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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상9장35~10장14절
제목 :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사울의 족보를 끝으로 역대기는 역사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사울의 족보는 사울이 왕이되고, 하나님 앞에 실패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무엘서의 모든 이야기를 요약하는 역할을 합니다.
10장은 사울의 죽음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역대기의 중심인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서론입니다.
사울의 계보가 다시 한 번 소개되고 사울 집안이 불레셋에 멸망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끝에 다윗이 소개되면서 새 시대의 서막이 열립니다.
1. 사울의 계보(35~44절)
“[35]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주하였으니 그의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라 [36] 그의 맏아들은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넬과 나답과 [37] 그돌과 아히오와 스가랴와 미글롯이며 [38] 미글롯은 시므암을 낳았으니 그들은 그들의 친족들과 더불어 마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39]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40]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41]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이며 [42] 아하스는 야라를 낳고 야라는 알레멧과 아스마웻과 시므리를 낳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고 [43] 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르바야요 그의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의 아들은 아셀이며 [44] 아셀이 여섯 아들이 있으니 그들의 이름은 아스리감과 보그루와 이스마엘과 스아랴와 오바댜와 하난이라 아셀의 아들들이 이러하였더라”
주지한 바와 같이 이 부분은 8:29-39의 중복입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음 장에서 언급될 사울 왕의 비극적인 종말을 소개하기 위한 도입 부분으로서 여기에 또 다시 반복되어 있는 것입니다(Payn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Keil, Lange).
여기에 나와 있는 이름들에 대해서는 8:29-39 주석을 참조하라.
2. 사울 왕의 죽음(10:1~6절)
“[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3]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4]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니 [5] 무기 가진 자가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
1)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싸우더기 이스라엘이 패합니다(1절).
“[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
본장은 본서의 본론의 시작 부분으로서 본서의 주인공인 다윗 왕(14절)을 소개하기위한 예비적 과정입니다.
따라서 본장은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사역을 거두 절미(去頭截尾)하고 다만 그의 비극적인 최후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戰死)하는 장면을 기록한 본절 이하의 기록은 삼상 31장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삼상 29:1에 의하면 이 전쟁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Jezreel) 평야에서 발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블레셋 족속(Philistines)은 함의 자손이었으며(1:12) 지중해의 크레타(Crete) 섬에서 팔레스틴으로 진출한 해안 민족이었습니다.
이들은 B.C. 1,400년경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후에도 잔존해 있다가(수 13:2, 3) 이스라엘과 잦은 충돌을 하였습니다(삿 3:31;삼상13:19-22).
또한 이들은 B.C. 1,196년에 애굽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곧 주변의 도시 국가들을 병합하여 줄곧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막강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 이들의 대(對)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삼손 시대를 중심한(B.C.1,075-1,055) 40여 년 동안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삿10:7;13:1;삼상 4장).
그러다가 이들은 B.C. 1,055년경 미스바 전투에서 사무엘의 지도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패배하였습니다(삼상 7:12, 13).
그리고 B.C.1,048년에는 믹마스 전투에서도 요나단에게 패배하였습니다(삼상 14:31).
그런 뒤 이들은 B.C. 1,010년에 본장의 배경이 되고 있는 길보아 전투를 일으켜 이스라엘에게서 대승(大勝)을 거두기는 했으나 얼마 후 다윗 왕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14:10-16;삼하 8:1).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 - 길보아 산(Mt. Gilboa)은 갈릴리 지경(地境) 아래에 동서로 누워 있는 이스르엘(에스드랠론) 골짜기의 돌출 부분에 위치해있는 해발 약 500m의 석회암 산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 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동쪽 끝에 있는 모레(Moreh) 산지 남쪽에 있습니다.
아마도 사울은 이스르엘(삼상 29:1)에서 블레셋의 우수한 장비를 무용화시킬 수 있는 고지인 이곳으로 후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의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으니 곧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사울은 그의 아들들과 더불어 전사당한 것입니다. 삼상 31:1 주석 참조.
한편 블레셋 족속은 이곳을 점령하게 되므로 인하여 한동안 요단강을 건너 요단 동편으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습니다(삼상 31:7).
2)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가 죽임 당합니다(2절)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 -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의 세아들의 이름은 삼상 31:2과 일치합니다.
더욱이 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본서 8:33에서도 살펴 보았으니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3) 사울이 죽임당하는 장면입니다(3~6절)
(1) 사울이 적에게 추격을 받습니다(3절)
“[3]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
사울을 맹렬히 치며 - 이는 직역하면, 사울 주변에서 싸움이 치열해졌다는 말입니다.
즉, 본절은 적군의 왕을 노리는 블레셋과 그 왕을 지키려는 호위병 간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졌음을 나타내는 말로서 사울에게 임한 위기를 서사적(敍事的)으로 묘사해 주고있습니다.
