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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과 벽돌로 일군 불가사의의 정토(淨土) (1)- 미얀마 바간 | ||||||||||||||||||||||||
이수연의 길따라 바람따라 떠나는 여행길<8> | ||||||||||||||||||||||||
해가 떠오르면서 밝아오는 우리나라 일출과는 달리 어둠이 걷힌 후 한참 뒤에 해가 나타난다. 이미 앙코르와트에서 경험했던지라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쯤 지났을까. 망원렌즈로 당긴 파인더 속에서 믿기 어려운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넓게 펼쳐진 평야일 뿐 산이라고는 없다. 다만 그 평야에 점점이 박힌 숱한 탑과 탑 그리고 숲과 숲 사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안개는 정말 환상적이다. 안개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바간의 새벽은 풍경사진에 심취하지 않는 내게도 걷잡을 수 없는 감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미 전날 저녁 쉐산도 파고다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황토색으로 노을 지는 숱한 탑군(塔群)의 일몰을 보면서 흠뻑 적신 감흥이기에 동트기 전의 어둠을 타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사원의 좁은 통로를 따라 오른 일출 촬영이 무어 그리 대단할까 생각했는데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름다움 이전에 등골을 훑고 지나는 전율. 도대체 사람의 능력은 그 한계가 어디까지란 말인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유적, 그리고 바간의 이 광경을 불교 유적의 3대 불가사의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1975년 대지진으로 그 절반이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 5,000개가 넘는 사원과 탑을, 그것도 이미 사막화해버린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황토로 손바닥만한 벽돌로 구워 쌓은 이 엄청난 역사(役事)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11세기 들어 이곳에 미얀마 첫 통일왕국을 이룬 지배층이 통치의 수단으로 불교를 선택하고 피지배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시작했다는 대규모 역사(役事)라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바간은 우리나라의 경주에 비유할 만한 미얀마 중부의 고도(古都)이다.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황금빛과 붉은 색 건축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남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현대식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신축하는 호텔까지도 2-3층 이내로, 그것도 가능한 한 자기 색깔을 담아내려고 한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바간 여행의 포인트는 물론 2,500개가 넘는 탑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탑들은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고 몇몇 사원만 현역으로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황금의 모래언덕이라는 뜻의 쉐지곤 파고다를 들 수 있다. 미얀마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운 아노라타 왕 때에 건축을 시작하여 다음 왕인 찐싯타 왕 때인 1059년에 완공했다는데 부처님의 치(齒)사리를 얹은 코끼리가 자리를 맴돌다가 처음 멈춰선 곳에 건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탑의 아래쪽에는 금박을 입히고 상층부에는 엄청난 양의 얇은 황금 판을 붙여 매우 화려하다. 후일 미얀마 모든 파고다의 원형이 된 곳이기도 하단다. 1057년 건립한 5층짜리 불탑이자 밍글라제디 사원과 함께 일몰 관광 명소이기도한 쉐산도 파고다, 왕위 계승자 선정에 매우 고심한 왕이 왕자들을 불러 모은 후 우산을 돌려 뽑은 왕자가 왕이 된 후 세우고 이름붙인 ‘우산의 뜻대로’라는 뜻의 틸로민로 사원, 3세기경에 만든 원형 파고다로서 이라와디 강변에 있는 아주 아담한 부파야 사원도 볼만하다. 또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예술적인 가치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난다 사원, 그리고 바간에서 가장 높은 61미터 높이의 탓빈유 사원 등이 있다. 