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시민공모와 각계 전문가들의 심의를거쳐 안양시 최초로 안양8경을 선정 하였답니다.
망해암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전통사찰이다.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에도 기록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조선 순조3년(1803)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홍대비(혜경궁 홍씨)께서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망해암의 중심 건물인 용화전에는 석조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석조 미륵불은 보개를 쓰고 도톰한 코와 입, 길게 늘어진 귓불에 법의는 통견이며, 굵은 U자형의 옷자락 선이 조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불상으로 당시의 문화적 유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날씨가 맑은 날 시계가 탁 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 시가지와 서해 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 풍광이 빼어나다.
위치 : 만안구 안양2동 산19
전철은 1호선 이용 안양역에서 하차
지선(초록)버스 5530, 5531, 5623, 5624, 5625, 5626, 5713(삼성아파트 앞에서 하차)
시내버스 51, 500, 501
마을버스 3, 5-1, 6-2, 7
좌석버스 1650
경수산업도로(1번도로) 서울방향 우측에 위치한 대림대학 입구로 접어들어 주공A 방향으로 직진
삼막사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삼성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으며, 풍화된 2개의 자연 암석으로 그 모양이 남녀 성기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 부르고 있다. 남근석의 높이는 1.5m, 여근석의 높이는 1.1m이며, 서로 2m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속전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을 원하고, 출산과 일가의 번영, 무병 및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하며, 4월 초파일과 칠월 칠석날 등에는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러한 성기 숭배 사상은 다산 및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으로 선사시대부터 행하여 왔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이쏙, 동남아 지역과 일본에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위치 : 만안구 석수1동 산 10-1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전철은 1호선 이용 관악역에서 하차
지선(초록)버스 5412, 5529, 5711
시내버스 1, 51, 5624, 5625, 5626, 5530, 5532, 5713
마을버스 6-2
좌석버스 900
경수산업도로(1번도로)서울방향 우측에 위치한 석수1동사무소를 지나 삼막사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접어들어 직진
중앙공원에는 각종 편의시설과 체육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테마정원이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분수와 200여미터의 구간에서 흐르는 시냇물은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도심 속에서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청량하게 해 준다. 공원 곳곳에 있는 정자와 산책로는 녹음과 그늘을 제공하여, 야간에는 수경시설의 조명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또한 시민들이 운동을 하며 즐길 수 있는 인라인스케이트장과 X-게임장, 차 없는 거리가 있다. 평촌 중앙공원은 나무,꽃,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고, 안양시민축제, 젊음의 축제, 주부가요제 등의 행사와 더불어 많은 시민들이 사시사철 이용하는 휴식 공간이다.
위치 : 동안구 평안동 일원
면적 : 119,667m2
지하철 4호선 평촌역에서 걸어서 5분 안양시청 맞은편에 위치
광역(빨강)버스 9503(부림중학교 앞에서 하차)
시내버스 1, 6
마을버스 5, 5-1, 7, 8
평촌신도시내에 있으며 주변에 안양시청, 우편집중국 등이 있다.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있는 미관광장 지하주차장 이용
삼막천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 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이다. 정조는 양주에 있었던 사도세자의 묘소를 정조 13년(1789)에 화산(화성시 소재)으로 이장한 후 1800년 사망할 때까지 12차례에 걸쳐 참배를 하였다. 정조가 만안교를 지난 것은 1차 능행부터이다. 이 다리는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왕의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하였으나, 경기관찰사 서용보가 돌로 대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정조 19년(1795)에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간의 공역 끝에 길이 35.5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깔아 축조하였다. 원래 만안교는 현재 위치의 남쪽 460m 만안로와 석수로 교차지점에 있었으나, 국도 확장 사업으로 인해 1980년 8월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다리 앞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이 쓴 만안교비가 있어 그 연혁을 설명해 주고 있다.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이며,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1832년 담배촌(안양9동)에 정착하면서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 신앙을 전파하였다.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 하는 교유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에, 그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게 붙잡혀 압송되었다. 최경환은 배교하라는 고문과 회유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같은 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고, 부인도 다음 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6일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된 수리산 최경환 성지에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전해 준다.
