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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8장1~18절
제목 : 수문 앞 성회
귀환하여 각기 성읍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일곱째 달 초하루에 율법을 듣기 원하여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듭니다.
학사(서기관) 에스라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율법책을 가져와 수문 앞 광장에서 낭독합니다.
레위인들이 에스라가 읽은 말씀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자 백성들은 애통하며 호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1.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다(1~12절)
1) 역사적 배경(1절)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
본장에서부터 에스라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에스라는 에스라 10장의 사건 이후에 모습을 감춘 후 무려 14년 후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문제로 온 나라가 법석이었으며 또한 고리 대금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 성경의 무대에 일절 나타나지 않은 것은 왜였을까?
그것은 느헤미야가 B.C.435년에 팔레스틴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페르시아 왕실의 소환으로 거기에 약 1년간(B.C.433) 다녀온 것처럼(13:6), 에스라도 에스라서 10장 사건이 마무리지어진(B.C.458) 후의 어느 시점에 바벨론으로 돌아갔습니다. B.C.444년경에 다시 돌아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곱째 달에 이르러. - 여기의 '칠 월'은 종교력으로서의 '칠 월'이며, 민간력으로는 일월이고. 태양력으로는 구 월 혹은 시 월입니다.
그런데 에스라, 느헤미야 양서(兩棲)를 막론하고 거의 민간력만을 사용하다가 여기서 특별히 종교력을 쓴 까닭은, 본장이 초막절 절기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9,11,14,16,1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것은 나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어 이 날을 기렸습니다.
이 날을 기리는 목적은 먼저 종교력의 관점에서 보면 안식의 달인 일곱 번째 달을 맞아 봉헌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민간력의 관점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새해 첫날을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문 앞 광장. - 이것은 성전 동문과 성벽 사이의 공터를 가리키며 스 10:9의 '하나님의 전 앞 광장'과 동일한 곳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 '수문'은 기혼 샘과 연결되었다. 종교적 행사가 주목적인 백성들이 성전과 가까운 곳에 모였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학사(學士) 에스라에게...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 이것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각한 영적 기갈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삼상 7:2).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는 바로 이같이 백성들의 영적상태가 극히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오자마자 백성들은 그로부터 율법의 가르침을 듣기 원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책'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1)법률자료 모음집, (2)제사 법전, (3)신명기 율법들,(4) 모세 오경. 이 중 본절에서는 (4)항의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합니다.
2) 율법 낭독(2~6절)
(1)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합니다(2절).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
제사장 에스라. - 이 같은 표현은 에스라가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의 소유자임을 암시합니다.
그가 실력적으로도 자격자임을 암시하는 표현은 1절의 '학사 에스라'일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 이것은 아주 작은 어린이를 제외한 이스라엘 사람 모두, 즉 많은 사람들이 에스라의 율법 해석을 들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강조적 표현입니다(신 31:11).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들뿐만 아니라 여러 의식(意識)들에 내포된 의의 등을 통해 지혜와 영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출 12:26,27;신 4:6;6:6이하;31:12,13).
영적 이해가 결여된 미신이나 맹신은 이교의 특징이었고(사 44:18,19), 이스라엘의 멸망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호4:6).
(2) 남자나 여자가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3절)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
새벽부터 정오까지...귀를 기울였는데. - 이것은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열정이 대단 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그때 거기에 모인 백성들은 무려 6시간 이상 말씀을 듣고 있었던 셈입니다(행19:9;20:7).
이같이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받는 일에 열중했다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날이 밝자마자 모였다는 것도 그들의 열심을 잘 드러내줍니다.
(3) 에스라는 여러 명의 조력자들과 함께 나무 강단 위에 서서 율법을 낭독합니다(4절)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 여기의 '강단'(믹달)은 구약 성경에서 항상 '망대' 혹은 '성곽'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 문구는 그 때 에스라가 특별히 마련된 매우 높은 단(檀) 위에서 율법을 가르쳤음을 말해줍니다.
에스라가 이같이 높은 곳에서 율법을 가르쳐야 했던 이유는 그 때 그의 가르침을 들으러 온 사람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2절).