당일 코스로는 어렵지만 이틀간의 일정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 바간에서 동쪽으로 50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도로사정이 열악하여 버스로 1시간 30분 이상을 가야하는 곳에 위치한 포파산이다. 산스크리트 어로 꽃을 뜻한다는 ‘포파’산은 광활한 평야 위에 홀로 우뚝 솟아있다. 해발1,518미터, 산 높이만 737미터다. 약 25만 년 전의 화산 흔적이라는 데 미얀마의 토속신앙인 낫(Nat) 정령신앙으로 유명한 장소란다. 산꼭대기까지 계단과 지붕을 설치하여 오르기는 힘들지만 안전하고 시원하게 올라갈 수 있으며 꼭대기에서는 힘들여 올라간 보답으로 주변의 광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포파산을 향하는 길 도중에 이곳에서만 난다는 야자나무의 일종인 ‘탐베’즙을 세 번 증류시켜 만든 50도짜리 독주와 사탕수수를 고아 만든 사탕을 파는 곳이 있어 기념품에 목말라 있는 관광객을 맞는다. 술은 1병에 삼천원정도, 사탕은 거저 끼워준다. 확실한 치안(治安)과 순박하고 따뜻한 심성(心性)의 미얀마 바간뿐 아니라 미얀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흔히 치안 부재와 신변의 위험을 느끼기 쉬운 곳으로 미얀마를 꼽는데 이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일 뿐이다. 1989년부터 사회주의를 포기한 미얀마는 독재정치를 할지언정 국민들의 심성은 불교를 바탕으로 하여 지극히 여유롭고 개방되어 있으며 따뜻하다. 절대 소매치기나 좀도둑이 없다. 바간 여행 첫 코스로 만난 재래시장에서 촬영 내내 몇 대나 되는 카메라와 렌즈를 갖고 부산하게 촬영을 하느라 가방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어도 분실물 하나 없다. 6.25 직후를 묘사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재래시장에서조차 말이다. 물론 걸인들까지 없을 수는 없지만 몸에 걸친 볼펜 등을 자기 싸구려 볼펜과 바꾸자 거나 거저 달라고는 해도 관광객의 몸에 절대 손대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관광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광 상품이래야 순전히 손으로 만드는 대나무 칠기 제품과 질 낮은 면직 티셔츠, 대충그린 수채화, 채색 만다라, 복제 청동 유물, 일부 목제품 등이 고작이어서 값나가는 것이라고는 없지만 흥정을 전제로 비싸게 부르기는 해도 절대 관광객들을 속이려 하거나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더욱이 미얀마 전역에 불고 있는 한국열풍으로 한국인에 대한 우호감이 대단하다. 송혜교 송승헌의 가을동화가 기폭제라는데 국내선 비행기에 탔을 때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우리에게 인사하기 위해 ‘안녕하세요.’를 몇 번이고 연습한 뒤에 발음이 정확하냐고 가이드에게 묻기까지 하더란다. 바간은 현재 우리에게 매우 낯선 곳이다. 불교성지 순례자들이 종종 들르기도 한다지만 미얀마에 대한 잘못된 불안감, 동남아 여행치고는 국제선과 국내선 항공을 여러 번 이용하는 데 따른 고비용 인식,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일정, 항공사의 여행패턴 상 단체 항공권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여행 성수기조차 모집관광이 전무한 때문이다. 하지만 낯 선 곳에서 혼자 눈뜨는 설레임만큼 낯선 풍경과 조우(遭遇)하는 기대감 그리고 이곳 주민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순박함과 따뜻함을 생각한다면 여행의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싶은 곳이 바로 미얀마의 바간이다 여행안내시골에서도 비교적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므로 영어 소통만 가능하다면 개인출발도 충분하다.교통편 : 국내선 직항로가 없어서 태국 방콕 돈무앙 공항에서 다시 양곤 행 비행기로 환승한다.양곤에서는 국내선을 이용, 바간까지 가고 그곳에서 택시 등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현지 가이드 소유 차량을 이용하거나 단체여행일 경우 국내에 있는 미얀마 전문 여행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
황금과 벽돌로 일군 불가사의의 정토(淨土) (2)- 미얀마 바간 | ||||||||||||||||||||||||||||||||||||
이수연의 길따라 바람따라 떠나는 여행길<9> | ||||||||||||||||||||||||||||||||||||
