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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에 나타나는 고향의식
김민정 (시조시인, 문학박사)
오늘날과 같은 후기 산업사회 구조에서는 산업사회의 전통적인 생활공간의 파괴로 수동적으로 실향하게 된 사람들과 이향한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고향파괴, 고향상실, 그리고 탈고향의 현상이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고향이탈의 과정에서 인간은 공간적이고 지정학적인 고향, 즉 근원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고향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식, 그리고 자기동질성, 존재와 삶의 근원까지도 망각 내지 상실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때문에 현대인에게는 더 절실하게 고향의식이 대두되고 있고 문학에도 많이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현대문학에서도 고향을 소재나 주제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 많다. 한국현대문학 속에서의 ‘고향상실’은 민족사와도 관련이 깊은데 이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고향을 등지는 유이민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인 농장기업가와 여타의 일본인 토지매매업자들의 횡포 때문에 그 시기 조선경제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농업경제 부문은 여지없이 파괴되었으며, 그 결과 1920년대에 들어서는 무수한 이농민들이 속출하게 되었고, 이들은 만주, 시베리아, 일본, 멕시코, 하와이 등지의 국외 유이민이 되었고, 국내에서도 유랑하게 되었다.1) 이렇게 고향을 등진 사람들은 공간적 고향상실감을 느꼈으며,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데서 오는 민족으로서의 소외의식도 느꼈을 것이다.
8․15해방 후의 현대사회에서는 남북 분단, 전쟁, 혁명, 가난, 독재, 민주화 등 정치적 변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격히 사회가 변동되었다.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에서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실향민과 이산가족도 생겼으며, 또 산업화 이후 우리의 생활터전이었던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고 그 때문에 공간적․정신적 고향상실감을 느끼고 고향에 대한 향수, 사향 등이 문학작품에 많이 반영되었다.
현대시조에서도 고향의식을 주제나 소재로 다룬 작품은 많이 창작되었다. 그러나 지금껏 부분적 논문이 조금 있었으나, 본격적인 연구 논문은 별로 없었다.2)
고향의식에 대한 것을 찾아보면, 고향의식에는 ‘태어나고 자란’ 처소적 고향 외에도 형이상학적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정신적 뿌리, 정신적 유대감으로의 고향의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향수란 원래 고향에 대한 사모이지만, 그 고향이란 반드시 유형임을 요하지는 않는다.’3)라고 했을 때, 우리는 무형의 정신적 안식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훗설은 고향을“고향세계(Heimwelt)는 모든 인간과 모든 인간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친척 및 이웃 같은 절친한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개인과 공동체에 제각각 다르게 매우 광범위하고, 그러면서도 유한한 것이다. 고향의 의식적이고 형이상학적 측면을 볼 때 그 고향의 본질은 불변하고, 또 그것은 영구적인 것이다. 또 그것은 자연적 공간만이 아닌 것이다.”4)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고향은 식량을 공급하는 토양이고, 심미적 희열의 대상이며, 정신적인 뿌리감정(Geistiges Wurzelgefühl)”5)이라고 슈프랑어는 정의하고 있다.
또 하이덱거는 “인간의 현존은 고향상실(Heimatlosigkeit)의 현존이며, 존재망각(Seinsvergessen - heit)의 현존이다. 고향은 고요하고 위험이 없는 세계지정에 대한 표현이다. 피투성(Gewofenheit)과 세계내 존재성(In-der-Welt-Sein) 가운데 있는 인간 현존은 그 본래성이 비본래성에 의해 은폐되어 그 본래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 이런 상태가 고향상실이다. 그리고 고향인 본래성의 회복이야말로 철학자의 과제이고, 또 인간의 근본적인 지향목표”6)라고 하였다.
볼노프는 “고향은 인격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 일반적으로 계속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영역이다. 고향은 그에게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과 함께 시작된다. 이 요소 외에 고향은 마을과 같은 공간적인 차원과 또 전통 같은 시간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다”7)고 하여 고향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르게 내려지고 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고향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지니기 마련이고, 시인이라면 누구나 사랑에 대한 시를 써 보듯, 고향에 대한 시도 쓸 것이다. 그러나 시인마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시를 쓰되 고향에 대한 의식은 다를 것이다. 아래 다섯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자.
