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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마가복음 14장 3-5절『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이 그림은 나병환자 시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옥합을 깨고 예수님 머리에 붓는 여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상 왕을 상징하는 애굽의 바로에 신음하는 나병환자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대변자 모세를 통해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가는지를 보여주신다.
모세는 여호와를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만났을 때, 지팡이가 뱀으로 되고 다시 뱀이 지팡이로 되는 것과 자신의 손이 나병에 걸렸다가 다시 회복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지팡이가 뱀으로 되는 것은 불뱀(십자가의 죽음)이며, 뱀이 지팡이로 변하는 것은 장대에 달린 놋뱀(부활)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온전한 손이 나병에 걸린 것(십자가의 죽음)과 나병에서 온전한 손으로 되는 것(부활)을 상징한다. 그래서 상징적인 이 두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자의 죽음(어린양의 죽음: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출애굽시키고, 가나안(부활)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이 장엄한 이야기를 한 여인을 통해서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 여인은 상징적인 인물이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이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미리암은 헬라어로는 마리아이다. 베다니의 나사로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발에 붓는 장면과, 막달라 마리아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리아를 주목한다. 그래서 미리암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미리암을 통해서 나병환자가 어떻게 온전한 사람으로 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나병은 피부병의 질환이지만,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나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격리시키고,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당시 거의 이백만 수준의 인구였다. 집단생활을 하므로 이러한 질병은 공동체를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나병은 죄인을 나타낸다.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그런 타락한 죄인을 나타낸다.
레위기13장에서 소개되는 것은 나병에 대한 성격을 나타낸다. 나병이 어떤 질병인가 라는 것이다. 즉 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14장에서는 나병에 걸린 자가 정결케되는 것에 대한 규례다. 즉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레위기13장 2~42절까지는 주로 오늘날의 마른 버짐이나 기계충, 피부손상과 관련이 있고, 47~59절은 곰팡이 세균과 관련된 증상이 기록되어 있다. 나병의 성격을 네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 나병은 부정한 것이다. 퍼진다는 것이다. 격리되어야 할 질병이다. 불살음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할 질병이다.
13장 26절에서『그러나 제사장이 보기에 그 색점에 흰 털이 없으며 그 자리가 피부보다 얕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그는 그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만일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그가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은 나병의 환부임이니라』
이레(7일)를 가두어 두는 것은 죽고 또 죽는 것이다(둘째 사망). 나병이 전신에 퍼지는 것은 죄가 드러난 것이다. 죄인에게 죄가 드러나는 것은 죄를 깨닫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에 대해서 죽음으로 죄가 다 사해지는 것이다.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전체가 다 퍼졌으므로 죄가 완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은 죄의 대속을 통하여 정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둘째 사망에 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된다. 죽고(죄에 대해서 죽고:둘째 사망) 새롭게 태어나는 것(부활)을 의미한다.
레위기 1장 7절에서『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에베소서 5장 2절에서『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제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제물이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냄새라고 했다.
향유를 깨어 예수님께 바르는 행위는 장차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나병환자와 같이 죽어야 할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죄인을 대신해서 죽는 동물은 각을 뜨고 불에 태워죽였다. 나병환자인 모든 죄인들도 이렇게 영적으로 불에 타 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동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가 향기이며, 향유라는 것이다. 향유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향유가 깨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향유를 깨는 것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자가 있다.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베푸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십자가의 죽음을 희생정신으로 받아드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갑시다 라고 말을 할 때, 이 말에는 예수님과 같이 겸손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자비로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남을 용서하는 등 구별된 삶을 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십자가의 죽음과 가까운 사랑의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자는 취지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과 하나(연합)가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마가복음 14장 8-9절『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ὃ ἔσχεν ἐποίησεν· προέλαβεν μυρίσαι τὸ σῶμά μου εἰς τὸν ἐνταφιασμόν.) 한글 개역개정을 다시 번역해 보면,『그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으니 곧 미리 와서 장사지내는 일을 위하여 내 몸에 기름을 부었느니라』
마찬가지로 성도 역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향유를 붓는 일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장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가 예수님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름붓는 일인 것이다. 즉 성도는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므로, 하나님께서 부활의 몸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왕같은 제사장으로 기름부어지는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ὃ ἐποίησεν αὕτη λαληθήσεται εἰς μνημόσυνον αὐτῆς.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이 여자가 행한 것이 그 여자(미리암)의 기념적인 일을 위해 회자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여자가 행한 것을 통해서, 모세 당시 누이 미리암의 일들이 기억나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여자는 누구인가?
마가복음 14장 3절『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귀네 γυνὴ)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요한복음 12장 1-8절에서 보면 베다니의 죽었다가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그녀의 집에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내용이 소개된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아 예수님이 식사를 하는 중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향유가 들은 옥합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죄를 지은 한 여자는 헬라어로는 하마르톨로스(죄인)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한 여자가 아니라, 죄인이라 여자라는 표현이다. 이는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가 추정된다.
마태복음 26장 6-13절에서는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귀네)가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장면이 나온다.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에서 등장하는 귀네는 상징적인 의미의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귀네(여자)는 기노마이(동사)라는 말에서 어근을 찾는다. 기노마이는 분리되다 나누어지다 라는 의미다. 창세기 2장 21-23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아담)을 잠들게 하고(죽고) 갈비뼈(하와)를 내어 분리시켰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자(female)를 남자(male아담)에게 데려온 내용이다. 사람 아담은 남녀로 분리되기 전의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같은 단어인 남자 아담은 분리된 후의 남자(male)라는 아담이므로 사로 다른 존재인 것이다. 사람(man) 아담이 첫 사람이고, 남자(male) 아담은 아담 이후에 세상에 온 모든 인간을 의미한다. 여자는 그리스도와 분리된 범죄한 천사의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여자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귀네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죽어야 할 죄인이며, 문둥병 환자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둘째, 모세의 누이 미리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민수기 12장 1절에서『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모세가 이방여인을 취하므로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했다. 12장 8-10절에서『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헬라어:마리아)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그래서 진영 밖에 이레(7일)동안 가두고 그 후에 진영으로 들어오게 했다.