바간의 이틀째 밤, 일행 넷이 가이드도 대동하지 않고 주민들이 사는 마을까지 나가 물어물어 술집을 찾아냈다. 술이라야 확실한 게 맥주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안주로 내온 작은 물고기 튀김이 마치 국물 내는 멸치와 크기나 모양이 흡사하고 닭튀김이 어째 빈티가 물씬하지만 입맛에는 제법 맞는다. 가게 한쪽 벽에 제 딴에 꽤 멋 낸 액자들로 도배하듯 붙였던 그곳은 술집이라기보다 잡화점에 가까운 식당이다. 늦은 밤, 우리를 반긴 주인집 아가씨들이나 우리 이방인들의 호기심이 서로 부딪히며 많은 말과 애매한 웃음을 쏟아낸 그 기억은 다른 여행지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바간을 뒤로하고 30여 분의 짧은 비행 끝에 도착한 만달레이에서 서둘러 두 곳을 다녀온 참이다. 첫 번째 방문지 마하간디용 승원. 우리나라의 승가대학 격인 이곳에 무려 천 명이 넘는 승려들이 있다는데, 오전 10시 공양을 알리는 종을 울리면 승방에서건 어디에서건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줄의 긴 행렬을 만든다. 일대 장관이다. 미얀마 최대 규모의 이 승원 풍경은 만달레이 관광의 하이라이트여서 유럽 인들도 앞 다투어 찾는다. 마침 이날은 어느 신도의 아들이, 자랑스럽게도 승려자격을 인정받는 날이다. 부모가 그 많은 공양을 준비하고 전 가족이 나와 일일이 공양을 돕는다. 승원을 나와 향한 곳이 우뻬인 다리다. 그러나 하루로 국한된 만달레이 관광인지라 이라와디 강을 거슬러 민군까지 다녀와야 하는 여정 상 우뻬인 다리는 슬쩍 지나치다시피 했어도 족히 한 시간은 지체했다. 다리 주변의 풍경이 우리나라의 옛 향취를 고스란히 재현한다고 할 정도로 유사하며 매우 목가적이고 촬영소재지로 더 없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고급 목재로 쳐주는 티크 나무를 통나무 형태로 박아서 만든 1.2km짜리로서 뻬인(우는 존칭)이라는 이가 160여 년 전 만들었다는데도 계속 수리와 복구를 통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민군 대탑과 민군 큰 종의 위용, 그러나 최고를 지향한 열등감
그런 와중에서 이들의 어떤 규칙을 감지할 수 있다. 한 관광객 한 상인 원칙이다. 일단 누가 손님을 정했으면 다른 상인은 절대 근접하지 않는다. 거절당해도 끈기 있게 달라붙으면 팔아준다는 심리를 파악하고 있다. 거기에 부채질 서비스를 더한다. 일단 초반에 물건을 팔아주면 그 관광객의 짐을 들고 다니는 봉사도 자원한다. 물건을 사는 대신 1달러를 주겠다고 해도, 오기로 5달러를 거저 준대도 거절당한 일행도 있다. 단지 3달러짜리 물건을 팔아달라는 주문이다. 사지 않을 요량으로 물건값을 삼분의 일로 깎았더니 배에 오르기 전에 그 값에 팔겠단다. 그러니 사지 않을 방법이 없다. 돈을 내미는 내게 서툰 한국말로 답례를 한다. 그런 웃음 위로 ‘너는 가을동화의 은서(송혜교)같다. 초레(예쁘다)’하고 추켜 주었더니 두 손을 높이 들고 깡총깡총 뛴다. 3불 달라는 것을 1불에 산 게 갑자기 미안해지고 야박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달레이는 한반도의 세배 면적이라는 미얀마의 중앙쯤에 있고 민군은 만달레이와 이라와디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그 민군에 민군 파고다와 민군 종을 보러 간다. 민군 파고다는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보도파야 왕이 세계 최대의 불탑을 만들기 위해 1790년 건설을 시작했지만 왕이 죽자 기단만 쌓은 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미완성이라고는 해도 작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한 변이 140 미터 높이 72미터에 이르러 그 크기에 충분히 압도되는 데 더 놀라운 것은 완성이 되었을 때 높이가 150미터쯤이라는 것과 그 큰 덩어리 속에 실내 공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어울리지 않는 감실(龕室)공간에 작은 부처 한분 모시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1838년 지진으로 주변부가 무너지고 중간에 갈라져 벌어져 있지만 복원이 불가능해 보인다. 수리에 필요한 공간이 없는 것은 물론 그 작은 벽돌을 일일이 해체 복원한다는 것 자체가 더 불가사의할 것 같다. 신발을 벗고 옆으로 난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정상에서 보는 풍경 또한 일품이다. 민군 종은 민군 파고다 건설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것으로 타종(打鐘)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범종이란다. 무게가 90톤에 높이 3.7m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지만 두 유적을 보노라면 어쩐지 세계 최대 최고를 좋아하는 우리의 또 다른 열등감을 보는 것 같다. 여행은 문명의 우열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 만달레이 힐의 일몰을 보려 서둘렀다.
