로 생각하잖아?”
“하긴 내가 세금 안내고 빠지면 능력이고 남이 세금 안내면 나쁜 놈이고 내가 뇌물을 받아 챙기면 괜찮고 남이 챙기면 법으로 하라고 야단들을 하 지. 결국 난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 넌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야.”
“그래서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어. 큰 문제야.”]
“그래, 공동체는 없고 적과 동지만 판을 친다면 곤란해. 자신이 원하는 투쟁 에서 이기기 위해 행동만 한다면 큰일이라고. 대결, 타도란 단어가 힘을 과 시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돼. 당신들은 기득권 때문에 희생당하고 손해를 보 고 있다. 당신들이 가난한 것은 부자들 때문이다라는 의식은 물론 기성세대 와 젊은 세대, 기업과 노조,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대립과 투쟁! 정말 공동 체의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하긴 내 집안에 조카가 어느 고등학교 교사인데 운동장 조회를 하려는데 전화가 오더래. ‘선생님! 지금 막 우리 아기가 잠들었어요. 운동장 조회를 멈추어 주세요.’ 그런 다음날 한 주민이 찾아와 그러더래. ‘학교의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너무 떠들어요. 조용히 좀 시켜주세요.’ 그래서 조카가 말하더라 구. 교육을 하라는지 말라는지 답답하다고.”
“너무 이기주의의 세상인 것이야. 저 TV좀 봐.”
“아니, 저건 너무 하잖아?”
그 때 TV에서는 흥분한 군중들이 언성을 높이고 마구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심한 눈보라와 태풍 때문에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항공기가 결항을 하게 되었는데 항의를 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정말 큰일이야. 천재지변을 어떻게 하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 야구? 그럼, 비행기가 가다가 떨어져도 가 달라는 것 아냐? 저런 것을 미치고 환장할지 경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사실, 난 한국에 있어보려고 왔는데 한국의 풍토가 옛날에 비하여 너무 변 했어. 공동체 의식의 결여는 물론이고 대립이 심하고 모두가 잘난 대장들이 야. 정말 대장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내가 교수로 눌러 있으려고 하니까 또 자기네 연줄끼리 모여 서 나를 왕따 시키는 것이야. 돌아가야 하겠어.”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 아니니?”
“그것은 모르겠지만 꼭 한국에 남아서만 애국을 하니? 외국에 나가서도 조 국을 위해서 열심히 내 나름대로 한국을 홍보하면서 살아갈게.”
윤범이가 다시 한국을 떠난다는 바람에 그동안 약간 취했던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나는 말없이 그의 손을 따듯하게 잡았다.
윤범은 공항에서 나를 붙들고 울었다.
“사내가 울긴…….”
“패배자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서 그래.”
“아니야. 네 말대로 조국을 홍보하고 돈이 모이면 조국에 투자하면 돼. 그것 도 달라($)를 벌어드리는 한 방법이야.”
“알았어. 여행 중 돈을 써도 한국에 와서 쓸게. 너도 볼 겸.”
“그래, 울지 마.”
“알았어.”
“잘 가. 윤범아! 우리 죽기 전에 또 만나겠지?”
“내가 자주 온다니까.”
“네 말 믿을게.”
그가 출구를 빠져 나갔다. 나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드디어 윤범을 태운 여객기가 이륙을 하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비행기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럽게 울고 있었다. 가슴이 허전했다. 그 허전한 가슴속으로 ‘대장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는 윤범의 말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첫댓글 작품을 올려주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