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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고시설은 ‘사람장사’하는 곳”… 폭행, 갈취 등 거주인 인권침해 심각
운영비 아끼려고 활동지원사를 ‘시설 직원’으로 활용
‘시설화’ 경계하는 사회만이 미신고시설 없앤다
장애인 사망 사건이 발생한 미신고시설 평강타운(평강빌)과 개인운영시설 사랑의집이 파란색 한 지붕 아래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 활동지원제도에 기생하는 미신고시설
올해 드러난 미신고시설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인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악용하는 형태였다.
지난 5월 미신고시설 평택 평강타운에서 지적장애인 김경민(가명) 씨가 사망하면서 미신고시설의 존재는 세상에 드러났다. 유족은 김경민이 원래 공동생활가정 ‘사랑의집’에 입소했다고 했지만, 그는 공동생활가정과 한 지붕 아래에 있는 미신고시설에서 지냈다. 원장은 김경민 외에도 다른 장애인들의 주소를 공동생활가정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이들을 활동지원 수급자로 만들고, 그 활동지원사들을 미신고시설 내 직원으로 활용했다. 미신고시설은 평택에 있었으나, 원장은 시흥시에 있는 중개기관에서 활동지원사를 찾았다.
지난 7월에도 활동지원제도를 악용하려던 미신고시설이 덜미를 잡혔다. 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벧엘교회 목사이자 원장은 김포시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에 활동지원사 중개를 요청했는데, 장애인 4명의 주소가 같은 걸 의심한 IL센터 직원의 제보로 이는 드러났다. 확인 결과 벧엘교회에는 4명의 장애인이 2005년부터 거주 중이었고, 주민등록에는 원장의 ‘동거인’으로 등록돼 있었다. 이들 또한, 서울 관악구가 아닌 경기도 중개기관에서 활동지원사를 찾았다.
두 시설은 현재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이들 미신고시설은 활동지원제도를 악용하거나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벧엘교회 원장은 관악구에서 요양원, 노인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고 있기에 거주시설에서 활동지원사를 쓰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라며 “만약 장애인 4명에 대한 활동지원사를 중개기관에 한꺼번에 신청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벧엘교회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신고시설은 한마디로 ‘사람장사’하는 곳”
미신고시설은 장애인복지법상 요보호대상자 중 거주요건 등을 선택할 의사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자를 장애인거주시설로 설치·신고하지 않은 곳에서 보호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시설명칭이나 서비스제공방식, 가족의 보호요청, 5인 이상 거주가구 등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김경민의 통장 내역. 한 달에 110만 원가량의 수급비와 수당이 들어오면 어디론가 이체되거나 출금됐다. 전기세가 5만 원 이상 출금된 내역도 있다. 사망하기 전 달까지 김 원장에게 50만 원이 출금됐다. 사진 평강타운 피해자 유족 제공
미신고시설이 사라져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사람들이 수용시설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적인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거주인의 인권침해는 말도 못 할 수준이다. 미신고시설에서는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 수급비 착복, 운영자와 거주인 간의 엄격한 위계 관계 등 시설수용 정책의 근본적 문제가 더욱 견고하게 나타난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미신고시설은 한마디로 ‘사람장사’하는 곳”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평강타운 내에서는 거주인에 대한 지속적인 폭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경민은 새벽 6시부터 원치 않는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그의 수급비 통장 내역을 통해 원장이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인연금 등을 착복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남아 있는 거주인들의 건강 상태가 최악이라고 발표했다.
관악구의 벧엘교회에서 활동지원사 신청 당시 IL센터에서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면 시설의 존재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현재는 거주인 4명 중 1명만 원장과 함께 살고, 2명은 전원조치 되었으며 1명은 원가정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원가정으로 복귀한 거주인은 부모에 의해 또다시 지방으로 주소지가 옮겨졌다. 주소지가 옮겨진 이유에 대해 가족은 ‘친척집에 갔다’고 하지만, 지방의 거주시설에 수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미신고시설에서는 ‘부모’라는 이름을 내걸기도 한다. 지난 2012년 세상에 알려진 원주 귀래 사랑의집 원장 장 아무개 씨는 총 21명의 장애아동을 자신의 호적에 친자식으로 등록했다. 원장은 방송에서 ‘부모도 버린 장애아동을 먹여 살린다’는 ‘천사아버지’로 소개되어 후원금을 받아 챙기고, 장애수당,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갈취하며 수십 년을 살았다. 거주인의 팔에는 원장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기도 했다. 이 사건은 병원 영안실에 10년, 12년 방치된 두 장애인의 시신에 대해 추적하던 SBS 취재진에 의해 알려졌다. 두 시신은 장 씨의 ‘친자’로 등록된 장애인들이었다.