나비 떼 무리지어 추사체로 날아와서
마령 들판에 양각(陽刻)하듯 날개 펼쳐 놓은 자리
벚꽃도 이쯤에서는
너울 파도로 넘쳐온다
두 귀 활짝 열어 놓고 세상 소리 듣는 마이산
밤 새 걸러낸 소리 물줄기가 되어서
은비늘 곧추 세우며
흘러드는 용담댐
인삼 향에 묻혀 사는 아줌마 따라 웃다가
저 만큼 나뒹굴며 등마저 굽은 낮달
달구지 신작로 가듯
안천 길 가고 있다
- 김강호, 「진안 나들이」 전문
제목이 ‘진안 나들이’라서 독자들은 제목에서 그곳의 풍광을 미리 상상한다. 시골장날 시장 가득 펼쳐놓은 물건을 보러 가듯 독자들도 글을 따라 ‘진안’을 보러 간다.
첫째 수에는 봄날의 떼지어 나는 나비가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인양 아름답게 날고 있다. 그러한 나비가 마령 넓은 곳에 양각하듯 벌판을 날고 벚꽃이 활짝 피어나 파도처럼 너울지는 봄의 화사한 정경을 담고 있어 그것을 보는 독자들도 아름다운 봄 풍경 속에 ‘퐁당’빠지게 한다. 둘째 수는 진안의 명물 <마이산>을 노래하고 있다. 세상의 소리를 활짝 열린 두 귀로 듣고 있다. 그렇게 듣고나서 좋은 소리, 맑은 소리만 밤새 걸러낸 것이 용담댐의 물줄기가 되어 은비늘 곧추세우며 아름답게 흘러내린다. 셋째 수에 오면 ‘인삼 향에 묻혀 사는 아줌마를 따라 웃다가 등마저 굽은 낮달’이라고 하여 진안의 특산물 인삼을 소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진안을 독자들에게 펼쳐서 보여주어, 이 시조를 읽는 독자는 글을 따라가면서 진안을 보게 된다. 첫째 수는 진안 마령들판의 아름다운 봄 모습을 보여주고, 둘째 수는 진안의 명물 마이산과 용담댐을 보여주고, 셋째 수는 특산물인 인삼을 소개하고 있다. 진안의 아름답고 화사한 봄 풍광, 명물, 특산물까지 은근히 소개하는, 고향사랑의 정신이 숨어 있는 작품이다.
그리움도 맑은 때가 앉을 법한 마흔 고개
단선 행 기억 저편 덜컹이는 문죽리는
여섯 살 눈발에 갇혀 아직 넘지 못합니다
깡마른 어둠의 뼈로 동향바지 가난 지고
첫새벽 무를 써는 희디흰 초가 한 채
문풍지 떨리는 귀로 빛을 받아 모읍니다
뒤란 빈 외지래기에 사투리로 쌓이던 눈
때로 꿈의 밑바닥이 환해진 겨울이면
가슴엔 아아, 고향이란 뒷마당이 생깁니다
- 박권숙, 「마음의 뒤란」 전문
고향은 인격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 일반적으로 계속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영역이다. 고향은 그에게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과 함께 시작된다.8)고 봤을 때 박권숙은 그 고향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의 뒤란>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움도 맑은 때가 앉을 만한 마흔 고개’라고 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잊힐만한 40대 임에도 가고 오지 않는 단선행의 기억 저편, 여섯 살의 문죽리 유년에 갇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고향에 대한 기억은 둘째 수에 오면 ‘동향바지 가난 지고/첫새벽 무를 써는 초가집’으로 나타난다. 깡마른 모습으로 무를 써는 이는 어머니일까, 아버지일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리움으로 전율됨을 ‘문풍지 떨리는 귀로’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빛으로 받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어린 날의 가난하지만 단란한 희디흰 초가의 모습을 귀로 모은다고 하여 시각을 청각화시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뒤란의 빈 ‘외지래기(?)’란 여기서 뒤뜰의 사투리로 외진 곳, 음지의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사투리로 쌓이던 눈’사투리는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니, 사투리에는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정겨움이 나타난다. ‘사투리로 쌓이는 눈’이란 ‘외지래기’에 쌓이는 즉, 고향집 뒤뜰 외진 곳에 쌓이던 눈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 겨울 하얗게 눈이 내려 꿈의 밑바닥인양 환해진 겨울이면 가슴엔 고향이란 뒷마당, 그리움이 남아있는 마음의 뒤란이 생기는 것이다. 고향집 뒤란처럼 늘 마음 깊은 곳, 즉 마음의 뒤란에 남아 있는 곳이 바로 고향임을 이 시조에서는 말하고 있다.