활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 여기서 '따라 미치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차'는 '발견하다', '...와 마주치다'는 뜻입니다(신 4:29;시 21:8;119:143). 즉, 이 말은 블레셋 궁수(弓手)가 이스라엘 왕 사울을 발견하고서는 맹렬히 추
격했음을 의미합니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 여기서 '심히 다급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헬'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⓵ '꿰뚫다', '관통하다'는 뜻의'할랄'에서 변형된 것으로 볼 경우 이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다'는 뜻이 됩니다.
⓶ 반면 '두려워 하다', '근심하다'는 뜻의 동사 '훌'에서 변형된 것으로 볼 경우에는 '심히 떨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맥의 흐름상 (1)번의 견해 보다(Hertzberg) (2)번의 견해가 더욱 타당합니다(Klein, Payne).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31:3 주석을 참조하라.
(2)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집니다(4절)
“[4]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니 ”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 - '무기 가진 자'란 상관이나 주인의 창, 칼 또는 방패 따위를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부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는 병사들 중에서도 가장 용기와 총명이 뛰어난 자가 임명되는 것이 상례(常例)였습니다. 삼상 16:21 주석 참조.
할례 없는 자가...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 블레셋 족속은 이전에 삼손을 생포하여 수치를 당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삿 16:21).
때문에 사울은 자신 역시 삼손과 같이 그들에게 생포되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 같습니다(Payne).
한편, 여기서 '할례 없는 자'란 이방인을 멸시하는 경멸어입니다.
사울은 죽음의 그 순간에도 블레셋 족속을 멸시하면서 그들의 승리를 보고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Klein). 삼상 31:4 주석참조.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 병기 가진 자가 이처럼 사울 왕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절한 까닭은 자기 주인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여호와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살해할 경우 자신에게 미치게 될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한 까닭입니다(삼상 26:9). 삼상 31:4 주석 참조.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 이는 구약에서 흔치 않은 자살 사건들 중 한 예입니다(삼하 17:23;왕상 16:18).
한편, 삼하 1:10에서 아말렉 소년은 자신이 죽어가는 사울을 완전히 죽인 것으로 다윗에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다윗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한 허위 보고였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 1:7-10 주석을 참조하라.
(3) 무기 가진 자도 칼에 엎드려 죽습니다(5절)
“[5] 무기 가진 자가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
무기 가진 자가.. 자기도...죽으니라 - 이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왕의 뒤를 따르겠다는 충성심에서 나온 행동임에 분명합니다.
즉, 병기 든 자는 자신이 왕의 죽음을 사전에 막지 못한데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밖에도 그의 그 같은 행동에는 사울과 마찬가지로 '할례 없는 자'(4절)의 손에 죽임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또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삼상 31:5 주석 참조.
(4) 사울 왕조가 무너짐을 선포합니다(6절)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 혹자는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는 말은 저자의 부주의한 언급이라고 주장합니다(Curtis).
그러면서 그 이유는 당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생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삼하 2:8-10).
그러나 본절은 저자의 부주의한 언급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 온 집'이란
⓵ 삼상 31:6의'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일 수도 있으며
⓶ 또한 사울의 왕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로서 사울의 왕권이 이 사건을 통하여 몰락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우리는 '집'과 '나라'를 병행시키고 있는 삼하 7:16을 들 수 있습니다. 삼하 7:11 주석 참조.
한편, 삼하 1-4장에 나타나고 있는 이스보셋에 관한 기록들을 본서에서 저자는 완전히 생략하였습니다.
이는 본서 저자가 본기록의 초점을 다윗 왕조에다 맞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Payne).
3.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헌신(7~12절)
1) 불레셋 사람들이 성음에 와서 거주합니다(7절)
“[7]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 - 병행 구절인 삼상 31:7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본서 저자는 그 같은 기록을 요약적으로 기술하였을 것입니다(Lange). 한편 여기서 골짜기는 길보아 전투가 발발했던 이스르엘 골짜기를 가리킵니다(삼상 29:1).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사울 왕의 패배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신속히 이스라엘 온 사방으로 퍼졌을 것입니다. 삼상 31:7 주석 참조.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 - 이는 이스르엘 일대가 블레셋 족속에게 정복당하였음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족속이 이 땅을 차지하고 통치한 기간은 대단히 짧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전한 군사들을 다시 규합하여 이곳을 재탈환한 사실이 삼하 2:9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삼하 2:9 주석 참조.
2) 블레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발견합니다(8절)
“[8]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
죽임을 당한 자를 벗기다가 - 여기서 '벗기다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쉐트'
는 '탈취하다'는 뜻의 '파솨트'의 피엘형(강의형 능동태)으로서 주로 군사의 '무기'를 목적어로 취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이스라엘 병사들로부터 무기류를 수집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상 31:8주석 참조.