즉 그렇게 높은 곳에서 가르쳐야 모든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한 그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른쪽에 선 자...왼쪽에 선 자. -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사장들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안식일 날 회당에서 몇몇 사람이 율법을 번갈아가며 봉독하였듯이, 본문의 13인도 에스라 곁에서 차례로 율법 내용들을 읽었으리라 생각됩니다
(4) 에스라가 책을 펴니 모든 백성이 일어섭니다(5절)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 이와 같은 백성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의 외적인 표현이며(Fensham, 삿 3:20;욥 29:8;겔 2:1). 아울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또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5)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하고 여호와께 경배합니다(6절)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본절의 내용은 율법을 가르치기 직전에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가...여호와를 송축하매. - 유다인들의 회당 예배시에도 성경 말씀을 봉독하기 전에 여호와를 송축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절차가 에스라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광대하신 하나님. - 구약 성경 중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이 발견되기는 하지만(9:32;신 10:17;렘 32:18),동일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람어나 페르시아어의 고대 문헌에서는 이와 동일한 표현이 자주 발견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표현이 바벨론 적 기원을 갖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실 본서를 기록했던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출생하여 거기서 성장했습니다.
아무튼 본 문구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며, 또한 그분의 통치권이 온 세상에 미침을 뜻합니다.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경배하였느니라. - 이것은 에스라의 송축에 대한 백성들의 삼중적 응답입니다.
그 중 '손을 들고'는 '광대하신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을 만큼 부족함을 시인하는 외적 표현입니다(Williamson, 스 9;5;시 28;2;134;2).
백성들은 잠시 후 에스라에 의하여 들려질 율법 말씀을 통하여 영적 기갈이라는 부족을 채움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멘 아멘 응답하고'는 하나이 광대하시다는 에스라의 말에 백성들이 온전히 동감했었음을 말해줍니다(Williamson, 5:13).
'아멘'이라는 표현이 집회 시 회중들의 응답으로 사용된 예는 다윗 시대 때부터 발견됩니다(대상16:36).
후에 이것은 회당에서도 사용되었고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고전 14:16).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는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의 외적인 표현입니다(대하7:3).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일어나서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한편 '몸을 굽혀'에 해당하는 단어는(카다드) 구약 성경에 15회 등장하며. 항상 '경배하다'는 말과 함께 언급됩니다(창24:26,48;43:28;출 4:31;12:27등).
3) 율법 해석(7~12절)
(1)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레위 사람들이 회중에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7,8절)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
에스라 등이 강단 위에서 율법책의 한 부분을 낭독하고 나면, 회중들의 중간 중간에 끼어있던 레위 사람들이 그 주변의 백성들에게 그것을 다시 낭독한 후 그 의미를 가르쳐 주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아...블라야와 레위 사람들. - 이것은 '예수아...블라야와 그 밖의 레위 사람들'로 번역함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의 '예수아...블라야'도 레위 사람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아'는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의 뜻이며,
'블라야'는 '여호와께서 구별하셨다' 의 의미입니다.
바니 - '세워진'의 뜻으로 '르흠'의 부친입니다(3:17).
세레뱌 -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으로 부터 귀환했던 사람입니다(스8:18).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열(熱)을 보내셨다'입니다.
야민 - '오른 손'의 의미이다.
악굽 - '교활한'의 의미이다.
사브대 -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호디야 - 느헤미야의 언약서에 인친 두 명의 레위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10:10,13). 그 의미는 '유대인 여자'입니다.
마아세야 - 4절의 '마아세야'와 동일인 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의 일'입니다.
그리다 -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가 다시 내보냈던 사람입니다(스 10:23). 그 의미는 '불구가 됨'입니다.
아사랴 -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입니다.
요사밧 - 에스라가 귀환하면서 함께 가져온 물품들을 인수한 사람으로 그의 부친은 '예수아'입니다(스 8:33).
본서 11:16에서는 하나님의 전 바깥일을 맡은 자로서 언급됩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신다'입니다.
하난 - '은총'의 의미이다.
해석하여(메포라쉬) - 이것은 '분명히 하다'혹은 '쪼개다'의 뜻이 있는 동사 '파라쉬'의 강조형입니다.
한편 당시의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오래했던 사람들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의 '그 뜻을 해석하여'가 '해설'의 의미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고.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세오경을 아람어로 구술 번역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고도 이해됩니다.