우리 포니 픽업 크기만 한 차를 개조한 이 버스는 정상적인 버스가 부족하여 대체수단으로 운행하는 것인데 보통 35명은 탑승한다니 납득이 갈까? 그런데 우리 일행은 열다섯 명이 두 대를 대절했다. 요금을 두 배 낸다는 조수석엔 여성을 앉히고 뒤로 올라탔는데 머리가 지붕에 닿는다. 가이드는 일치감치 뒤편에 서서 매달렸다. 날씨가 안 좋아 일몰촬영에는 실패했지만 일출과 일몰은 꽤 볼만하겠다는 생각과 포파 산 정상의 운치를 또 한 번 갖게 한다. 꼭대기의 본당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을 해 매우 화려해 보인다. 안쪽에 왕궁 쪽을 가리키는 불상이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생전에 이곳에 들러 만달레이를 가리키며 “내가 죽은 뒤 2400년 후 이곳에 강력한 힘을 가진 왕국이 생길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다는 전설을 형상화 했단다여행 5일째 아침. 이제 귀국길에 나서야 한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을 향해 공항으로 가는 중이다. 어제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느낀 그대로, 비록 가난하지만 무언가 활기로 가득 차 있다. 미얀마 소수민족의 교역 중심지이자 인접한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물품을 양곤 등 전국으로 보급하는 물류 중심지답게 자전거, 자동차가 그득하고 교통신호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도로 한쪽으로는 아직 마차가 달리고 있고 버스는 낡을 대로 낡았다. 12년 된 대우 티코가 일만 이천달러를 호가한단다. 이토록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미얀마이지만 결코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재단할 수 없다. 여행은 결코 문명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고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몇 년 전에 이곳을 들렀던 이로부터 신용카드와 달러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사이에 달러가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태국 자본을 들여와 만달레이 공항을 현대식으로 다시 지은 변화만큼, 공항 화장실에서 세면기의 물을 틀어 주고 팁을 기대하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은 그만큼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 이전에 관광객의 달러 맛을 보았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정작 대나무 산지라는 이곳에서 대나무 공예품은 자취를 감추고 편리한 플라스틱이 판치는 것처럼 몇 년 뒤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오늘 이처럼 푸근하고 독특한 미얀마 고유의 모습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다음호에 계속> 여행안내태국방콕의 돈무앙 공항에서 환승하여 미얀마 밍글라돈 공항 도착. 다시 바간 만달레이 호헤를 차례로 거쳐 가는 순환 국내선 이용하여 만달레이로 간다. 대부분 영어가 통용되고 음식이나 잠자리는 거의 불편함 없다. 다만 배낭여행이 아니라면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것이 중요할 듯. 미얀마 여행을 대행하는 여행사가 국내에도 있다. |
황금과 벽돌로 일군 불가사의의 정토 (3)- 미얀마 양곤, 그리고… | |||||||||||||||||||||||||||||||||
이수연의 길따라 바람따라 떠나는 여행길<10> | |||||||||||||||||||||||||||||||||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미얀마
좋은 여행은 대부분은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미얀마만큼은 그 충동이 너무 강하다. 역설적으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쓸 만큼 말이다. 일행 모두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무얼까. 이구동성으로 ‘미얀마 사람들’을 말한다. 시나브로 잃어버린 우리의 소중했던 기억을 미얀마에서 다시 찾은 것 일까? 어쩌면 우리와 이리도 비슷할까. 가족애나 효(孝)를 중시하는 관습에서부터 소박한 의상과 전통을 간직하고자 하는 심성, 심지어는 빨래 방망이, 똬리를 놓고 물건을 머리에 이는 것까지 같다.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도 자기네와 비슷한 이것 때문이라고 했다. 