3) 사울의 죽음을 블레셋 땅 사방에 소식을 전합니다(9절)
“[9]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
그의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머리를 벤 사실을 시사하는 구절입니다.
병행 구절인 삼상 31:9에는 이 같은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거기에는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블레셋인들은 사울의 머리를 벰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만끽하며 증거로 삼았을 것입니다.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 히브리 원문에는 목적어 '사람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것은 사울의 죽음 소식을 알리는 사자(使者)가 아니라 사울의 머리와 갑옷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야만스럽게도 그 같은 일을 통하여 자신들의 승리를 전국에 알렸던 것입니다. 삼상 31:9주석 참조.
4)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달았습니다(10절)
“[10]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 병행 구절인 삼상 31:10에 따르면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Ashtaroth) 신전에 두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전쟁의 승리가 자기들이 믿는 신의 도움으로 인해 이루어진다고 여겼습니다.
때문에 블레셋인 들은 그에 대한 답례로 사울의 갑옷을 신전에 바쳤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의 칼은 같은 맥락에서 놉의 제단에 바쳐졌었습니다(삼상 21:9).
한편 아스다롯은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으로서 성(性)과 전쟁의 신이었습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레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참조하라.
그의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 다곤(Dagon)은 가나안의 남신(男神)으로서 곡물의 신, 생장(生長)의 신이었습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상 31:10에는 본절과 달리 블레셋인들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상이한 기록은 어디까지나 상호 보완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Lange, Bertheau).
왜냐하면 블레셋인들이 사울의 머리는 다곤의 묘(廟)에 단 반면 머리 없는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본절에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승리를 우상과 그 신들에게 알리는 장면을 목도(目睹)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승리는 잠시 후 다윗 왕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18:1).
또한 그들의 우상은 바알브라심 사건 때에 그들이 황급히 도망가면서 버리고 갔으니 이에 다윗이 수거하여 불태워 버렸습니다(14:12).
5)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들었습니다(11절)
“[11]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길르앗야베스 - 길르앗야베스(GileadJabesh)는 요단 동편에 위치해 있는 므낫세 반지파의 성읍입니다(수 17:5, 6).
과거 사울은 암몬 왕 나하스로의 침략으로부터 이곳 거민들을 구출했었습니다(삼상 10:27;11:15).
따라서 이들은 이번에 비극적 죽음을 당한 사울 왕에게 과거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에서 취하여 왔던 것입니다(12절;삼상 31:12).
이들은 이와 같은 일을 행함으로 후에 다윗 왕의 칭찬을 받았습니다(삼하 2:4-7).
6) 용사들이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장자를 치룹니다(12절)
“[12]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 병행 구절인 삼상 31:12에는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시체를 화장(火葬)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본절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자가 그 같은 기록을 단순히 요약적으로 기록했기 때문(O.Zockler)만은 아닙니다.
대신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는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사 방법이 아니고 형벌의 한 방식으로서(레 20:14;21:9;수 7:25)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Curtis, Klein).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31:12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상수리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라'는 단순히 '커다란 나무'를 의미하는 용어로서(Payne) 삼상 31:13에서는 '에셀나무'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에셀 나무(the tamarisk tree)는 길르앗야베스에 흔한 것으로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유골을 이 나무 아래 장사한 것은 아마도 사울이 생전에 이 나무 아래에서 즐기곤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삼상 22:6).
훗날 다윗 왕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유골을 셀라에 있는 사울의 가족 묘지로 이장해 주었습니다(삼하 21:13, 14).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 여기서의 금식은 극한 애도의 표현입니다.
다윗 또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금식한 바 있습니다(삼하 1:11, 12). 삼상 31:13 주석 참조.
4. 사울 멸망의 이유(13~14절)
1)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13절)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 13, 14절은 삼상 31장의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으로서 저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덧붙인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는 결국 패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경고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절에서 '범죄하였음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거의 역대기와 에스겔서에서만 발견되는 용어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파괴하는 의식적, 또는 고의적인 배신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대하 12:2;26:16;28:19, 22;30:7;겔 14:13;20:27).
즉, 이 말의 일반적인 개념은 변절, 배신, 불성실 등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 사울이 하나님을 배반한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서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사무엘을 통해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실(삼상 15:11;13:8, 9)을 가리킵니다.
또한 '신접한 자'란 엔돌에 있었던 접신녀(接神女)를 가리킵니다.
사울은 그녀에게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올리라'는 요청을 했었습니다(삼상 28:12-19).
