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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04_(전병유)한국에서의_복지국가_형성의_조건과_쟁점_3.HWP
한국에서의 복지국가 형성의 조건과 쟁점
전병유(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윈)
1. 머리말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확대되었다고 하는 복지 제도 및 복지 예산의 성격에 관한 논쟁이 1차 논쟁이었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해야 한다는 논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우리나라 복지의 성격을 규정하는 논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서 복지국가가 검토⋅논의되는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와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성장잠재력의 약화와 경제사회구조의 양극화일 것이다. 이는 개발지상주의적 발전전략의 유산이자 1997년 외환위기가 남긴 생채기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1998년부터 집권한 민주개혁정권이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답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진보세력이 참여한 민주개혁정권이 대중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대안적 발전 모델들에 대한 고민이 다시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문제는 서구에서 경험한 사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국가라는 것이 대안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진보진영의 대안으로서 검토해온 연구들은 제한적이나마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신정완(2005)은 북구형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모델과 유사한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정우(2007)도 한국경제가 성장률 정체와 양극화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1의 길(박정희 모델)과 제2의 길(시장만능주의)이 아닌 제3의 길로서 성장과 분배가 조화되는 북구형 복지국가로 가야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진보정치연구소(2007)는 진보진영의 대안적 모델로 사회국가, 사회연대국가, 연대적 복지국가 등을 제시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회투자국가 및 사회투자전략을 제기하는 양재진(2007), 김연명(2007) 등도 넓은 의미의 복지국가 대안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보수진영의 선진화 담론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복지국가를 내세워야 한다는 본격적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복지국가Society정책위원회의 『복지국가혁명론(2007)』와 정승일(2007) 등의 복지국가혁명론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우리사회의 양극화 경향과 보수진영의 선진화 담론에 대항하기 위해 복지를 ‘정책’의 차원이 아닌 ‘국가체계’의 차원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여타 진보개혁진영의 담론에서 복지가 생태, 평화, 동북아공동체, 지식기반경제, 지역혁신클러스터, 투명성과 시장원리, 재벌개혁, 기술혁신 등 여타 아젠더에 묻혀버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재정적자가능성을 무릅쓰고라도 국가적 복지지출을 과감하게 늘리며, 동시에 소득세누진제를 대폭 확대하는 조세혁명을 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논리적 토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거대담론으로서의 복지국가혁명, 선복지혜택⋅후조세부담의 원칙,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복지국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등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Offe(1995)는 근대 국가의 발달이 민족국가, 입헌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의 순서로 제도화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비추어보면, 민주화를 이룬 우리 사회가 이제 복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사실 양극화 문제가 이처럼 심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연한 것이다. 경제성장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조건과 경로에 대해서 좀 더 치밀하게 검토해야 할 점들이 많다. 물론 거대 담론으로서의 복지국가론이 보수진영의 선진화 담론에 대항하는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진보개혁진영이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의 개선에 주목하지 못했고 그와 관련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정승일(2007)도 지적하고 있듯이, 담론에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 담론이 경제 관료들의 성장주의와 보수진영의 선진화 담론과 싸워 그것을 압도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담론으로서의 복지국가 담론만 가지고서는 보수진영과 경제관료를 압도하기 어렵다. 우리는 참여 정부 하에서 치밀하게 조직되지 못한 ‘증세 담론’이 ‘세금폭탄’이라는 한 마디에 제대로 된 논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묻혀버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복지가 단순히 정책 차원이 아니라 국가체제 차원에서 검토되기 위해서는 여타 거시경제, 개방, 산업, 노동 등과 어떻게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정합성을 가지면서 ‘복지국가’로 체계화될 수 이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소득보장정책과 재정확대만으로는 복지국가가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복지국가 담론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에 앞서 우리사회가 우선 복지국가로 가고자 한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지, 복지국가로 가는 과정에서는 어떠한 쟁점들이 검토되어야 하는지를 따져보고자 한다. 특히 이 글에서는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의 관계, 보편주의와 사회투자전략의 문제, 복지를 위한 재원조달과 재정투자의 문제 등에 한정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2. 북구형 복지국가모델의 제도적 배열과 그 변화
우리나라의 현 시점에서, 복지국가를 논의할 때 대안적인 모형으로 삼는 것은 케인즈-베버리지 모델보다는 북구형복지국가를 상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북구형복지국가도 케이즈-베버리지모델을 기본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케인즈-베버리지모델만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관리와 보편주의적 사회보험 및 소득보장 정책들은 이제 유럽의 거의 모든 선진국들의 경제⋅사회 관리의 기본 요소들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는 복지국가의 필요조건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요소들이 복지국가의 틀 속에 융합되고 있다.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의 갈등과 대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특별하게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이 어떤 조건 하에서 형성되었으며 세계 경제의 급속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이 모델이 어떻게 지속가능하였는가를 검토함으로써 우리의 복지국가 담론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북구형복지국가모델은 보편주의적 복지서비스, 개방적 무역정책과 수출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연대임금정책과 사회적 조합주의 등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 복지국가는 북구형 경제사회모델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즉 북구형복지국가는 무역산업정책, 연대임금정책, 적극적노동시장정책, 사회적 조합주의가 만들어낸 산출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렇게 한 번 형성된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스스로 유지하는 힘을 가진다. 최근 들어 사회적 조합주의가 약화되고 연대임금정책이 거의 포기되었음에도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처음 형성시킬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연대임금정책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렌드-마이드너모델이라고 불리우는 스웨덴 모델 형성에서 가장 주된 역할을 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 축소를 스웨덴 경제의 발전전략으로 추진하였다. 처음 스웨덴 모델이 형성되던 1930년대 양차대전 사이의 기간을 보면 스웨덴도 높은 임금격차와 이질적 노동, 높은 실업률과 비고용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유리한 조건이라면 노동력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았다는 점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교섭의 중앙집중화를 통해 산업평화, 수출부문의 임금 결정 주도, 임금격차축소 등의 전략을 추진하였다.