귓가에 울리는 무진고성(武珍古城)9) 북소리 따라
잣고개에 오르면
에돈 길이 발아래다
세속의 우렁잇속일랑 벗어도 좋은 여기
한 번도 마른 적 없는 그윽한 청암호(靑巖湖)에
욕망의 남루 씻는다
떫은맛을 우린다
언제나 마음의 연인
고향은 소생의 땅
천둥벌거숭이 머리에 무서리가 내리고
생애를 감은
농담도
덩굴손을 거두어
동구에 들어설 때면
스스러운 나목이 된다
- 서연정, 「고향」 전문
서연정은 고향을 ‘우렁이속일랑 벗어도 좋은 여기’‘욕망의 남루를 씻는’‘소생의 땅’으로 여기고 있다. ‘무진’하면 떠오는 것은 안개마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다. 사랑도, 미래도 안개에 가려져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우리들의 생. 그 무진의 잣고개에 오르면 ‘에돈 길이 발아래다’헤매며 돌아왔던 길이 발아래로 보인다는 것이다. 참 별것도 아닌데, 우리는 인생을 얼마나 에돌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화자는 ‘세속의 우렁잇속일랑 벗어도 좋은 여기’라고 고향을 표현하고 있다. 우렁이 속같이 좁은, 작은 마음을 버릴 수만 있다면 오죽 좋은가. 그것이 고향마을 무진고성 잣고개란다. 그윽한 청암호를 바라보면서 욕망의 남루를 씻고, 떫은 맛을 우린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향은 마음의 연인이 되고 소생의 땅이 된다. 외지에 나가 상처받고 돌아오면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 같은 너그럽고 푸근한 품으로 안아준다. 천둥벌거숭이었던 어린이가 어느새 머리에 무서리가 내리는 나이가 되고 이리저리 감고 오르던 덩굴손 같은 욕망을 거두어 동구에 들어설 때면 비로소 ‘스스러운 나목이 된다’고 한다. ‘스스러운’은 ‘스스럽다’에서 온 말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정분이 그리 두텁지 않아 조심스럽다.’다른 하나는 ‘수줍고 부끄럽다’이다. 여기는 두 번째의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나간 날들의 얽히고 설킨 것들을 거두며 고향 동구에 들어설 때면, 화자는 모든 것을 벗어버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수줍고 부끄러운 모습이 된다. 마음 놓고 사투리를 쓸 수 있는 곳, 유치한 어린 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목처럼, 천둥벌거숭이처럼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서연정의 고향의식은 좁은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곳이며, 욕망을 벗는 곳이며, 소생하는 곳이며, 모든 가식을 벗어버리고 나목처럼 설 수 있는 곳이다. 서연정의 고향의식에는 자연만의 공간이 아닌 정신적인 친근함이 드러난다.
금물결 골을 키던 오리 떼도 보이지 않고
나물 씻던 단발머리 숨결마저 깊어진 오후
아득한 유년을 띄운 물빛 검붉게 죽어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삭은 날의 일상들이
속눈썹에 매달린 채 해맑게 일렁일 때
잡아도 소용없는 낚대 바람 끝의 내 유년
- 양점숙, 「흥부골에서」 전문
양점숙은 고향의식, 유년의식을 ‘흥부골에서’보여주고 있다. ‘흥부골’이란 지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양점숙의 고향의식은 유실감과 쓸쓸함이다. ‘금물결 골을 키던 오리 떼도 보이지 않고/ 나물 씻던 단발머리 숨결마저 깊어진 오후/ 아득한 유년을 띄운 물빛 검붉게 죽어있다’에서 어린 날의 아름답게 오리가 떠다니고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던 금물결도 사라지고, 나물 씻던 단발머리 어린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도 어느새 중년을 넘겨 숨결마저 깊어진 오후의 시간, 빛바랜 모습이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 유년의 아름다운 물빛은 검붉게 죽어 쓸쓸해 보이는 고향의 모습만 남아 있다. 정지용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뇨’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시이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삭은 날의 일상들이’라고 하여 지나간 유년의 시간들을 말하고 있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 이상 잊어버리고 사는 과거, 들춰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지난 날들, 만지면 금방 바스라질 것 같은 조심스런 유년의 모습이기도 하다. 악보의 스모르찬도(smorzando)같이 삶의 현실감에서 ‘점점 꺼져가는 모습’이다. 그것은 아직도 속눈썹에 매달린 채 해맑게 일렁이고 있지만, ‘잡아도 소용없는 낚대 바람 끝의 내 유년’이라고 하여 현실에서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는 바람 끝에만 존재하는 어린 날임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과거의 유년을 추억하는 것이 현실에선 아무 것도 잡힐 것이 없고, 과거의 아름다움이 되돌아오지 않는, 현실에서의 상실감만 나타나는 고향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인간 현존은 그 본래성이 비본래성에 의해 은폐되어 그 본래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 이런 상태가 고향상실이다.”10)이라고 한 하이덱거의 지적처럼 양점숙의 고향의식에는 시간적, 공간적 상실감이 짙게 나타난다.