(2) 여호와의 성일에 슬퍼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9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 어떤 학자들은 신년절 행사 절차 중 하나에 우는 것이 포함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단서가 없으며 또한 본문에서 저자는 신년절의 구체적인 행사 절차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기술 의도나 주제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그 주장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보다는 백성들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의미에서 (대하 34:19;롬 3:20) 눈물을 흘린 것으로 봄이 무난하겠습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兼)학사 에스라. - 이같이 두 사람이 동시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이 동시대 인물이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줍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에게 각기 적용된 직함 곧 '총독'과 '제사장 겸 학사'는 그들의 사역이 성격상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즉, 한 사람은 정치적 행정적 사역을, 또 한 사람은 종교적 사역을 주로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두 사람은 상호 보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총독'(티르솨타)이 본서에서 느헤미야가 자신을 가리킬 때 적용한 '총독'(페하) 보다는 높은 직책이라고 보고서, '티르솨타'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부분(10:1)인 8-10장은 느헤미야가 기록하지 아니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강 서편 전체를 통할하는 총독을 가리키는 3:7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도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페하'가 사용된 점 등으로 미루어, 히브리어 직함만으로 위의 주장을 고집하기는 무리일 것이라 봅니다.
이르기를(요메르). - 이것은 '말하다'를 뜻하는 동사 '아마르'의 3인칭 단수형입니다.
그래서 어떤학자들은
⓵ 이 동사의 주어인 '느헤미야'. '에스라'.'레위 사람들' 중에서 '느헤미야'와 '레위 사람들'을 탈락시키거나(Rudolph),
⓶ '느헤미야'만 놔두고 나머지 둘을 탈락시켜야 한다고(M.Noth) 주장합니다. 그러나
첫째, 히브리 어법상 단수 동사에 복수 주어가 자연스럽지는 않으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둘째, 사본학적인 충분한 입증 없이 본문을 고치는 일은 위험하며,
셋째, 여기와 병행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드라상 5:40과 칠십인역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모두 언급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무리라 하겠습니다(Fensham).
오늘은...울지말라. - 나팔절은 그 성격상 마땅히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할 절기였습니다
(3) 느헤미야는 슬퍼하는 대신에 ‘살진 것’과 ‘단 것’을 먹고 공동체와 함께 즐거워하도록 지침을 내립니다(10절)
“[10]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 '살진 것'(마쉬마님)은 짐승의 가장 먹기좋은 부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레위기에서 먹지 말도록 금지하고 있는 기름 부위와는 전혀 다르릅니다.
한편 '단 것'은 포도즙에 물을 섞은 음료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사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이러한 음료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잔치 분위기가 충분히 날 수 있도록 흥을 돋울만한 진미(珍味)들을 먹으라는 명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Kidner).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 여기의 '준비하지 못한 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먹고 마실 수 없는 자들을 뜻합니다.
아마 여기에는 주로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이 포함될 것입니다(LXX, Fensham, 신 16:14).
유대인들에게는 즐거운 날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들을 돌아보아 필요한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함께 즐거움에 동참토록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습니다(삼하 6:19;에 9:22).
이와 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랑을 베푸는 일은 이 축제를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Kidner).
즉, 백성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풂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회상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 - '힘'(마우제크)은 '산꼭대기' 혹 '방파제'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방파제 혹은 보호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비록 통회해야 할(9절) 죄를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속 고뇌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회개 후에 오직 여호와를 의지함으로써, 그들은 방파제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Fensham, Williamson).
바로 그런 점에서 백성들은 울지 말고 성일을 지킴으로써 여호와를 기뻐해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만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4)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성일이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11절)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
본절에서 언급되는 레위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단순한 반복 내지는 불필요한 행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한 것을 회중들 틈의 레위사람들이 다시 읽어주고 해석해 주었듯이(7, 8절) 의사소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레위인들의 중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 이었습니다
(5) 백성들은 곧 바로 깨달은 말씀을 실행에 옮깁니다(12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본절의 강조점은 백성들이 에스라의 명령을 그대로 준수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8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에스라의 율법해석의 권위와 그 효력이 강조되고 있음에 유의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율법이 수여된 이래로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삶의 양상이나 민족적 상황이 변화하였기 때문에 율법 자체가 상징적인 권위를 지니고는 있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마치 골동품처럼 여겨졌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에스라의 율법 해석을 통해 비로소 그 율법 조항들은 실천적인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 속에 적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초막절을 지키다(13~18절)
1) 역사적인 배경(13절)
“[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본절은 에스라의 말씀 운동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이튿날. - 1-12절의 사건이 있은 그 다음 날입니다.