교섭의 집중화를 통해 임금격차를 줄이는 정책의 기본 지침은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지불능력과 관계없이 동일노동에 대해서는 동일임금(equal pay for equal work)을 지급한다는 원칙이었다. 이는 경쟁적 노동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임금구조를 얻기 위해서 중앙집중화된 노조의 보이는 손을 사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해서는 스웨덴의 경우도 명확하지 않았다. 정교한 직무평가를 통해 임금차이에 관한 합의를 얻어내려는 시도는 스웨덴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하였다고 평가된다. 1960대부터 1983년까지의 연대임금정책은 실제로 임금격차축소(wage compression)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Edin and Holmlund, 1993).
여기서 연대임금전략은 평등보다는 효율성의 관점에서 추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근대화와 시장의 확대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의 핵심으로 생각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요소의 원활한 이동(고생산성 부문으로의 이동)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가장 장애가 되었던 부분은 고임금을 받는 지역노조들이었다. 스웨덴사민주의자들은 중앙집중화된 교섭 시스템으로 이를 돌파하였다. Moene and Wallerstein(2006)은 가장 중심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은 중앙교섭구조에 의해서 달성되는 임금격차축소로 보고 있다. 특히 연대임금정책이 현실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사업주조직의 협력에 있었다. 스웨덴의 사업주 조직인 SAF는 교섭의 집중화가 임금억제(wage moderation)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고 연대임금에 찬성하였다. 보호된 부문에서의 강력한 노조의 임금압력이 경쟁적인 교역재 부문으로 넘어오는 것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금격차축소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은 매우 컸다. Agell and Lommerud(1993)는 이러한 연대임금정책이 적극적노동시장정책과 결합하여 신생산업(sunrise industries)을 보조하는 산업정책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임금격차축소가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외부경제효과를 내부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산업정책의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첫째, 임금격차는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세금이자 노동 이동의 비용(mobility cost)일 수 있다. 고생산성부문의 임금프리미엄의 확대는 확장하는 기업의 임금수준을 높임으로써 구조적 변화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부문이 다른 부문보다 사회적으로 규모의 수확체증과 긍정적인 외부성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외부성(sector-specific externalities)을 창출하는 부문에 정부가 보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근대적인 제조업이 규모의 외부경제 효과와 지식확산(R&D spillovers)의 긍정적 외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즉 임금격차축소와 선별적 산업정책(picking the winners) 간에는 개념적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발전을 촉진하려는 전략의 경제적 가능성은 경제적 개방에 의해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나 연대임금정책이 모든 나라에서 경제발전과 평등을 촉진하는 일반화된 공식은 아니다. 외부적 제약과 지식형성의 성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변화하고 성장과 구조변화를 촉진하는 적절한 정책들도 변하기 때문이다.
Freeman(1995)도 스웨덴을 대표로 하는 북구형복지국가모델은 제도와 경제주체들이 서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으로서 매우 평등한 소득분포를 완전고용과 결합시킨 모델로 평가한다. 민간부문의 임금격차축소에 따른 고용부진을 공공부문 고용으로 보완하고 이를 위해 높은 세율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효율적인 공공부문이 동원된다. 높은 세금은 역으로 임금결정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친다. 즉 고숙련노동자들이 임금격차축소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 결과 “임금격차축소-공공부문고용-세금-격차축소‘의 선순환 고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임금격차축소는 노동공급에 다양한 영향을 주어 완전고용에 기여한다. 즉 임금격차가 크지 않아서 구직실업(search unemployment)를 줄이는 효과를 가지고, 높은 누진세는 장시간 일할 인센티브를 줄임으로써 일종의 일자리나누기를 통한 고용창출 효과를 가진다. 또한 비싸지 않은 고숙련노동자의 공급을 통해 고임금교역재산업의 확장에 기여함으로서 이 부문에서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유지하도록 하는 기능도 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스웨덴은 사적소유를 금지하지 않으면서도, 사적자본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스웨덴은 중앙집권적 방식이 아닌 다양한 제도들 간의 인센티브 정합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이 가능한 사회를 만든 것이다.
