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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는 한반도의 중심 서쪽 한강과 임진강 하류에 위치해 예로부터 비옥한 땅이었다. 또한 두 강을 이용해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부터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지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부족과 국가 간 경쟁과 전쟁도 치열했다.
파주는 고조선의 땅이었다가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 삼국시대에 파주를 차지한 나라는 백제였으나 고구려와의 계속된 영토싸움으로 475년 파주 전체가 고구려에 편입됐다. 그 뒤 신라의 진흥왕이 차지했다. 임진왜란 때인 1952년 5월에는 도원수 김명원이 공격해온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와와 문산 일대에서 크게 일전을 벌였지만 대패하고 말았다. 6·25전쟁 때도 서울의 관문 파주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처럼 파주는 국방유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한반도 중심 서쪽 한강·임진강 하류에 위치한 비옥한 땅 임진각 ‘자유의 다리’로 포로 1만2773명 자유 찾아 귀환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헌병들이 북측 판문각을 마주보고 보초를 서고 있다. |
임진각 망배단. |
파주시 일대 지도. 연합뉴스 |
▶통일공원
통일공원은 파주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국방유적지다. 문산 시내 통일대로변에 위치해 접근성이 매우 좋다. 6·25전쟁 이전부터 파주와 인연을 맺은 국군1사단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조성됐다. 그 후 많은 전적기념물과 시설들이 추가로 건립되거나 이전되면서 지금은 종합적인 안보교육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시설물만 해도 10여 개나 된다. 6·25전쟁 직전인 1949년 5월 송악산 전투에서 투혼을 발휘한 육탄10용사 충혼탑을 비롯해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 소위 기념비를 볼 수 있다. 개마공원 반공유격대 위령탑도 볼 수 있는데, 6·25전쟁 이전 북한 치하에서 개마고원을 무대로 활동했던 반공투사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다.
▶임진각과 전적기념물
통일로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임진각 관광지는 분단과 6·25전쟁과 그후 계속된 남북의 대립으로 슬픔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파주시는 안보와 관광을 묶은 안보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1972년 임진각을 건립했다. 임진각 전시관 내부에는 북한의 군사·정치·사회 등 생활상 전반에 관한 각종 자료 및 화보 400여 점이 진열돼 있다.
옥외로 나오면 6000여 평의 대지 위에 임진강지구 전적비, 미군 참전기념비와 함께 6·25전쟁 때 사용했던 비행기·전차·대포 등이 전시돼 있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방문 중에 북한의 폭탄테러로 순직한 외교사절을 기리기 위한 버마 아웅산 순교사절 위령탑도 볼 수 있다.
특이한 기념물의 망배단도 있다. 망배단은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과 조상의 추모일 등에 이곳을 찾아 차례 또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통일공원에도 망배단이 설치돼 있지만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많은 실향민이 북쪽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이곳을 찾아 아픔을 달랜다.
망배단 뒤편으로 경의선 철도의 교량을 이용해 만든 자유의 다리를 볼 수 있다. 1953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포로가 됐던 국군과 유엔군 1만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를 찾아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명명했다. 원래 서울에서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교는 상하행 두 개의 교량이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돼 교각만 남아 있었다. 그 후 전쟁포로의 교환이 시작되면서 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서쪽 교각 위에 철교를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임시교량을 가설했다.
당시 포로들은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이동한 후 도보로 자유의 다리를 건너 귀환했다. 이 다리는 ‘자유를 찾아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6·25전쟁의 대표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 전적비
6·25전쟁 때 글로스터 대대의 이야기는 중공군 5차 공세와 함께 시작된다. 1951년 3월 15일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해 가자 중공군은 새로운 공세를 계획했다. 당시 중공군 사령관 펑떠화이는 서울을 다시 점령해 마오쩌둥에게 노동절(5월 1일) 선물로 바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4월 22일 임진강을 건너 대공세를 감행했다.
국군1사단이 파평산에서, 영국군 29여단 글로스터 대대가 설마리와 감악산에서 중공군을 막아섰다. 중공군은 2개 사단으로 파평산을 공격하면서 1개 사단을 추가로 투입해 글로스터 대대를 공격했다. 중과부적이었던 글로스터 대대는 설마리에 전면방어 진지를 편성했다. 유엔군이 글로스터 대대를 구출하기 위해 연결작전을 시도했으나 중공군의 포위망은 요지부동이었다.
연결작전에 실패한 29여단장은 대대장에게 항복하거나 분산해서 철수하거나 양자택일의 결정권을 위임했다. 대대장은 중대단위로 분산해 철수토록 지시했다.
A중대로부터 D중대까지 4개 중대가 25일 철수를 시작했다. D중대를 제외한 3개 중대는 후방으로 철수했지만 마지막 D중대는 정반대 방향인 북쪽을 향했다. D중대는 파평산 방향으로 전환해 국군1사단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다. 후방으로 철수를 시작한 3개 중대는 모두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다.
글로스터 대대는 전사 59명, 포로 526명으로 생존자가 67명밖에 안 돼 결정적인 피해를 입고 붕괴했지만 국군1사단과 함께 중공군의 공세를 3일 동안이나 저지했다.
한·영 우호의 다리와 함께 조성돼 있는 글로스터 대대 기념공원과 기념비를 돌아보며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넋을 다시 한 번 기리게 된다.
▶파주의 국방유적
파주는 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파주의 국방유적과 전적기념물은 비교적 잘 알려진 것만 해도 30여 개나 돼 군 단위 지자체로는 가장 많은 수다. 그중 판문점과 제3땅굴이 대표적이다. 도라산역과 도라산 평화공원, 오두산 전망대 등 볼거리와 안보교육장이 산재해 있다. 대부분이 테마 관광시설과 연계돼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곳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박병호 전쟁과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첫댓글 임진각에 다녀온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언제 또 가볼 기회가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