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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2장36~46절
제목 : 죽음을 자초한 시므이
다윗은 죽을 때에 솔로몬에 유언을 합니다.
첫째는 율법을 지켜 행하라.
둘째는 원수를 제거하고 은혜를 갚으라.
여기서 원수는 요압과 시므이 이고, 은혜를 갚을 자는 “바르실래”의 아들들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요압과 함께한 아도니야와 요압을 죽이고, 아비아달은 파면당합니다.
다윗이 당부한 세 사람 중 마지막 대상은 시므이 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가드로 도망한 종을 잡으러 갔다가 죽음을 자초합니다.
시므이의 거주지 제한 명령(36~38절)
1) 왕이 시므이의 거소를 예루살렘으로 제한합니다(36절)
“[36]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시므이 - 이 인물이 앞의 세 사람 (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 같이,
솔로몬 왕권을 위협하는 장애로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근친으로서 강력한 반(反) 다윗 인사였고(삼하 16:5-8,13), 또한 소속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도급 인사였기 때문입니다(삼하 19:17 주석 참조).-아비새가 죽이려 할 때.
*삼하19:17,23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23]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너는 예루살렘에서...나가지 말라. - 일종의 주거 제한 및 감시를 위한 조치입니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여 반란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한편 본래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8절>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습니다.
2)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37절).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기드론 시내. - 유다 지파의 베냐민 지파의 영토를 구분짓는 예루살렘 동편의 경계천(境界川)입니다.
우기(雨期)의 폭우 때를 제외하곤 거의 물이 흐르지않는 시내(brook),
곧 '와디'(wady)입니다(IDB).
이 시내 건너편에 시므이의 본 거주지인 '바후림'이 있었습니다(삼하 15:23).
*삼하15: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 당시 사형 선고의 일반적 형식입니다(레 20:9; 수 2:19).
그 의미는 '너 자신의 잘못(죄) 때문에 네가 죽는 것이다'란 뜻으로서,
곧 죽음(피흘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바로 죽임당하는 자(범죄자)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사형 집행자는 그 피흘림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입니다.
3) 시므이가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 하겠다고 합니다(38절).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 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 말씀이 좋사오니. - 다윗의 맹세(삼하 19:23)와 관계없는 솔로몬<9절>은 부친의 유언(8, 9절)을 지키되, 그러나 곧장 시므이를 처벌하지 않고 일단 충성을 시험하는 명령(M. Henry)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아는 시므이는 자신의 과거 소행(삼하 16:5-8)을 생각할 때 솔로몬의 주거 제한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명령을 어긴 시므이(39~41절)
1) 시므이는 종이 도망하여 가드에 갔습니다(39절).
“[39] 삼 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어떤 사람이 시므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삼년 후. - 시므이에 대한 주거 제한 명령(36절)은 분명 솔로몬의 즉위(B.C. 970)초에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때는 솔로몬 즉위 3년째인 B.C.967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시므이의 두 종이...도망하여 간지라. - 혹자는 종들이 주인 시므이와 사전에 짜고, 주인을 예루살렘 밖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추측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는 무리한 추측입니다.
아마도 두 종은 주인 시므이에게는 주거 제한 명령(혹은 금족령)이 떨어진 상태이므로,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도망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두 종의 도망 사건 배후에는 다윗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봅니다(8, 9절;삼하 16:12).
가드. -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삼상 21:10)로, 이스라엘과는 때로는 적대적이고 때로는 친교를 맺는 등 많은 정치적 연관을 갖고 있었딘 블레셋의 주요 성읍입니다(삼상 5:6-10;17:4,52;삼하 15:18-22;대상 18:1). 여호수아 11:22 주석 참조.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 - '마아가'(Maachah)는 삼상 27:2의 '마옥'(Maoch)과 동일시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아기스'(Achish)는 일찍이 사울을 피해 망명한 다윗을 보호해 준 인물입니다(Keil). 삼상 21:10;27:2 주석 참조.
2) 시므이는 그의 종을 찾으려고 가드에 가서 데려왔습니다(40절)
“[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의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 도망한 노예를 되찾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 자체로서는 합법적입니다(C. Dentan).
가드로 가서. - '가드'는 그 위치상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37절), 어쩌면 시므이는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므이가 자신의 맹세에 대해 철저한 사람이었다면,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드까지 먼길을 여행하기 전에 먼저 왕의 허락을 요청했어야 옳았습니다.
만일 그러한 절차를 밟았다면, 시므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망간 종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므이는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맹세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온전히 회개치 못한 심정을 드러내고야 말았습니다.
아기스에게 나아가. - 시므이는 직접 아기스 왕과 교섭하여 종들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은 충분히 정치척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즉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망령이나 동맹 반란의 시도로 비칠 수 있었습니다(삼상 27:1,2;29:1,2 ).
여하튼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나가지 말라는 솔로몬 왕의 명령(36절)을 정면으로 위배하였습니다.
3) 시므이가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솔로몬에게 말했습니다(41절)
“[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한지라”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한지라. - 시므이의 움직임은 감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시므이가 밤에 몰래 다녀온 것으로 보나(M. Henry), 문맥은 오히려 그가 태연히 행동했음 보여 줍니다.
아마 맹세 후 3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난 탓으로 부주의해졌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39절).