물론 복지국가가 형성되기 위한 여러 부차적인 조건들이 필요하다. 동질적인 산업구조, 잘 조직화된 사업자 조직 및 저임금노동자까지 포함하는 노동조합, 이에 기초한 사회적 타협, 저임금부문에서도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노동자 비율이 높다는 점, 수출시장의 호조 등이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형성을 지원한 조건들이다.
임금격차 축소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을 보완하는 것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복지정책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계부문의 구조조정으로 발생하는 실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모든 시민에게 기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정책으로 대응하였다. 임금과 복지의 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에 대해서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실제로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실업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충분한 고용창출이 가능할 때만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적절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재배치할 수 있는 성장 부문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한계부문의 퇴출과 성장 부문의 진입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생산성의 증가가 고용의 감소를 유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생산성이 높은 성장 부문의 시장진입이 계속 이루어진다는 조건이 효과적인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집행과 함께 매우 중요하다(홍경준, 2007).
일단 이렇게 형성된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은 높은 조세부담과 높은 노동시장참여율에 의존하게 된다. 김의동(2006)은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의 비이동성과 재정적으로 건전한 국가라는 두 제도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 두 조건이 충족됨으로써 임금과 투자에 대한 성공적인 사회협약과 복지제도가 가능하였다.”고 하지만, 임금과 투자에 대한 성공적인 사회적 타협이 복지국가를 형성했고, 이를 지속가능하게 한 것인 건전재정과 자본의 비이동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북구형 복지국가들의 조세 시스템은 Lindert(2002)나 Steinmo(1993)에서 지적되어 있듯이 성장촉진적이고 실제로 그렇게 누진적이지 않았다. 조세의 역인센티브 효과는 교육, 인프라, 잘 기능하는 제도와 같은 성장촉진형 활동에 대한 정부 지출로 상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임금격차 축소와 높은 조세가 초래할 수 있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의 역인센티브는 정부의 교육투자에 대한 보조로 상쇄하였다. 또한 복지국가를 위한 과세도 자본보다는 노동에 의존한다. 자본에게는 오히려 여러 가지 감세 혜택을 제공하였다. 자본에게 요구되는 것은 국제경쟁력과 고용창출이었다. 즉 스웨덴의 복지국가모델은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내에서 소득이 이전되는 시스템이었다.
높은 조세부담과 재정비율은 높은 고용률에 의해서 보장된다. 스웨덴의 경우 고용률이 1% 오르면 정부예산은 GDP의 0.5%까지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이 고용중심적이라는 의미는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때 사회적 권리로서 소득이전을 받게 되지만 고용된 사람들은 높은 임금과 더불어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다.
복지의 경우에도, 근로장려급여시스템(workfare benefits system)을 창출하여 복지함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였다. 대부분의 복지 급여를 일자리에 연동시킴으로써 높은 조세가 초래하는 노동시장 이탈 인센티브를 줄여나갔다. 이때 높은 고용률은 실업에 있는 사람들을 노동시장으로 나가도록 압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즉 북구형복지모델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고용창출이 요구된다. 스웨덴의 경우 연대임금정책에 따라 한계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수출대기업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였지만, 사실 이 부분에서의 고용창출은 기대한 것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하였다. 1960년대 이래 스웨덴의 경우 민간부문에서 순고용증가가 거의 없었다. 1960년대의 연대임금과 산업구조조정정책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지만 전체적인 산출량(고용량)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얻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창출은 주로 공공부문 주도로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창출되었다. 공공부문의 고용창출은 높은 여성경제활동참가율과 보편주의적 복지서비스와 잘 매칭되었다.
스웨덴의 보수적인 경제학자인 Lindbeck(1997)도 스웨덴의 경우 정부지출프로그램의 매우 적은 비율(6%)만이 최하 저소득층에게 지출되고 있음에도 정교한 복지국가의 제도배열은 빈곤수준을 현저하게 낮추는 데 성공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스웨덴에서 빈곤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재분배 지출 보다는 위와 같은 정교한 제도적 메커니즘에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복지국가는 글로벌화라는 커다란 변화에도 불구하고 쉽게 후퇴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현재 스웨덴 모델에서 조합주의적 의사결정메커니즘과 연대임금정책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복지국가 모델의 기본 특징들은 잘 유지되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내부적 압력 때문에 고용주와 노조가 임금자제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붕괴하기 시작하였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스웨덴 모델이 거의 해체되었음에도 복지국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북구의 복지국가모델이 크게 후퇴하지 않고 있는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복지국가에 대한 신뢰에 있다. 이러한 신뢰는 국가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만족에 기초한다. 조세부담이 높더라도 복지수혜가 만족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북구복지국가 모델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순히 높은 조세부담이라기보다는 조세로 만들어진 복지재원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국가와 사회의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에 대한 높은 과세와 소비세 등으로 인해 민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정체되고 이 부문에서의 고용창출이 지체되어 있다는 점, 여성들이 대거 공공부문에 진출하기는 하였으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의 일자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글로벌화에 따른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의 후퇴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개방적인 모델이고, 복지국가모델의 재원을 위한 과세가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자본보다는 그렇지 못한 노동에 의존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글로벌화가 북구형모델을 후퇴시킬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된다.
