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가지고 와! 언제 올 거니? 맨 날 볼 일 볼 일, 무슨 볼 일이 그리 많어?
수화기 쥔 손을 떨던 수방은 수화기를 동댕이 친다. 수화기를 노려보는 사이 신호음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침상 왼쪽으로는 먼지를 보얗게 뒤집이 쓴 오래 된 고리 궤짝 하나가 앉아 있다. 그 옆으로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종이 기저귀 몇 장, 그리고 여성의 자궁을 닮은 플라스틱 변기가 연두빛이다. 약국처방전 그리고 조제약이 들어있는 약봉지가 담겨 주인보다 더 역겨운 듯 생존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는 티비 리모콘, 잡동사니들이다.
못 된 것들, 내가 지 년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제 어미를 한 달에 한 번 보러 오기도 어려워! 오길랑사리 전화 한 번을 안 하는 년들, 꼭 내가 제 년들 안부를 물어야겠어? 에이- 되지 못한 것들! 큰 애한테 전화 좀 해볼까? 에휴에휴-다 관 둬! 입만 벌렸다 하면 그 돈 없다 소리, 먹고 살기 힘들다, 이것도 없고 저 거 낼 돈도 없다, 애들에게 이것도 못 해주고 저 것도 못 해줬다. 평생 없다 소리니 원!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열두 번이지!
한숨을 푹 쉬며 방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녀의 눈에 바퀴벌레가 잡혔다.
저런 요물 같으니, 바퀴를 어디다 빼 버렸는 모양이군! 엉금거리는 것이 약에 취한 모양이야! 너 같은 미물도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느냐? 사람만 얼쩡거리면 자취도 없는 것이 늘쩡거리는 것을 보니. 가까이 다가와만 봐라! 내가 너를 꼭 맞추고야 말 거야! 너까지 나를 업수히 보고 나를 뜯어 먹으러 왔단 말이지. 감히 당돌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누군줄 알고? 내가 불천지위가 네 분이나 계시다는 안동 김가 선원 자손 종가의 며느리야! 발톱꺼정 양반이라는 안동 김가 말이다. 안동 김씨가 외척으로 파당으로 나라를 좀먹은 매국 집안이라고 하지만 이 가문은 아니야. 그건 안동 김가 중에서 장동 김, 청음 집안이지!
수방이 떨리는 왼손으로 리모콘에다 두루말이 휴지를 둘둘 말을 동안 바퀴벌레는 그녀가 물린 점심상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수방은 점점 숨쉬기가 곤란해져 간다. 앞섶이 부풀어 벌렁거린다. 딱- 휴지를 감은 리코콘을 던졌으나 빗나가고 벌레는 삽시간에 장롱 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벌떡이는 가슴을 왼손으로 누르며 장롱 밑을 뚫어질 듯 쏘아본다.
다시 나와 만 봐, 꼭 맞힐테니깐. 뭐 하느라고 바퀴를 키우고 살어. 데면데면한 여편네 같으니라구. 내가 80이 가까워두 몸만 성하면 이까짓 살림 이렇게 안 산다. 그 분결 같이 곱던 손이 이렇게 되도록 차암- 일도 일도 많이 했다.
궂은 일도 많이 했지만 당연히 내 생애에 제일 귀한 일은 아이들 낳아 키운 것이지. 그리고는 차례상이나 제상, 그리고 환갑이니 칠순 팔순 잔치상에 고임새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다 물 건너 갔어. 이렇게 오른팔이 곰배팔이 되었으니 무슨 수로 고임새를 한단 말이냐! 고임새 못하는 것이 제일 원통해. 고향에서 고임새를 제일 잘하기로 선유리에서 이름이 뜨르르한던 나였는데......사막골 세진 아범이 잘한다고 하지만 나만은 못하다고 어른들이 늘 말씀하셨단 말이야.
그 축에 끼지도 못하는 원술언니는 무엇이든 제가 잘한다고 입만 열면 자랑이지. 실지로 아닌 것을 세상은 다 아는데......소싯적부터 떡 한 번을 설지 않게 찌지도 못하는 인사가 맨 날 세상을 도리질 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중얼거리던 그녀가 말을 멈추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등짝을 세계 움츠렸다가 튕긴다.
원술 언니, 지금도 그 버릇 못 고쳤수! 내가 그렇게 만만해? 여기가 어디라고 예까지 와서 이 집안 종가의 며느리 등짝을 우려? 허기야 내가 잘 못했지. 옛날 같았으면 언감생심 내가 잘 하는 것이 있다한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더 잘한다고 말 한자리나 해 볼수 있었수! 이 집안으로 시집 오고 기가 많이 살았지. 허지만 내가 몇 살인데, 아무리 동생이기로서니 아니 아들 손자 본 사람을 등까머리를 우려!
원술 언니, 속 생긴 모양이 다르듯 세상에 떨어질 때 겉 생긴 모양도 다 다른 것을. 내가 못 생겨 태어나라고 빌기를 했수,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 끊고 나올 때 내가 보기를 했수! 어째서 지금까지 쫓아다니며 나를 못살게 굴어 굴기를.....
마음을 곱게 쓰면 생김도 변하고 다 부처가 된답디다. 지금부터라도 맘보 좀 곱게 쓰구랴!
건너편에 누가 앉아 있는 듯 중얼거리던 수방은 씨근덕거리며 왼손으로 물병의 물을 따라 마신다. 그리고는 기진하여 자리에 시간을 들여 눕는다.