이와 같이 미신적(迷信的)인 발상으로 무당이나 접신녀를 찾아가는 것은 여호와께서 엄금하신 영적 간음의 행위였으며 도저히 용납 받지 못할 중죄였습니다(레 19:31;신 18:9-14). 이에 관해서는 해당 부분의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2)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습니다(14절)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는 사울이 여호와의 뜻을 알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삼상 28:6에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1) 성심성의를 다해 여호와께 묻지 않았으며(Keil),
(2) 응답의 전제 조건인 그의 죄에 상응하는 진실한 회개를 한 이후에 묻지 않았습니다(Starke).
즉, 여기서 '묻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스'는 '주의하여 찾다'라는 뜻으로서(시 77:2;119:10, 94) 본절은 그가 비록 형식적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했을지는 모르나 전심(全心)으로 구하지는 아니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 이로써 저자는 사울과 관련된 기사를 마무리 짓고 다윗과 관련된 기사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본서에서 사울에 관한 기록은 사무엘상의 기록에 비하면 대단히 축약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울에 관한 기록이, 그것도 그의 비극적 최후만이 짧은 장에 요약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저자의 관심이 온통 다윗 왕조에 집중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장은 주로 다윗 왕조의 중흥(中興)을 전개하기 위한 도입 부분으로서의 가치만을 지닐 뿐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여호와께서 배교자(背敎者) 사울을 처벌하시고 다윗 왕조를 세우셨다는 본절의 중요 개념은 본서 전체에서 북왕조(이스라엘)가 왜 본서 저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 배경을 제시해 줍니다
묵상 Point
[불순종한 인간 왕의 실패]
이스라엘은 불렛세에게패하여 도망가다 죽임을 당하고, 성읍들을 빼앗기고 또 왕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열국처럼 자신들을 다스리고 자신들을 위해 싸워줄 왕을 달라고 요구하여 세웠지만, 그 왕은 자기 백성과 나라를 구하지도 지켜주지도 못했습니다.
도리어 열국의 구경거리로 수모를 당합니다.
지도자의 불신과 불순종이 가져온 결과는 자신은 물론 공동체에게 크고 치명적이었습니다.
유능한 지도자가 아닌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덩하지 않고서는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참된 안전과 장래와 희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은 왕의 실패]
다급한 상황 속에서 ‘여호와’를 구했던 다윗(삼상30:6,8)과 달리 사울은 ‘신접한 자’를 찾거나 (삼상28:5~7)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신뢰하기보다 헛된 우상과 자기 욕망의 소리를 따라가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것입니다.
숱한 경고와 실패의 경험 속에서도 끝내 돌이키지 않다가 결국 허망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인생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왕의 실패]
패역하여 불순종한 사울을 페하시고, 다윗에게 그 나라와 왕위를 넘기십니다.
사울의 죽음과 사울 왕가의 몰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도, 여호와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 했을 뿐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기 백성을 맡길 수 없었고, 그를 통해 나라를 세울 수도 없으셨습니다.
말씀에 귀를 막으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하나님’(우상)을 믿다가 인생의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나님을 찾고 구함)없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0장 13,14절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찾지 않은 사울 왕을 심판하십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삼상 15장 22~23절), 하나님께 길을 묻지도 않았습니다(삼상 28장 7절).
블레셋보다 힘이 없어서 사울 왕가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자기 능력에 달려 있지 않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운명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를 찾아간 것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비참한 데로 이끌고 간 것입니다.
나는 매일 누구에게 삶의 길을 묻고 있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장 1~6절 사울은 대적의 칼이 아니라 두려움의 칼에 쓰러졌습니다.
사울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대적 앞에 조롱거리가 될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울의 이런 태도는 자신만 아니라 그의 부관과 온 집안사람도 망하게 했습니다.
사울은 평생 ‘두려움의 동력’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백성을 두려워하고(삼상 15장 24절), 때로는 대적을 두려워하다가(삼상 28장 5절), 끝내는 자신의 밑바닥을 목도하는 것이 두려워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에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내 삶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향한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분의 사랑입니까?
10장 7~12절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끝까지 충성과 신의를 다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며 피의 축제를 벌일 때, 이 소식을 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사울과 사울의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사 지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도 이전에 사울의 도움으로 구원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 11장 11절).
후에 다윗 역시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에 끝까지 신의를 지킵니다(삼하 21장 14절).
그리하여 사울은 심판을 받아 비참하게 죽지만, 그의 자손은 계보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9장 35~44절). 나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형제 된 신의를 지키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 두려움에 매이지 않고 믿음으로 옳은 일에 용기를 내게 하소서.
열방 미국의 엄격한 국경 통제로 미국에 가려는 중남미 난민들이 멕시코에 체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중남미 국가의 정세가 안정되어 난민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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