오히려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델이 고령화의 딜레마와 성장의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구형복지국가 모델이 지속적인 고용창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가 고령화할 경우 이미 70% 중반 대를 넘는 고용률이 더 올라갈 수 있겠느냐는 문제이다. 외국인노동력 활용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외국인노동력이 증가할 경우 국가복지 모델에 큰 위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장의 딜레마이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경우 조세원도 넓어지지만, 사회적 지출도 더 늘어나게 된다. 와그너효과(공공사회서비스의 소득탄력성은 여타 재화에 비해서 크다)와 보몰효과(공공사회서비스의 생산성 향상이 여타 재화에 비해 낮기 때문에 공공사회서비스 가격이 경제성장에 따라 더 빠르게 오른다)로 공공서비스의 가격이 오르고 이것이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술발달(예를 들어 의료기술이나 교육환경 등)에 부응하여 공공사회서비스도 가장 현대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공공사회서비스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이러한 성장의 딜레마는 중산층에게까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과세와 수혜가 분리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보편주의적 복지제공에 커다란 위협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현재까지 북구복지국가들은 연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고용친화적인 형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보편주의적 복지제공에서 후퇴하는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가 평등과 안정이라는 사회주의적 가치와 경제적 효율성 및 기술적 다이나미즘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결합한 발전전략으로서 성공한 모델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다만 이러한 북구형복지국가모델이 글로벌화하는 세계경제의 환경 속에서 북구와는 다른 초기조건을 가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것을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양극화, 노동시장 그리고 복지
최근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양극화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양극화라는 표현이 보수진영으로부터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용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양극화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인 생활상의 요구’를 반영하는 용어라고 생각된다.
류동민(2007)은 현재 한국경제가 광범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 및 중소기업의 희생 위에 유지되고 있는 경제이며, 비정규직 노동과 영세자영업 및 중소기업의 문제가 핵심적인 민중생활의 문제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심지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긴장관계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인 생활상의 요구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박현채의 표현을 빌려 민족적 생활양식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류동민(2007)은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상층부를 이루는 독점적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의 경우 민족적 생활양식의 외부로 이탈하는 경향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이들이 소비자의 자격으로 얻게 되는 생활상의 이익의 상당부분은 비정규직 노동과 영세자영업자의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단순히 소득의 양극화일 뿐만 아니라 안정성의 양극화, 예를 들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사이의 안정성의 양극화가 문제이라는 점, 영세자영업의 문제는 이러한 안정성의 양극화로부터 파생되는 현상이며, 영세자영업의 하층부는 언제든지 절대빈곤층화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류동민의 현실 파악은 매우 정확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다른 많은 기존 연구들도 이러한 현상을 실증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복지국가를 진보개혁진영의 대안으로 생각한다면, 출발지점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생활양식의 붕괴라고 할 수 있는 양극화 현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로대중은 크게 정규직,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으로 3분해볼 수 있다. 여기서 정이환(2007)의 지적 처럼 비정규직은 고용형태상의 비정규직노동자와 고용형태상으로는 비정규직이 아니지만 영세중소기업에 낮은 임금과 근로조건 하에서 불안하게 취업해있는 취약노동자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대중을 농업부문을 제외하고 약2,000만 명이라고 한다면, 근대적 조직 부문의 정규직노동자가 약 700만, 근대적 조직 내외의 고용형태상의 비정규직노동자 약 500만, 취약노동자 약 300만, 영세자영업자 500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류동민(2007)의 지적대로 복지국가의 대안은 근대적 부문의 약 700만 명과 여타 부문의 1300만 간의 긴장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복지국가 대안은 특히 중소영세기업에 종사하는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 연대임금정책으로 이들을 구조조정하고, 수출대기업과 공공서비스 고용창출로 이를 흡수하는 전략이 곧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을 따라가기에는 이들의 규모가 너무나 크다. 이들은 이른바 정책의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국가의 복지전달체계 망에 잡히지도 않는다. 우리나라가 형식적인 보편주의 복지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도 실질적인 보편주의를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경기’로 먹고사는 영세자영업을 대책 없이 과도하게 압박할 경우 이들이 우리사회 보수화의 기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참여정부의 경직된 거시경제관리정책이 영세자영업 위기-사회우경화로 이어진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노동자,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문제와 관련하여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과 유사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노동시장 유연화와 국가주도의 복지정책의 사회적 교환으로 해결하자는 대안이 있다. 다양한 논의들이 많기는 하지만, 김기원(2007)의 지적을 살펴보자. 김기원(2007)은 “중소기업 문제는 세금과 복지정책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대기업에서 세금을 더 많이 거두고 그 돈으로 교육의료주택 같은 문제를 기업 복지가 아닌 사회복지로 해결함으로써 대⋅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실질적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 ..... 비정규직 문제는 한편으로 임금체계를 연공급 위주에서 직무직능급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바꾸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충실화를 바탕으로 정규직의 노동유연성을 확보해야 풀릴 수 있다. 임금체계의 변화는 퇴직연령을 늦춰 영세자영업자의 과잉공급의 문제를 푸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부분이다.” 