2012년, 원주 귀래 사랑의집 피해 거주인의 팔에 원장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손가락에는 ‘장애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진 강혜민
사건이 알려진 당시에 귀래 사랑의집에는 성인장애인 4명만이 남아있었는데, 성별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빡빡 민 머리에 원색의 유아용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는 김경민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 속 평강타운 거주자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그들은 모두 머리를 밀었고, 색깔만 다른 피케티셔츠와 옅은 회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은 미신고시설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 복지부, 미신고시설 9곳 알고도 미온적인 태도
김경민 사망 이후 보건복지부는 5월 14일 각 지자체에 6월 12일까지 미신고시설을 전수조사해서 제출하라는 공문을 뿌렸다. 전국에서 겨우 9곳의 미신고시설이 명단에 올랐다. 서울 1곳, 인천 1곳, 경기 5곳, 전남 1곳, 제주 1곳의 미신고시설에는 49명의 거주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복지부는 현재까지 공식적인 발표도, 이에 대한 조치도 없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서 미신고시설의 명단만 알려지게 됐다.
지난 6월 복지부가 취합한 전국 미신고시설 전수조사 결과. 정의당 장혜영의원실 자료 캡처
올해 국정감사에서 9곳의 미신고시설 조치에 대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질의에 복지부는 ‘시설 폐쇄에 따른 이용장애인에 대한 조치(전원 등)에 기간이 소용되어 미신고시설 발견 시 즉각적인 폐쇄조치를 하기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라며 ‘신고 예정이거나 폐쇄 예정인 미신고시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매우 무책임한 입장을 내비쳤다. 장애인복지법에는 미신고시설을 운영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사회복지사업법에는 시설폐쇄 행정처분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지자체도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중랑구 ‘사랑의집’은 복지부의 조사로 미신고시설임이 발각되자, 갑자기 ‘공동생활가정’으로 전환됐다. 10년간 줄곧 자격 미달을 이유로 신고시설이 될 수 없었던 곳이 순식간에 신고시설이 된 것이다. 중랑구에서는 ‘거주인 지원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조처였다’고 했지만, 문제가 발생한 시설이 폐쇄된 후 거주인의 자립생활지원을 하는 사례가 있기에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이 시설 거주인 8명에 대해 현재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었으나, 거주인 간 굳어진 위계관계 탓에 상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 처절한 실패… 이제는 무관심으로 일관
정부의 대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2002년 복지부의 ‘미신고 복지시설 실태조사 및 조건부신고 결과’에 따르면 미신고시설은 총 998곳(거주인 17,036명)이었다. 복지부는 이 조사가 시작된 이유를 미신고시설 거주인의 ‘안전사고, 인권문제, 보호수준 열악함’이라고 밝힌다. 또한 미신고시설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며, 그 원인으로 ‘재정 부족, 까다로운 시설기준, 규제기피’ 등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문제에 복지부는 미신고시설에 대해 3년간의 처벌 유예기간을 주고, 신고기준을 완화하는 조건부 신고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92%(920곳)가 조건부 신고를 약속했다. 복지부는 조건부 신고 시설 중 비닐하우스, 가건물 등의 취약시설 안전을 확보하겠다며 전세금에 대한 은행융자를 알선하고, 공동모금회를 통해 대출 이자 지원과 시설 개보수지원까지 했다. 이른바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이다.
그러나 3년 뒤 오히려 미신고시설 개수는 늘었다. 2005년 ‘미신고복지시설 시·도별 현황’에 따르면 그해 7월 기준으로 미신고시설은 1288곳으로 집계됐다. 이 중 조건부 시설은 916곳, 미신고시설은 372곳이다. 복지부는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에 2003년 42억 원, 2004년 610억 원, 2005년 6개월 동안 230억 원을 투입했다. 복지부는 2005년 7월까지로 둔 신고유예기간을 2009년 12월까지로 연장했다. 이처럼 복지부의 미신고시설에 대한 대응은 ‘신고시설로의 전환’이었다.