여하튼 시므이의 가드 행은 솔로몬에게 기다리던 합법적 기회를 주었습니다<9절>.
3. 죽임당한 시므이(42~46절)
1) 시므이가 이전에 맺은 계약 위반으로 고발되고 있습니다(42절)
“[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에게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게 하고 경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시므이는 이전에 맺은 계약(36-38절)을 위반한 죄로 고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은 당사자 간의 합의(솔로몬의 명령, 시므이의 동의)와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로 성립된 것입니다.
따라서 결국 그 계약은 하나님과 솔로몬 왕과 시므이 사이의 계약으로서, 곧 맹세로 확증된 계약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그 계약을 깨뜨린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었습니다.
맹세한 대로 만일 시므이가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다면, 솔로몬 왕 역시 부친의 유인(9절)을 따르고 싶어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시므이가 먼저 그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2) 시므이에게 계약을 어긴 것을 추궁합니다(43절)
“[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맹세와...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 시므이는 다만 왕의 명령 뿐 아니라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어긴 것으로 추궁된다<42절>.
3) 왕이 시므이에게 하나님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44절)
“[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 - 여기서 시므이의 악은 현재의 죄와 이전의 죄가 결합됩니다.
현재의 죄는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파기한 죄요, 또한 왕의 엄명을 어긴 죄입니다(43절).
그리고 이전의 죄는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죄입니다(삼하 16:5-8).
그런데 그 죄의 성격에 있어 둘은 일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던 것은 왕의 능멸인 동시에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모욕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삼하 16:12;삼상 26:9).
그러므로 시므이의 처벌은 다만 지금의 죄 뿐 아니라 이전의 죄에 대한
보응도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을 향하여 시므이는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 8). 이때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흥분한 아비새는 시므이를 단 칼에 쳐 죽이려 했습니다(삼하 16: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를 만류하며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삼하 16:11, 12).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통함을 돌아보시고 시므이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오늘날 공의롭게 보응하셨습니다(롬 1:18;살후 1:5-9).
4)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견고히 서라라 합니다(45절)
“[45]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히브리인들은, 저주는 말 자체의 신비로운 힘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IDB).
따라서 일단 다윗을 향해 뱉어진 시므이의 저주(삼하 16:7, 8)를 솔로몬은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시므이가 하나님과 왕에게 맺은 서약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시므이의 저주는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42, 43절>.
그러므로 다윗 왕가는 시므이의 저주에서 벗어나 복과 번영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것은 솔로몬이 시므이를 다른 사람들(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벌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울러 시므이의 처형을 놓고 솔로몬이 한 이 말은, 시므이에 대한 처형 집행이 결코 사사로운 구원(舊怨)이나 보복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의 공의로운 법 집행이란 사실을 떳떳이 밝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J. Hammond).
5) 솔로몬이 브나야에게 명령하여 시므이를 치게 합니다(46절)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브나야에게 명하매...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 결국 시므이는 그 죄의 대가로 브나야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 된 요소들이 일시적으로는 영원히 존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이르면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될 것입니다(말 4:1;살전 5:3). 무죄한 자를 향한 악인의 정죄와 능욕은 필경 그 자신에게 돌아갈 뿐입니다(욥 34:11;시 141:10;잠 5:22).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 여기서 '이에'는 12절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지시합니다.
한편 성경에서 '손'(야드)은 보통 권세, 힘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IDB;출 13:3;시 78:72;히 10:31).
그러므로 본절은 '모든 장애와 위협을 제거하고 나니 솔로몬의 권세가 막강한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말은 12절과 함께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그의 왕권 확립에 대한 총평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모든 대적을 멸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견고히 세우십니다(44~46절).
반역자들에 대한 징벌이 시므이의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이것은 주의 나라를 거부한 ‘모든 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손길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십니다(마13:41).
징벌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그러니 곧 멸망당할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도 낙담하지도 맙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시므이의 거주지를 예루살렘으로 제한한 것은 반역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36~38절).
한계를 수용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거부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기드론 시내 너머를 욕망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은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하면 된다’는 신화가 한계선 너머에서 손짓합니다.
주의 통치 아레 머물게 하는 내 삶의 한계들을 잘 수용하고 있습니까?
2) 시므이는 솔로몬 왕이 준 기회를 저버리고 예루살렘을 벗어납니다(39,40절).
다른 종을 보내지 않고 직접 간 것은,
다윗을 업신여긴 것처럼 솔로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에게 순종은 3년이 최대치였고,
그가 포기하지 못한 두 종은 마지노선이었습니다.
3년의 순종이 지금의 불순종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믿음이 없듯이, ‘할 만큼 했다’는 순종도 없습니다.
하면 안 되는 일을 고집하면서 괜찮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마십시오.
3) “어디든지”(36절)의 범위를 가드 (예루살렘 서남쪽)까지 넓히고 평생의 한계를 “3년”으로 축소한 시므이는 결국 죽음을 자초합니다(39~43절).
기드론 시내(동남쪽)를 건넌 것은 아니기에 괜찮다 여겼을지 모르지만,
왕이 생각한 “밖”(42절)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로 바꾼 결과는 언제나 동일합니다(창3:3).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3:3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요1서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말씀의 기준을 내게 맞추지 말고,
말씀의 기준에 나를 맞추어야 합니다.
조율되어야 할 것은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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