양재진(2007)도 “우리는 소득정책이 현재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속히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사회투자정책에 의해 지급되는 사회적 임금(각종 실업수당, 공교육, 의료, 연금 등 실질적 임금보전분)과 시장임금의 배분관계를 조율하여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임금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즉, 자유방임형 임금정책에서 사회적 임금결정체제로 점진적으로라도 전환해 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 정부는 복지정책은 물론 조세정책을 통해 사회적 임금결정이 노사간에 합의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이환(2007)은 사회적 노동시장체제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국가복지를 통해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노동시장을 개선하자는 앞의 주장들과는 차이가 있다. 정이환(2007)은 “단순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대안만 가지고서는 이들 취약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을 강화하는 전략이지만, 외부노동시장이 워낙 큰 상황에서 외부로 비용을 전가하려는 외주화 경향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 사회적 노동시장체제는 임금과 근로조건이 초기업적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적 임금체제이고 그 핵심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직무의 성격이나 숙련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윤의 차이에 의해 생기는 임금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외부노동시장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기준을 부과하고 이것이 실행되게 함으로써 이중노동시장의 격차를 줄여 나가자는 것이다” 정이환(2007)은 이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과 최저임금제 인상과 근로감독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고용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는 적극적노동시장정책과 교육훈련정책, 적절한 총수요관리정책, 공공부문의 사회적 일자리 등을 제시하고 있다.
김기원⋅양재진과 정이환은 똑같이 사회적 임금결정 기제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하고 있으나 전자는 국가복지를 통해 후자는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통해서 하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연대임금정책이나 임금자제⋅유연성제고와 복지와의 교환이라는 대안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남춘호(2007)는 제도의 경로의존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장래에 사회적 합의에 의한 단절적 전환을 통해 영미형 시장중심형에 가까운 한국노동시장체제가 사회적 노동시장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중앙집권화된 노사조직이나 노동계급정당이라는 구조적 조건이 취약한 상태에서 단지 경제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의 권력관계 재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임금체계의 개편이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남춘호(2007)는 스웨덴과는 반대의 방향에서 노동시장제도와 복지제도의 정비를 통해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극도의 고용불안정과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제안한다. 앞의 김기원(2007)이나 양재진(2007)의 주장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 노동시장을 사회적 규제를 통해서 개선하거나 국가의 복지확충을 통해서 개선하는 방안 모두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자제와 이들에 대한 높은 세금부과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경우 자본의 양보를 얻어내 사회적 타협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된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임금자제와 노동시장유연화만으로 수출대기업의 경쟁력강화와 고용창출이 쉽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의 고용창출로 대응해야 하겠지만 민간부문의 고성장과 이를 기초로 하는 재정 확충이 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대기업 노동시장의 유연화만으로 비정규직노동자, 취약노동자, 영세자영업자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류동민(2007)의 지적대로 이들의 물질적 기초가 확보되어야 한다. 류동민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가령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연대의 물질적 기초는 무엇인가? 대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힘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물질적 기초가 확보되지 않으면, 노동자계급의 양극화, 분할지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구복지모델과는 달리, 근로대중에서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에서 임금자제과 복지제공의 교환 패러다임만 가지고서는 양극화의 문제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지역산업클러스터나 중소기업혁신을 위한 산업정책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중소기업 산업정책을 통해서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규모를 줄이고 여기서 배출되는 인력을 흡수하지 않고서는 양극화 해소와 복지국가 형성의 물질적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한 복지국가이지만 덴마크의 경우 강한 중소기업들의 혁신 및 학습 역량에 기초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제적 성공이 강력한 복지국가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성공이 가능한 하나의 이유는 강한 중소기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스웨덴의 초국적기업군들보다도 유연하다. 우리나라의 수출대기업들이 가지는 긍정적 외부성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대내적 산업연관, R&D의 일출(溢出, Spillover) 효과, 지식 및 인적자원 축적 등의 측면에서 한반도의 근로대중의 삶의 개선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심스럽고, 이들에게 노동시장 유연성이나 임금자제 등을 지원해야 할 경제적 당위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승일(2007)은 지식기반경제나 혁신주도형 경제가 소수의 선발된 핵심인력들만 혁신과 지식기반에 필요한 능력을 습득하고 지식노동자화할 뿐 나머지는 배제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오히려 대기업중심의 복지모델이 중소기업근로자와 자영업자를 소외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존의 복지국가모델이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또한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의 경우 '기업복지'가 발달하여 사회복지에 대한 투쟁동력에서 이완되는 작용도 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에서 복지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중 하나가 대기업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한 울산지역이라고 한다.”라는 지적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의 혁신정책이 하이테크인력과 단순인력으로 양극화할 정도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준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에서 임금평등화와 복지확충만 가지고서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대임금을 위한 노력과 복지의 지속적 확충을 같이 가져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연금의 설계 과정에서 네델란드에서 시도되었던 산별차원의 강제연금제도 등을 노동 내부의 평등을 달성하고자 하는 대안이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반성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노동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임금평준화 노력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고, 시민사회가 적극 지지할 일이며, 국가정책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일이다.