과천→47번 도로→인덕원→관악로→비산대교를 건너 컨벤션웨딩홀앞에서 우회전→CGV에서 좌회전→안양3동→안양9동→병목안
안양예술공원은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던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명칭이다. 안양유원지는 정부에서 1969년 1월21일 국민관광지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그 동안 계곡 주변에 무허가 주택과 음식점이 무질서하게 들어서면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시설이 낙후되어 유원지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안양유원지를 새로운 시민휴식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1999년부터 도로, 상하수도, 하천 등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주택을 개량하는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류에는 소형댐을 만들어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또한 인공폭포, 야외무대, 전시관을 비롯해 광장, 산책로, 조명시설 등을 설치하였다. 2005년에는 공원 조성 사업과 연계하여 국제적 수준의 '제1회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개최하여 나라안팎 유명 작가의 예술 작품 52점을 설치하였고, 안양유원지를 안양예술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공원 주변에는 울창한 숲 사이로 잘 발달된 여러 등산로가 있어 수도권 시민들의 등산 코스로 사랑받고 있으며, 안양사, 염불암 등의 전통사찰과 중초사지 당간지주, 석수동 마애종, 안양사 귀부, 중초사지 삼층석탑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병목안은 마을 입구가 병목처럼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리던 안양9동의 마을 명칭이다. 계곡이 길고, 경치가 수려하여, 맑은 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병목안 왼편에 있는 수리산은 높이가 489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X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조성된 여러 산행 코스와 곳곳에 잘 꾸며 놓은 산림욕장이 있다. 수리산 산림욕장은 병목안에서 수리산을 가로 질러 안양8동 상록마을에 이르는 제1 산림욕장, 석탑에서 제2 만남의 광장(공군부대 입구)에 이르는 제2 산림욕장, 제2 만남의 광장에서 수암봉을 올라 창박골 예비군 교육장에 이르는 제3 산림욕장 등 3개 코스 17.2km가 조성되어 있다.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은 병목안과 수리산을 상징하는 징표이다. 양쪽에 조화롭게 병 모양으로 쌓아올린 탑은 주변의 쓸모없는 돌무더기들을 이용해서 자연과의 조화와 인공의 미를 살린 수리산 산림욕장의 명물이자 이정표이기도 하다.
위치 : 만안구 안양9동 산79-3
전철은 1호선 이용 안양역에서 하차(도보5분) → 안양1번가정류장 제일은행앞 시내버스 10, 15, 15-2, 11-3 병목안 입구에서 하차
과천→47번 도로→인덕원→관악로→비산대교를 건너 컨벤션웨딩홀앞에서 우회전→CGV에서 좌회전→안양3동→안양9동→병목안
안양1번가는 조선조 제22대 정조 임금께서 생부인 사도세자의 묘에 능행을 위해 만안교를 놓은 후, 화산 능행의 노정을 과천~인덕원~수원에서 시흥~안양~수원으로 바꾸면서 유래정 뒤(안양1동 674-67)에 안양 행궁을 짓고, 능행 중에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주변에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1905년 1월1일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안양역이 생기면서 교통 중심지가 된 안양1동에는 1917년 7월에 호계2동에 있던 서이면 사무소가 이전 하였다. 그 후 1920년 전후로 하여 안양금융조합과 안양연초 조합, 안양읍사무소 등 공공기관이 들어서자 관가의 거리로 발전했다. 1926년에는 이곳에 안양시장이 개설되어 상권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1980년대에는 먹거리, 옷가게, 유흥주점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90년데 들어 젊은 취향의 캐쥬얼 스타일의 의류와 내셔널브랜드 상점들이 대거 입점하였다. 2000년 이후 컴퓨터, 통신, 시네마 등 쇼핑과 문화가 융화된 거리로 변화되어 수도권에는 손꼽히는 상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안양최대의 번화가로 부상하였다. 안양의 금융, 교통, 상권을 태동시키고 지역 발전을 일으킨 상징적 의미에서 안양1번가로 부르게 되었다. 1996년부터 매년 10월에 "젊음의 도시, 패션의 거리 안양" 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번가 대축제'가 열리고 있다.
첫댓글 8경중 석수동에 4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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