자존심이 호구지책보다 강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도 빼놓을 수 없지만 우리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여유로움도 그렇다. 불교국가답게 윤회설을 신봉하기에 생긴 것이라지만 거의 현실 불만이 없단다. 낙후한 도시와는 달리 매우 깨끗한 거리 풍경, 특별히 거부감이 없는 음식, 도열하여 시중드는 식당 종업원들과 같은 친절함, 우리들의 짓궂은 주문에 망설이면서도 반대급부 없이 쾌활하게 춤과 노래를 제공하는 관광지의 물건 파는 처녀들, 끈질기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게 하는 그들의 생활력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사진 찍으러 간 우리에게 미얀마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겠다.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반드시 맨발로 출입하는 것만 지키면 신성하고 엄숙해야 할 사원에서 조차 카메라는 무제한으로 개방되어 있다. 더욱이 낯선 남방불교는 소재의 신선함과 함께 시각적인 화려함까지 더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쉐다곤 파고다로 대표되는 양곤
독재 정권으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제재에 이어 물리적인 공격에 대비한 방어차원이라는 분석과 그것은 천도 반대 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명분에 불과할 뿐 미얀마 군부가 국민의 봉기 가능성을 두려워 취한 극단적인 조치라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양곤 어디에서도 외양상으로는 별다른 동요나 징후를 느낄 수 없었다. 양곤 관광은 쉐다곤 파고다로 대표할 수 있다. 시내 어느 곳에서 보아도 탑의 황금 빛 첨탑을 볼 수 있다는 이곳은 특히 야경에서 그 화려함이 극치에 달한다. 미얀마의 자존심이자 국민들의 불심을 대표한다는 곳이다. 전설에 부처님 머리카락 여덟 발을 이곳에 묻고 탑을 조성했다는데 그 후 지진으로 초기 파고다의 형상은 없어지고 지금의 모습은 15세기 무렵 중창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여왕이 이곳에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양의 금을 보시하여 탑을 만든 이래 지금까지 역대 왕이나 부자들이 경쟁하듯 금과 보석 등을 보시하여 오늘날처럼 98m에 달하는 탑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도 이 엄청난 광경을 쉼 없이 화면에 담을 수 있었던 셈이다. 무료로 개방하는 짜욱탓지 파고다는 유적지라고 할 수 없다. 1930년대에 지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7m의 길이에 높이가 17m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臥佛)을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미얀마에서 와불로는 두 번째 규모라는 데 규모에서도 압도적이지만, 유백색의 피부와 황금색 가사가 어우러져 화려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열반의 와불이 아니라 옆으로 누워 휴식하는 모습이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속눈썹을 한껏 치켜 올리는 화장까지 했다. 어찌 보면 여성인듯 한데 오래 전 태국의 어느 사원에서 황당하기까지 했던 그 화장한 얼굴이다. 하지만 차욱탓지의 이 부처님은 매우 고혹적이다. 발바닥 문양은 불교의 우주관이라는 데 그 의미가 궁금하기도 전에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먼저 다가온다. 양곤에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또 한 곳의 명소가 있다. 로카찬다 사원이다. 무려 600톤에 달하는 통 옥(玉)을 조각하여 불상을 만들어 모신 곳이다. 연옥(軟玉)이라지만 그 커다란 부처상이 한 덩어리라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좋은 가이드는 또 하나의 행운 미얀마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한국 교포가 경영한다는 발마사지 업소다. 맨발 강행군은 충격흡수가 안 되는 데다 카메라 중량까지 합세하여 발은 물론 허리에 무리를 주기 일쑤여서 싫지 않은 코스다. 한 시간 남짓 발을 주물러 준 마사지사에게 팁으로 1불을 주면서 지갑에 남은 현지화폐 200짯(약 200원)을 덤으로 주니 망설이면서 아주 고맙게 받는다. 요금은 다른 관광지보다 훨씬 저렴했다. 5달러. 알고 보니 가이드가 통상적으로 챙기는 자기 몫을 붙이지 않은 것이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권하며 짜내려 하던 다른 나라의 가이드와 확연히 달랐다. 