4. 보편주의 및 사회투자전략
북구형국가복지 모델은 보편주의적 복지에 기초하고 있으며 변화되는 환경에 복지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할 때에도 이 보편주의와 사회투자적 성격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Korpi(1998)는 빈자에게 복지급여를 집중할수록, 소득에 비례하지 않고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복지급여를 제공할수록 빈곤과 불평등을 줄어들 가능성은 감소한다는 재분배의 패러독스를 제기하였다. 저소득계층에 대한 타게팅 정책의 정도와 재분배를 위한 예산규모 사이에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존재하기 때문에 북구형 복지국가를 하려면 중산층과 빈곤층간의 복지동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보편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복지에서의 보편주의란 국가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때 한계계층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중산층까지를 포함하여 사회적 위험을 국가가 관리해준다는 점, 그리고 복지의 부담과 수혜를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의 측면에서는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제도상으로도 수혜 수준이나 수혜 대상이 매우 제한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정책이 취약계층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어 광범한 정책의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지보편주의를 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후자의 측면에서 수혜자부담원칙이 강하다는 점에서도 보편주의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복지확대가 최저 수준의 보장을 넘어 시민의 사회권을 실현하는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보다는, 취약계층에게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복지서비스에서 공공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로 문제가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김종건(2007)도 실질적 보편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사각지대 문제와 전달체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보편주의를 제일 기치로 내건 사회보험의 광범위한 사각지대는 우리나라 사회보장의 기반을 침식시킬 뿐만 아니라 복지제도를 새로운 불평등 기제로 재생산시킬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국민연금의 광범위한 사각지대 문제는 급여율인하와 기초노령연금으로 서둘러 봉합되었고, 건강보험 보장성의 취약함을 빌미로 민간 의료보험의 성장과 의료산업화는 이미 문턱을 넘어섰다. 사회서비스 시장 형성을 정책 과제로, 사회투자정책의 실제는 선별적 대상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형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 절대임금이 낮아서 보험료 부담능력이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장할 획기적인 대안을 갖추지 않는 이상은 보편주의적 복지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또한 “복지에 대한 국가의 능력 부재를 나타내는 것은 재정지원은 정부가 운영은 민간이 맡는 민간위탁을 서비스 공급의 지배적인 방식으로 구축하였다는 점,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민간서비스 공급자가 이제는 시장행위자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나타난다. .... 장기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한 공적 전달체계를 갖추는 방법 대신에, 복지체감에 대한 조급증까지 더해 현금급여를 강화하는 노선을 선택하였다. 의료기관, 복지시설, 보육시설에 이어 요양시설마저도 민간에 맡겨놓고 있으며 시장형성을 통한 사회서비스 공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전보다 더 복지지출의 확대보다는 어떤 방식의 복지지출이냐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대해 양재진(2007)은 일정 기간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병행하고 민간자원을 활용하는 전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혜대상의 결정 시, 보편주의를 지향하되 선별주의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취약한 중소기업부분의 경쟁력 제고를 앞당기기 위해서 이들이 위치한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직업훈련과 공공고용서비스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는 전략,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복지의 강화, 비활성화된 노동력에 대한 근로지원서비스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 반면, 중산층의 관심이 지대하고 그 중요성에 대해 이견이 크지 않은 교육과 보육에 대해서는 보편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투자정책의 실행에 있어 인프라의 기 구축여부가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질 높은 직업훈련기관이 전국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경우, 적극적노동시장정책에 대한 투자는 그 즉시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한 경우, 적극적노동시장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여해도 기대하는 성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며, 재원과 공공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민간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프라 구축기간을 단축하는 방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단, 민간시장의 경쟁의 효율이 작동할 수 있는 정책영역과 지역에서는 민간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공공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1998년에 한 토론회에서 김연명은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 국가기구의 정책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사민주의 노선은 복지의 책임을 상당부분 국가가 담당한다. 따라서 국가기구가 민주적이고 복지소비자들의 요구에 잘 반응하며 관료들이 권한을 독점하지 않으며 행정절차가 민주적이고 투명할 것이라는 점 등을 가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각종 정책결정의 민주성(수혜자의 참여), 국가기구의 절차적 민주주의, 합리성, 투명성 등은 너무나도 취약한 형편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복지의 확대(사민주의적 노선의 경향)는 선진복지국가에서 주로 언급되는 정부의 과부하로 인한 정부실패가 아닌 민주주의 실패로 인한 정부실패(사회복지 예산의 낭비, 관료주의의 심화, 관료와 일선복지기구시설의 유착)가 나타날 가능성이 명확하다.”