출애굽기 17장 45-46절『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제사장은 나병환자를 진영 밖으로 격리시켰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로 인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빛을 차단시켜, 흑암의 물질 세계를 만들어, 영들을 가두었다. 격리시킨 것이다. 그곳이 바로 세상이라는 곳이다. 옷을 찢는 것은 영적으로 벌거벗은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윗입술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로 부터 쫒겨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혼자 살되』이 말은 육체 속에 갇힌 영을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육체 마다 각각의 영이 갇혀 있는 것이다.
레위기14장에서는 정결예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정결예식은 총 2번에 걸쳐서 행해졌다. 1-9절은 진 밖에서 행하는 1차 정결예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10-32절은 진 안에서 행하는 2차 정결예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4장 4절『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정한 산새 두마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흐르는 물, 질그릇의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 새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천국은 마치 밭에 뿌린 겨자씨와 같다』고 표현했다. 이후에 겨자씨가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자라서 많은 새가 깃든다고 말씀하셨다. 겨자씨가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새는 사람(이방인)들을 의미한다.
백향목은 창세기 6장 14절에서 나오는 방주다.『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고페르 나무가 백향목(잣나무)이다. 역청을 바르는데, 역청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그래서 백향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방주의 재료가 되었다.
홍색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입고 있었던 옷이 자색옷이었고, 자색옷이 홍색실로 되어 있었다. 성막과 휘장, 제사장 옷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홍색실은 제사장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26장 1절에서『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그리고 출애굽기 28장 6-8절에서 『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어깨받이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에봇은 제사장이 입던 옷이다.
우슬초는 다윗이 죄를 범했을 때, 우슬초로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우슬초는 양의 피를 바르던 붓이다. 출애굽기 12장 21-22절에서『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14장 5절『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흐르는 물은 살아있다는 표현이다. 율법은 생명이 없다. 그러나 율법 안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바로 숨겨진 그리스도가 생명의 물이 된다. 율법은 사람을 소생케 하고 생명으로 이르게 할 선생 역할을 한다. 물은 말씀이다. 생명이 감추어져 있는 말씀이 율법이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그릇으로 토기를 말한다. 사람의 몸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질그릇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율법을 진리로 이르게 하는 분은 인자이시다. 그래서 여기 질그릇이 인자를 나타낸다. 질그릇인 인자 안에서 정한 새를 잡으라는 것이다.
14장 6-7절『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두 마리의 새 중에서 나머지 한 마리는 백향목 가지에 우슬초와 함께 홍색 실로 묶었다. 그리고 거기에 죽은 새의 피를 찍어서 그 피를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서 그를 정하다고 선포하였다. 7(칠)은 완전수이며 죽은 새의 피를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림으로써 그를 정하게 한 것은, 예수님의 피가 죄인인 성도에게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성도가 정결하게 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백향목과 같이 생명력이 넘치며, 그 구원은 홍색 실이 상징하는 예수님의 피로 인한 것이며, 우슬초가 제물의 피를 뿌리는 데 사용되었듯이 죄인인 성도에게 예수님의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구원의 능력이 임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두 마리의 새 중에서 살아있는 새는 들판에 풀어주었는데 이것은 나병 환자가 나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과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거듭남)을 나타낸다. 두 마리의 새는 나병환자(죄인)를 위해서 죽고 사는 것이다. 결국 나병환자가 죽고 사는 것이다.
14장 8절『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제사장으로부터 정하다는 판정을 받은 나병 환자는 바로 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몸을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 공식적으로 제사장으로부터 정하다는 판정을 받은 나병 환자는 이제 개인적으로 스스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만 했다. 세례의식을 받는 것이다. 물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의식이다. 물세례는 1차 정결예식이라면 불 세례는 2차 정결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병 환자가 진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가족이 있는 장막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 7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것은 아직 2차 정결예식이 남아있었는데 그 예식을 위하여 정결한 상태로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14장 9절『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제사장으로부터 정하다는 판정을 받은 나병 환자는 진 안으로 들어와서 7일 동안 자기 장막 밖에 머물다가 마지막 7일째에 자기 몸에 있는 모든 털을 밀고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물세례) 그렇게 그는 2차 정결예식을 준비함으로써 2차 정결예식(불세례)을 통하여 비로소 이스라엘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그의 옛 지위를 다 회복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결의식을 하게하는 이유는 육체의 질병이 다 나앗지만, 이것을 통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병(죄악)을 낫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에서 지키도록 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나병환자들아 너희들은 이것을 보고 영원히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정하고 있는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500여년 동안 율법을 지켜왔다. 그들은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내용을 깨달았어야만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미리암의 기념적인 일은 그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문둥병자가 되어 진영 밖에서 보내졌고, 희생양의 죽음을 통해서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한 여인이 옥합을 깨는 것(십자가의 죽음)과 기름붓는 모습(성령세례: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마가복음 14장 8절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다.『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하나님을 떠난 자(한 여인)는 예수와 함께 죽고(옥합을 깨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기름을 붓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