미얀마 현지 여성과 결혼했다는 이 한국인 가이드. 미얀마가 너무 좋아 이곳에 정착했다는 그는 얼마 전에 드럼통을 펴서 만든 미얀마 중고 짚차를 어렵게 구해 외국인의 체면(?)을 세웠다는데 그 차에 태극기 스티커를 세 개나 붙이고 다닌다. 관광사 직원들의 눈총에 한 번 떼기도 했지만 계속붙이고 다니라는 열한 살짜리 아들의 간청에 이제는 누가 뭐래도 떳떳하게 붙인단다. 그 가이드가 끝내 공항에서의 이별에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싸가지고 간 부식, 간식, 비상약 등등을 모아 자존심 상할까봐 조심스레 묻고 건네주자 구하기 어려운 한국 물건들이라며 아주 고맙게 받는다. 그러면서 자기와 함께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려고 했지만 이렇게 헤어질 때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말끝에 진심이 묻어나온다. 한국인임을 자랑스레 생각하고 그 명예를 지키겠다는 그의 말이 아직 귀에 생생하다. 해외여행에서 만나는 또 다른 행운 중에 하나가 좋은 가이드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얀마를 흔히 시간이 멈춘 황금의 부처님 나라라고 도착 첫날 가이드가 표현했다.수십 년 전에는 우리보다 훨씬 풍요로웠던 이곳이 잘못된 지도자로 인한 폐쇄와 통제에 따른 낙후, 전국의 불상과 탑에 쏟아 부은 황금이 무려 60톤이 넘을 정도(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80- 90조 원정도)로 황금이 풍부하며 불교가 종교를 넘어 생활이 된 이들을 축약하여 표현한 말이다. 긍정과 부정을 함께 담아낸 이 말 만큼 미얀마의 현재를 잘 나타낸 말은 없을 듯하다. 어쨌든 이번 미얀마 여행은 ‘대단히’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겨우 며칠 돌아 본 것 가지고, 그나마 ‘사진촬영’이라는 특정 방향만으로 살펴본 여행으로 한 나라를 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같은 조건으로 돌아 본 또 다른 곳과 비교할 때 분명히 미얀마는 가볼 만한 가치에서 앞쪽에 올려놓고 싶은 곳이다. (끝) 여행안내 사진가에게 반드시 권하고 싶은 곳이다. 12월에서 2월 사이가 비도 내리지 않고 기온도 적당하다. 남부인 양곤도 참을만한 더위이며 중북부인 바간, 만달레이 등은 초가을 날씨여서 모기 걱정 없이 아주 적당하다. 슬리퍼가 꼭 필요한데 현지 슬리퍼는 쿠션이 전혀 없다. 쿠션이 있는 것을 미리 구입해 가는 것이 좋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우 전기 코드 걱정은 없지만 지방은 컴퓨터 보급이 전무하여 노트북이나 PMP 등의 별도 저장장치를 준비해야 한다. 필름도 공항통과에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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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라와디 크루즈 - Irrawaddy Cruze
히말라야산에서 안다만 해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미얀마의 젖줄 이라와디 강을 따라 많은 배들이 운항한다.
만달레이와 바간간을 운항하는 정규 페리를 타고, 혹은 바간에 있는 자그마한 리버 크루즈선을 타고 이라와디 리버 크루즈를 즐길수 있다. 노을이 질 무렵 이라와디 강 위에 배를 띄우고 바라보는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
일반적인 바간의 리버 크루즈선은 사진의 모습과 같이 심플하며, 간단한 차와 땅콩등이 제공된다.
전통 인형극 - Myanmar Marionette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중의 하나인 마리오네트 인형극쇼를 바간 지역에서 관람할 수 있다.
테마는 미얀마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나, 고전극, 최근에는 동물들과 함께 패러디한 코믹극들도 많이 생겼다.
인형조종사와 인형간의 교감이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인형을 다루는 테크닉과 감성에 걸맞게 다양한 인형들이 자유 자재로 움직인다. 바간에 가셨다면 꼭 한번은 관람 해야할 멋진 공연이다. 기념 촬영 후 팁 주는 센스도 잊지 마시길!
바간 마차
천년의 고대 도시 바간과 가장 어울리는 전통의 교통수단이 아닐까 생각되는 우마차는 마부를 포함하여 2~3명이 탈수 있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전통적 교통수단이다. 현지인들은 몸집이 작아 1대에 많은 사람들이 타기도 하지만, 마부를 제외하면 1대에 두명이 적당한듯!! 해질녁의 고대도시 바간을 우마차로 달려보는 그 느낌은 황야의 무법자가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