결국 우리에게는 중산층까지 복지혜택을 확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국가가 효과적으로 복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중소기업의 취약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의 복지제공서비스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양극화 해소와 보편주의적 복지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들은 그동안 국가보다는 가족과 공동체에 복지를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들에게 국가복지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중산층에 제공되는 보편적 서비스인 주택, 교육, 의료, 보육, 연금 등의 복지는 재정을 확대해서 해결하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그리고 가족이 이러한 보편적 서비스 제공에서의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판단된다. 이는 혁명적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해서 해결되는 문제라기보다는 복지서비스에서의 시장의 역할을 어떻게 활용하고 공공성을 높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양재진(2007)의 경우 민간자원을 활용하는 정책전달체계를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정책전달에서는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야한다고 판단된다. 서구에서 제3의 길로서 활용되고 있는 복지서비스의 민간위탁방식은 복지서비스 제공 능력이 부족했던 과거부터 우리가 이미 오랜 기간 활용하던 방식이다. 그러나 과거에 효율적이었던 민간위탁방식이 이제는 경쟁과 효율의 성과를 달성하기보다는 과잉과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대안적인 복지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은 정부가 현금을 나누어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전달체계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복지서비스 제공에서 민간에게 할당된 역할을 정부가 감시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 정부는 그 역할을 민간으로부터 회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책 전달에서 정부의 관료적 비효율성을 감시하고 서비스에서의 소비자 주권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다. 이것이 정책전달에서의 공공성의 제고와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북구복지국가의 경우 소득보장의 보편주의의 기초 하에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복지서비스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복지의 사회투자적 성격이란 고용효과와 기회의 평등, 선제적 투자 등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환경변화는 글로벌화에 따라 증대하는 노동시장의 위험, 인구구조 고령화의 위험, 가족 해체의 위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투자적 복지정책은 소득보장체계와 능력개발을 결합하는 복지-노동-교육훈련의 통합적 사고와 근로와 소득이전을 밀접하게 결합시키는 소득보장 방식 등으로 나타난다.
김연명(2007)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소득보장프로그램만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구호와 대안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즉,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대안이라는 관점에서 사회투자전략은 잠재적인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우리나라 복지정책에서의 사회투자전략의 의의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과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라는 이중적 사회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재원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다. 구사회위험에 대한 결과의 평등과 신사회위험에 대한 기회의 평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복지자원의 절대량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라는 것이다(윤홍식, 2007a).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투자국가 또는 사회투자전략에 대해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영순(2007)은 “현재의 빈곤과 소외 문제를 뛰어 넘어 미래의 위험요소에 과도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아동⋅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부양해야 하는 현재의 근로빈곤층 문제를 방치한 채, 아동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강화하는 중장기 정책은 바람직한가, 노동수요가 부족한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를 촉진하는 각종 정책은 어떠한 효과를 가대할 수 있는가, OECD 국가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노동시장의 왜곡으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적자본개발과 사회적 자본의 육성은 실제 어떤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투자정책의 성과를 의심하게 만든다.“ 문진영(2007)도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보편주의적 접근은 양극화를 심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동양육비 보조비를 중산층까지 확대할 경우, 계급간 소득의 역진적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투자전략이 기존의 복지정책의 성격을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복지정책의 사회투자적 성격은 복지국가 구축에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된다. 북구복지국가 모델의 지속가능성은 고용창출과 그에 기초한 재정안정성에 있다. 또한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은 가사노동의 권리를 일단 유예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또한 노동 공급이 노동 수요를 창출하는 경로를 배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경로에서 국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필자는 사회투자전략의 선한 의도를 존중하고 싶다. 결과의 평등이 초래할 수 있는 탈유인화(disincentives)를 제어하는 기제로서 ‘기회의 평등을 활용하는 것이 기초적인 ’결과의 평등‘을 대체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복지정책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한다는 것이 보편적 소득보장체계가 부재한 상태에서 복지국가의 역할을 소득재분배에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로 이전하자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현재 낭비적인 인적자원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아동 부문에서도 과투자 조짐이 나타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또한 교육 부문에서의 피의자의 딜레마 게임이 과잉경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 공적자원을 더 투자하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의 위험, 노후소득보장의 위험, 가족해체의 위험 등은 실업, 노령 등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의 맥락 속에 위치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이전의 위험과는 형태는 비슷하더라도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동일한 복지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5. 조세와 재정투자
복지국가를 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예를 들어 2007년에 제시된 참여정부의 국가비전보고서인 『비전2030』에서는 2030년까지 선진국형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경상가격으로 약 1100조원(현재가치 기준으로 400조원, GDP의 2%)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물론 재정확충을 위한 전제로서, 국민연금, 직역연금 개혁 등을 통해 재정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고 주민생활지원 서비스 전달체계와 건강보험 등의 제도개편으로 재정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제도혁신이 필요하다는 강조는 빼먹지 않고 있다. 복지국가혁명을 하기 위해서 정승일(2007)은 더 나아가 균형재정정책은 잠시 유보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00조 이상의 국가예산을 시급한 복지의 확충에 과단성 있게 쏟아 부어야 하고, 국가재정이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기 때문에 몇 년 정도의 적자재정으로 가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코멘트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는 퍼주기식 복지가 아니라 기술혁신과 지식노동자화를 통해 경제성장으로 선순환되는 복지이기 때문에 결국은 조세수입이 증가하여 균형재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윤홍식(2007a)도 한나라당마저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의 대안을 제시하는 마당에서 친복지진영과 반복지진영을 가르는 쟁점은 복지확대를 무엇으로 담보할 것인가의 문제, 즉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종건(2007)의 경우, “보수정당이고 진보정당이고 향후 선거에서 복지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정치세력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방식의 복지를 위해 지출을 확대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복지성장주의’라는 기존의 예산확대투쟁 중심의 사회복지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사회복지예산은 확대되었지만, 빈곤과 양극화 해결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명목적인 보편주의는 달성했지만, 거대한 사각지대를 남겨 놓음으로써 보편적인 사회보장은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복지예산은 확대되었으나 선별적 프로그램과 시장을 활용한 복지공급은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예산확대와 자유주의적 복지 확대의 악조합이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초래한 것이다.
