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서 춤을 춰 본 적이 있는가? 어른 허벅지만큼 자란 보리는 미풍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실거리며 왈츠를 춘다. 이른 아침에 찾은 고창 학원농장에는 옅은 안개가 먼저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들을 피해 안개는 도망치듯 사라지고 보리밭 사잇길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넘실거리는 초록에 입은 “우와~”, 눈은 “시원~”하다는 사인을 주고받는다.
초록은 눈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색이다. 때문에 보리밭을 오가는 사람들 중에는 어두운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5일과 10일은 무장전통시장 서는 날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신선한 해산물은 기본이고, 상상이상으로 큰 풍천장어를 보고 놀라게 된다.
“장어가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이걸 어떻게먹나요?” 라는 도시인의 말에 시장상인은 “양념 잘해서 이놈을 조려 묵으면 맛나제”라고 답한다. 그 양념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장날에 찾은 것만은 행운이다.
시장구경을 마치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무장현 관아와 읍성으로 향한다. 고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고창읍성이다. 하지만 무장읍성 역시 허술한 곳이 아니다.
아직 잘 정비되지 않은 탓에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 또한 멋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성은 허물어졌지만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들이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령을 알 수 없는 고목들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이곳을 지켜준 것이 대견하다.
고목 뒤로 ‘취백당’이란 현판이 걸린 동헌건물이 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위엄보다는 친숙함이 앞선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건물이 교실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 읍성의 출입문격인 진무루에서 바라보는 무장면의 모습은 지난날 영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적하기만 하다.
학창시절 <국화 옆에서>를 읊조리지 않은 학생이 있을까? 그만큼 시인 미당 서정주는 한국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다섯 번이나 추천되었을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미당시문학관 제 1전시실에 들어서면 그의 친필 시들이 가득하다. 창가에는 주인이 떠난 책상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문학관 오른편에는 그의 생가가, 왼편에는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그의 시는 언제나 정치적, 역사적 해석이 멍에처럼 따라 다닌다.
2000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고인돌공원에는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있는 3만여 기의 고인돌 중에서 2천여 기가 모여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도가 높은 곳이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대표적인 유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힘 있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큼직한 바위를 이용해 만든 고인돌은 ‘괴여 있는 돌’이란 뜻의 지석묘를 순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받침돌과 덮개돌이 있는 고인돌만 고인돌이 아닌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어 무심하게 지나칠 경우 그냥 바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각을 넓게 보자면 경주와 나주에 많이 산재된 고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고인돌군은 크게 6코스로 탐방할 수 있는데, 고인돌 탐방열차(1천 원)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고창사람들에게 고창읍성은 특별하다. 예부터 부녀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장생한다 하여 지금도 성곽을 운동 삼아 매일 밟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화재의 차원을 넘어 건강을 다지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쉼터 같은 곳이다. 또한 현존하는 읍성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기로 유명하다.
읍성에서 빼놓지 말고 챙겨봐야 할 것이 맹종죽림사적이라는 대나무숲이다. 이곳에서 영화<왕의 남자>가 촬영되기도 했다. 여름날 대숲으로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과 매미소리가 조화를 이루면 한낮의 무더위도 저 멀리 도망갈 태세이다. 성문 앞에 자리한 판소리 박물관도 함께 돌아보면 좋다.
글 · 사진 / 임운석 여행작가
로그인 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
출처: 국민건강보험 블로그「건강천사」 원문보기 글쓴이: 건강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