종교력으로는 7월 2일. 민간력으로는 1월 2일이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들은 계속 에스라 곁에 남아서 말씀을 보다 확실히 배우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신 6:6,7) 여타 백성들을 지도하고 교육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서 율법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10,12절).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 '백성의 족장'은 한 가문의 우두머리를 가리킬 것입니다(7:8).
한편 '밝히 알고자 하여'(레하스킬)는 원래 '이해하다' 혹은 '가르치다'등의 뜻이 있는 동사 '사칼의 사역형으로서, 배움을 통하여 어떤 지식에 통달하고 그 결과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삼상 18:14;대하 30:22;시 32:8).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 이들은 성전 봉사 이외에도 백성들을 가르치는 책임도 있었습니다(레 10:11;대하 17:8,9;렘 8:7-9;호 4:6;말 2:7,8).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 문자적로는 '학사 에스라의 주변에'입니다.
2) 초막절 의식(14~17절)
(1)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 거합니다(14절)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
본절은 에스라가 족장 및 종교 지도자들(13절)과 함께 율법 말씀을 연구하던 중 초막절에 관한 가르침을 발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나팔절과 초막절 사이에 있는 절기인 대속죄일(7월 10일)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이색적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⓵ 에스라 시대에는 대속죄일이 없었다거나.
⓶ 에스라가 당시의 대제사장을 신임하지 못하여 대속죄일을 지키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거나, 혹은
⓷ 9장에 백성들이 회개에 관한 사실이 보도되고 있듯이, 굳이 대속죄일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본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차라리 우리는 율법의 낭독, 해설 및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는 즐거운 분위기 등과 관련된 본문의 문맥에 근거하여 대속죄일 행사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였을 뿐이라고 봄이 더 무난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 이것은 레 23:34;민29:12;신16:13에 대한 자유스런 인용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일곱째 달 절기'는 '초막절'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초막절의 준수 목적은
⓵ 출애굽 후 광야 생활 중 인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기억하며,
⓶ 토지 소산의 추수를 마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여호와의 은혜를 기념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2)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초막을 지으라 합니다(15절)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
초막절을 지키는 규례, 특히 초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언급입니다.
본절에 언급된 나무들 중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 이외의 것들은 레 23:40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레 23:40에는 본절에 없는 '버들'이 나옵니다.
감람나무. - 지중해 연안국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신 8:8에 의하면 가나안 정복 이전의 시기부터 가나안 땅에도 있었습니다.
들 감람나무. - 왕상6:23,31,32에 따르면 이 나무가 목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에서는 감람유는 거의 산출되지 않았습니다.
화석류. - 나무의 둥치가 없는 관목(灌木)의 하나로서 잎이 무성한 상록수입니다(사41:19;55:13;슥 1:8,10,11).
종려나무. - 팔레스틴의 '종려 나무'는 그 높이가 성인 신장의 약2-3배 정도이며 잎이 많이 달린 줄기 하나의 길이도 성인의 신장만큼은 됩니다(출 15:27;레23:40;민33:9;시 92:12;아 7:8).
기타 무성한 나무. -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잎이 넓어서 그늘을 만들기에 적절한 나무일 것입니다(NIV,shade trees).
(3)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짓습니다(16절).
“[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본절은 초막을 지었던 장소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지붕 위에. - 중근동 지역의 가옥들은 그 지붕이 평평하여 초막을 세우기에 적절하였습니다(수 2:6;삼상 9:25).
당시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집 '지붕 위에'초막을 지었을 것입니다.
뜰 안에. - 여기에 초막을 지은 사람들도 예루살렘 주민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전 뜰에. - 다음의 두 곳과 함께 타 지역 백성들의 초막을 짓는 장소로 사용됐을 것입니다.
수문(水門) 광장에 - 1절 주석을 참조하라.
에브라임 문 광장. - '에브라임 문'은 예루살렘의 북서쪽에 위치했었습니다(12:39;왕하14:13).
따라서 '에브라임 문 광장'은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던 성전과는 가까 왔었습니다.