앞에서 검토한 대로 북유럽복지국가모델은 높은 조세부담과 재정투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를 위한 재정은 성장과 고용창출이 지속됨으로써 가능했으며, 시민의 높은 부담으로 만들어진 재원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지지가 확보되었고 그에 기초해서 복지국가는 지속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현재 사회복지분야 재정투자는 크게 증가하고 있고, 선진국에 비해서 낮은 복지지출 비중은 국민연금개시가 본격화하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개별 가계를 보면, 주거비와 교육비에 대한 지출부담으로 가계의 추가적인 재정 부담이 용이하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노대명(2007)은 사회정책의 재원 문제는 가계지출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양재진(2007)은 새로운 제도 도입과 재정확대에 앞서 기존제도에 대한 합리화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수직역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의 장기재정안정화 방안, 사회서비스 전달체제에서 나타나는 비리와 누수 그리고 비효율의 문제 해결 방안 등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정책에 필요한 재원의 일부도 염출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 제고시켜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때 큰 정부에 대한 반감도 잠재울 수 있고 재원조달도 원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세부담 및 재정투자의 일방적이 확대 이전에 국가, 시장, 공동체, 가족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할 것인지, 즉 우리의 조건에 맞는 복지부담의 구조를 설계하고 이에 맞추어 조세 및 재정의 구조가 짜이도록 할 것이다. 조세의 소득재분배기능, 자원의 효율적 배분기능, 경기안정화 기능 등이 제대로 잘 기능하는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가 아니라 세금이 어떻게 잘 써지나, 국민들에게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느냐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6. 맺음말
비정규직, 취약계층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근로대중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생활상의 요구는 민주개혁진영의 집권 10년 동안에도 잘 충족되지 못하였다. 10년이라는 집권 기간은 우리사회의 기본 구조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그럼에도 근로대중의 생활상의 요구는 오랜 기간을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빠르게 심화하고 있다.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를 단순히 분배 제도의 확대로만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성장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한 북구형복지국가모델을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북구 국가들이 시도했던 정교한 제도 배열을 갖출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제도와 정책의 인센티브 정합적인 정교한 배열 이른바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은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다. Myrdal은 스웨덴이 복지국가에 매우 적합한 국가라고 보면서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스웨덴은 인구 규모가 작고 동질적이며 상호 신뢰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 둘째, 정부서비스가 효율적이고 부패하지 않았다. 셋째, 청교도적 노동윤리가 강하였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사회적 자본에 기초한 제도와 정책 배열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있는지, 이를 형성할 수 있는지도 정확하게 따져봐야 한다. 북구형복지국가는 미국형자본주의만큼이나 예외적이고 특수하다. 미래의 비전으로 지향으로 설정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전제들에 대해서 자세하고 치밀하게 따져보지는 못하였다. 다만, 우리가 처한 양극화라는 상황 조건 하에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할 때 반드시 검토해봐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기존 연구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자영업까지를 포함하는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한 연대의 정책, 복지보편주의와 사회투자전략, 복지 확충을 위한 조세부담 및 재정확충에 대해서만 쟁점이 될만한 것들을 검토해보았다. 필자는 이 중에서는 연대의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근로대중 내 격차의 축소와 연대의 확장이 복지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이는 복지와 산업의 매개 역할을 하여 고용창출과 재정확충에 기여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생각된다.
물론 복지에서의 공공성의 확장과 조세재정에서의 효율성 제고도 제대로 기능하는(우리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복지국가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며, 또한 이 조건들이 연대의 정책과 분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연대에 기초한 고용산업정책, 복지정책에서의 공공성의 확대, 효율적인 조세재정 정책 등이 서로 잘 맞아떨어질 때 우리사회에서도 복지국가의 형성의 단초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로대중 내 격차의 축소라는 연대 정책이 현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외부성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를 관건이다. 쉽게 말해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비정규직에 대한 더 높은 시장적 보수가 혁신형 중소기업의 창출, 자영업의 근대화, 인적자본의 심화 등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의 인센티브 정합적인 설계가 중요하다. 이 부문이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의 상상력과 지적 열정이 가장 요구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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