지난 2011년 시설인권연대 등 장애인 인권단체와 보건복지부,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등으로 이루어진 장애인 미신고생활시설인권실태 민관합동조사단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미신고시설을 찾았다. 한 거주인이이 묶여 있다(위 왼쪽). 결박당한 거주인의 손목에 상처가 있다(위 오른쪽). 거주인들이 한 방에 20명씩 지내고 있다(아래 왼쪽). 한 시설에서 십여 년을 살았음에도 거주인들에게 ‘개인 물품’은 없었다(아래 오른쪽). ⓒ장애인미신고생활시설 인권실태 민관합동조사단
2011년 이정선 한나라당 중앙장애인위원장의 ‘장애인 미신고시설 조사’에선 이러한 정부의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에 대한 처절한 실패가 드러났다. 당시 조사결과에 대해 김정하 활동가는 “조건부 신고시설은 양성화되지도 않은 채 관리·감독 없이 미신고시설 상태에 머물러 있고, 해체도 되지 않았던 곳이 대부분이었다”라며 “정부도, 시군구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2002년이나 2011년이나 미신고시설 문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대책 마련의 의지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정부는 미신고시설에 대한 공식 입장이나 대책, 정책을 단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어중간한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은 오히려 소규모 시설 개수를 늘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활동지원 중개기관, 활동지원사가 ‘미신고시설’ 감시자 역할 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이미 관련 법에서도 정부와 지자체에 미신고시설의 책임과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선 활동지원사와 활동지원중개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올해 드러난 미신고시설 평강타운과 벧엘교회는 활동지원사를 불법으로 활용했고, 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인 미신고시설에서 운영비를 절약하려는 목적으로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미신고시설의 불법 활동지원사 활용을 지자체와 활동지원 중개기관이 모를 리 없다는 게 종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알려진 것처럼 평강타운은 시흥에 있는 활동지원 중개기관 1곳에서 6명의 활동지원사를 파견했다. 김필순 노들IL센터 사무국장은 “활동지원 중개기관과 활동지원사가 그릇된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활동지원 중개기관이 본분을 망각하고 미신고시설의 불법 행위를 적극 도운 셈이다.
따라서 박상희 노들IL센터 활동가는 “활동지원 중개기관에서 활동지원사를 파견할 때, 주소지가 같은 경우 동거인인지 혹은 자립생활주택인지를 모두 확인할 수밖에 없다”라며 “활동지원사들도 일하는 곳이 시설인지 아닌지 구분 못 할 리가 없다. 또한 중개기관과 활동지원사는 신고의무자로서 신고할 의무가 있다”고 당부했다.
유족이 전달받은 김경민의 유품은 짙은 회색 긴 팔 저지 티셔츠 1장과 바지 2장, 양말 한 켤레, 주민등록증, 복지카드, 통장, 영정사진뿐이었다. 사진 평강타운 피해자 유족 제공
- 탈시설 정책 이행 속, ‘시설화’ 경계하는 사회로
미신고시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탈시설일 수밖에 없다. 모든 시설화를 경계하는 사회에서야 비로소 미신고시설이 사라질 수 있다. 김정하 활동가는 “미신고시설은 존재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 곳으로, 수용된 사람들은 불법 감금돼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라며 “탈시설 정책을 바탕으로, 모든 시설의 신규입소를 엄격히 제한하며 현재 미신고시설에 수용된 이들에 대한 지원체계도 하나씩 마련해야 해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강력한 탈시설 정책이 미신고시설의 음지화, 혹은 선택적 ‘미신고시설’을 양산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정하 활동가는 “이미 시설협회에서 20년 전부터 줄곧 펼쳤던 ‘탈시설 정책 시행하면 시설 거주인 모두 노숙인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라는 식의 논리”라면서 “탈시설은 ‘인권’이 중심인 만큼, 미신고시설 문제에서 탈시설 정책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있을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이어 “유럽연합에서는 탈시설을 대형시설에서의 탈시설만이 아닌, ‘시설적 문화’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라며 “시설의 규모나 성질, 신고와 미신고를 세세히 따지는 것보다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한 사람들이 시설화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탈시설운동 진영에서는 정부, 시설운영자, 장애인의 가족, 국민 등의 4자 간 침묵의 카르텔을 지적하며, 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에 모두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시설운영자가 기득권을 놓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시설화’를 경계하는 감수성으로 주위를 살펴봐야 한다. 감금돼 살아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처 : 비마이너뉴스 <허현덕 기자> 뉴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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