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공경의 완월동 성당
완월성당에는 성인들의 유해를 네 분이나 모시고 모든 신자들이 참배 하기도 하고 그분들의 거룩하고 굳센 정신을 묵상하며 신앙심을 키워가고 있다.
우선 성인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1) 김 대건 ( 안드레아 ) 성인 신부님
2) 로랑.마리.요셉. 엥베르 (라우렌시오) 범 조선교구 2 대 성인 주교님
3) 피에르.필립보. 모방 ( 베드로 ) 나 성인 신부님
4) 쟈크.오노에. 샤스탕 ( 야고보 ) 정 성인 신부님
위와 같이 네 분의 성인 유해를 모시고 있는데 언제부터 완월성당에 모시게 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아래와 같이 추정 할 수 있다.
1) 유해를 감싸고있는 성광의 제작 년도를 추적한 결과 1925 년도에 제작 된 것임이 확인 되었고 ( 한국 천주 교회사 연구소 곽 데레사 수녀님 증언 )
2) 1925 년 7월 5일 네분 모두 복자로 선포 되었는데 김 대건 신부님 유해
아래 표기가 (B.Andrea Kim )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 B=Blessed 복자 ) 복자 선포 즉시 분배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외국인 세분의 유해는 1924 년에 로마와 파리등지로 분배 ( 샤를르 달래 원저
한국 교회사 중권 P462 참고란 103 항 ) 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약간의 유해를 한국에서 보관 하였다가 복자 선포 후에 분배 한 것으로 보인다’
4) 결론적으로 한국의 모든 성인의 유해를 관리한 서울 대목구로부터 당시 본당 신부님 목 세영 ( julius Bermond )프랑스 외방 전교회 신부님께로 분배 되었음을
알 수 있다’
5) 성인 유해 분배 증빙 서류는당시 대구교구청에 보관중 1964년 화재로소실됨
6) 위의 모든 증험을 보아 1925년경 완월 본당으로 분배 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동안 성인들의 유해가 신부님 제의방 깊은 곳에 보관 되어 왔던 바 신부님도 신자들도 거룩하고 귀한 성해가 완월동성당에 있는줄도 모르고 몇 십년이 흘렀는데 2006 년 삼층 성당이 너무 높아 연로하신 교우들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일층 강당을 성당으로 개축하여2007 년 1월 삼층에서 일층으로 이사를하면서 재발견 되었다. 그리하여 일층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 하는날2007 년 1월 21일 김순곤 비오 주임 신부님께서 좀 흥분되고 격앙된 어조로 전신자에게 알려 주셔서 우리 모두 놀라면서 환호하였다. 그리고 안 명옥 주교님 입회하에 성과을 다시 도금 해 오셨다. 그리고 2014 년 11월 12일 이형수 몬시뇰게서 보관대를 만들어 성당 전면 감실 밑에 성해를 안치하여 모든 신자들이 볼 수 있게 현시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들이 성인을 공경하며 전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되었다. 이에 완월동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인의 이력을 밝힌다.
1 )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1821. 8. 21. 충남 당진시 우강면 양반 가문에서 출생
증조부 ( 진후 ) 1814 년 순교 집안 몰락
부 ( 제준 ) 1839 년 기해박해때 순교
모 고 우르술라
1836. 12 마카오 유학 출발
1837. 7. 6. 마카오 유학 시작
1844. 12. 부제서품 받음 (부제 수품 후 잠간귀국 했다가 다시중국에감 )
1845. 8. 17 중국 상해 부근 금가항 경당에서 페레올 주교님 주례로 사제 수품
1845. 8. 31 ~10.12 페레올 주교님. 다불뤼 신부님과 김대건 신부님. 신자들 12
명이 라파엘호라고 명명한 배를 타고 상해를 출발했으나 폭풍으로
제주도 남쪽까지 갔다가 배를 수리하고 겨우 43 일만에 강경 나바위
에 도착하시어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하심
1846. 5. 12. 사제의 영입을 위하여 중국 어선에 편지를 전하고 돌아 오려고 하 는 중에 연평도앞 순위도에서 체포
1846. 9. 16 새남터에서 순교
1857. 가경자 선포
1925. 7. 5. 비오 11세 교황님께서 복자로 선포
1984. 5. 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인으로 선포하심
우리나라 제일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 20번째 편지중에서 발췌
“그들은 제 머리카락을 한움큼 잡아 뽑고나서 포승으로 결박하여 발길질, 주먹질
과 몽둥이질을 하였다.”
“호기심에 끌린 구경꾼들에께 밤이 이슥토록 천주교리를 설명 하였더니 임금님이금하지만 않으면 자기들도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감사의 부하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감사 앞에서는 누구라도 소인이라고 말 해야하오라며 일러 주기에 그게 무슨 말이요 나는 자성한 어른이고 양반이요 나는 그런 말 모르오”.
한국 성직자의 수호자 성 김 대건 안드레아는 1842년~46 년까지 21통의 편지를썼는데 그중 한글과 한문이 각각 한통 라틴어가 19통이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님이시며 축일은 7 월 5 일로 지내고 있다.