꿈적거리기도 귀찮아.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이 꼴이 되었누! 모두들 멀쩡하게 나다니고 있는데. 남을 향해 몰골이 추하다고 눈 한 번을 흘겼을까. 나를 골탕 먹인들 화를 한 번 냈을까. 그렇게 못 살게 굴던 원술 언니와도 한 번을 싸워 본 적이 없는 난데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왜 나만 이렇게 되었을까? 나를 보러 와서는 모두들 내려다 보고 아이고- 쯔쯪- 하는 표정들이라니.
쳇- 사람 일을 어떻게 알어. 누가 한 치 앞을 알겠어. 제 것들 말년의 팔자를 잘 타고 난 덕분이지, 제 잘 난 것 하나도 없어. 아니지 아니야, 내가 왜 자꾸 맘을 이렇게 먹누! 예전에는 없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자꾸 협소해 지는지 모르겠다. 너그럽던 마음이 자꾸 오그라들어. 내 한 몸 때문에 주변이 모두 근심이고 아이들은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고마운 것을 모르고 마음을 못되게 쓰면 안 되는데......이 꼴 저 꼴 고만 보고 빨리 죽어지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런데 잇몸이 또 아파오는구나! 아직까지 인사돌을 사오지 않는단 말이지? 아마 열흘은 지났을 거다. 오늘은 사오려나? 잇몸이 아파서 제대로 밥을 씹지도 못하겠는데......
입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멈추고 이불자락을 탁- 친다.
알았다, 알았어~ 아아 어디든 빨리 헐어서 죽으라는 게로군! 그래서 약을 사오라면 몇 날이나 뜸을 들이고 어른 애 할 것 없이 시큰둥 대답이 없군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여태 못했을까? 어서어서 죽었으면 싶겠지!
그녀는 온 몸을 후둘후둘 떨면서 한바탕 오열을 한다. 영감이 같이 죽자고 할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어. 영감 혼자 죽을 때 무섭고 외로웠을 거야. 같이 죽자는 사람더러 당신이나 죽으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으니, 애고 애고 섭섭하고 서러웠을 거야!
당신이 누워 있으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나만 혼자 남으면 홀가분하게 호강할 줄 알았지 뭐유! 똥까지 싸며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밥버러지 행세를 하고 있으니. 당신 돌아간 후 다리가 부러졌지 뭐에요, 고관절! 수술해서 다리는 붙었는데 뼈가 붙을 동안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더니 다리에 힘이 몽창 빠졌구랴! 운동을 하면 된다는데 세상천지에 나를 붙들고 운동시켜 줄 인사가 이승엔 없어요. 당신이 옆에 있으면 운동하게 붙들어 줬을라나? 천만에 내가 한쪽 팔이 곰배팔이 되었을 때 애들은 그렇다 치고 당신은 내게 어떻게 했어요. 나를 내다 버리고 싶어 했잖아요, 병신하고 같이 다니기 싫다고!!
하지만 고 독기가 당신을 말년까지 더 멋지게 만들었어요. 당신 허리를 못 쓰게 되니 나처럼 될까 봐 깨끗하게 단식을 시작했던 맘을 이제야 알지 뭡니까? 당신 참 용기있는 사람이유! 옛날엔 몰랐는데 잘나긴 얼마나 잘났어. 내게도 그만하면 지성스러웠지. 결혼 초년에 북경에 두고 온 첫사랑 못 잊어 속 깨나 썩였지만......당신 딸들이 시집 가고 나서 툭-하면 하는 소리가 있어요. 옛날 아버지가 엄마에게 하시던 것 제 서방들이 반의 반도 못 따라 간답디다. 성질이 붙 붙은 휘발유 같아서 그렇지, 사내가 또 그만한 성질 없으면 그게 어디 사내유!
그녀는 자기 앞에 부옇게 서 있는 젊은 날의 남편을 바라본다.
당신 말쓱하게 차리고 어디 가세요? 왜 대답을 안 해요? 나도 이제 좀 데리고 다녀요. 나도 세상 구경 좀 두루 해야 제 갈 곳으로 가지 않겠어요. 당신이야 원 없이 다 해봤잖아요. 왜 묵묵부답이유?
그 때 초인종이 계속 울었다. 수방은 어렴풋한 수면에서 정신이 돌아온다.
누구야, 누가 왔어? 딸들이 왔나 봐! 아니야, 파출부 오는 날인가? 내 옷 좀 벗겨 빨으래야지. 아니야 둘째가 목욕시키러 왔을지도 몰라. 게가 이번에 당번이거든. 먹을 것도 사올텐데 며느리년 얘기 듣고 딸년들도 요즘은 바나나, 떡 같은 것들은 사오지 않더라! 안 나오긴 변이 왜 안 나와, 먹은 게 시원잖으니까 그렇지. 못 된 것들! 참 큰 애가 망고 사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목울대가 흔들리도록 순간 그녀가 큰 침을 꿀꺽 삼킨다.
귤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자랄 때 망고도 실컷 먹고 자랐어. 무역하는 큰 오빠 덕분에 더운 나라에서 온다는 좋은 과일이란 과일은 다 먹으며 살았지......그러고 보니 큰 오빠는 손이 끊어졌구나! 오빠가 요절을 하고 난 후 큰 올캐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시집가고 난 후 돌아가셨으니 그 내막을 모르고 살았네.
벌을 받은 거야. 천벌을!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데 하늘이 가만둘 줄 알았어? 아무리 고약한 시누이가 부추겨도 그렇지 어떻게 죽지도 않은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어 상청을 짓고 아침 저녁 상식을 오 년이나 올리느냔 말야.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오빠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신 거야. 손도 끊어지고 대주도 죽고......그림도 잘 그리고 그렇게 재주 많고 돈 버는 재주도 남다른 그 오빠를 죽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