(4) 백성들이 짓는 일은 여호수 때 이후로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합니다(17절)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 이 같은 명칭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즉 이 같은 명칭은 비록 혈통적으로는 히브리인들이지만 제2의 출애굽 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계속 바벨론에 머물고 있었던 사람들과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스 2장 강해) 귀환한 사람들을 예리하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스 3:8;4:1;6:19-21).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최초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 이는 초막절 절기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그 당시까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낱낱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며, 그 이후에 초막절을 지킨 사실에 대해서도 성경이 증거 합니다(삿 21:19;왕상 8:2,65;왕하23:22;대하 30:26;35:18).
특히 최초의 귀환 직후에도 지켜졌습니다(스 3:4).
따라서 본 문구는 여기의 초막절 행사가 모세 율법이 말하는 근본정신에 매우 합당하게 지켜졌음을 뜻할 것입니다(Fensham).
3) 여덟째 날 성회(18절)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에스라는...율법책을 낭독하고. - 이는 초막절 절기가 모세 율법의 가르침대로 지켜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신 31:11).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 본문은 백성들의 절기 지키는 일이 결코 유야무야(有耶無耶)하지 않았음을 시사해 줍니다.
즉 백성들은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절기를 지켰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 동안 전혀 노동하지 않으면서(레23:35,36) 가난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께서 풍성한 수확을 주신데 대해 감사하였을 것입니다(레 23:39;신 16:13).
백성들이 그 초막 생활을 통해서 선조들의 광야 생활을 상기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레 23:43).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 여기서 '성회'(아체레트)는 '마치다'를 뜻하는 동사 '아차르에서 온 명사로서 어떤 행사의 엄숙한 종결(Keil) 혹은 그와 관련한 의식을 가리킵니다(왕하10:20;사1:13;욜1:14;암5:21).
아무튼 본 문구도 초막절 절기가 율법대로 시행됐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말씀을 경외하고, 마음 열어 말씀 받아, 삶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말씀으로 백성의 마음에 깨달음과 변화를 일으키십니다(1~9a절).
학사 에스라가 말씀을 읽었고, 레위 사람들은 그 뜻을 풀어 설명했지만, 그들이 백성을 감동시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책을 펼 때 일어섰고(5절), ‘아멘’ 하며 엎드려 경배했습니다(6절).
그들은 율법을 에스라의 목소리로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헌신적인 이들이 재건을 주도하지만 그들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진짜 주인공은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전면에 나선 사람이 아닌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주목합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이 통곡합니다(9절).
오랜 유배의 삶, 끝이 보이지 않는 회복의 여정을 견디고 있지만, 그들은 이 고난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왜 하나님은 여전히 멀리 계시는지 이유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낭독되고 그 말씀의 뜻을 듣는 중에, 마침내 시련의 이유를 깨닫고는 “잘못했구나… 잘못 살았구나…”라는 깊은 울음이 목구멍을 차고 올라왔습니다.
말씀이 내 곤고한 삶의 이유를 설명할 때, 묵상이 공동체의 위기와 앞날을 말해줄 때, 나도 이들처럼 눈물 흘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백성들은 눈물을 닦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먹고 마십니다(9b~12절).
말씀이 그들에게 슬퍼할 이유뿐 아니라, 기뻐하며 즐거워할 이유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귀환 공동체는 시련의 시기를 끝내고, 재건의 여정에 들어갔습니다.
출애굽 백성이 유월절 절기를 지킬 때와 같이 지금은 유다 백성에게 구원의 때이며, 회복의 시간입니다.
3)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말씀을 더 밝히 알려고 에스라를 찾습니다(13~18절). 그리고 율법에서 ‘초막을 지으라’는 명령을 발견하고, 모든 백성에게 초막을 짓도록 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임의로 행하지 않고 율법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행합니다.
온 회중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고는 크게 기뻐합니다.
그것이 비록 나뭇가지를 주워 와 허름한 초막을 짓는 하찮아 보이는 일이어도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확신 때문에 감격했습니다.
내게도 말씀을 향한 이런 열정, 말씀을 사는 이런 감격이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저희가 받은 은혜의 크기를 알게 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열방-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대책을 실행하고 있다.
각국의 지구 온난화 대책을 통해 실제적으로 탄소 배출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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