낯선 길을 가다 고향을 만났다
토담 너머 날 부르시던 어머니 환한 목소리
묵묵히 듣고 새기던 이끼 낀 석류나무
속달우편 개봉하듯 가슴 쩌억 열어젖히고
괜찮다 그깟 일로 기 죽지 말거레이
어깨 툭 치던 말씀을 알알이 건네주신다
새콤달콤한 그 어록 발효된 이 깊은 맛
응석둥이 자식 되어 그 품 다시 안겨보거니
지금쯤 고향 집에도 가을빛이 한참이겠다
- 추창호, 「석류의 말씀을 읽다」전문
추창호는 석류에서 고향을 발견하고 있다. 눈에 익은 석류, 지금은 이란산 석류가 더 많이 들어와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지만, 우리 재래의 석류, 석류꽃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작품에서는 낯선 길을 가다 만난 석류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 토담 너머 날 부르시던 어머니의 환한 목소리 그것을 듣고 있던 이끼 낀 석류나무가 생각나서 낯선 길을 가다 만난 석류나무가 고향을 만난 듯 반가운 것이다. 더구나 가슴 쩌억 열어젖히며 그 붉은 속을 보여주고 있는 석류, 그 알알, 그것은 마치 ‘괜찮다 그깟 일로 기 죽지 말거레이’라고 기죽은 아들 어깨를 툭 치며 다둑이는 어머니 말씀으로 다가온다. 그 붉은 마음, 그 붉은 말씀을 석류알에서 발견하는 화자는 석류에서 고향의 어머니를 발견하고, 석류알에서 어머니의 말씀을 읽는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어머니의 말씀이 발효된 것 같은 깊은 맛에, 응석둥이 자식 되어 그 품에 다시 상상으로 안겨보며 지금쯤 고향집에도 한창일 가을빛을 생각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만난 석류에서 어머니를 연상하고, 어머니 말씀을 연상하고, 고향집을 연상하는 모습을 시조에 담았다. 석류나무가 있는 고향집을 생각하는 추창호의 고향의식은 따스하고 정겹다. 추창호는 이 작품에서 고향을 언제나 자식이 기 죽을까 염려하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언제라도 내 응석을 받아주실 어머니가 계시는 깊은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곳으로 심미적 희열의 대상으로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尹永川, 『韓國의 流民詩』, 실천문학사, 1987.
2) 김민정, 「현대시조의 고향성 연구」성균관대학교 박사논문, 2003.
40년대 시인으로 김상옥, 50년대 시인으 로 리태극, 60년대 시인으로 정완영을 다루었고,
그들의 시조에 나타나는 고향의식을 살펴보았다.
3) 최재서, ??????????문학과 지성??????????????????, 인문사, 1938.
4) 전광식, 「고향에 대한 철학적 반성」, ?????????철학연구?????????제67집, 대한철학회, 1998. 재인용.
5) 전광식, 「고향에 대한 철학적 반성」, ????????철학연구????????제67집, 대한철학회, 1998. 재인용.
6) Axel Beelmann, Heimat als Daseinsmetapher. Weltanschauliche Elemente im De-nken des Theologiestudenten Martin Heidegger, Wien 1994. SS. 13-14. 전광식, 「고향에 대한 철학적 반성」, ????????철학연구????????????????제67집, 대한철학회, 1998. 262쪽 재인용.
7) 전광식, 「고향에 대한 철학적 반성」, ???????철학연구???????제67집, 대한철학회, 1998. 재인용.
8) 전광식, 「고향에 대한 철학적 반성」, ??????????????철학연구??????????????제67집, 대한철학회, 1998. 재인용.
9) 광주기념물 제14호. 무등산의 지맥인 장원봉(해발 386m)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상태봉(해발 350m)과 제4수원지 안쪽에 축조된 장타원형상의 산성이다. 건물지와 동문지에서 기와편과 막새기와,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의 발견되었는데, 이 유물들로 보아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축조되었다가 9세기 중반에 폐성이 되었자기류가 고, 다시 9세기 후반경에 수축, 고려 초(12세기)까지 사용된 성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