**** 또한 성 김 대건 신부님을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되었다.
피에르.필립보 모방 ( maubant) ( 베드로 ) 나 성인 신부님
1803. 9. 20 프랑스 밧시에서 태어남. 부: 가를로 모방 모: 카타리나 뒤슈앵
1829. 5. 23. 사제 서품 받음 1831. 11. 18. 파리 외방 전교회 입학
1836. 1. 12. 밤에 조선 입국 압록강지류 변문 검사소 세군데를 얼음 위 수문 ( 개구멍 ) 으로 입국한 최초의 서양 신부임, 1836년 봄 부활절에 고해 성사를 줄 정도로 빠른 언어 습득하심.
1836 년 부활절이후 12 월 9 일까지
세례자 213 명. 고해성사 630명. 혼배 85건.
1836년 김대건 (아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 F, 하비에르 ) 세 소년을 역관 최인길(마티아) 보내어 중국어를 배우게하고 이해 12월에는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에 유학보냄.
*먼저 입국하여 사목 하고 있던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는 공개적으로 외방 신부의 입국을 방해하고 북경
주교 관할에서 혼자 조선 포교지를 맡으려했다. 이에 모방 신부님께서 유방제 신부를 직무정지
시키고 중국으로 출국 시켰다.
1839. 9. 21. 앵베르 주교님의 권유로 자수하여 새남터에서 순교 ( 기해박해 )
1925. 7. 5. 비오 11세 교황님께서 복자로 선포 하시고
1984. 5. 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인으로 선포하심.
쟈크 오노에 샤스탕 ( CHASTAN ) ( 야고보 ) 정 성인신부님
1803. 10. 7. 프랑스 디뉴 근처 마르꾸에서 탄생
부 : 앙드레,세바스띠앵,샤스탕. 모 : 마리 안느 루공
1826. 10. 23. 사제서품 받음
1837. 1. 15. 서울 도착 향후 2년 9개뤌 조선에서 사목하심
1839. 9. 21. 앵베르 주교님 권유로 자수 새남터에서 순교 (기해박해)
1925. 7. 5. 비오 11세 교황님께서 복자로 선포하시고
1984. 5. 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인으로 선포하심
로랑,마리,요셉 엥베르 ( IMBERT ) ( 라우렌시오 ) 범 성인주교님
1797. 4. 15. 프랑스 까브리에 읍에 속하는 깔라 마을에서 탄생
부 : 루이 엥베르 모 : 스잔 플로뺑
* 가난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8세때에 길에서 1전을 주운 라우렌시오는 초보독본을 사서
이웃 착한 할머니에께서 글을 배워 읽고 쓰게 되었다 그후 성 요아킴 기숙학교에 무료입학.
묵주 만드는 기술을 익혀 생활에 보탬.
1819. 12. 18. 프랑스 외방 전교회 신학교에서 사제서품 받음
1820. 3. 20. 중국 사천 포교지에 임명
1825.3. 사천 포교지 도착. 12년간 사천에서 사목 . 모삥신학교 세움
1837. 5. 14. 주교서품 받음
1837. 12. 18. 자정에 조선입국
1837. 12. 30. 조선교구 제 2 대 교구장 주교로서 서울 도착
3개월 후부터 고백성사를 도와줌
모방신부님 도착시 6천명이던 신자가 1838 년 말에는 9천명이됨
1939. 8. 10. 김여상의 밀고로 체포됨
1839. 9. 1. 모방신부님과 샤스탕신부님께 교우들의 희생을 막기위해 자수를 권유
1839. 9. 21. 새남터에서 순교 ( 기해박해 ) 조선사목 1년 9개월
1925. 7. 5. 비오 11세 교황님께서 복자로 선포하시고
1984. 5. 6. 교황바오로 2세께서 성인으로 선포하심
네 분의 귀하신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어 우리 완월동 성당 교우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같게 되었다. 구만리 타국에서 그렇게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입국
하시고 전혀 맞지 않는 풍습과 음식.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엄중한 감시 속에서
외출시에는 상주들이 쓰는 반갓을 쓰고 상복을 입고 사목하시며 밤 1시에 기상
하시어 미사를 집전하시고 성사를 주고 해뜰 무렵에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9시나
되어 영양가 없는 식사를 하기도하며 불쌍한 양들의 구원을 위해온갖 위험과
고통과 굶주림을 참으며 고생 하시다가 목숨까지 버리신 고귀한 성인님들의
신앙을 생각 할수록가슴이 찡 해지며 지금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피흘린 성인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신앙 정신을 본받아 더욱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 해 본다
완월 본당 이 주형 예레니모 신부님과 배 콘스탄틴 교구장 주교님께 감히 청합
니다. 마산교구의 첫 본당이기도 하며 위와같이 성인유해도 모시고 있는 저희
본당을 순례지로 지정해 주실것과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기도처로 지정해 주실것을 간절히 청원
드립니다. 끝
자료제공 완월동성당 안 만길 ( 요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